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나지 않은 자신감

내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 학과명은 `서양화과`였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서양화과`는 학생들의 요구에 의해 `회화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서양에서 들여온 유화물감을 사용한다고 서양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학생들의 항변이었다. 양복을 입는다고 서양인이 되지 않듯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예전에 `동양화과`라고 불렀던 학과명을 `한국화`라고 바꾼 미술대학도 많다. 사실 학생들이 학과명을 바꾼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내용적인 것이 바뀌지 않고 껍데기만 바뀐들 무슨 소용이랴. 하지만 입시학원에서 오랫동안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이런 학과명의 미묘한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쥬리앙, 비너스, 아폴로 따위의 석고상을 줄기차게 그려온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서양을 동경하게 된다. 심지어는 우리 여인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데도 오똑한 코, 풍만한 가슴, 짧은 허리, 긴 다리의 서양 모델로 둔갑하는 지경이다. 내가 실력이 없어 그렇겠지만, 난 정말 우리 여인의 몸매를 정확히 이해하는데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아무튼 서구 중심적인 사고를 버리고 자신의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려는 학생들의 각성은 좋게 평가받아야 한다. 

모든 문화는 자기 것만 고집하면 썩고 쇠퇴하기 마련이다. 다른 문화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하는 것은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문화에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보수언론에서 말하는 파시즘에 가까운 민족주의와는 상관이 없다. 나는 청바지를 입고,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미국을 반대할 수 있다고 본다.

문화의 주도권이란 별거 아니다. 편하고 정신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예술과 문화는 이상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열등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발전하기 어렵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을 했다.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없었을 때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보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간섭하고, 평가하기를 좋아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작품이나 생각을 받아들이기보단 배척하기 급급했다. 하지만 조금 여유가 생기고 자신감이 있을 땐 정반대의 행동이 나타났다. 나의 이런 경험은 특별나지 않다. 교육에 있어서도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는 비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야외에서 그린 유화

▶림용진/개성 선죽교/유화/1990

이번 그림은 북한화가 림용진이 그린 <개성 선죽교>라는 유화작품이다. 크기는 대략 10호 정도이고 창작시기는 1990년이다. 

북한미술의 초기에는 동양화와 유화를 그리는 작가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를 기점으로 점점 조선화를 그리는 작가가 많아졌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의 교시가 있었고 정책적으로 조선화를 밀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를 알 순 없으나 대략 70%이상이 조선화를 그린다고 한다. 그렇다고 유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유화의 작풍도 조선화의 특징을 수용하여 텁텁하고 탁한 색채나 마티에르 중심의 기법은 없어지고 화사하고 미려한 분위기가 많아졌다.  

<개성 선죽교>라는 작품을 보면 마치 인상주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그린 방식도 작업실에서 꼼꼼히 그린 것이 아니라 야외에서 즉흥적으로 제작한 것처럼 보인다. 단번에 칠한 듯 두껍고 거친 붓질, 다듬지 않은 색조, 캔버스의 결이 조금씩 보이는 화면처리 따위가 그것을 말해준다. 야외에서 제작한 그림치고는 기본기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물 속에 비친 나뭇가지와 물에서 피어난 연잎의 미묘한 차이가 잘 표현되었다.

초여름 선죽교를 즉흥 사생한 작품을 보면서 북한화가의 따뜻하고 여유로운 마음과 공감하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가의 마음속에는 당의 정책이나 조선화에 밀리는 유화 작가의 섭섭함은 없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냥 마음으로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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