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초겨울을 알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름하여 'KAL858기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7주기 추모행사'다. 무대 배경에는 115명의 명단과 함께 “진실이 없으면 무덤도 없다”는 글귀가 크게 적혀 있다. 무슨 뜻인가? 추모행사 시간이 지날수록 참가자들은 소리없이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인가?

17년 전인 1987년 이날,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115명의 탑승객을 태운 KAL858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안기부(현재 국가정보원)는 이 사건을 ‘폭파’로 규정했으며, 이에 따라 115명의 탑승객을 일괄적으로 ‘사망’ 처리했다. 그러나 이날 시청앞 광장에 모인 ‘858기 가족회’는 시체 한 구, 유품 하나, 블랙박스조차도 발견되지 못한 이 사건은 세계 여객기 사고사상 유례없는 일이라며 이는 ‘폭파’가 아니라 ‘실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유품 하나라도 발견되면 사망을 인정하겠다”고까지 했다.

여기서 문득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1900∼1944) ‘실종’ 사건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일까? 2차 세계대전중인 1944년 7월 31일 야간비행 정찰업무중 프랑스 남부 지중해 상공에서 종적을 감춘 생텍쥐페리가 마지막으로 조종한 비행기 잔해가 발견된 일이 60년이 지난 올해 4월에 있었다. 프랑스 탐사단이 마르세유 남동쪽 해저에서 건져 올린 정찰기의 잔해는 50점으로 기체의 10%에 달했고, 이중 엔진 뚜껑에서 생텍쥐페리가 탑승했던 미국 록히드사의 ‘P-38’정찰기와 동일한 제조번호 ‘2734’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간 프랑스 탐사단은 생텍쥐페리의 정찰기가 이륙한 코르시카에서 마르세유 동쪽에 이르는 항로의 해저를 광범위하게 수색해왔으며, 98년에는 생텍쥐페리와 아내의 은팔찌를 발견하기도 했고, 2000년에는 해저에서 생텍쥐페리가 조종한 정찰기의 잔해로 추정되는 항공기 잔해를 확인한 적도 있다. 이로써 생텍쥐페리 ‘실종’과 관련, 추락 지점과 사망 상황 등을 놓고 벌어졌던 구구한 논란이 종지부를 찍게 됐다. 한마디로 끊임없는 탐사작업으로 ‘진상규명’이 된 것이다.

115명이 탄 KAL858기와 생텍쥐페리의 정찰기. 이 둘 사이의 차이는 뭘까? 탑승객이 많고 적음일까? 비행기가 크고 작음일까? 아니다. 그런 계량적인 차이가 아닌 진실의 차이다. 후자는 60년이 지났지만 끊임없는 탐사로 여러 차례에 걸쳐 정찰기 잔해와 망자의 유품을 발견해서 사실확인과 진상규명이 됐지만, 전자는 17년이 흘렀건만 115명의 유품은커녕 그 커다란 항공기의 잔해조차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는 단 한 사람의 ‘실종’을 규명하기 위해 60년간 탐사대를 보냈다. 그런데 이 나라는 115명의 ‘실종자’를 찾기 위해 17년간 무엇을 했는가?

‘KAL기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 사이트에는 ‘안기부의 거짓 수사발표 29가지’, ‘풀리지 않은 의문점 73가지’, ‘KAL858 가족 의혹제기 33가지’ 등이 매우 설득력 있게 올라와 있다. 그러기에 ‘858기 대책위’는 이렇게 단언한다. “감히! 그들을 사망자라 부르지 말라. 감히! 그들을 유가족이라 부르지 말라. 감히! 그 푸르렀던 87년의 하늘을 향해 거짓으로 얼룩진 부끄러운 위령탑을 세우지 말라!”고. 진상규명이 안됐기에 ‘실종자’들은 실종자일 뿐이고 무덤이 있을 리 없다. 산자나 ‘실종자’나 모두가 편치 않다. 아무리 늦었더라도 이제 진상규명을 위해 정부당국이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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