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 (pbpm@chol.com / 원광대학교 정치학.평화학 교수 /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


평화와 통일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케리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가 부쉬보다 덜 호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불행하게도 부쉬의 당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빈 라덴도 그를 도우려는 것 같고. 부쉬가 당선되어야 자신이 이끄는 알 카에다의 활동이 조금이라도 더 지지를 받거나 정당성을 지닐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적대적 공존’을 추구한다고 할까.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대외 정책에서는 큰 차이 없어

미국인들은 지도자들이든 일반인들이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지위를 지켜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고,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국민’이라는 강한 선민 의식을 지니고 있어서, 정치 경제의 틀이나 체제가 세계 패권을 추구하는 제국주의로 흐르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은 진보적이고 공화당은 보수적이라거나 전자는 평화 지향적이고 후자는 전쟁 지향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둘 다 보수 정당으로 특히 대외 정책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두 당 후보간의 차이를 찾는다면 부쉬가 유달리 군사력을 앞세운 일방주의 정책을 선호하는 반면, 케리는 어느 정도 국제적 합의를 내세울 것 같다는 정도랄까.

예를 들어, 민주당 클린턴 정부 말기인 1999년 9월 북한과 미국 사이에 베를린 합의가 이루어지고 2000년 10월에는 북미 공동 코뮤니케가 발표되어 곧 국교 정상화까지 이루어질 것 같았기 때문에, 우리는 대체로 민주당이 전쟁보다 협상을 선호한다는 인상을 갖기 쉽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1945년 이후 지금까지 약 70회 안팎의 전쟁을 치렀는데, 민주당 정부에서든 공화당 정부에서든 골고루 다른 나라들을 폭격하거나 군사적으로 침략하였다.

평화 지향적이라고 오해하기 쉬운 클린턴 정부에서도 1993년엔 이라크와 소말리아를 폭격하고, 1994-95년엔 보스니아, 1998년엔 수단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1999년엔 유고슬라비아를 폭격하지 않았던가.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1993년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으며, 19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도 북한의 붕괴를 염두에 둔 속임수에 불과했을 뿐이다.

세계적 패권을 추구하는 미국 정치 경제 체제 속에서 폭격이나 침략이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민주당에서든 공화당에서든 전쟁은 국가 활동의 일상적 부분이라는 뜻이다.

이른바 ‘미국발 한반도 위기설’

한편, 미국에서 선거가 끝나면, 특히 더 호전적인 부쉬가 재선되면, 머지않아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게 될 것이라는 이른바 ‘미국발 한반도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험악해진 북미 관계와 가로막힌 남북 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긴장과 우려를 갖게 하는 소문이다. 그러나 나는 미국의 강경하고 호전적인 대북 정책에 경각심을 지니면서도 북한에 대한 폭격이나 직접 침략은 쉽게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처지에서 북한이 결정적으로 도발하지 않는 한 제3의 전쟁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미국은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하며 침략의 목표였던 빈 라덴을 아직 잡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라크를 침략해서 후세인을 생포하는 등 목표를 이루는 듯 했지만, 미군의 사상자 수가 끊임없이 늘고 있는 가운데 저항 세력의 반발은 그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에서 북한이 미국의 압박에 더 강경하게 대응하더라도 미국이 선뜻 북한을 폭격하거나 침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부쉬의 핵심 참모들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밝혔듯이 이라크와 북한은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 이라크에는 미국이 탐내온 석유가 풍부하지만 북한에는 미국이 탐낼만한 자원이 거의 없다. 둘째, 이라크는 미국에 맞설만한 군사력을 거의 갖추지 못했지만 북한은 미국에 어느 정도 손실을 입힐 수 있는 군사력을 지니고 있다. 셋째, 이라크 주변에는 대부분 약소국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미국의 침략 전쟁을 적극적으로 막기 어려웠지만, 북한 주변에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 등 강대국들이 미국의 침공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고, 특히 현재 남한의 집권층이 한반도에서의 무력 충돌을 절대 바라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이라크에서는 얻을 것이 많고 잃을 것은 적었을지라도 북한에서는 얻을 것이 적고 잃을 것이 많을 텐데, 북한에 대해 전쟁을 벌이기 어려울 것이란 뜻이다.

미국은 눈엣가시 같은 북한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

그 대신 미국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북한을 그대로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쉬 정부의 대북 목표는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인데,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처럼 폭격이나 침략 등의 직접적인 군사 작전을 통해 북한을 무너뜨리기보다는 내부에서의 경제난과 사회 혼란 등을 통한 체제 붕괴를 이끌 것 같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2003년 7월 부분적으로 공개된 미국의 '작전 계획 5030'은 미군 정찰기들을 북한 영공 가까이 비행시켜 북한 전투기들의 대응 출격을 유도함으로써 부족한 연료를 바닥나게 만들거나, 한반도 주변에서 몇 주 동안 기습적으로 군사 훈련을 실시하여 북한이 대피 훈련을 하게 함으로써 식량을 비롯한 전쟁 비축 물자를 다 써버리도록 이끈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과 직접 전투를 벌이는 게 아니라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치게 만들겠다는 의도다.

그리고 2004년 10월 발효된 '북한 인권 법안'의 중요 내용은 미국이 대북 심리전 방송을 강화하고 탈북 지원 단체들에게 재정 지원을 하며 탈북자의 망명을 인정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부추겨 사회 혼란을 통한 체제 붕괴를 꾀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한은 어떻게 대처하는 게 바람직할까. 미국은 적대국인 북한의 붕괴 자체만으로 만족을 느끼겠지만, 남한은 그 뒤의 일에 초점을 맞추지 않을 수 없다. 만에 하나 북한 체제가 무너질 경우 남한 사회에도 초래될 결과를 다양하게 예상해보며 미국의 강경하고 호전적인 대북 정책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