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희(한국민권연구소 연구위원)


북한 외무성은 3월 31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6자회담은 비핵화·군축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 2월 10일 ‘핵보유 및 6자회담 무기한 불참선언’과 ‘조건과 명분이 마련되면 언제든 6자회담에 참가하겠다’고 한 외무성 비망록(3월 2일)에 이은 이번 담화는 북미관계 및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한 북한의 대미공세의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은 현재 북한의 핵보유에 대해 이렇다할 대응전략을 내놓지 못한 채 ‘6자회담 복귀’를 명분으로 시간을 끌어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아직 진심으로 대화에 나설 의사가 없으며, 오히려 날이 갈수록 한반도 전쟁위험을 고조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북한의 ‘비핵화·군축회담’ 제안은 미국을 공정한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이자, ‘북한 핵보유’라는 달라진 현실에 맞는 문제해결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1. 북한이 표방하는 ‘군축’의 의미와 역사적 전개과정

이번 담화에서 북한은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며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은 우리의 시종일관한 전략적 목표이다”라고 밝히면서, “경애하는 김일성 주석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던”이라며 조선반도 비핵화에 큰 힘을 실었다. 그리고 그 방도로써 “비핵화·군축회담”을 제시한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방도로 평화협정, 불가침조약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본래 북미간의 문제, 혹은 한반도 문제는 한국전쟁이후 정전상태가 비정상적으로 지속되는 가운데서 비롯된 문제이다.

정전협정 4조 60항에서 북과 미국(국제연합군)은 정전협정 체결 후 3개월 내에 정치회의를 소집하고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의’를 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듬해 제네바에서 열린 후속회담이 결렬된 이후 정전상태가 50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국제 관례상 보더라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은 정전협정과 후속회담을 단순히 군사회담으로 국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때문에 처음부터 평화협정이나 ‘철수’ 따위는 상정하지 않았음은 물론 정전협정을 준수할 의지도 없었다.

미국은 정전협정 후속회담을 결렬시켰을 뿐 아니라 이미 1957년 북한의 군사력이 증강되고 있다는 것을 구실로 정전협정 13조 d항(정접협정 당사자의 무장증강이 금지되고 이를 중립국감시단이 감시한다는 조항)을 먼저 파기해 버렸다. 그리고 중국군이 1958년 철군을 완료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핵무기와 미사일을 배치하기 시작한다.

이어 미국은 계속되는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제의에도 불구하고 1976년 팀스피리트 훈련을 시작함으로써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준비하고 있음을 공식화했다. 이에 반해 ‘군축’과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노력을 정전협정 체결부터 일관되게 계속되어 왔다. 북한은 73년 ‘남북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가 조국이 분열된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화통일 제안을 내놓은 것은 무려 130여 차례에 이르고 있습니다. … 남북 사이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군사적 대치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서 첫째, 무력증강과 군비경쟁을 그만두며, 둘째, 우리나라에서 미군을 포함한 일체 외국군대를 철거시키며, 셋째, 북과 남의 군대를 각각 10만 또는 그 아래로 줄이고 군비를 대폭 축소하며, 넷째, 외국으로부터의 일체 무기와 작전장비 및 군수물자의 반입을 중지하며, 다섯째, 이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북과 남 사이에 서로 무력행사를 하지 않을 데 대하여 담보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제기한 우리의 5개 항목 제안에 합의하고 하루빨리 해당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남조선에서 미군이 나가면 우리의 군대를 자진해서 20만 이하로 줄이겠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새로이 천명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이후에도 줄곧 북한이 표방해 온 ‘군축’의 기본내용이 되어 왔다. 이는 1974년 북한의 최고인민회의가 발의한 ‘북미평화협정‘ 체결 제의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조선에서 긴장상태를 가시고 조선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장애로 되는 외부적 요인들을 제거하며 조선사람끼리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제를 마련하려면 남조선에 자기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모든 군사통수권을 틀어쥐고 있는 미국과 직접 평화협정 체결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기하고 있다.…
둘째, 쌍방은 무력증강과 군비경쟁을 그만두며 조선 경외로부터 일체 무기와 작전장비, 군수물자의 반입을 중지할 것이다. 셋째, 남조선에 있는 외국군대는 `유엔군`의 모자를 벗어야 하며 가장 빠른 기간 내에 일체 무기를 가지고 모두 철거하도록 할 것이다. …“

이처럼 북한이 미국과 남한에 일관되게 제안해 온 ‘군축’제안의 핵심내용은 한반도에서 긴장상태를 해소하고 애초 정전협정에서 합의한 대로 ‘외국군대 철수’하며, 나아가 한반도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남북간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의했을 때는 체결당사자가 남측 정부가 될 수 없다고 했다가 미국과의 평화협정체결을 제의하자 남북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떠미는가 하면, 남측 정부는 남북간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자고 주장하여 이른바 ‘두 개의 한국정책’이라는 당시 정부정책을 실현하는데 몰두했을 뿐이다.

한편, 미국의 핵무기 반입과 핵전쟁 연습이 계속되자 86년 북한은 ‘한반도 비핵·평화지대화 창설을 위한 협상’을 제안한다.

북한은 “미국이 새로운 핵무기 반입을 중지하고 이미 반입한 모든 무기들을 단계별로 감축하며, 나아가서 그것을 완전히 철수하여 한반도에서 핵무기 사용과 관련한 모든 작전계획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고 어떤 협상에도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어느 때나 응하겠다고 천명했다.

1984년 남북한, 미국 3자회담, 1986년 3자 군사당국자회담 등 계속되는 북의 ‘군축’ 제의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남한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87년 7월 “한반도에서의 단계별 군축 실현을 위한 남북한과 미국간의 다국적 군축협상”을 다시 제의하고 ”88년부터 91년까지 3단계에 걸쳐 무력을 축소하며 1992년부터 각각 10만 이하의 병력을 유지“할 것을 천명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실천적 조치로써 그 해 12월 인민군 병력 10만명 감축을 단행했다.

북한의 ‘군축’ 제안과 자발적인 병력 감축에 대한 미국의 대답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의혹으로 돌아왔다. 1988년 프랑스 인공위성이 촬영한 사진을 근거로 핵무기 개발의혹을 제기한 미국은 북한에게 핵사찰을 수용하라고 압박한다. 북한은 이를 되받아 미국이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한 사실을 국제사회에 폭로하고 핵무기 철수와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 ‘동시사찰’을 요구한다.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가뜩이나 소련이 주변국가들에게 핵무기를 이전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던 미국은 ‘비핵.군축’의 본보기가 필요했고,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은 전술핵무기를 철수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핵전쟁연습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하였으며, 남한 정부로 하여금 ‘비핵화선언’을 발표하도록 한다.

이어 북한이 핵안전협정에 서명하고 핵사찰을 수용하면서,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타게 되는데 그 결과로 91년 12월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을 연달아 발표하게 된다. ‘남북기본합의서 및 비핵화 공동선언’은 분단이래 처음으로 남과 북이 불가침과 ‘비핵화.군축’을 합의했다는 데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하겠다.

그러나 1991년에 있었던 한반도 '비핵화.군축'을 위한 의미있는 진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문제는 오히려 새로운 대결국면으로 들어섰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본격적인 북미간 핵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북미간 핵대결은 결말을 보지 못한 채 91~94년, 98,9년, 2002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크게 3차례에 걸쳐 진행 중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핵대결이 본격화되면서 정전협정 결렬이래 1990년대 이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었던 북미간 포괄적 현안을 다루는 직접대화(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이나 포플러 나무사건 등과 같은 군사적 충돌을 해결하는 차원의 회담은 종종 있었지만)가 처음으로 성립되었다는 사실이다.

한반도에 평화제체를 구축할 의지가 없었던 미국은 북한을 제압할 군사력의 우위만 보장되면 될 일이지 대화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반면, 북한은 한 축으로 ‘군축’과 평화체제 구축을 일관되게 주장하면서 다른 한 축으로는 미국과 맞설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해 왔다. 북한은 이미 미국의 핵공세에 대응하여 1962년 12월 ‘국방에서의 자위’의 원칙에 따라 ‘국방과 경제 병진노선’을 천명하고 4대 군사노선을 대미군사전략으로 채택한 바 있다.

북한은 평화는 말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자위력으로 지켜진다는 것, 또한 강력한 군사력이야말로 대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지렛대가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미국은 ‘북한이 핵을 가지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기 위해 북미 대화에 끌려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북핵 문제를 북한을 고립.붕괴시킬 수단으로 삼으려던 미국의 의도는 북미간 ‘핵대결’을 불러왔으며,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꼴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북미간 1차 핵대결 끝에 북미 양국은 ‘북미기본합의’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1994년 10월 체결된 북미기본합의(제네바합의)에서 양측은 “정치, 경제적 관계의 완전정상화"를 추구하기로 약속했고 3항에서 ”핵이 없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으며 4항에서 양측은 "국제적 핵 비확산 체제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함으로써 91년의 비핵화노력을 원칙적으로 재확인했다.

북미 기본합의가 제대로 이행만 된다면 관계정상화는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외국군대 철수를 포함한)의 수순으로 가는 것이 기정사실화 된 것이다.

이에 따라 1996년 북한은 기본합의를 바탕으로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이전 단계적인 조치로써 군사적 충돌 등을 방지할 수 있는 ‘잠정협정’ 체결하자는 제의를 내놓는다. 북한의 제안은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체체 수립은 북미간 기본합의 이행시한(2003년 10월) 이후로 미루더라도 그전까지 한반도 평화를 보장할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편, 북미기본합의의 잉크가 마르기 전부터 미국의 속셈은 북한붕괴에 가 있었다. 소련과 동구사회주의가 몰락했고, 무엇보다 김일성 주석이 서거한 상황에서 효과적인 고립봉쇄만 있다면 북한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미국은 생각했다. 북한붕괴설이 무슨 검증된 이론이라도 되듯 낙관하던 미국에게 제네바합의 이행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네바합의가 발효된 조건에서 미국으로써도 무작정 북한의 제의를 묵살하고 갈 수는 없었다. 하여 1996년 4월 남한 정부를 끌어들이고 중국을 포함하는 4자회담을 제안하게 되는데, 미국은 4자회담을 통해 북미간 직접 대화를 피하는 대신, 중국문제까지 포함하여 동북아시아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틀로써 활용하고자 했다.

1997년 12월 시작된 1차 본회담이 구성된 이래 99년까지 6차에 걸친 본회담이 진행되었지만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철수’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실질적인 문제는 의제로 상정조차 되지 못했으며, 98, 99년 이른바 ‘금창리 핵시설’을 미국이 꼬투리 잡으면서 빚어진 2차 핵대결의 연장선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표류했을 뿐이다.

1차 핵대결과 마찬가지로 북미간 2차 핵대결은 또다시 미국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이어 10월 북미 ‘공동코뮤니케’가 발표된 것이다.

공동코뮤니케는 제네바합의 이행과 북미 관계정상화 등에 대한 포괄적 합의와 함께 “쌍방은 한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한국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 데서 4자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들이 있다는 데 대하여 견해를 같이하였다”고 밝힘으로써 논란이 되었던 4자회담 의제를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으로 좁히게 된다.

1994년 북미 기본합의가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발해 온 미국은 공동코뮤니케를 통해 다시한번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확약함으로써 스스로 패배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북미 공동코뮤니케에 따라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방북하는 등 북미관계가 급물살을 타는 듯 했지만 부시 당선이후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2002년 켈리 특사의 방북이후 북한이 핵보유 사실을 인정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북미관계는 군사적 적대관계로 되돌아갔으며, 북미기본합의서는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로서 공식적인 파기선언만 남게 되었다.

클린턴 말기 “관계정상화” 직전 단계까지 발전했던 북미관계가 다시 극단의 긴장상태로 치닫게 된 상황에서 미국은 ‘선핵포기와 검증’을, 북한은 ‘불가침조약’ 체결을 각각 제의하게 된다. 미국의 선핵포기와 검증은 무장해제의 의미로써 자주권을 생명으로 지키며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60년 동안 미국과 싸워온 북한으로써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방적 주장이었다.

반면, 북한이 주장하는 북미불가침조약은 한마디로 미국이 북한에 대한 불가침을 법적으로 확약한다면 미국이 우려하는 안보상 문제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미간 문제해결의 기준은 북한에 대한 자주권과 생존권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덧붙여 북한은 자주권과 생존권을 수호하는데 있어서 두 가지 방법, 즉 협상의 방법과 억지력의 방법이 있는데 될수록 협상의 방법을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기존의 평화협정이 아니라 ‘불가침조약’ 체결을 제의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이미 북한은 평화협정 및 평화보장체제를 위해 여러 가지 방도를 내놓은 바 있다. 그 형식에 있어서도 북미회담, 3자회담 등을 제안하기도 했고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제안한 4자회담도 수용한 바 있다.

한반도 평화보장체제에 대한 수많은 제의가 오갔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우선 한반도 전쟁을 막는 실질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정전협정은 이미 오래 전에 기능을 상실했고 오로지 북미간 군사적 ‘힘의 균형’에 의해서 아슬아슬한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놓고 볼 때 더욱 그렇다.

게다가 지난 과정에서 남북간 불가침조약(남북합의서)을 체결한 상태였기 때문에 북미간 불가침조약이 체결된다면 우선 한반도 전쟁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또한 불가침조약의 성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가침조약은 ‘나라들 사이에 서로 영토와 자주권을 존중하며 내정에 간섭하거나 침략하지 않으며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을 확인하는 조약’이다. 즉, 상대방에 대한 내정간섭을 배제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북한은 남쪽에 있는 주한미군에 대한 철수를 전제조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 한편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 이외의 모든 상용 무력수단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미국은 불가침조약 체결로 인한 주한미군철수 문제라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된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최대한의 양보를 한 셈이다.

그러나 ‘대화는 절대 없다’고 공언했던 미국이 ‘대화는 하되 협상은 없다’며 6자회담에 끌려나오는 변화는 있었지만 3차에 걸친 회담,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군축’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이렇다할 진전을 내오지는 못했다.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던 북한이 마침내 핵보유를 선언했고 정세는 더욱 첨예한 긴장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오직 고립?봉쇄?붕괴만 추구하고 있으며, 북한은 핵억지력으로 맞서면서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으로 ‘비핵화?군축회담’을 제시하여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군축’을 위한 북한의 끊임없는 노력이 어떻게 결실을 맺게 될지 주목되는 가운데, 북한이 핵을 보유함으로써 대화를 위한 강력한 정치?군사적 토대를 마련한 것은 북미대화의 가능성을 낳고 있다.

2. ‘비핵화·군축회담’의 제기배경

북한이 평화협정, 불가침조약에 이어 ‘비핵화.군축회담’을 제시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이 핵보유국이 됨으로써 이미 6자회담의 성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본래 6자회담은 이른바 ‘북핵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회담이다. 회담에 임하는 각 국의 목표가 같지는 않았지만 포괄적으로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었으며, 관심의 초점은 북이 핵을 가지는가, 못 가지는가에 있었다.

북한은 1차 6자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총적목표를 제시하고 ‘일괄타결.동시행동’ 원칙과 이에 따른 ‘4단계 동시행동’ 순서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북한이 핵을 보유한 조건에서는 일괄타결 도식에 언급된 ‘핵무기를 만들지 않고 그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며’라거나 동시행동순서에서 ‘핵계획 포기, 핵 시설과 핵물질 동결 및 감시사찰 허용’ 등은 의미가 없어진다. 즉 이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사찰을 허용하며, 불가침과 관계정상화를 한 단계씩 맞바꾸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 상황에서는 회담의 목표와 성격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북한은 총적목표를 한반도 비핵화로 내걸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참가국들이 평등한 자세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핵보유국들의 핵문제를 특별히 문제삼지 않듯이 북핵 문제만을 가지고 더 이상 문제삼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즉 핵을 가진 나라 대 나라의 입장에서 ‘비핵화?군축’ 실현을 위한 회담을 진행할 단계로 올라선 것이다. 내용적으로 다르긴 하지만 1980년대 미소 핵군축회담과 같은 양상을 띠게 되리라고 보면 된다.

회담의 의제와 방식도 달라진다. 북미 핵대결이 시작된 이후 북한은 그동안 “주고받기식 문제해결 → 관계정상화와 신뢰회복 → 군축”이라는 단계를 거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임을 주장해 왔다. 이는 북미기본합의(제네바합의)에서 포괄적으로 합의한 방식이기도 하다.

무조건적인 핵폐기만을 주장해 온 미국의 입장에서는 ‘대화’자체의 성립을 부정해 왔지만 3차에 걸친 6자회담의 결과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북한이 제안한 문제해결의 방식은 미국을 제외한 참가국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거부하였고 북한은 핵보유를 선언했다.

핵무기를 가지게 된 조건에서 핵문제를 여러 단계로 나누어 풀어나갈 이유는 없다. 북한과 미국이 핵무기 보유국의 평등한 지위에서 동시행동을 논한다면 그것이 곧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방도이기 때문이다. 양측은 이를 바탕으로 관계정상화와 신뢰회복을 실현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북한의 자위적 핵억지력이 정공법으로 대화를 진행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선언’이후 미국은 북한의 핵보유 사실에 대한 인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6자회담 복귀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자면 달라진 상황에서 당장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도 무엇을 의제로 상정하고, 어떤 해법을 내올 지부터 불분명하다. 미국이 이를 분명히 제시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복귀를 주장하는 것은 달라진 현실을 고려하지 못하는 무지한 처사이거나, 사실은 대화를 원치 않거나 둘 중 하나이다. 미국이 진정으로 대화를 바란다면 무조건 ‘대화’를 외치는데서 탈피해 달라진 조건에서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군축’ 회담 제안이야말로 달라진 조건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제해결 방식임을 인정하는 것이 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둘째,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못해 시간을 끌고 있는 미국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공세, 대미 평화공세의 일환이다.

미국의 본심은 대화에 있지 않다. 대화를 주장하며 시간을 끌고 있는 미국은 우선 이른바 ‘5개국 공동전선’을 구축하여 북한을 압박하려 했지만, 이번 라이스 국무장관의 순방에서 더욱 분명해진 것처럼 ‘5개국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라이스가 언급한 ‘다른 선택’이란 군사행동, 즉 대북 공격을 의미한다.

미국이 이같은 군사행동의 의지를 보이면 일반적으로 상대국들은 고개를 숙여 왔다. 이라크는 미국이 노골적인 전쟁위협을 가하자 후세인궁에 대한 사찰까지 허용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적들의 날로 우심해지는 전쟁 도발책동에 대처해 이미 그 어떤 불의의 침공도 일격에 짓부셔 버릴 수 있게 만단의 전투동원 태세를 갖췄으며, 핵무기고를 더 늘리는 중대한 조치도 취했다(3월 21일)”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든 북한은 전쟁엔 전쟁, 대화엔 대화로 나설 태세가 되어 있으며, 미국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명한 것이다.

북한 문제를 유엔안보리에 상정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에 대한 제재에 반대하고 있다. 남한 정부도 전쟁불가, 봉쇄불가, 붕괴시도 불가를 천명해놓은 상황이다. 라이스는 이번 중국방문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에 동참할 것을 종용했지만 중국은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라이스 방중 직후 북한의 박봉주 내각총리가 중국을 방문하여 북중간 정부차원의 첫 상설경제기구인 북중 경제무역과학기술연합위원회 1차 회의도 가진 것으로 전해져 북중간의 정치, 경제적 우호관계를 과시했다.

이어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 1부상이 비공식 방중했는가 하면 조만간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방북이 점쳐지고 있다.

유엔안보리 상정은 곧 제재를 의미하며, 제재는 전쟁이다. 주변국가들의 반대입장이 분명한데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핵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미국이 전쟁을 선택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다.

미국이 목적도 내용도 없는 대화를 주장하며 시간을 끌고 있는 사이, 북한은 회담의 성격과 의제까지 내놓았다. 미국이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북한의 제의에 성실히 답변할 의무가 있다. 미국은 하루빨리 대화든, 전쟁이든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내외적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셋째, 한반도 비핵화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의 길을 제시함으로써 동북아 각국의 역할이 높이고 대미포위고립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이번 3.31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북한이 ‘비핵화?군축’ 회담을 제안한 것은 주변국들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담화에서 북한은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미국의 핵위협이 완전히 청산되면 조선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지역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도 담보될 수 있다. 그러므로 6자회담이 자기 사명을 다하자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미국의 핵무기와 핵 전쟁위협을 근원적으로 청산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는 장소로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비핵화.군축회담’이 단지 한반도에서 핵위협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일본과 결탁하여 중국을 포위함으로써 불러오게 될 동북아 신냉전구도를 막아내고 동북아의 평화를 담보하기 위한 회담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번 회담이 대만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는 않지만 동북아에 평화체제가 공고히 된다면 결과적으로 유리하다. 때문에 중국은 ‘비핵화?군축회담’을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할 입장이다.

동북부 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미국의 포위망이 점점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입장도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한정부도 그렇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사실에 대한 찬반의 견해가 팽팽한 것을 사실이지만 비핵화자체가 핵무기 폐기를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정부가 표방한 대북 3불 원칙에 기반한다면 문제해결을 위한 실질적 접근이 용이해 질 수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비핵화.군축회담' 제안하면서 1석 3조의 포석을 깐 셈이다.

북한의 제안으로 미국은 어떤 선택이든 하지 않으면 안되는 압박에 직면했다. 한편, 일본은 미일동맹을 앞세워 동북아에서 고립을 자초함으로써 회담자리에 끼지도 못할 형편이다. 미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 특히 중국과 남한 정부가 대화에 참가할 보다 유리한 조건과 적극적 이해관계를 갖도록 하였다.

넷째, 부시집권이래, 최근 들어서는 더더욱 한반도 핵전쟁위협이 높아지고 있는 사정과 관련이 있다.

최근 한반도에는 핵전쟁위협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은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F-115 스텔스 전폭기 10대를 한반도에 배치하고 작전계획 숙지훈련을 전개했다. 이어 최신미사일체계를 갖춘 이지스함 2척을 동해에 상시배치했으며, 11월 하순에는 태평양 상공에서 미국이 최근 개발한 정밀폭탄(JDAM) 투하훈련이 실시했다.

지난 3월에 진행된 연합전시증권 및 독수리 훈련에는 60여대의 최신예 전투기를 실은 핵항공모함인 ‘키티호크’호가 참여했으며, 최근에는 진해항에 핵잠수함이 정박한 것이 포착되기도 했다.

미국이 한반도에 배치한 핵무기는 공식적으로 1991년에 철수했지만 핵잠수함, 핵항공모함, 핵폭격기가 한반도를 수시로 드나들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도 한반도에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미국은 그 동안 북한 지하벙커를 파괴할 수 있는 소형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는 등 대북 핵공격 가능성을 공공연히 거론해왔다.

한반도 비핵화는 이처럼 매우 현실적이며 절박한 문제이다. 물론 한반도 비핵화에서 북이 보유하게 된 핵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는 노골적인 핵위협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부득불 전쟁을 막고 자기 제도, 저기 존재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만들지 않을 수 없게 떠밀었다”고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북한이 핵을 보유한 지금에 와서도 자신들의 핵위협은 아랑곳없이 북한 핵만 문제삼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만 핵을 포기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 근본원인부터 제거해야’ 한다.

‘비핵화.군축회담’은 한반도에서 핵위협을 근원적으로 없애기 위한 회담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는 미국과 북한의 공정한 원칙과 행동 하에 비핵군축을 실현해 나갈 때 가능해 진다.

3. ‘비핵화.군축’의 의미와 내용

북한이 새롭게 제안한 ‘비핵화.군축회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회담의 목표 >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며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

< 비핵화.군축의 내용 >
1. 미국이 우리를 ‘핵선제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핵전쟁으로 우리 제도를 전복하려는 적대시정책부터 바꾸어야 한다.
2. 남조선에서 미국의 모든 핵무기들을 철거시키고 남조선 자체가 핵무장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원천적으로 없애버려야 한다.
3.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우리를 반대하는 일체 핵전쟁연습을 중지하고 핵위협 공간을 청산하며,
4. 우리와 미국을 포함한 주변 나라들 사이에 신뢰관계가 수립되어야 한다.

덧붙여 북한은 “조미가 기술적으로 정전상태에 있고 남조선이 미국의 핵우산 밑에 있는 조건에서 그전까지는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는 것이 오히려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기본 억제력으로 된다”고 밝혔다.

회담의 목표와 관련해서는 이미 북한이 1차 6자회담에서 밝힌 바 있다. 이제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 조건에서는 일방이 일방을 제압하는 불평등한 회담이 아닌 바에야 ‘비핵화’를 회담의 목표로 삼아야 문제해결을 위한 접근이 가능해 진다.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군축의 내용은 첫째,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 근원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전제이기도 하다.

북한은 여러 경로를 통해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에 대한 사죄.취소, 적대시정책 포기의 정치적 의지 표명, 3차 6자회담에서 합의한 동시행동 원칙 복원 등을 ‘6자회담 복귀를 위한 조건과 분위기’로 제시한 바 있다. 이는 비핵화.군축을 위해서도 그렇고 회담이 성립되는데서도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는 기본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두 번째 내용은 미국의 핵무기 철수, 미국의 지원에 의한 남한의 핵무장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검증을 통해 확인되어야 한다. 북한은 정전상태가 해소되고 미국과 남한의 핵무기 철수가 완전히 검증되는 단계까지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는 곧 제안된 회담의 성격자체가 정전체제를 해소를 지향하는 회담이 될 것이라는 것, 이에 따라 양측의 무기증강 및 감축이 1:1로 (정전협정에 따르면) 중립국감시위원회 등과 같은 기구에 의한 검증절차를 통해 확인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핵화.군축회담’은 대등한 입장에서 정전체제를 검토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며 무기를 감축하는 회담이며, 이는 정전협정에 따른 후속정치회담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최근 방북한 미 한반도 전문가 샐리그 해리슨은 “북미 수교전까지 북이 해줄 수 있는 것은 현 수준에서의 동결이 전부이며, 핵포기 시점은 북미수교 후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다시 말해 정전상태가 해소되고 미국과 남한의 핵무기가 철수가 완전 검증되며, 이 과정에서 북미간 관계정상화가 실현되면 북한은 완전히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일체의 핵전쟁연습을 중지하는 것은 대화의 쌍방이 취해야 할 지극히 정당한 조치에 해당한다. 덧붙여 북한이 핵위협공간 청산을 언급한 것은 동북아사령군으로 성격변환을 앞두고 있는 주한미군과 미군기지, 북한을 겨냥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제시한 네 번째 군축회담의 내용은 한반도 비핵?군축이 실현되고 북미간 신뢰관계, 관계정상화가 실현되는 것은 동북아에 평화와 안정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고리이다.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시아 전체에 평화질서를 구축하는 단계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각 국은 북한의 제안에 긴밀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북한은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미국을 대화로 끌어낼 수 있는 담보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북한이 의도한 바대로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의 영구적 평화와 안정이라는 목표가 실현된다면 인류적 차원에서 커다란 기여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 반향을 일으킬 중대사변으로 될 것이다.

4. 한반도 비핵.군축은 문제해결의 유일한 길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군축회담’ 제의를 일축한 가운데 유엔 안보리 회부설, 6월 시한부설 등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볼튼 미 유엔대사 지명자가 북한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고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했는가 하면, 같은 날 크리스토퍼 힐 미국무부 차관보는 6자회담을 ‘북한의 무장을 해제하는 최선책으로 여전히 확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회담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는 있지만 변화된 조건을 인정하고 북한을 회담상대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데서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으며 시간도 무작정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시작된 대미총공세를 늦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이라도 한반도 비핵화와 군축,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포괄적 의제를 가지고 진지한 자세로 대화에 임하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없음을 하루빨리 깨닫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북한의 일관된 요구는 정전협정 체결당시도 그렇고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한반도 정전체제 해소와 평화체제구축에 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역사적 조건은 달라졌으되, 원칙과 내용은 변함없다.

결국 북한은 이번 제안을 통해 다시 한반도 정전체제의 근본적 해소를 환기했다고 볼 수 있다. ‘비핵화.군축’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야말로 당면한 한반도 문제해결의 지름길일 뿐 아니라 분단 60년을 맞는 우리 민족의 세기적 염원을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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