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정태화 외무성 순회대사는 24일 제10차 북.일 본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95년 8월 발표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의 담화로 사죄를 대신할 수 없음을 일본 당국에 분명히 했다.

정 대사는 `무라야마 담화에 들어있는 오와비(おわび)라는 말 즉, 실수나 부주의로 남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 쓰는 표현으로 된 사죄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우리 인민이 일제의 전대미문의 군사적 강점 통치기간에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고 막대한 양의 문화재들을 약탈당했을 뿐 아니라 민족의 얼까지 말살당하였기 때문`이라고 것이다.

`오와비`는 `깊이 사죄한다`는 뜻으로도, `가볍게 미안하다`는 의미로도 폭넓게 쓰이는 순수 일본어이다. 일본은 일제시대 자행된 범죄에 대해 항상 오와비라고 말해 왔고 이는 일반적으로 사죄나 사과로 풀이돼 왔다.

그러나 사죄라는 용어에는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해 상대방의 용서를 구한다는 사과의 뜻과 함께 똑같은 잘못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측은 폭넓은 의미의 사과와 사죄를 뜻하는 `오와비`가 아닌 진심으로 반성하고 그러한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정치적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북한측은 일본에 대해 `사죄는 관계 정상화에 앞서 일본 정부의 최고책임자가 해야 돼야 하며 반드시 관계정상화와 관련해 채택될 최종문건에 명기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의 최고책임자는 총리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상징적 원수인 `천황`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확실한 대상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무라야마 담화`를 사죄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당시 담화에서 `국책을 그르쳐 우리나라(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국가의 많은 국민에게 다대(多大)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면서 `거듭 통절(痛切)한 반성의 뜻과 함께 마음으로부터 오와비(おわび)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 담화는 북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발표된 담화이기 때문에 불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정 대사는 지난 4월초 평양에서 열린 제9차 본회담에서도 무라야마 담화로 사죄를 대신하자는 일본측 주장에 대해 `아시아 나라들을 대상으로 발표한 담화이기에 불충분하다`고 지적한 후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정치적 사죄를 요구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당시 담화 발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배상문제는 법적으로 해결됐으며 개인보상을 국가가 행할 생각은 없다`고 일축한후 지속돼 온 일본의 입장이 국가 차원에서 전후보상을 하라고 요구해 온 북한으로서는 거슬리는 대목이다.

일본측은 현재에도 지난 65년의 `한촵일 기본조약`의 테두리 내에서 양국 간의 관계정상화를 실현할 것을 북한측에 요구하고 있으며 국가차원의 배상이 아닌 재산청구권 방식의 과거청산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합 200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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