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우 전문기자 (tongil@tongilnews.com)

지난 10월9일 북한이 실시한 핵실험은 한반도만이 국제사회에도 큰 파장을 몰고 오고 있습니다. 통일뉴스는 창간 6주년을 맞아 북핵실험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한반도 정세에 미친 영향과 관련해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편집자 주

① 북핵실험이 갖는 세계적인 측면
② 북핵실험 이후 동북아 정세
③ 북핵실험 이후 남북관계
④ 북핵실험과 FTA



북핵실험을 주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의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같은 관점이 핵실험을 보는 중심 문제이기는 하지만 북핵실험은 전쟁과 평화이외에도 여러 가지 점에서 음미할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아래에서는 북핵실험이 담고 있는 세계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해 보겠다.

1. 뉴욕타임즈의 칼럼리스트 토머스 L. 프리드먼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는 탈(脫) 냉전시대의 시작을 알렸고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은 훨씬 문제가 많은 ‘포스트 탈냉전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일지 모른다”고 쓴 바 있다.(연합뉴스, 2006.10.12)

프리드먼의 분석에 따르면 <냉전-탈냉전-포스트 탈냉전>으로 세계사를 구분할 경우 냉전은 미소 양극질서, 탈냉전은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 포스트 탈냉전은 북ㆍ이란 등 제 3세계의 강력한 도전에 의해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가 위협받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인식은 9월 쿠바 아바나에서 폐막된 14차 비동맹정상회의에서도 볼 수 있다. 비동맹정상회의에서 차베스 베네주엘라 대통령은 “미 제국주의는 쇠퇴하고 있으며, 새로운 양극체제의 세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발언하였고(이때의 양극은 미소 양극이 아니라 미국과 비동맹의 양극이다) 옵서버로 참가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비동맹운동을 “뉴 사우스(new South)의 상징”이라고 평가하면서 “여러분은 새롭고 강력한 ‘남쪽세력(South)’의 상징으로, 세계가 급속히 발전하는 현 시점에 여러 개별 국가들 그리고 문화, 온갖 운동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여 눈길을 끌었다.(연합뉴스에서)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인식, 가령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가 가고 ‘미국-비동맹’ 간의 양극질서가 수립되었다고 보는 것은 과도한 인식이다. 여전히 세계는 주요 열강들의 세계이고 미국의 일방주의에 저항하는 유럽연합, 중국, 러시아 등의 움직임이 세계를 운영하는 기본 동력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ㆍ이란의 대미 공세, 쿠바ㆍ베네주엘라를 선두로 한 반(反)신자유주의 공세가 세계사의 흐름을 의미 있게 재편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2. ‘미국-비동맹’ 양극 질서라고 운위할 정도로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를 위협하는 강력한 힘은 무엇보다 북ㆍ이란의 핵보유와 NPT 체제의 균열 가능성이다.

여전히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군사력이고 군사력 중에서도 여타 재래식 무기를 압도하는 힘은 핵, 미사일 등의 전략무기이다. 특히 제 3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재래식 무기, 경제력 등 여타 역량으로는 미국은 물론 다른 열강들의 영향력도 배제하기 어려울 만큼 현격한 힘의 열세에 있기 때문에 핵, 전략무기 개발은 미국과 다른 열강들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일점 돌파의 효과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다.

3. 핵이 갖는 위와 같은 의의는 1990년대 이른바 ‘Win-Win 전략’의 대상이었고 2002년 ‘악의 축’으로 지목되었던 세 나라, 북ㆍ이란ㆍ이라크의 행보에서도 잘 드러난다. 

<표> 북, 이란, 이라크의 행보 

 

1990년대 초반

1990년대 중반

2001년 이후

제네바 합의

- 선군정치

- 강경 반미, 황장엽 등의 주변적 반발

- 고난의 행군 

- 핵 공방

이란

 

- 97, 01년 온건파 승리

- 96년 미국의 경제제재 

- 2001년 9.11

- 2002년 1.29 악의 축

- 2003년 3월 이라크 침략

- 2004년 하반기 이라크 남부에서 미국과 시아파의 대결

- 2005년 6월 이란 대선

이라크

1차 이라크 전쟁

- 경제 제재로 와해

- 2차 이라크 전쟁


북ㆍ이란ㆍ이라크는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하에서 핵을 대미 협상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정치적 입지가 다르게 나타났다.

1990년대 중반 북이 선군정치를 통해 핵을 대미 협상용으로 사용하는데 성공하여 2001년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고강도 압박에 저항할 수 있는 카드를 손에 쥐었다면 이라크는 ‘아무 것도 없음으로 해서’ 미국의 침공을 자초하고 말았다.

이란의 경우는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라는 상황에서 온건파의 입지가 축소되고 대미 강경파의 입지가 강화되었고 2005년 6월 대선에서 아마디네자드 강경정권으로 수렴된다. 1990년대 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정점으로 한 강경한 반미노선이 주종을 이루되 황장엽 등의 반발이 주변적 요소로 정리된 것과 대비된다.

북ㆍ이란ㆍ이라크 세 나라의 처지는 핵무기와 미국과 이들 나라들과의 공방에서 핵무기의 존재 여부가 갖는 위력을 잘 보여 준다.

이를 부시 행정부의 관점에서 역으로 해석하면 이라크에 미국의 침략을 제어할만한 위력있 는 군사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침공을 감행했고, 북ㆍ이란에는 미국의 군사공격이 여의치 않기 때문에 군사력 사용이 유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량살상무기가 없는 나라는 공격의 대상이 되고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침략을 모면하는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이야말로 부시 행정부의 이중기준과 핵무기를 둘러 싼 파워게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4. ‘미국-비동맹’이라는 양극 질서를 염두에 두고 10.9 북핵실험을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입장에서 초미의 현안은 중동이다. 최근 진행된 한미연례안보협의회 이후 럼스펠드-윤광웅 장관의 기자회견은 미국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한미군사관계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그것도 북의 핵실험이 끝난 직후임에도 미국 기자와 럼스펠드의 관심사는 온통 이라크와 중동이다.

중동과 이라크의 상황은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하는 초미의 현안으로 미국의 고위급 정치인들은 이라크 이외에 다른 것을 돌아볼 여력이 별로 없는 듯 하다. 차베스 대통령의 말처럼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상황을 보면서 “여생을 악몽에서 보낼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 모른다.

북의 공세(7.5 미사일 발사, 10.3 핵실험 예고, 10.9 핵실험 실시)는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다. 북이 의도했던 바는, 첫째 중동 정세의 악화로 미국이 상황에 대응할만한 여력이 없을 것이라는 점, 둘째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정가의 이견이 극심해질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전술적 공세를 통해 우세한 지위를 선점하고 북미 공방의 다음을 준비하려는 수순이었다고 볼 수 있다.

5. 전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미국의 헤게모니는 예상보다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북ㆍ이란의 대미 공세는 위협적이고 가공할만한 것이다. 핵이란 그런 것이다. 북ㆍ이란과 같은 중규모 국가들이 미국과 맞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카드인 핵, 미사일을 손에 넣음으로써 북ㆍ이란은 갂가 미국과의 양자 협상에서 거의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미국은 전쟁을 선택하거나 북ㆍ이란의 요구를 전면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어느 쪽이나 미국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위에서 거론한 뉴욕타임즈의 프리드먼의 지적은 이런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둘째는 2006~2008년 소(小)시기가 대단히 중요한 전환기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것은 2001년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상식을 초월하는 일방주의를 강행하면서부터이다. 대량살상무기가 없는 것을 버젓이 알면서도 세계열강의 반대를 무릎 쓰고 인구 2천만의 중규모 산유국을 공격하는 마당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북ㆍ이란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지켜보면서 이라크 전쟁이 마무리되면 다음은 자신의 차례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사활을 걸고 미국의 침략을 방어할 무기인 핵 개발에 전념했을 것이다.

최근 상황은 수세에 몰려있던 북ㆍ이란이 대미 공세를 강화하는 양상이고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발이 묶여 있는 조건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양상이다.

따라서 갈등과 대결의 무대는 2001년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논란이 본격화될 미국 선거 특히 2006년 중간선거와 2008년 대선이다. 아마도 ‘북ㆍ이란 대 미국’의 대응은 미국 내부의 정치 역학이 정리되면 그에 맞게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진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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