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오전 8시.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

서해상에 떠있는 20여 척의 군함. 4000야드의 바다를 헤치고 몰려오는 수륙양용상륙장갑차.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을 묵직한 궤도로 짓이기며 위용을 내뿜는 탱크.

한 컷의 사진을 찍기 위해 수십 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한미 연합전시증원연습(RSOI) 및 독수리연습(FE)에 대해 '가급적 알리지 말자'는 'Low-Key'로 합의한 국방부와 한미연합사령부의 '대언론 홍보방침'도 한몫했다.

예전 같았으면 당일 현장에 와서 국방부에서 마련한 언론 홍보용 연습장면을 찍고 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 RSOI-FE는 장소, 일정 등이 일체 비공개로 진행돼, 유일하게 알려진 만리포해수욕장에 기자들이 전날부터 진을 치고 숙식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하면서 취재에 나선 것이다.

취재진이 몰리자 언론에 크게 알려지기를 기피했던 국방부 공보관계자들의 당황한 모습도 역력했다.

그렇다고 취재진들이 한미연합상륙전연습의 '대북공격성'과 같은 숨은 내용을 파헤치기 위해 현장에 몰린 것은 아니다. 다만 당국의 비공개 방침으로 구하기 힘들어진 RSOI-FE의 '군사연습' 사진 한 장을 위한 것이다.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기자들 사이에 '펜기자' 한 명 제대로 찾기 힘들었던 상황이 이를 입증하고 있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RSOI-FE가 방어적 연습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공격적 연습'이라며 상륙해 들어오는 장갑차를 향해 군사연습장인 해수욕장 해변으로 뛰어든 것이다.

군사연습을 사진으로 담고 있던 기자들도 일제히 이들에게로 몰렸다. 이들이 '동족 코앞에서 전쟁연습 즉각 중단하라'는 등의 현수막을 펼치자 기자들의 카메라 렌즈에도 한미연합상륙전연습의 이면적 모습이 담기게 됐다.

일반적인 군사연습이 이들 활동가의 시위로 전국적인 이슈로 비화됐으니 기자들로서는 '한 건' 건진 셈이다. 상륙수송기인 LCAC에서 하선하던 탱크 앞을 막아나선 활동가들에게 "나도 먹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 이제 그만 했으면 나와라"며 탱크의 상륙을 찍으려는 한 사진가의 '꼴불견'을 제외하고 말이다.

3월 31일. 중앙일보 조간. 사진보도.

"이들은(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은 시위 뒤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신들이 몰고 온 승용차를 이용, 13km쯤 달아나다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이들의 신원만 확인하고 훈방조치 했다."

언뜻 보면 사실만 기술한 것 같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날 활동가들은 9시 50분 경 자진해산하고, '달아난' 것이 아니라, 만리포지구대에서 출동한 현장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울로 '떠났다'.

뒤늦게 경찰은 이들의 차량의 이동을 경찰차 4대로 막았다. 현장에 있었던 한 활동가는 경찰은 일부 활동가들이 장갑차에 올라가는 등 과격한 행위를 한 것으로 알고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지만, 사실이 아님을 뒤늦게 알고 풀어줬다고 전했다.

이후 해당 단체는 위의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현장에 와서 보고 쓴 것이냐'고 따져 물었으며, 기자는 인터넷 매체의 동영상을 보고 기사를 작성했다고 밝히고 정정보도를 하는 헤프닝이 벌어졌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서곡에 불과했다.

3월 31일 주요신문 보도부터 4월 4일 박근혜 대표 발언까지

<문화일보 3월 31일 석간>
한미합동 군사훈련장에 범민련 등 난입 "양키 고 홈" 시위
작년 이어 또...국방부. 경찰 '팔짱만'
한미연합사 "상륙정 막는 등 부대원 안전 위협 심각"

<조선일보 3월 31일 인터넷판>
“누가 敵이지?”
韓美연합 상륙작전 ‘시위대와 전쟁’

<동아일보 1일 인터넷판>
"한미연합 군사훈련장에 진보단체 회원들이 기습 시위를 벌인 데 대해 국방부와 경찰이 사전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1시간 가까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논란을 빚고 있다"

<중앙일보 1일 인터넷판>
국방부·경찰 예방조치 안해
"한.미 합동 군사훈련장에서 또다시 기습 시위가 벌어졌다. 연례 행사다. 그러나 국방부와 경찰은 사전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수수방관했다. 네티즌 사이에서도 기습 시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4월 4일 국회, 최고위원회의-데일리안 보도>
"일부 시민단체와 학생들이 '방어'훈련을 '북침'훈련이라고 주장하면서 군사훈련장에 침입해 심지어 장갑차 위에까지 올라가는 위험천만한 시위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마치 없었던 일인 양 대충 넘어가 문제를 키울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를 해결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30일 한미연합상륙전연습 반대 시위를 했던 단체들에게 '없던 일로 하자'던 국방부는 4월 1일 자로 "훈련통제단장(대령)을 고발인으로 하여 시위 가담자 전원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협의로 서산경찰서에 고발조치"했다.

'몰이식' 언론보도 속으로 사라진 '상륙전'의 진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3월 30일 오전 8시 25분 한미연합상륙전 연습을 앞두고 '개방된' 만리포해수욕장 한 가운데 차려진 '임시중앙통제소'에서 한미연합사 자체 '비공개' 현장브리핑이 진행됐다.

브리핑을 담당한 국방부 관계자의 입에서 충격적인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 실시되는 연습은 '작계 5027-04' 3단계 2부에 의해 적용된다", "만리포는 북한 서해안의 한 지역을 상정한 상륙작전", "(본 군사연습의 가정상황으로) 평양의 고립을 위한 서해안 상륙작전 준비중"이며 "한미연합사령관은 평양을 압박.고립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RSOI-FE에 대해 '연례적 방어훈련'이라던 정부의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브리핑에 이어 훈련장으로 뛰어든 활동가들이 외친 '한반도평화를 위협하는 대북전쟁연습 중단하라'는 구호가 '허위'가 아니라는 것도 입증해 주는 '당국자의 사실확인'이었다.

비공개 브리핑이었지만 개방된 곳에서 이런 발언을 들은 기자는 없었던 것일까. 으레 '군사연습하면 사진만 찍으면 된다'는 기성언론들의 사고방식도 이 같은 중요한 사실이 제대로 보도되지 못한 데 한몫 한 것이다.

본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단독보도 했음에도 보수언론은 침묵하는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사실'을 주장한 활동가들에 대한 '단호한 대처'만 부추기고 있다.

'만리포상륙전연습 시위자 고발조치'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까지 나서서 정치적 쟁점화 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보수언론의 잘못된 보도행태로 '진실'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기자로서 씁쓸함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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