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우(소설 『배후』의 작가)


얼마 전 안동일 변호사의 『나는 김현희의 실체를 보았다』(이하 이 책)라는 제하의 책이 출간됐다. 내가 몸담고 있는 'KAL858기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이하 대책위)의 신동진 사무국장으로부터 이 책 출간 소식과 더불어 서울 프레스센타에서 (이회창 전 대통령 후보도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안동일 변호사. 나는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김현희 재판당시 김현희의 변호를 맡았던 국선변호사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나의 귀를 자극한 것은 제목의 강렬함만이 아니라 이 책이 '소설 배후의 배후는?'이라는 첫머리로 시작한다는데 있었다. 동시에 나는 강한 호기심에 사로잡혔고 즉시 서점으로 달려갔다. 어떤 내용이기에 그렇게 자신만만한 제목을 달았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문제의 책을 구입하자마자 단 몇 시간 만에 독파했다. 그리곤 엄청 실망이었다. 이 책은 90년대 초에 출판된 김현희 수기의 완전한 재탕이었다. 오히려 소설 『배후』의 저자와 진상규명 운동의 '배후'에 대한 의문제기와 김현희 재판에 참여했던 증인 몇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었을 뿐 어디에도 그동안 제기되어온 사건의 실체에 대한 의혹의 해명은 찾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만원 가까이 하는 책값이 아까울 따름이었다.

 그런 후 20여일이 지난 지금 나는 아무렇게나 처박아두었던 이 책을 다시 찾았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책이지만 지금 나는 이 책의 저자인 안동일 변호사에 대해 반박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유는 최근에 정치권에서 제기된 'KAL858기 사건'(이하 이 사건)의 재조사 움직임에 대해 이 책의 저자인 안 변호사를 비롯하여 이상형 당시 이 사건 주임검사, 정형근 당시 안기부 수사국장, 그리고 검찰 지휘선상에 있었던 안강민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장까지 줄줄이 이 책의 내용을 되풀이하는 주장으로 재조사 반대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안 변호사는 이 사건 의혹제기의 부당성과 부적절함을 주장하면서도 'KAL858기 가족회'(이하 가족회)와 대책위에 의해 제기된 의혹에 대해 어디에서도 증거중심의 반증을 못하고 있다. 반복하건대 나는 이 책 어디에서도 그러한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사실은 그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KAL기 폭파사건의 증거는 김현희의 실체 그 〈자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라고 한 발언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다. 그 기사를 접하는 순간 나는 그가 변호사라는 사실이 의심스러웠다. 근대법 이후 민주국가의 법체계는 증거법정주의로 객관적 물증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것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쓰여 있지 않은가? 나는 더욱 확신했다. 이런 변호사에 의해 진행된 재판이 제대로 되었을지 의구심을 가질 정도이며, 그런 까닭에 재조사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된다는 당위성을 말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가 가족회와 대책위의 이 사건 조작주장에 대해 반증할 진실의 무기가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 하나하나 그가 말한 주요 대목을 보자.

안 변호사는 자신 또한 '이 사건 초기에 여러 가지 의문점을 떨쳐낼 수 없었다'고 전제하면서 그렇지만 '김현희와의 장시간 독대와 만남의 과정을 통해 어떤 낌새나 의문점을 찾을 수 없었고, 김현희의 진술에 대해 확신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덧붙여 '단언컨대 김현희를 적어도 한번이라도 만나보고 대화를 나눈 이라면... 떠한 의혹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참으로 웃기는 말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나는 그의 인격과 사리판단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김현희를 독대하여 사건의 실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면, 그는 지금 진상규명 주장의 '배후' 운운할 것이 아니라, 또 김현희와의 독대의 영광(?)을 자신의 특권으로만 누릴 것이 아니라 이 사건 이해관계자로서 응당 가족회와 대책위도 김현희와의 면담이 가능하도록, 또 1심 재판부가 판결한대로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이하 기록)의 공개를 위해 그 자신이 발 벗고 나서야 했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의 주장대로 김현희의 실체를 함께 확신.공유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가족회와 대책위는 그동안 수 차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김현희와 단 한 시간의 만남도 가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 가족으로서의 정당한 권리인 기록에의 접근도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안 변호사가 가족회와 김현희와의 면담 주선과 기록공개를 위해 노력했다는 소식도 들은 바 없다.

사안이 이러하므로 나는 일방적으로 김현희의 진술만을 두둔하고 진상규명 운동의 '배후' 운운하는, 이러한 공정성을 벗어난 안 변호사의 행위를 참으로 비겁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어떠한 낌새나 의문점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안 변호사는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그의 판단력이 너무 둔해서 변호사로서의 자질에 심대한 의심이 드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그가 완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경우이다.
 
'김현희를 적어도 한번만이라도 만나보고 대화를 해 본 이라면...'
이 대목에선 나는 그가 가히 변호사로서가 아니라 무슨 독심술가나 관심법의 달인인 것처럼 느껴져 그가 자신의 직업을 잘못 택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들 지경이었다.
 
'이상하게도 최근 들어... 갑자기 의혹설이 봇물처럼...'
이 말은 안 변호사가 밝힌 이 책 집필동기이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까지 십수년 이상이나 세상에 대해 눈과 귀를 막고 살았다는 말인가? 그는 이 사건 이해당사자로 누구보다도 가족회와 대책위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 이 역시 대답은 위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일 것이다.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안 변호사 자신이 잘 알 것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안 변호사 자신이 스스로 밝힌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러지 않을 것 같기에 판단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이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면 국가의 존엄성이 없는 것이다.'
그의 이 말은 내게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믿고 싶은 마음으로 넋두리해보는 자기최면처럼 들린다. 또한 우리 역사에 대한 그의 이해와 사고의 폭이 얼마나 빈약한가를 스스로 드러내 는 것처럼 비쳐진다.

예를 들면 80년 광주를 보라. 백주대낮에 광주시민과 외신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도 살육을 마다하지 않은 사실은 이미 드러난 것이기에 받아들이고,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이 없었던 인도양 상공에서 일어난 누군가의 감쪽같은 범죄에 대해 제기되는 의혹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나의 생각으로는 이 사건이 국가조작사건으로 드러난다 해도 국가의 존엄성이 없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이러한 악행마저 드러낼 수 있는, 한층 발전하는 민주국가로서의 존엄성이 더욱 높아진다고 본다.

'애시당초 그들은 의혹제기에만 관심 있었지, 의혹풀기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그의 이 말은 나를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하였다. 사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이 대목에 있다. 참으로 적반하장이고 일방적 매도이자, 가족회와 대책위 구성원의 인격에 대한 완전한 모독이다. 한마디로 그는 마치 자신이 구 안기부의 충실한 변호사이자 대변인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가족회와 대책위는 객관적인 자료인 기록과 김현희와의 면담, 그리고 국정원과의 공개토론을 요구해왔다. 그 모두가 거부당하고 있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뻔뻔하게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니!

오히려 그 자신이야말로 이 사건 의혹을 해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의혹 덮기에만 급급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나는 오히려 '김현희의 실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그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김정일이 이은혜의 납치를 인정하여 북이 자신의 범죄를 시인하였다.'
그가 결정적으로 내세우는 이 말은 그만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이 사건 재조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주로 주장하는 약방의 감초격인 말이다. 나는 여기에서 그들의 공통점을 또 하나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귀가 정상인과 달리 특별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재작년 북일 정상회담 이후 나는 몇 번이나 눈과 귀를 씻고 확인하였지만 북이 다쿠치 야에코의 납치를 인정했지 결코 이은혜의 납치를 인정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들의 귀는 다쿠치 야에코라는 이름이 이은혜로만 들리는 모양이라, 나는 그들의 언어 이해 능력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사건은 98년 10월 14일, 구 안기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조작의혹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당시 안기부 내부에서조차 이 사건의 실체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안기부가 누구인가? 이 사건 수사를 맡은 국가기관이 아닌가? 이러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사건의 재조사 구성요건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결과에 대해 시답잖은 이유만으로 재검표를 실시한 바도 있다. 그런데도 야당인 한나라당이 왜 이 사건 재조사를 반대하는가?

나는 감히 이 사건을 더 이상 의혹사건이 아니라 '조작이 드러난 사건'으로 단정한다. 그런 까닭에 재조사를 반대하는 것은 그만큼 이 사건의 실상에 대해 자신이 없음을 나타내는 반증이리라.

안동일 변호사는 이제 더 이상 '배후'니 '친북단체'니 하는 매도를 그만두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 사건 재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만간 진실이 밝혀져 그분의 명예와 인격이 더욱 돋보이기를 바란다.

나는 안 변호사님이 이글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분이 요청한다면 언제라도 공개토론을 할 용의가 있음도 밝힌다.

마지막으로 안 변호사님의 말의 의미를 새겨본다.
'거짓과 음모로 진실과 실체를 이겨낼 수는 없다.'
맞는 말이다. 단 이 말이 결코 그분과 국정원만의 독점물은 아니리라.

- 2004. 7. 어느 날, 소설 《배후》의 작가 서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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