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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기고> “월간조선은 공안기관 시나리오에다 창작까지 해” - 민경우‘월간조선’ 7월호 「통일연대 심장부에...」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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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4.06.29  12: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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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중)


통일연대 사무처장인 민경우 씨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범민련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범민련 공동사무국 박용 부총장에게 8.15 통일대축전 행사와 통일연대 결성 등의 '국가기밀'을 수집 전달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징역 4년, 자격정지 3년 실형을 선고 받았다.

‘월간조선’은 7월호에서 「통일연대 심장부에 북 간첩선 침투」라는 제목으로 민경우 씨 사건을 다뤘다. 이 글은 이에 대한 반론으로서,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민경우 사무처장의 ‘옥중기고’이다. - 편집자 주


월간조선 7월호에는 「통일연대 심장부에 북 간첩선 침투」라는 제목으로 본인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다.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남규씨는 공소장을 인용한다고 하면서도 일부 사실을 침소봉대하거나 공소장에도 없는 내용을 고묘히 삽입하여 본인과 통일연대의 명예를 의도적으로 훼손하였다. 이에 본 사건의 정황과 사실관계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1. 기본사실 관계

본인은 2000~2002년 중반기까지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으로 재직했다. 재직기간 중 일본 소재 범민련 공동사무국 부총장 박용 씨를 통해 범민련 북측본부와 전화, 팩스, 이메일 등으로 200번 정도 통신, 연락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박용 부총장이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정치국 부장으로 대남공작원이며 그에게서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하여 보고했다는 이유로 기소했고 법원은 5월 24일 이를 유죄로 인정 4년형을 선고했다. 본인은 이에 불복하여 항소 중이다. 한편 1심 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회합통신, 금품수수, 고무찬양 등에 대해서도 모두 유죄로 판결하였다.

2. 검찰 기소 및 1심 재판에 대한 반박

1) 박용 부총장의 신원

박용 부총장이 총련 출신임은 본인도 알고 있고 박용 부총장 자신도 이를 숨긴 바 없다. 범민련은 조국통일에 뜻이 있다면 누구와도 접촉, 대화하며 공동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거기에는 총련은 물론 조선노동당도 예외가 아니다. 그것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한다면 정치적, 도덕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

본인은 통일운동을 시작하면서 국가보안법을 한번도 법이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다. 동족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법률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단 말인가? 평생을 옥에 갇히는 한이 있어도 그런 법률에 굴복할 수는 없다.

그런데 검찰은 박용 부총장을 단순히 총련 성원을 뛰어 넘어 대남공작원으로 지목했다. 본인은 수사과정, 검찰, 법원에서 박용 부총장이 대남공작원이라는 증거를 요구했고 직접 증거가 아니라면 간접 증거 혹은 방증 자료라도 있다면 제출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 현재까지 본인은 마땅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검찰이나 수사기관은 애초부터 그런 점에는 관심이 없었다.

총련은 60만 재일 동포 중 20만명이 포함된 동포조직으로 재일동포들의 교육.경제문제까지를 관장하는 대중단체이고 총련 관계자들은 고향방문, 예술행사 등을 계기로 여러 차례 남을 방문한 바 있다.

범민련이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소속 운운하는 지적 또한 마찬가지이다. 북은 당 우위의 사회로 현재 진행되는 모든 남북대화의 북측 성원은 조선노동당 소속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남북정상회담에 관여한 김용순은 통일전선부 부장이고 남북장관급 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김령성은 통일전선부 부부장이다. 남북대화를 원천 부정하면 모를까 남북대화를 진행하면서 총련, 조선노동당을 거론하며 국가보안법 운운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북은 화해협력, 통일의 동반자로 국가보안법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폐기되더라도 남북의 특수기관이 벌이는 적대행위가 있다면 적절한 규제는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검찰이 덮어놓고 통일운동세력에 대해서만 반국가단체니 대남공작이니 하며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2) 지령, 수수

본인은 북은 물론 해외에도 나간 바 없다. 심지어는 최근 민간급 교류행사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정부는 지금도 범민련, 한총련 소속이라는 이유로 만찬 동석 자체도 불허하고 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서울 시내 한 복판에 사무실을 두고 있고 본인은 사무처장 자격으로 각종 토론회에 참가했다. 통일부도 방문했고 사무실을 찾아온 국정원 직원들도 여러 차례 만났다. 그럼에도 검찰은 본인이 전화를 통해 지령을 수수하고 이 지령에 따라 전화, 이메일 등으로 간첩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범민련이 이적단체라는 이유로 본인의 집, 사무실은 물론 본인의 이메일 등 모든 통신수단을 도청하고 있다. 본인은 물론 박용 부총장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검찰의 주장에 따르면 본인이 본인의 집과 사무실에서 본인 명의로 된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공안기관이 도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지령을 수수하고 간첩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간첩도 있는가? 무언가를 조작하려면 제발 제대로 하기 바란다.

3) 통신연락의 내용

본인은 200번 이상 박용 부총장과 통신 연락했다. 2001~2002년 남북의 민간 단체들은 6.15와 8.15를 계기로 금강산, 평양, 서울 등에서 대규모 통일행사를 개최했다. 수백명이 남북을 오가는 행사이니만큼 교통, 숙박, 신변보장 등 시시콜콜한 행정절차 및 의견조율이 필요했다.

문제는 당시 정부가 한나라당의 눈치를 보며 이런 과정을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다. 본인은 민간급 통일행사에 필요한 행정절차, 의견조율을 기존의 범민련 통신연락선을 활용하여 부분적으로 도와주었다. 200번의 대부분은 행사 참가자들의 신원, 초청장, 신변보장 각서 등이다.

범민련이 아니었으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을 통일행사들도 몇 번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남북의 농민들이 금강산에서 만나고 북측의 대표단이 남에 오기도 했다. 그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도대체 국가안보에 무슨 위협을 주었단 말인가?

검찰은 그 중 2개를 국가기밀로 분류했다. 하나는 2000년 8.15행사와 관련된 성명서 등 1차 자료이고 다른 하나는 2001년 통일연대 결성과 관련된 자료이다. 이들 자료들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본인은 국가보안법을 인정하지 않지만 국가기밀 누설혐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안다. (국가보안법 상 7년 이상의 실형이다.) 터놓고 말하면 간첩행위를 할 의사가 있었다면 그냥 홈페이지에 올려놓으면 되는 것을 공안당국의 표적이 되기 좋게 형식을 갖추어 통신 연락하겠는가?

본인이 간과했던 것은 실제 현실과 국가보안법의 규정 그리고 이를 운영하는 공안기관 재판부의 정서와 철학 사이의 괴리이다. 국가보안법의 특징은 어떤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한 의도를 처벌하는 해괴한 법률이다. 그것도 검찰이 기소하면 죄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는 이상한 법률이다.

국가기밀로서의 가치가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이 그것을 한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월간조선 기사를 보면서 왜 내가 문제가 되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이에 대해서는 후에 자세히 서술하겠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실제 현실과 국가보안법의 괴리에 대해 잠깐 언급하겠다.

본인은 지금 서울 구치소에서 북한 노동당 규약과 헌법은 물론 김정일 위원장의 논문을 보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 자료를 통일부 발간 책자, 연합뉴스 연감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집에 가지고 있으면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심지어는 북에서 출간한 역서적도 이적표현물이고 조국통일3대원칙을 주장하는 것도 위법이다. (1997년 구속 당시 본인은 이것 때문에 유죄판결 받았다)

3. 월간조선 기사에 대해

월간조선 기사는 공안기관의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단언컨대, 월간조선 기사는 본인의 공소장을 보고 쓴 것이 아니라 본인을 연행할 당시 공안기관의 심문기록을 보고 쓴 것이다.

2003년 12월1일 옥인동 보안수사대에 연행될 당시 보안수사대는 본인에 대한 심문 자료를 두 달 전부터 산더미같이 쌓아두고 있었다. 본인이 공동사무국과 통화한 내용이나 금품수수 사실은 피차 감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수사기관과 검찰의 핵심은 결국 통일연대였다.

본인은 2002년 8.15를 계기로 범민련 활동을 그만두었다. 건강이 나빠졌고 조금 다른 방식으로 통일운동을 하고 싶었다. 본인은 지금도 범민련 노선과 활동을 지지한다. 그래서 범민련에 누가 되지 않도록 외부에 알리지 않고 의장님께만 말씀드리고 조용히 그만두었다. 따라서 2002년 8월 이후 박용 부총장과 통신 연락한 바 없다. 그 사실을 공안기관은 몰랐던 것 같다.

공안기관의 수사 초점은 범민련이 통일연대를 장악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과정을 거치면서 통일연대 관련 사항은 대부분 삭제되었다. 검찰 공소장에는 현 통일연대 사무처장이지만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시절의 사실만 들어 있다.

그런데 월간조선 기사의 초점은 범민련이 아니라 통일연대에 맞추어져 있다. 기사에는 “2003.3.14 통일연대 사무처장으로 선임되어 박용과 접촉을 재개했다”, “2003년 11월 1일까지 재일 북한공작원인 박용의 지령에 따라 움직였다”는 등 통일연대와 박용 부총장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런데 위 인용 문구는 검찰공소장은 물론 수사과정에서도 없었던 이야기이다. 본인은 2002년 8월 이후 박용 부총장과 통신 연락한 바 없다. 그런데 2003년 11월1일까지 박용 씨로부터 지령을 받았다는 내용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가? 이남규 씨의 창작이다. 그리고는 정체불명의 A씨의 말을 인용해 “민경우가 통일연대 결성과정을 재일북한 공작원 박용에게 보고했다는 것으로 미뤄 북이 통일연대 결성에 어느 정도 개입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2003년 12월 연행 당시 나는 왜 연행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범민련은 1년 전 일이고 그것도 그만 두었으니 그냥 넘어 가려나 했다. 통일연대 활동 과정에서는 딱히 책잡힐만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월간조선 기사를 보니 이제 이해가 된다.

현재 전국 교도소에 수감되어있는 국가보안법 사범은 다 합쳐서 10명 안팎이다. 그 중 학생을 제외하면 송두율 교수, 민주노동당 강태운 고문, 그리고 본인 등 3명이 그나마 국가보안법 사범으로 분류할 수 있다.

본인의 사건 직후 경찰청은 강태운 고문과 본인 사건에 관여한 보안 수사관들이 승진했다고 들었다. 송두율 교수 사건이 다소 우발적인 것이라면 강태운 고문과 본인은 철저히 기획된 수사이다. 강태운 고문 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월간조선 등을 통해 보았다. 국정원 등이 7년 동안 내사한 결과 민노당 회의 자료를 재일교포 누군가에 넘겨주었다는 대충 그런 내용이다. 간첩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엉성하고 허술하다. 강 고문과 본인은 몇 가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첫째, 강 고문 7년, 본인의 경우 4년 정도의 장기간에 걸친 내사. 둘째, 민주노동당과 통일연대 등 재야 중 공안기관이 정치적 타격을 주고 싶은 단체 소속. 셋째, 북 또는 반국가단체 성원과 적당한 연관. 넷째, 간첩이라고 하기에는 별 신통한 내용이 없음.

결국 경찰청은 장기간 내사 끝에 별 신통한 내용이 없다고 판단하자 그냥 접어두기는 그러하니 2003년 하반기 송두율 교수 사건으로 공안정국이 조성된 김에 사건을 터뜨린 것이다. 그리고 월간조선은 본인의 공소장은 제대로 읽지도 않고 공안기관이 본인을 연행할 때 짜놓은 시나리오에 약간의 창작물까지 더해 엄청난 간첩사건인 것처럼 부풀린 것이다.

본인은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고 주한미군이 철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교 다닐 때부터 북의 통일정책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그 중 일부에 대해서는 지지한다. 본인은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갈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공안기관은 한술 더 떠 본인에게「간첩」어쩌고 하는 붉은 딱지를 붙여 놓았다. 나는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랐고 학생시절에는 전두환 정권에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었고 조국을 통일하는 것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가 할일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아울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서도 나름의 애정을 갖고 있다. 그것이 내가 간첩이 되어야 하는 이유인가? 공안기관, 재판부, 국가보안법 제발 적당히 해라. 사건을 만들려거든 앞뒤는 맞게 만들기 바란다.

4. 몇 가지 사실관계

1) 금품수수

본인은 박용 부총장으로부터 총 3천 300만원 정도를 받았다. 지난 3년 동안 T셔츠, 노래테이프, 만년필, 책자 등을 보내고 이 돈을 받았다. 공동사무국에서는 이를 일본에서 진행하는 통일행사의 기념품 등으로 사용했고 일부는 범민련 북측본부에도 전달되었다.

남측본부에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그냥 보낼 수도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돈이 없었다. 그래서 제작실비와 운송료 명목으로 받았다. 월간조선에서 지적한 공작금 운운하는 것은 가소로운 주장이다. 검찰에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명색이 언론기관이면 언론기관답게 최소한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바란다.

2) 임동원 장관 해임 문제

2001년 9월 3일 본인은 박용 부총장과 다른 일로 전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TV속보에 임동원 장관 해임소식이 나오길래 대화한 것뿐이다. 박 총장이 근무하는 곳은 일본 신주꾸의 번화가이다. 임동원 장관의 해임소식은 일본 TV에서도 생중계되었다. 본인이 이런 사실을 보고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5. 기타 참고사항

작년 12월 한나라당 정재문 의원은 해외에 나가 안경호(범민련 북측본부 의장이면서 조평통 서기국장이고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다) 씨를 만나 2002년 대선에 관한 대화를 나눈 혐의로 남북교류협력법으로 불구속 기소되어 벌금 1천만원이 선고되었다.

추정컨대 정재문 의원이 나누었을 대화는 본인의 대화보다 국가기밀로서의 가치가 높을 것이다. 그리고 정 의원은 해외에 나가 회합 목적과 다른 대화를 본인보다 훨씬 고위급 인사와 나누었다. 그런데 정재문 의원은 불구속 상태에서 남북교류협력법으로 재판하고 본인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 재판받아야 하는가?

본인은 검찰, 재판부에서 누누이 이 사실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답변조차 듣지 못했다. 답변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국가보안법은 이미 법률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재판부나 검찰이 제 멋대로 판결할 수 있는 법, 그것은 이미 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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