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선(통일뉴스 논설위원)


국회를 비롯한 고위 당국자들 사이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필요성과 관련한 발언들이 그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빈발하더니 마침내 여당의 기본입장이 ‘남북정상회담 추진 고려’로 이어졌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반드시 성사되어야 하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것이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 민족의 활로를 개척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절실한 바람만으로 회담이 성사되고, 또 만족할만한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남북정상회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반세기 넘게 적대적으로 대결해왔던 냉엄한 분단현실 속에서 남북정상회담이 다시 성사될 수 있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조건의 충족과 분위기 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 민족의 바람직한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내실 있는 남북정상회담을 기대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할 때, 최근 여러 형태로 남북교류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서 개성공단건설의 진척과 경의선.동해선 도로.철도연결사업 진행, 그리스올림픽에서 남북선수단이 한반도 단일기를 앞세우고 공동 입장한 것이라든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쌍방간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시설물들의 단계적 제거를 합의한 것, 그리고 중국의 역사왜곡문제와 관련해서는 자연스럽게 남북공조 논의가 활기를 띠고 있는 것 등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민족화해적 교류활성화라는 기초위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는 본질적 조건으로 되는 국가보안법의 완전 폐지와 북미관계 개선에 의한 대북 적대정책의 불식으로 이어진다면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조건은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

냉전적 잔재들이 남북정상회담 성사 분위기 흐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분단을 지속시켜온 적대적 대결의식과 냉전적 잔재들이 이곳저곳에서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분위기 조성을 훼방하고 조건의 충족을 가로막는 안타까운 현실을 발견하게 된다.

지난 여름 정부 당국은 6.15남북공동선언 이행실천에 반하여 민족화해를 가로막는 조치들을 취했다. 문익환 목사 기일을 맞아 이북에서 조문 왔던 것에 대한 답례로 그 가족들이 지난 7월 조문을 위해 방북하려했으나 이를 제지했고, 이른바 ‘탈북자’들을 비밀리에 제3국을 통해 입국시켜 남북관계를 악화시켰고, 연례행사로 진행되어 오던 8.15남북공동행사에 범민련, 한총련 회원들의 참가를 불허함으로서 남북공동행사를 분산 개최할 수밖에 없게 하는 등의 조치들이 그것이다.

그런가하면 수구반통일 세력들은 9월과 10월 대중 집회를 열어 6.15남북공동선언의 파기,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및 친일과거청산 반대, 한미동맹 강화 등을 주장하여 노골적으로 반통일적 입장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또한 미국은 이른바 ‘북한인권법’을 만들어 북에 대해 구체적으로 압력의 강도를 높여 가고 있어 개선해야할 북미관계를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한미대사관은 한미동맹 강화를 주장한 시청 앞 집회 주도 인물들에게 감사장까지 주어 주재국 대중 집회가 자국 옹호주장을 했다는 명분으로 집회주도자들을 격려해주는 사례가 다른 나라에서도 가능한 일인지 의아심을 갖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결정책, 적대의식 고취, 외세의 부당한 간섭과 같은 냉전의식 잔재들은 민족화해와 통일을 도모할 수 있는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더 나아가 자주통일의 앞길에 찬물을 끼얹는 장애물로 되고 있다.

2차 정상회담에서는 통일기구 합의해야

그러므로 정부당국이 참으로 민족화해와 통일을 담아내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먼저 냉전적 잔재들을 일소하는 과감한 조치들을 강구해 나가야한다.

냉전적 잔재들을 불식시키기 위한 그 같은 의지와 노력 없이 절차적 남북정상회담만을 성사시키려 한다면 성사자체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혹 남과 북 정권당사자들 사이의 어떤 정치적 합의에 따라 회담이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그 같은 회담에서는 민족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은 통일문제를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해가기로 하기로 한 합의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남북정상간의 만남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회담에서 어떤 내용을 합의하여 담아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의 정상회담에서는 민족화해와 민족자주권이 담보되고 남과 북의 정권당국에게 구속력 있는 통일기구를 합의해 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통일을 갈망하는 다수 민족구성원 대중들과 통일운동진영은 여러 형태로 곳곳에 잔존하고 있는 냉전의식을 불식시키고 극복하는 일에 모든 역량을 다 발휘할 때라고 생각한다.

민족화해와 자주통일의 길은 장애물이 있다고 해서 멈칫거릴 수 없는, 기어이 극복하고 넘어가야할 전 민족적 과제임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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