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환(인하대 초빙교수/ 전통일연구원 원장)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국내외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동북아 균형자” 역할구상이 왜 이렇게 논란도 많고 혼란스러운지! 노 정부의 균형자론과 관련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관계자의 해석이 불필요한 오해와 혼란으로 오히려 정부의 건설적이고 중장기적 외교안보전략구상을 훼손시키고 있지는 아닌지?

노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 구상을 처음 언급한 것은 국정연설(2.25)에서 "우리 군대는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군대로서 동북아시아의 균형자로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굳건히 지켜낼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후 동북아 세력균형자 구상을 공군사관학교 졸업식(3.8), 육군3사관학교 졸업식(3.22) 연설에서도 언급했다. 그리고 외교통상부로부터 업무보고(3.30)를 받는 자리에서는 외교안보전략 비젼으로 균형자론을 강조했다.

한 달 사이에 ‘동북아 균형자’ 개념이 세력균형자의 군사 전략 차원으로부터 신 외교, 안보 기조로 진화되었다. 노 대통령은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한미 동맹을 확고히 견지해 나가는 게 필요하며, 한미동맹을 토대로 협력과 통합의 동북아질서 구축을 위해 외교부가 전략적인 안목과 방향성을 갖고 정책을 주도해 나가달라"고 당부했다.

“균형자” 역할이 중.일간 조정자, 평화 촉진자 역할과는 다르다

“균형자론”의 개념을 놓고 정부고위 관계자들의 해석이 중구난방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는 "한중일은 숙명적 동반자로서 이 3자간에 발생한 양자적 갈등 및 위험성을 우리가 조절하고 균형을 잡는 게 동북아 균형자론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동북아에서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일(中日)간 조정자 역할로 해석했다. 그리고 “전통적 균형자론”과 “참여정부의 균형자론”은 다른 개념이라고 NSC는 설명한다. 그러나 균형자론의 용어사용이 적절한가가 문제이다.

NSC 이종석 사무차장는 "균형자론은 21세기적 호혜.평화적 사고에서 나온다"면서 "이 개념이 과거의 세력균형 개념과 결별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해결 과정에서 국방 역량 등 전통적 요인은 50% 정도만 동원되고 나머지 50%는 기본적으로 소프트 파워로 해결한다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동북아지역에서 “장기간 지속돼온 갈등을 화해로, 대립을 협력으로 전환시키려면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행위자로서, 그리고 역내 국가간에 조화를 추구하고 평화 번영을 촉진하는 주체로서 역할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동북아 균형자라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문정인 동북아시대 위원장도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과 가진 간담회(4.14)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은 동북아 안보 공동체를 만드는데 한국이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라면서, "힘에 의한 균형자론이 아니라 동북아에서 평화 촉진자의 역할을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 위원장은 "동북아는 냉전적 구조에서 벗어나 평화가 구축돼야 하고 대한민국이 의지에 반하는 논쟁에 휘말려서는 안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는 또 노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에 대해 노 대통령의 시각은 미.중간의 세력균형 조정자 역할 이 아니라, 향후 중.일간 갈등의 균형자 역할 개념이라고 밝혔다.

반기문 장관은 21세기 동북아미래포럼 초청연설(4.25)에서 균형자론과 관련, “세력균형에 입각하거나 미국이 냉전체제과정에서 수행했던 그런 의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치지향적인 것”이라며 “동북아의 여러 대립과 갈등 요소들을 물리력 측면이 아닌 가치지향적인 면에서 동북아의 조화로운 번영과 발전을 위해 우리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균형자 의미가 추상적 수사에 불과하며 그런 의미라면 구태여 균형자론 용어사용을 고집해야 하나? 이처럼 아직도 균형자 개념에 대한 오해와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국제정치학에서 사용하는 “균형자”(balancer) 의 개념

국제정치학 개념으로 세력균형론의 의미가 많은 혼란을 갖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몇 가지 기본가정을 한다.

첫째, 국가들간의 국력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을 때 체제안정이 유지된다. 즉, 체제의 균형이 유지되면 전쟁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둘째, 세력균형이 깨질 때, 전쟁가능성이 높다. 셋째, 체제내 동맹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영원한 적이나 우방이란 존재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체제의 구성국가들은 기존의 동맹관계를 포기하거나 새로운 동맹관계를 맺는다. 넷째, 국제체제에서 최대강국이 균형자(balancer) 역할을 담당하며 체제안정을 위해 국가이익에 따라 행동한다. 그리고 다섯째,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동맹의 형성과 와해이다.

이러한 개념의 측면에서 평가해보면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란 표현의 용어사용이 부적절한 것 같다. 한국이 중국, 러시아, 북한 등 북방 3개국 과 미.일 동맹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조건이 구비해야한다.

첫째로, 한국이 힘(군사력, 경제력 및 소프트파워)을 바탕으로 군사적.정치적 영향력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로, 동북아 관련국들이 한국의 균형자 역할을 인정해야한다. 세째로, 균형자의 역할은 분쟁당사국의 어느 쪽을 편들지 않고 국가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독립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한국이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국력 신장과 함께 주변국과의 선린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진정한 균형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국 모두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필수적이다. 또 현재의 동북아에서의 대결구도에서 한국이 주도하는 다자 안보협력체제구도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즉, 북핵 문제가 상존하는 한 동북아는 불신과 대결의 구도를 벗어날 수 없다. 우선 북핵문제를 최우선 순위로 풀어야 할 것이다.

국제정치학 용어인 ‘균형자’(balancer)란 세계 최강대국이 하는 역할이다. 19세기 영국이나 20세기 이후 미국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균형자가 되기 위해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에게 주어진 개념이다. 그렇다면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한국이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이상주의적 구상이 아닌가?

더욱이 한반도를 위요한 동북아 정세, 즉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및 역사왜곡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 일본과 중국간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은 센카쿠 열도) 분쟁,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한중 갈등 등은 모두 가 한국의 균형자 역할을 어렵게 한다. 따라서 한국의 단기적 국가전략은 주변4강과의 협력관계를 증진하여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급선무이다.

한국이 동북아 균형자 역할 할 수 있나?

노 대통령이 제시한 동북아 ‘세력균형자론’을 국제정치의 개념에서 보면 한국이 동북아 균형자 역할이 가능할까? 그리고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에 대하여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 또 한편으론 동맹을 맺은 측과 동맹 아닌 측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또 한국이 미.일 진영과 북.중.러 진영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은 국제정치 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리고 미국, 일본은 물론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심과 우려를 낳았다. 한국이 과연 강대국간의 이해 충돌을 ‘조정’하고 ‘균형’을 유지할만한 국제간의 신뢰와 역량을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다. 구체적 로드맵을 갖고 실행에 옮기려면 특히 현실적으로 힘도 부족한 한국이 중국과 일본간 갈등에서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의 객관적 국력지수가 세계 190여개국 가운데 10위라고 평가한다. 우리의 경제규모도 세계 10위정도 되니까 한국도 명실상부한 세계 중견국가(middle power)이다. 세계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과 경제군사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 일본 사이에서 한국이 균형자 역할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아직 한국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국력도 문제지만, 이들 국가들이 한국의 균형자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끝으로 북핵 문제로 향후 '북미갈등'이 날로 악화되고 있는 실정인데 한국이 동북아 균형자로서 어떻게 역할을 할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한국이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위해 역할 하는 주체로 ‘군’을 언급했다. 현실적으로 ‘한국군’이 동북아지역에서 균형자 역할을 맡을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균형자” 표현 대신, 새로운 키워드(key word) 모색 바람직

NSC는 동북아 균형자 설명자료(4.27)에서 참여정부의 균형자론은 “역내 국가간 대립과 갈등을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시키는 ‘평화의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평화의 균형자’의 의미는 “주변국간 갈등을 조정.완화시키고(mediator, harmonizer), 평화. 협력을 촉진하며(facilitator), 지역의 공동이익 증대를 위해 주도적 역할(initiator) 수행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NSC가 평화의 균형자를 조정자(mediator), 조화자(harmonizer), 촉진자(facilitator) 그리고 창안자(initiator) 등으로 해석하고 있어 원래 노 대통령의 ‘세력균형자 역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러한 혼란과 해석은 ‘균형자’의 학술적 용어사용의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 역할의 해석을 조정자 역할이나 평화촉진자 역할 등 간결하게 다른 말로 해석하고자 한다면 국제정치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균형자의 개념’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균형자의 개념문제로 오해와 혼란을 가져와 결국 균형자란 표현이 부적절함이 노출되고 있다. 그래서 균형자 역할에 관한 오해와 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의 외교안보전략구상을 ‘균형자’로 표현하는 대신 참신한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참여정부의 중장기 외교안보전략에 관한 건설적인 정부의 구상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정부의 외교전략구상을 동북아 균형자란 표현으로 포장한 것은 앞에서 논의한 전통적인 세력균형자의 개념과 연계하여 오해와 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정부의 구상을 100% 표현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와 관련하여 균형자 표현보다 정부의 구상을 잘 표현하고 혼란을 야기 시키지 않고 대치할 수 있는 키워드는 없는가? 예를 들면 정부의 구상을 동북아 균형자란 표현보다 “균형적 실용외교”를 통해 “동북아 안정과 평화 구축자(peace builder) 역할” 등으로 표현함으로서 균형자란 표현에서 생기는 불필요한 오해와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균형자 표현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키워드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으로 중.일간의 분쟁해소를 위한 동북아 평화구축 과정에 있어 중.일간 실용적 균형외교를 통한 한국이 교량적 역할(bridge building role)을 건설적으로 추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전략을 동북아의 균형자란 표현보다 좀더 현실적으로 동북아에서 균형외교를 통한 분쟁을 관리하는 “평화 구축자 역할”로 표현한다면 동북아 평화구축 과정에서 다리를 놓은 분쟁의 관리자로서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구상을 명확하게 표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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