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폐지 연내처리를 촉구한다

이계환(통일뉴스 대표)


국가보안법 폐지문제를 두고 국회 안팎이 시끄럽다. 국회 안에서는 보안법 폐지안이 주무상임위인 법사위에 상정조차 안되고 있고, 국회 밖에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보안법 폐지를 위한 단식.삭발.농성.집회 등이 6일로서 35일째 계속 이어지고 있다. 5일에는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1만여명이 보안법 폐지의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6일부터 국회 안에서는 ‘상정 대 저지’, 국회 밖에서는 6일 300명, 9일 560명, 20일 1,000명의 강도 높은 ‘구국단식’ 등, 국회 안팎에 전운(戰雲)마저 감돈다.

연내처리 안되면 ‘보안법 불사’ 신화로 남을 것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만약 보안법 폐지가 연내처리 시한이자 정기국회 마감일인 9일을 넘겨 연내처리가 물건너 간다면 내년에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아니 관례로 보아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결국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참여정부-열린우리당 체제’에서도 보안법이 폐지되지 않는다면 보안법은 영영 죽지 않는다는 ‘보안법 불사’ 신화로 남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어떤 사정과 이유에서건 연내에 보안법의 운명을 갈라야 한다. 그런데 여야간 대립과 촉박한 시일을 두고 일부에서 ‘정기국회내 상정, 내년 2월 임시국회 처리’ 안이 나오는데 이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보안법 폐지는 올해가 심리적 마지노선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 한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지난 4.15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자 ‘가을 정기국회에서 보안법이 폐지될 것’이라는 심정적 단정을 갖게 되었다. 이후 시민사회단체, 법조계, 정치권에서도 무수한 논의를 거쳐 왔고 연내처리에 총력집중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무수한 사회적 논의를 이번 국회에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럼에도 국회는 전혀 손을 못쓰고 있다. 그 제1차 책임은 물론 한나라당에 있다. 한나라당은 “보안법이 폐지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선정적인 정치공세만을 되풀이할 뿐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않고 심지어 폐지안 상정 자체를 막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 법사위원장은 개회와 의사진행을 기피하면서 세 차례씩이나 폐지안 상정을 무산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야당독재’이자 ‘소수독재’가 아닐 수 없다.

막판까지 온 지금 보안법의 운명은 누가 뭐래도 열린우리당에 달려있다. 열린우리당만이 보안법을 폐지시킬 수 있다. 상식적으로 보아 의석 수가 과반수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은 보안법 폐지안이 들어있는 이른바 ‘4대 개혁입법’을 당론으로까지 결정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폐지안의 국회내 상정과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가끔 ‘의지박약’ 또는 ‘방향감각 상실’을 드러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보안법폐지 정당’

열린우리당이 미적거리는 가장 큰 이유는 보안법 폐지 여론이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의미있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11월 17일 문화일보 발행 무료일간지 ‘AM7’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보안법 폐지에 대해서는 반대가 51%, 찬성 49%로 나타났다. 폐지와 반대가 오차 범위에서 비슷하다. 중요한 건 폐지 여론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 중요한 게 있다. 이제까지 보안법은 ‘개정>폐지>존치’ 순서였다. 개정과 폐지를 합하면 거의 80%에 이른다. 간과해선 안될 것은 ‘개정’은 사실상 ‘폐지’와 닿아있다는 점이다. 즉 보안법이 폐지될 경우 ‘개정’세력은 이를 지지할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보안법 개정세력은 보안법 폐지 반대세력이 아닌 찬성세력으로서 실제로 보안법이 폐지될 경우 지지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설사 지금 보안법 폐지 찬성이 다소 낮더라도 그게 주저할 이유는 못된다. 정치는 상상력과 결단의 산물이다. 어느 교수의 주장대로 비유하자면 보안법은 통행금지와 같을 수 있다. 1982년에 1945년부터 37년간 계속된 야간 통행금지조치가 해제된 일이 있었다. 그때 통금이 없어지면 심야에 범죄가 창궐하고 치안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우려했다. 그러나 통금 해제후 예상했던 범죄와 치안상의 어려움은 없었고 오히려 물류유통의 신속함으로 경제가 발전했다. 마찬가지로 56년간 지속된 보안법이 폐지된다면 뭔가 불안한 심정을 갖기 마련이지만, 막상 폐지된다면 나라가 망하기는커녕 특히 사상과 예술분야에서 엄청난 발전과 진보를 가져올 것이다.

이처럼 보안법 폐지 찬성률이 상승추세에 있고 또 폐지 강행후 순기능이 충분히 예상된다면 열린우리당은 보안법 폐지 당론을 갖고 이를 강행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그 출발점이 무엇이고 또 존재이유가 무엇인가?

돌이켜보면 민주-개혁-진보-통일-민족 세력이 통털어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지고, 올해 4.15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과반수 의석 수를 안겨준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개혁과 민족화해를 위해 집권과 과반수의석당으로 보안법을 완전히 폐지시켜 달라는 주문 아니겠는가. 다소 거칠게 말한다면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의 존재이유와 가치는 보안법을 폐지시킬 때만이 그 의의가 있는 법이다. 이렇게 볼 때 한편으로 참여정부는 ‘보안법폐지 정부’이고 열린우리당은 ‘보안법폐지 정당’이며 또한 17대국회는 ‘보안법폐지 국회’라고도 할 수 있다.

‘열린독재’로 보안법을 폐지할 수 있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열린우리당이 보안법 폐지 당론과 강행의지를 갖는다면 남는 건 처리방법이다. 상식적이라면 과반수인 열린우리당과 제3당인 민주노동당이 합해 정상적인 국회법 절차에 따라 무난하게 처리될 수 있다. 그런데 처리가 안되는 이유는 한나라당이 지금 소수야당임에도 불구하고 그 옛날 거대여당일 때조차 즐겨 쓰던 정상적인 국회절차를 어기는 독재적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나라당의 ‘야당독재’와 ‘소수독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똑같은 방법을 반대로 쓰면 된다. ‘여당독재’와 ‘다수독재’를 하면 된다. 한나라당과 똑같은 독재는 물론 아니다.

한나라당의 ‘소수독재’에 맞서는 길은 열린우리당이 ‘열린독재’를 하는 것이다. ‘열린독재’란 법대로 하고 다수결 원칙에 따르는 것이다. 처리시일이 부족하다면 물흐르듯 올해내 임시국회를 소집하면 된다. 한나라당이 힘으로 막으면 하릴없이 힘으로 강행하면 된다. 오죽하면 시민사회단체 일각에서 “한나라당이 경호권을 사용해 3.12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듯이 열린우리당도 경호권을 발동해서라도 보안법을 폐지를 날치기 통과시켜라”고 요구하겠는가?

여기서 미리 그리고 굳이 ‘열린독재’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한나라당과 대화와 타협의 문을 열어 놓았는데 이에 나서지 않는다면 독자적인 길을 갈 것을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 시기에 중요한 건 ‘소수독재’와 ‘열린독재’, 또는 그 양자간의 다툼이 아니라 '보안법 폐지'이다. ‘열린독재’로 보안법을 폐지할 수 있다면 열린우리당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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