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통일뉴스 상임고문/재미 자유기고가)


전두환이래 김대중까지 한국의 대통령들(나는 물론 전두환을 대통령이라기보다 단군이래의 거도로 보지만)은 모두 남북문제를 다루기 위해 하나의 체계를 갖춘 '통일방안'이란 것을 내 놓았다. 그러나 통일문제를 잘 모른다는 노무현 대통령은 그 동안 그런 '통일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 독일을 방문하는 기회에 독일의 지도자들 및 언론과의 대담과 재독동포들과의 간담을 통해 비록 단편적이나마 통일에 대한 그의 생각을 피력했다.

언론에 보도된 통일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독일식 흡수통일은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통일은 천천히 준비해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절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셋째, 먼저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고 그 토대 위에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북한도 통일을 감당할만한 역량이 성숙되면 그때 가서 국가연합단계를 거쳐 통일을 이룬다.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이미 반세기를 넘긴 분단을 "천천히 준비해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절차에 따라" 통일해야 한다는 것은 그 동안 숱하게 들어온 분단기득권층이나 반통일론자들의 주장과 같다. 비용이 많이 드는 통일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북한도 통일을 감당할만한 역량이 돼야 통일의 단계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통일 기피론자들의 생각과 같은 것이다. 동독출신인 티어제 연방하원의장이 그에게 "독일 통일에는 큰 비용이 들었지만 계속 분단돼 있었다면 더 큰 비용이 들었을 것"이라고 한 말의 뜻을 노 대통령은 깨우쳐야 할 것이다.

특히 평화구조가 정착되기 전에는 통일의 전제가 되는 교류협력을 통한 남북관계의 발전도 기할 수 없다는 논리는 노 대통령의 한반도 정세인식에 대해 큰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부시 행정부는 한반도의 평화구조 정착으로 남북 간 교류협력과 관계발전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6자회담에서 '외교적으로 협상'해서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수사와는 전혀 상치되는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인 강경태도로 일관하는 미국의 진의는 한반도 평화정착이 아니라 긴장의 지속에 있다. 애당초 미국은 그래서 1994년의 북미협정을 파기하고 새로운 북핵위기를 조성했던 것이다.

노 대통령은 독일에서 6자회담을 낙관하면서 북한은 핵 포기의사가 있고 미국은 북의 안전을 보장하고 지원할 생각이 있으니 본질적으로 의견이 일치하나 단지 순서를 놓고 다투는 것이라고 평했다 한다. 우리는 미국을 그렇게 단순한 나라로 믿는 그의 천진난만성에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 한다 해도 통일된 한국은 결국 친 중국화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래서 미국은 어떠한 한반도 통일도 바라지 않는다. 미국이 바라는 것은 긴장이 계속되는 한반도이다. 그런데 한미동맹을 고수하겠다는 노 대통령이 미국이 원하지 않는 한반도 평화구조를 먼저 정착시키고 나서 통일을 위한 절차를 서서히 밟겠다는 것은 한미동맹에 머물면서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과 똑같은 논리의 모순이다.

노 대통령은 또 독일에서 미국의 압력으로 핵문제 해결 없이 개성공단 사업 확대가 어렵다는 뜻을 비쳤다. 이 말은 미국의 우려와 상관없이 대북경협을 추진하겠다던 통일부장관의 언명과 상치된다.

노 대통령은 결국 통일을 회피하는 대통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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