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환(전 통일연구원 원장/인하대 초빙교수)


2000년 6월 평양에서 남북한의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발표한 6.15공동선언은 분단 반세기만에 남북간 화해, 협력, 평화시대를 개막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6.15 정상회담 이후 남북 간에 많은 진전이 있었고 지난 5년간 남북관계의 진전은 그 전 40년간의 진전보다 더 컸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정상회담 이후 불거진 북한의 핵문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지난 5년 동안 6.15공동선언은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시대로 진입했으나 아직도 해결해야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남과 북이 평양에서 거행되는 대규모 6.15공동선언 5주년행사에만 몰두하지 말고 이제 실질적인 공동통일방안에 관한 연구개발에 노력할 때다.

6.15공동선언의 2항에 대한 남북당국간 그 동안 구체적인 논의가 전혀 없어 이제 남북이 공동통일방안을 준비해야 할 시점으로 본 칼럼에서 이에 대한 논의와 구체적 로드맵을 조속히 만들 것을 건의하고자한다.

6.15선언의 2항 통일방안에 진전 있어야

통일방안에 관한 논의는 북한이 주장하는 ‘근본문제’로서 6.15공동선언의 2항에 남북한이 “남한의 연합제안과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합의한 것은 기존의 대화방식의 관행을 타파한 획기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남한의 연합제를 수렴하려는 노력은 과거 남북한이 서로 다른 통일방안을 바탕으로 치렀던 지루한 이념논쟁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면 6.15공동선언에서 제시된 남북한간의 현 통일방안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비교하여 무엇이 문제인가를 살펴보자.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

북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1980.10발표)은 중앙정부가 국방과 외교권을 행사하고 남북은 각각 별개의 지방정부로 편입되어 운영되는 완결된 형태의 연방제이다. 그러나 1991년 이후 북한은 1민족, 1국가, 2정부의 골격은 그대로 두되 남과 북의 지방정부에 국방과 외교권을 대폭 이양한 완화된 연방제로의 전술적 변화를 보였다. 1991년 김일성의 신년사에서부터 변화되기 시작한 북한의 연방제는 기존의 연방제안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전술적 변화를 보인 북한의 연방제는 통일의 단계적 방안을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서 중앙정부는 단지 상징적인 중심 역할만 하고 지역정부에서 경제·문화뿐만 아니라 군사.외교권까지 보유하게 되며, 이같은 과도적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체제의 통일을 지향한다고 한다. 당시 김일성은 연방제에 의한 완전한 통일을 유보하고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북한의 체제위기 심화 속에서 현존하는 남북한 두 체제의 잠정적인 공존을 시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렇게 볼 때, 6.15공동선언에 나타난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은 남북한 두 체제의 공존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1990년대 이후 그 동안 전술적으로 변화된 연방제안을 대외에 공식화한 의미가 있다. 따라서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은 단계론으로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를 표방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연방국가가 두 지역정부를 조정하는 것이다. 또한 연방국가가 군사 및 외교적 권한을 대표하는 것이 원칙이나 1991년 이후 연방국가의 국방·외교권을 남북 지역정부에 대폭이양을 주장하면서 사실상 2국가 성격이 강해진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안경호 서기국장(2000.10.6)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남과 북에 존재하는 두 개 정부가 정치.군사.외교권 등 현재의 기능과 권한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두는 방법으로 북남관계를 민족공동의 이익에 맞게 통일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족통일기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안 국장의 주장은 남북한의 2국가 2체제를 유지하면서 통일기구를 모색하는 것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남한의 연합제안

6.15공동선언에서 남한의 연합제안이란 남한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두 번째 단계인 ‘남북연합’을 지칭한다. 남한이 통일의 과도적 단계로서 최초의 연합을 구체화·체계화한 것은 1989년 9월 11일 발표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며, 이후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계기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지만 그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어 오고 있다.

이렇게 볼 때, 6.15공동선언에 나타난 남한의 연합제안은 1단계인 화해.협력을 바탕으로 단일국가 건설을 위한 중간과정으로서, 민족공동체(특히 경제.사회공동체)를 형성하고 남북한간 특수한 기능적 연합제를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남한의 연합제안은 1민족, 2국가, 2제도, 2정부를 상정하며, 남북한의 두 지역국가가 국방.외교권까지 보유하는 것이다. 또한 두 지역국가 간의 협력기구를 제도화하는 것으로 남북연합정상회의, 남북연합회의(국회), 남북연합각료회의 등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에서의 남북연합안은 ① 2국 2체제의 남북연합단계, ② 1국 2자치정부의 연방단계, ③ 1국 1중앙정부의 완전통일단계의 과정을 상정하고 있다. 기존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남북연합 단계에 진입하기 위하여 화해·협력단계를 거쳐야 하는 바, 화해협력단계에서는 경제.사회의 교류.협력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김 전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의 남북연합은 정부의 통일방안에서 주장하는 화해협력과 제도적 남북연합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사회 교류.협력과 군사적 신뢰구축을 동시에 병행 추진하는 것으로 기존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남북연합에서 곧바로 완전통일단계로 들어가는 것으로 상정하고 있으나 3단계 통일론에서는 남북연합 이후 연방제라는 과도기적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3단계 통일론의 남북연합단계에서는 남과 북이 주권과 모든 권한을 보유한 채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남북연합정상회의와 정부기구인 남북연합각료회의, 대의기구인 남북연합회의를 통해 협력한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당시 김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은 공식적인 한국정부의 통일방안은 아니라는 점이다.

남북통일방안의 공통점과 차이점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볼 때, 6.15공동선언에서 남한의 연합제안과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공통점은 첫째, 두 안은 모두 평화적 통일을 전제하고 있다. 사실상 남북간의 체제공존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두 안은 통일의 완성상태가 아니라 다음 단계를 위한 과도기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은 고려연방제안의 수정안이라기보다는 1990년대 이후 전술적으로 변화해 온 내용을 단계론적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셋째, 북한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서 외교권과 국방권까지도 지역정부에 맡기는 등 지역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중간단계인 남북연합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넷째, 지역정부가 동등한 자격으로 연방 혹은 남북연합에 참가한다. 이를 바탕으로 2개의 독립적 실체 사이의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면 남북의 2안의 차이점을 이해해야한다. 첫째, 북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은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이나 남쪽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를 목표로 한다. 둘째,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가 완전통일로 가기 위한 교류.협력을 통한 기능주의적 접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북한의 연방제는 남한의 기능주의적 접근법이 담고 있는 교류.협력의 확대가 가져올지 모르는 흡수통합의 위험에 대한 방어적 방안에 가깝다.

셋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화해.협력단계를 장기간 거치면서 이질감을 해소하는 파급효과(spill-over effect)를 가정하고 있으나, 북한의 연방제는 단지 정치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데 변함이 없다. 또한 연방제는 미군철수, 보안법 철폐 등 전제조건을 달고 있으나, 남북연합에서는 전제조건이 없다. 넷째, 북한의 연방제안에는 중앙정부가 구성되어 있으나, 남한의 연합제안에는 중앙정부가 구성되어 있지 않다. 남북연합에서는 남북정상회의, 남북각료회의, 남북평의회를 실천기구가 구성하며, 연방제에서는 연방정부인 최고민족연방회의와 연방상설위원회 등을 구성한다.

정책건의 : 남북이 공동통일방안을 모색하자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는 인식의 공유는 남북이 분단된 현실에 대해 일정하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남측의 연합제 안은 무엇보다도 남북이 분단 반세기 동안 사회경제체제와 가치관에서 엄청난 괴리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반면 북측의 연방제 안은 남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통일국가를 단번에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 북측은 기존의 연방제 안을 다소 완화시킨 ‘느슨한 연방제’를 제안하면서도 중앙정부를 바로 수립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6.15공동선언 이후 남쪽에서는 연합제 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성을 발견해 내고 실현 가능한 연합제 안의 추진 방안을 제안하는 연구들이 제시되었으며, 연방제에 대한 이념적 거부감도 점차 완화되고 있다.

한편, 북측은 정상회담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북이 주장하는 고려연방제 안에 남북이 합의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2002년 5월 이후 공동선언의 2항에 대한 해석에서 좀더 엄격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북은 2항의 해석에서 한반도의 평화 보장과 민족의 공존공영을 강조함으로써, 통일 방안이 점진적.단계적일 것이라는 점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통일 방안에 대한 ‘완전한 합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공통성과 방향성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남북이 공동통일 방안에 대해 공동의 연구를 추진해야 한다. 남북이 상호간 통일 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하는 수준을 넘어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한 것은 남북이 앞으로 남북관계를 ‘연합’ 또는 ‘낮은 단계 연방’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전히 ‘2국가 2체제’인가 ‘1국가 2제도 2정부’인가 하는 논란이 있지만, 남북간의 통합과정에서 사회.경제적 상호의존도를 높이고 법적.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가려는 의지와 노력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필자는 조속한 시일 내에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남북이 우선 남북기본합의서(1992년 발효)의 내용을 실천기구를 통해 성실히 이행할 것을 건의해 왔다. 남북이 기본합의서의 내용에 따라 점진적으로 상호교류와 협력을 확대시키고 국제무대에서 공동이익을 추구한다면 남북간 평화공존을 제도화함으로서 ‘사실상 통일’을 이뤄 그 바탕 위에 남북한 당국이 새로운 공동통일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북한 조국통일연구원과 남한 통일연구원 간의 공동통일방안의 모색을 위한 대화의 장을 하루빨리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