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뉴스에서는 다사다난했던 2004년을 보내면서 '2004년 10대 통일뉴스'를 선정, 발표합니다 - 편집자 주


1.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

2004년 하반기는 국회 안팎에서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으로 달아올랐다. 국보법은 그간 56년 동안 대표적인 반인권법, 반통일법으로 질긴 생명력을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 4.15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자 국민들은 국보법이 곧 폐지될 것이고 그 기한은 연내라는 심리적 마지노선을 갖게 되었다. 각계각층은 국보법 연내폐지라는 목표아래 11월3일부터 촛불시위, 600여명의 삭발, 1천300명 단식농성이라는 고강도 투쟁을 전개하면서 세밑을 후끈 달궜다. 이에 정치권에서 여야는 ‘폐지-반대’로 대치하다가 ‘4자회담’을 통해 타결을 모색했지만 결렬됐다.

2. 북한 룡천역 열차사고와 민족적 복구지원

북한 평안북도 룡천역에서 4월22일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인해 사망자가 150명, 부상자가 1천명 이상이며 또한 공공건물과 가옥 등이 수 천 채 파괴되는 '민족적 재난'이 발생했다. 사고 직후 북한 당국은 신속히 사고원인을 밝히고 국제사회에 구호요청을 했다. 이에 남측의 당국과 민간단체를 비롯한 전국민이 동포애와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그간 반북.반민족적 행태를 보여온 수구보수 세력들도 대북지원에 나섬으로서 ‘하나의 민족’임을 보여주었다.

3. 대통령 탄핵소추와 촛불시위

3.12 대통령 탄핵소추에 이어 ‘촛불시위-4.15총선 열린우리당 과반확보-5.14 헌재 기각판결’ 등의 사건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일어났다. 거대야당공조에 의한 탄핵은 ‘의회쿠데타’로까지 불렸다. 특히 광화문과 세종로를 촛불의 바다로 뒤덮은 ‘촛불시위’는 제2의 6월항쟁을 연상시켰으며, ‘탄핵무효’와 ‘민주수호’ 구호는 단순한 ‘민주와 반민주’, ‘수구와 개혁’ 구도를 넘어 ‘친미와 자주’, ‘통일과 반통일’, ‘민족과 반민족’을 가르는 심판이었다.

4. ‘6.15우리민족대회’와 ‘노동자5.1절통일대회’

2004년 남북간 민간교류는 ‘노동자5.1절통일대회’와 ‘6.15우리민족대회’로 이어졌다. 평양 5.1절통일대회에서 남북 노동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가까운 앞날에 반드시 조국통일을 이룩하도록 하는데서 앞장에 설 것을 약속”함으로서 노동자의 통일운동 참여를 선언했다. 인천 6.15우리민족대회에서 남과 북은 6.15선언 5주년이 되고 광복60돌이 되는 2005년을 조국통일 원년으로 만들자고 합의한 ‘민족대단합선언’을 발표했다. 이러한 합의는 11월 23일 금강산 남.북.해외 통일대표단 접촉에서 공동보도문으로 구체화됐다.

5.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과 북-중정상회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4월19일부터 2박3일간 중국을 방문해 중국 후진타오 주석과 첫 대면을 하고 북-중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을 통해 양국은 전통적인 친선우호관계를 재확인하고, 6자회담에서의 새로운 공동운명체임을 시위하는 등 새로운 시대에 맞게 양국관계를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중국은 건국 이래, 후 주석을 비롯한 최고 정책결정기관인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김 위원장 ‘접대’에 나서는 등 ‘파격적인’ 예우를 갖춰 주목을 끌었다.

6. 노무현 대통령의 LA발언과 순방외교 발언

부시 미 대통령의 11월초 재선 직후 노무현 대통령은 로스앤젤레스(LA)에서 ‘대북 무력행사 불가’ 및 ‘북과의 대화’ 발언에 이어, 칠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의 6자회담 틀속에서의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의 해결’에 합의했다. 이어 ‘아세안+한.중.일정상회의’와 영국, 폴란드, 프랑스 순방에서 ‘북한체제 붕괴 불원’ 등 역대 대통령들이 하기 쉽지 않은 중요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는 한편, 부시2기 행정부를 일색화한 ‘네오콘’에 대한 메시지로도 이해됐다.

7. 개성공단 시범단지 준공식과 첫 제품 생산

남과 북이 2000년 8월 개성공단을 개발하기로 하고 시범단지 구성을 위한 착공식을 가진지 1년만인 2004년 6월30일에 개성공단 시범단지 준공식이 있었다. 이후 개성공단에 입주를 기대하고 신청한 136개 업체중 15개 업체가 선정되어 제품생산에 들어가, 마침내 12월15일 첫 제품으로 한 주방업체의 냄비 1천 세트가 생산되었다. 이 생산품은 ‘메이드 인 개성’ 상표로 서울의 대형 백화점에서 만 하루 만에 불티나게 모두 팔리는 감격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8.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남과 북은 5월26일과 6월3일 금강산과 설악산에서 2000년 9월 남북 국방장관회담 이후 3년8개월 만에 군사회담을 개최하였다. 이 회담을 통해 남북은 서해안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분계선 내에서 선전활동 중지와 선전수단을 제거하는데 합의하였다. 그동안 장관급회담과 경협회담으로만 진전되어왔던 남북관계가 한미연합사 체제하에서 장성급 군사회담까지 열리게 됨으로서, 정치, 경제에 이어 군사영역까지 남북관계가 형성되는 쾌거를 이뤘다.

9. 두 차례의 6자회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그 성사나 진전 여부에 관계없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일단 한반도 평화를 상징해 주고 있다. 지난해부터 진행된 6자회담은 올해 들어 9월 말까지 열리기로 했던 4차회담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그간 2차회담(2월)과 3차회담(6월)이 개최됨으로서 미약하나마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을 유지해 주었다. 지난 11월 한미정상회담에서도 북핵문제를 6자회담에서 풀기로 합의한 만큼, 언제라도 4차 6자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역설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잇는 유일한 끈이 되고 있다.

10. KAL858기 실종사건의 국정원 진상규명 언명

올해 과거사 진상규명이 공론화된 데에는 KAL858기 실종사건 관련 대책위와 가족회의 역할이 컸다. KAL858기 사건은 남쪽에서는 1987년 대선때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북한은 이 사건으로 1988년부터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으로 규정돼 온갖 경제 제재를 받아왔다. 대책위의 17년간에 걸친 줄기찬 공세적 의혹제기로 공론화가 되면서 결국 국가정보원이 진상을 규명하기로 언명했고, 12월15일 검찰도 관련 수사자료를 공개하기로 결정하면서, KAL858기 실종사건은 그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호조건들이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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