▶15일 KAL858기 가족회 등이 기자회견을 갖고 과거사위에 진상규명을 신청했다.
사진은 차옥정 가족회 회장이 신청서를 접수하는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우리 KAL858기 사건 실종자 가족들은 진실화해위원회에 간곡히 부탁한다. 더 이상 이 사건의 희생자들과 가족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도록, 지난 20년 동안의 신음과 눈물을 멈출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주기를 부탁한다."

87년 115명의 승객을 태운 채 미얀마 남방 안다만해상에서 사라진 KAL858기 사건이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 국정원 발전위)'의 손을 떠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이하 과거사위)로 넘겨졌다.

15일 오전 11시 우중충한 날씨 속에 서울 필동1가 과거사위 사무실 앞에서 'KAL858기 사건 가족회'(가족회)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범국민위)는 기자회견을 갖고 과거사위에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신청했다.

▶과거사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종렬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KAL858기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된 기자회견에서 전국연합 의장인 오종렬 범국민위 공동대표는 "국정원 발전위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동참했던 사람이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국정원 발전위의 발표를 보면 지난 20년동안 안기부 국정원에서 발표했던 내용에서 나아가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오종렬 공동대표는 "진실화해위는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누가 막아도, 아무리 무서운 세력이 막아도 박차를 가해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가족들의 피눈물을 씻어줄 자가 누구냐. 우리 손목잡고 힘찬 걸음을 대딛자. 반드시 해원하도록 하자"고 독려했다.

▶기자회견에는 가족회원들과 변연식 천주교인권위원장, 허영춘 의문사유가족협의회 회장,
김영옥 범민련남측본부 중앙위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인 김덕진 대책위 사무국장은 대책위 입장을 밝히면서 "우리들이 예상했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게 국정원 스스로는 발전위원회를 국정원의 과거 잘못들에 대한 면죄부를 받으려고 하는 들러리로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고 해석하고 "지난 8월 1일 중간발표는 너무 실망을 넘어 절망하고, 가족들은 두 번, 세 번 마음 아파하는 조사 결과였다"고 말했다.

김덕진 사무국장은 △국정원 발전위가 KAL858기 동체 추정 물체로 발표했던 것이 바윗덩어리에 불과했던 점 △김현희와 국정원 조사관들에 대한 조사가 실시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국정원 발전위의 조사결과를 비판하고,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정하는 우리의 심정은 이것이 마지막일 수밖에 없다는 참담한 심정이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인원이라든지 권한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성의있고 성실한 자세로 조사에 임해서 반드시 진실을 밝혀줄 것을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촉구했다.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는 차옥정 회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차옥정 가족회 회장은 '우리는 오늘, 19년 전 멈추어버린 시계추를 다시 움직이고자 한다'는 제목의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자국민 100명이 넘게 희생당한 참혹한 비극을 정권 재창출을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는 천인공노할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저질렀던 인권침해에 대한 반성은커녕, KAL858기 사건의 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며 "20년 전 안기부의 수사발표보다 진전된 것은 단 한 줄도 없는 무성의하고, 실망스러운 발표였을 뿐이다"고 국정원 발전위의 조사결과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흐리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차옥정 회장은 "KAL858기 사건 가족회는 KAL858기 사건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밝히고 "KAL858기 사건의 진실이 가슴 아픈 역사의 눈물에 깊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서우영 범국민위 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기자회견에는 변연식 천주교인권위 위원장과 군에서 의문사한 허원근 일병의 부친 허영춘 '의문사 상규명을 위한 유가족협의회' 회장, 김영옥 범민련남측본부 중앙위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 과거사위 2층에 마련된 민원실에 신청서와 함께 비디오와 책자 등 관련 자료를
전달하고 있는 차옥정 가족회 회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기자회견을 마친 20여명의 참가자들은 과거사위 2층 민원실을 찾아 '진상규명 신청서'를 접수하고 그동안 수집한 관련 자료들을 전달했으며, 3층 상임위원실에서 김갑배 과거사위 상임위원을 면담하고 송기인 과거사위 위원장과 김 상임위원에게 별도의 진상규명 신청서를 전달했다.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신청서(전문) 보기]

김갑배 상임위원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오종렬 공동대표는 국정원 발전위의 "밑그림을 그릴 때" 김 상임위원과 함께 했던 일을 상기시키고 "제대로 된 국가정보원이 되어달라고 간절한 소망으로 그렇게 했는데, 옛날 안기부 때 했던 소리 그대로 더 이상은 없다"며 "진실화해위원회가 있으니까 여러 가지 여건이 어렵다 하더라도 여기서 해내야 할 것이고, 여기에 기댈 수밖에 없어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오종렬 공동대표는 과거사위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접수를 마치고 김갑배 과거사위 상임위원과 면담하고 있는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차옥정 회장은 "있는 것 그대로 밝혀달라"며 "테러범이라면서 김현희 조사는 왜 못하느냐, 그리고 같이 조작한 시대의 수사관들이 다 있는데 그 사람들 조사하면 다 나올 것 아니냐"며 "이번에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신청)했으니까 꼭 밝혀주고 우리 한 좀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KAL858기 스튜어디스였던 딸 신정섭(당시 22세)씨를 잃은 이을화 씨는 "(국정원 발전위가)시체까지 있다고 그랬다. 세상에 이렇게 억울할 데가 어디 있느냐. 시체가 있고 뼈까지 있다고 했는데 이제와서 바윗돌이라고 하니 저희를 얼마나 가지고 놀리는 거냐"며 "안전밸트를 매서 뼈는 있다고 했다. 우리 딸은 서빙하느라 나다녀서 그러면 시체도 없고 떠내려갔겠네 하고 내가 막 울었다. 이렇게 울려놨다. 우리를. 그런데 이제 와서 바위라고 나왔으니 사람을 얼마나 놀리고 가족을 얼마나 버러지 취급을 하고 밟아 죽이는 것이냐. 아주 분해 죽겠다. 왜 20년만에 또 가족을 울리는 거냐"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김갑배 상임위원은 "국정원 보고서는 나도 읽어봤다"며 "이 사건 내용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잘 읽어보고 세밀하게 보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장담을 드릴 수 없어서 죄송하다. 자세히 검토를 해보고 말씀드릴 것이다"고 덧붙였다.

▶가족회는 별도로 과거사위 위원장인 송기인 신부와 김 상임위원에게도 신청서를
전달했다. 
진상규명 신청과 면담을 마치고 나온 차옥정 회장은 "성실하게 해주면 진상규명이 되리라고 희망을 갖고 마지막으로 한 것이다"며 "접수를 하긴 했지만 또 기다려야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과거사위 관계자는 "신청이 접수되면 민원실에서 사건명을 붙여 해당국인 인권침해조사국으로 넘기고 담당 조사관이 정해져 사전조사를 실시한다"며 "사건은 접수 후 3개월 이내에 조사와 각하 여부를 결정해야 하고 사전조사 기간까지 포함하면 120일까지 걸릴 수도 있다"고 설명하고 "인권침해조사국에서 조사개시 의견을 올리면 인권침해규명위원회(위원장 김갑배 상임위원)에서 조사개시를 결정하고 전원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한 뒤 대외적으로 공표하게 된다"고 전했다. 

오는 29일로 사고 19주기를 맞는 KAL858기 사건이 과거사위의 손에 넘어감으로써 국정원 발전위가 못해낸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자회견문(전문)

 


우리는 오늘, 19년 전 멈추어버린 시계추를 다시 움직이고자 한다.


지난 19년간 KAL 858기 실종자 가족들은, 오직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공권력으로부터의 억압과 온갖 인권침해를 참아냈고, 수구세력들에게 모진 수모를 당해도 눈물을 삼키며 살아왔다. 지난 해, KAL858기 사건은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발전위)의 7대 조사대상 사건 중 하나로 선정되어, KAL858기 사건의 재조사가 시작되었을 때, 가족들은 큰 기대와 아낌없는 신뢰를 주었다. 가족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조사결과를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약 1년 8개월간의 조사 후 발표된 조사결과는 가족들에게 심한 배신감과 절망만을 안겨 주었다. 진실규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조사대상일 수 있는 김현희와 당시 안기부 핵심 수사라인의 간부들에 대한 면담조사 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국정원 발전위가 KAL858기의 동체임이 거의 확실하다고 주장했던 바다 속 물체는 커다란 바위덩어리에 불과했고, 20년 전 안기부의 수사발표보다 진전된 것은 단 한 줄도 없는 무성의하고, 실망스러운 발표였을 뿐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국정원 발전위의 KAL858기 사건에 대한 조사 역량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고, 진실규명의 의지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기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국정원 발전위를 신뢰할 수 없다.
1987년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이 노태우 후보를 13대 대선에서 당선시키기 위해 KA858기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고 지시한 공식문건이 ‘무지개공작’이라는 이름으로 발견된 것이 유일한 성과라면 성과일 것이다. 자국민 100명이 넘게 희생당한 참혹한 비극을 정권 재창출을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는 천인공노할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안기부의 후신인 국정원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저질렀던 인권침해에 대한 반성은커녕, KAL858기 사건의 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KAL858기 사건 19주기를 바로 앞에 두고, 과거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가 저지른 입에 담기도 힘든 잘못들을 다시금 기억해 본다. 이제는 그 진실이 밝혀진 인혁당 사건, 동백림 사건을 비롯한 수백건의 조작간첩사건들. 그 피해자와 가족들의 통한의 세월, 모진 나날들. 그 희생과 세월을 누가 보상해 줄 수 있겠는가? 모든 피해 가족들은 오로지 진상규명, 그것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다.
오늘, 진실과 화해위원회 앞에 서 있는 우리들의 심정은 매우 절박하다. 진실과 화해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권한과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이 매우 부족하고, 그 역량 역시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잘 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KAL858기 사건 실종자 가족들은 진실?화해위원회에 간곡히 부탁한다. 더 이상 이 사건의 희생자들과 가족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토록, 지난 20년 동안의 신음과 눈물을 멈출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주기를 부탁한다. 그리하여 KAL858기 사건의 진실이 가슴 아픈 역사의 눈물에 깊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06년 11월 15일
KAL858기 사건 가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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