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 신 행정부 출범 이후 양국 간에 처음으로 향후 대북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졌으나 정작 당사자인 북한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특히 미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갖고 있고 이에 기초해 대북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방침이 드러남으로써 북측의 반응이 관심을 끌고 있지만 아직까지 침묵만을 지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사실 북한이 이제까지 보여 온 대미 외교 자세를 놓고 볼 때 이런 침묵은 예상 밖이 아니다. 북한은 과거에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적이 드물었고 며칠 지난 뒤에 입장을 표명하거나 아예 묵살하다가 실제 행동으로 대답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의 경우, 북한으로서는 회담 개최 전에 이미 입장을 표명한 셈이어서 특별히 덧붙일 말도 없는 것 같다. 지난달 21일 외무성 대변인이 `미국의 그 어떤 대(對)조선정책에도 준비돼 있다`는 요지로 발표한 담화에는 북한의 대미정책 방향이 포괄적으로 담겨 있다. 정상회담을 약 2주 가량 앞두고 나온 이  담화는 시점은 뒤바뀌었지만 사실상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반응으로 봐도 무방하다.

담화의 요지는 한 마디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과거 합의사항을 지키면 북한도 지킬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북측도 `제 갈 길로 가겠다`는 대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북.미 2대 현안인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북측 입장도 담화에 다 담겨 있다. 핵문제는 제네바 기본합의문 준수를 통해, 미사일 문제는 향후 협상을 통해 풀어나가자는 것이다.

북측은 이미 이 담화에서 미측의 `힘의 논리`에 의한 대북 강압정책이 공식화될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북측 대응조치를 언급했다.

담화는 미측에서 거론되고 있는 `힘의 논리`가 `미국의 침략적이고 강도적인 본성을 또다시 드러내놓은 것으로써 우리를 각성하게 만들고 있다`며 `만약 이것이 우리에 대한 미국 새 행정부의 정식 입장으로 된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이 그 어떤 `조건부`와 `단계적인 접근`을 운운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관계개선도 하고 자기들이 할 바도 하겠다는 것`이라면서 `본질에 있어서 우리가 먼저 완전무장해제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가 그것을 접수하리라고 생각한다면 너무도 어리석은 것`이라고 일축했다.

제네바 기본합의문 이행에 대해서는 `미국은 우리가 계속 기다리기만 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라고 했고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조치에 대해서는 `조.미 사이에 어떤 합의도 없는 것만큼 이제 우리는 이전  행정부 시기에 내놓은 미사일 문제와 관련한 우리의 제안에 구태여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에게만 `먼저 움직이라`고 요구할 경우, 제네바 합의문에 따라 지금까지 동결해 온 `전기생산용 핵시설`을 재가동하고 `인공위성 재발사`를 통한 장거리 미사일시험발사를 재개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북측의 이같은 경고를 `위협용`, `엄포용`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북한의 대미 기본인식, 북.미 사이에 발생했던 과거 일들로 볼 때 `엄포용`으로 치부하기만은 어렵다는 일부 견해도 일리가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 미국의 `힘의 우위`에 기초한 대북정책을 인정하거나 또 여기에 굴복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미제와의  총성없는 전쟁`을 네 차례나 치렀으며 모두 승리했다고 한껏 자랑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68년 1월 푸에블로호 정보수집함납치, 69년 4월 EC-121정찰기 격추, 76년 8.18 판문점 미군 피살 사건, 90년대 초반 핵문제 등으로 북.미 간에 전쟁 일보직전의 긴박한 상황이 조성됐지만 결국 협상으로 문제가 해결된 전례들이 있다.

북한은 이번에도 부시 행정부의 대북압박정책이 `침략적이고 강도적인 미국의 본성`을 다시금 드러냈을 뿐이라며 어떤 상황에도 대비책이 마련돼 있다고 호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일용기자 200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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