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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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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4.25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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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나는 군대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군대이야기를 환갑의 나이까지 한다고 하고, 남자라면 군대는 갔다와야 한다는 얘기도 하지만 별 재미가 없다. 대부분 고생한 얘기 아니면 잘 풀렸다는 말밖에는 없고, 군대갔다 와야 사람 구실을 하고 철든다는 것도 우습다. 정말 그렇다면 돈 많고 힘있는 사람들이 왜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겠나. 가끔 친구들과의 군대이야기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현역을 갔다왔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시력도 나쁘고, 몸무게도 47kg, 거기에다 평발인데도 말이다.

구타사고가 많아 `구타금지`라는 구호를 경례와 함께 붙이고 다녔지만, `팔타`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구타를 당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구석구석 여행을 다녔지만 군대생활을 한 철원 쪽으로는 발길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황량한 겨울의 철원평야를 잊지 못한다.

그래도 군대생활에서 여러 가지 얻은 교훈이 많다. 통제와 권위, 몰개성과 계급, 상명하복, 복지부동, 권력, 폭력 따위의 개념들은 거의 군대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 좋지 못한 것을 통해 초등학교 수준의 아름다운 가치들을 확실하게 이해한 것이다. 또한 대학생활 초반에 막연하게 느꼈던 사회구조의 문제를 제대 이후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가 그 당시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의식을 가졌던 원인 제공자는 군대생활이었다. 하긴 군사독재시절이었으니 군대나 사회나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군대생활은 어려울 수밖에 없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정신적인 문제였다. 명령에 따라 행위를 하지만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왜 북한을 적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왜 미군에는 주눅이 들고 굽신거려야 하는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일방적인 논리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생각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동전의 한 면은 있는데 다른 한 면은 없었다. 아니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되었다.

더 근본적인 고통은 원하지도 않은 곳에 와서, 싫은 소리를 듣고, 하기 싫은 행위를 하며, 확신도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비슷한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충고한다.
`어떻게 세상을 니 하고 싶은 데로 하면서 살겠냐. 꿈 깨라.`
여기에 나는 이렇게 대꾸한다.
`그럼 뭐하러 힘들게 사냐?`

이 대답에 방종이니, 이기심이니 하는 초등학교 수준의 충고는 하지 마라. 극단적인 대답일 수는 있지만 결국은 사람이 사회를 만들고, 법과 질서를 발전시키며, 민주주의와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것도 내가 원하는 사회에서 좋은 소리 듣고, 가치 있는 행동을 하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함이다. 

군대이야기를 싫어한다면서 주절주절 늘어놓고야 말았다. 사실 가끔은 내가 또 다른 사회에서 군대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부단히 자유를 꿈꾸고, 내 몸과 주변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타성과 권위, 폭력 따위를 떨쳐내고 싶으니 말이다.


군대가 중심인 사회

▶<진 펄을 헤치고>/리률선/조선화/156*300/1987

이번 작품은 군대와 관련된 것이다. <진 펄을 헤치고>라는 제목의 3m짜리 대형 조선화인데, 리률선이라는 북한화가에 의해 1987년 제작되었다. 인민군이 나오는 작품은 주로 한국전쟁에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한국전쟁을 다룬 작품은 아니다. 보는 그대로 어떤 작전을 수행하는 인민군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비록 훈련이기는 하지만 중앙에 배치된 장교와 병사의 눈빛은 비장함이 서려있다. 왼쪽 끝의 병사는 힘을 내라는 듯 소리를 치고 있으며, 오른쪽 뒷 부분에 있는 여군과 병사는 웃는 표정을 하고 있다.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폭우가 쏟아지는 험한 습지를 당당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낙관성으로 헤쳐 가는 내용이다.

조선화로 그려진 이 작품을 북한식으로 평가하자면 다음과 같다.
"단순한 붓놀림이나 화면의 효과를 바라는 데 쏠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성격을 개성적으로 보이게 하고 심리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데에 작용하며 인물의 운동을 단순한 인체상의 움직임으로서가 아니라 피가 뛰고 살아 움직이는 산 동작으로 보여주고 주위 환경이나 자연지물도 화폭 우에 펼쳐진 그림으로가 아니라 실경을 감상하는 듯한 감정을 자아내도록 이바지한다.<김순영/문예론문집/평양 1976년>"

실제로 작품을 보면 각기 인물의 표정이 다양하게 살아있고, 배경도 인물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폭우가 쏟아지는 표현은 과감하면서도 회화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다. 서양이나 우리나라 화가들은 좀처럼 이런 비가 쏟아지는 장면을 그리지 않는다. 어렵기도 하거니와 자칫하면 작품성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인민군의 사기를 올리고 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 소식에서도 나타나지만 북한에서의 군대는 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미국의 부단한 압박에 맞서 나름의 체제를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 무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식으로 말하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북한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원동력이 군대라고 북한에서는 공공연하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런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은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있다. 경제발전과 `인민`의 생활향상에 들어가야 할 엄청난 자원이 군대를 유지하는데 사용된다. 군인은 소비하는 사람이지 생산하는 사람은 아니다. 경제활동을 해야할 젊은이들이 군사훈련에 열중하고 있으니 사회적으로 얼마나 손실이 크겠는가.

이유야 어떻든 군대가 중심인 사회는 발전하기 어렵다. 남과 북이 이런 점에서는 똑같다고 할 수 있다.

군대는 속성상 엄한 통제와 규율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개성은 말살된다. 내가 군대에서 알 수 없는 적개심으로 북쪽을 바라보았듯이 작품 속에 나오는 인민군의 매서운 눈초리가 우리 국군과 시민들을 향하고 있지 않길 바란다. 전쟁과 폭력, 분노와 적개심으로는 사회와 인간의 존엄성을 발전시킬 수 없다.

전쟁을 막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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