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주(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헌법개정안의 제출과 통과

2004년 3월 5일부터 14일까지 베이징(北京)에서는 우리의 정기국회에 해당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 제10기 제2차 전체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문제는 헌법개정 문제였다.

물론 이번 대회에서 내내 강조된 농촌문제의 해결과 빈부격차의 해소 등의 문제도 중국의 발전지상주의 노선이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를 낳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헌법개정은 시장경제와 전면적인 대외개방에 나선 중국이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국가운영의 기본 원칙을 새로 정립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어떤 이슈보다도 더욱 많은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이번 헌법개정 문제는 작년 하반기부터 공식적으로 의사일정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2003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6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는 헌법개정안을 의결하였으며, 2003년 12월 26일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이 안을 심의하여 이번 전인대에 상정할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중국의 현재 헌법은 1982년 새로 제정된 것이다. 중국은 1976년 마오저둥(毛澤東)의 사망과 함께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후 개혁개방정책의 안정적 추진을 보장하고 국가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기존 헌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정치, 경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반영하여 이미 세 차례의 헌법개정이 있었으며 이번 개정은 1982년 헌법에 대한 4차 개정이다.

따라서 사실 중국에서 헌법개정이 특별히 새로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헌법개정은 기존의 다른 경우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우선 2002년 11월 중국공산당의 신임 총서기로 취임한 후진타오(胡錦濤)가 같은 해 12월 1982년 헌법제정 20주년을 기념하는 회의에서 모든 인민과 국가기관, 정당, 사회단체는 헌법을 활동준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당의 영도를 강조하는 중국의 정치체제에서 당의 최고지도자가 헌법의 역할을 이처럼 강조한 것은 매우 보기 드문 현상이다. 후진타오의 발언은 그가 헌법을 앞세워 쟝저민(江澤民) 등 원로세력의 비공식적 영향력 행사를 차단하고 자신의 정치기반을 강화하려고 한다는 추측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양적인 측면에서도 1988년에는 2곳, 1993년에는 13곳, 1999년에는 6곳의 수정이 있었으나 이번 개정안은 14곳 2000여자가 수정되었다.

그러나 권력 갈등 혹은 양적인 측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헌법개정이 중국 사회주의 체제의 질적인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지난 20여년 동안 진행된 시장경제로의 전환과 대외개방의 확대는 중국의 사회주의 이념과 정치, 사회 제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는데 이번 헌법개정은 이러한 영향을 수용하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라는 점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면적인 샤오캉(小康)사회 건설' 과 중국의 현대화

이번 헌법개정은 2002년 11월 향후 20년 동안 중국의 전략적 목표로 제시된 '전면적인 샤오캉사회 건설'을 보장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취지로 제시하고 있다. 예기 등 중국 고전에 나오는 '샤오캉'이라는 표현은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현대 중국의 국가발전목표와 연결되었다.

1987년 덩샤오핑은 1980년대에 국민총생산을 두 배 증가시켜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원바오(溫飽)' 단계에 이르고, 1990년대에 국민총생산을 다시 두 배 증가시켜 샤오캉에 이르며, 다음 30년에서 50년 동안 다시 총생산의 4배 증가를 실현시켜 발달국가에 가까운 수준에 도달한다는 '삼단계 발전전략'을 제시하였다. 개혁개방정책은 100년 동안 동요 없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덩샤오핑의 발언은 괜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 발전전략의 근거한 것이었다.

중국은 20여년 동안 연평균 10% 정도의 고도성장을 유지하며 앞의 두 단계의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경제발전 수준이 여전히 낮으며, 그 발전도 매우 불균형하게 진행된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중국은 2002년에야 1인당 GDP가 1,000불 수준에 도달하였는데 이는 세계에서 100권 밖의 수준이다. 그리고 시장화 개혁 과정에서 경제적 불평등도 확대되었는데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는 3:1을 넘어섰으며 계층 간의 소득격차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도 40을 넘어 남미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따라서 중국은 앞으로 20년 동안 경제성장과 함께 새롭게 등장한 경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여 이후 더욱 높은 수준의 발전을 보장하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국가의 기본목표로 제시하였고, 이를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 건설이라는 구호로 요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구호는 의식주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소박한 의미의 샤오캉을 뛰어넘는 야심에 찬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전면적인 소강사회 건설을 위해 2020년까지 GDP 네 배 증가와 1인당 GDP 3,000 달러 돌파라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연평균 8%대의 성장을 유지하여 하는데, 이는 10억이 넘는 인구가 약 40년 동안 8% 대의 고도성장을 지속하는 인류 경제사상 유례가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임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환경친화적인 발전, 현대적 교육체제의 건설, 사회보장제도의 건설, 도농격차 등 지역간 격차의 해소, 법에 따른 국가통치(依法治國)의 실현 등의 목표를 제시하여 국력의 총체적 강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즉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란 경제성장에 기초하여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현대화된 국가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과제는 단순한 경제성장이라는 목표에 비해서는 더욱 복잡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만큼 해결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헌법개정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몇 가지 기본 방향을 제시하였다.

세 개의 대표론과 중국식 사회주의의 등장

또한 이번 헌법개정은 이미 당의 지도이념 중 하나로 이전된 소위 '세 개의 대표론'을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격상시켰다.

중국에서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 건설을 위해서는 앞으로 20여년 동안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국지도부는 이를 위해서 계속 경제효율을 높여야 하며, 시장화와 개방화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기본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국 사회주의 체제의 새로운 딜레마가 발생하고 있다. 즉 앞으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사회주의 체제의 경제기초라고 할 수 있는 국유기업 등의 역할보다 비사회주의적 경제성분이라고 할 수 있는 외자 및 사영 기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2002년 통계에 따르면 국유기업의 공업생산액은 전년에 비해 10.7% 성장하였으나, 사영 및 외자기업의 공업생산액은 약 17% 성장하였다. 그리고 1992-2001년 사이 국유기업의 근로자 수가 약 3,200만 명이 감소한 것에 반해 사영기업에 고용된 근로자 수는 약 2,500만 명이 증가하였다. 즉 향후 20년 동안 도시에서 2억이 넘는 새로운 노동력이 공급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 이 문제 해결의 열쇠를 사영경제가 쥐고 있는 상황이다.

전통적인 사회주의론에 따르면 사영기업가는 착취계급이며, 소멸의 대상이나 이제 사영기업이 경제발전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공산당의 이들에 대한 태도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중국공산당은 2000년부터 소위 '세 개의 대표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는 중국공산당은 선진생산력, 선진문화, 가장 폭넓은 인민들의 이익을 대표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 중 마지막 항이 중국공산당은 노동계급의 선봉대라는 전통적인 해석으로부터 벗어난 것으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 논쟁은 2002년 중국공산당 16차 당대회에서 사영기업가도 입당할 수 있다는 규정을 담은 당장이 통과되고, 세 개의 대표론이 당의 지도이념으로 채택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중국공산당은 혁명당보다는 집권당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엘리트 세력을, 발전하는 사영기업가의 입당을 승인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 헌법개정을 통해 '세 개의 대표론'을 국가의 지도이념으로 채택하고자 하고 있다.

전통적 사회주의론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변화는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이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150년 전의 마르크스 이론을 교조적으로 적용해서는 현대 중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시대와 함께 나아간다(與時俱進)'를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원칙으로 강조하는 것을 통해 사회주의의 기치와 새로운 변화 사이의 모순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전통적인 사회주의 해석과 결별하고 과거의 사회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중국식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길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분명해지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사유재산을 인정하다.

사유재산 보호 문제는 이번 헌법개정과 관련하여 오래 전부터 가장 많은 관심을 끈 구체적인 쟁점이다. 중국에서는 사유재산이 이미 광범하게 인정되고 있으며 기존 헌법에서도 개인의 다양한 소유권을 보호하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계급착취를 없애고 '공동부유'를 최종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사적 소유를 침해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샤오량(曉亮)과 같은 원로학자는 이미 1999년 헌법개정으로 앞두고 공개적으로 헌법에 '사유재산 신성불가침'이라는 조항을 삽입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주장은 당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이번 헌법개정안에서는 "공민의 합법적인 사유재산은 침해받지 않는다"라는 규정을 삽입하게 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개정안은 '사유재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유재산의 범위도 소득, 저축, 주택에 대한 소유권만이 아니라, '생산자료'까지 포함하여 기업가들의 합법성을 더욱 분명하게 인정하였다.

중국공산당은 지금도 국유기업의 주도적 작용, 노동에 따른 분배 등을 사회주의적 경제제도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러한 주장이 더 이상 신흥 자본가와 새로운 부의 축적 방식의 등장을 막지 못할 것이다.

다만 사유재산 앞에 굳이 '합법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것은 사유재산에 대한 침해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 최근 반부패투쟁이 대대적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당과 정부의 고위 관료는 물론이고 신흥자본가들도 그 주요 타켓이 되고 있다.

2002년 중국의 100대 부호 중 2위인 양롱이 조사 중 해외로 도피하였으며 3위인 양빈은 구속된 후 재판을 통해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사건 이후에는 포보스가 선정하는 100대 부호에 들어가지 않기 위하여 로비를 한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신흥부호들의 두려움은 적지 않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서 부의 축적 과정이 매우 불투명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러한 상황의 출현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즉 중국에서 개인재산권에 대한 인정이 규범화되기 위해서는 아직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인권보호에서 정치적 자유화로?

새로운 헌법에 "국가는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한다"라는 조항이 삽입될 것이라는 점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논쟁이 진행되었던 앞의 문제들에 비해서 예상 밖의 내용이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중국은 인권이라는 개념에 대해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약화시키기 위한 서방세계의 정치적 도구라는 이유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개혁개방 이후 국제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인권개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일부 주요 국제인권체제에 가입하기도 하였으나 대내적으로 인권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헌법개정안에 인권보호조항이 삽입된 것은 새 지도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 당총서기와 원지아바오(溫家寶) 총리는 집권 이후 "사람을 근본으로 한다(以人爲本)"는 구호를 내세우며 인민 중시의 사업작풍을 강조하였다. 과거 지도자들의 현지 시찰은 연해의 발달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이들은 빈곤지역에 대한 시찰을 증가시키며 시장화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였다. 이에 따라 최근 뉴욕타임즈도 이들의 사업 작풍이 귄위주의적이었던 과거 최고지도자와는 달리 '친민(親民)'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는 새 지도부가 혁명적 권위에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대중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시장화 개혁 속에서 8억에 가까운 농촌인구 중 대다수가 소외계층으로 전락하고 있고 도시에서 실업 증가로 저소득층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권익 보호는 매우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 헌법개정안에서 인권에 대한 강조는 서구식 개인주의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인민들의 권익과 사회정의 문제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헌법개정안도 여전히 '네 개의 원칙(중국은 사회주의의 길, 마르크스레닌주의, 인민민주독재, 중국공산당의 영도를 견지하여야 한다)'을 국가와 당의 기본 노선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적인 차원에서 인권 문제가 강조된 것은 주관적인 의지가 어떤 것인가와 관계없이 중국에서 개인적 자유에 대한 관심과 주장이 증가시키는 계기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남은 문제

이번 헌법개정안은 중국공산당이 경제발전과 종합국력의 상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이제 자신의 이념적 기초와 제도적 기초를 스스로 개혁하는 길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중국인들의 유연하고 실용적인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으며 중국은 이념체제, 정치제도 등 모든 면에서 더욱 빠른 속도로 변해갈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러한 노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단언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도 위의 개혁들의 결과로 출현할 개인 및 사회들의 경제, 정치적 권리 강화와 계층 간의 이해 충돌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의 형성은 필연적으로 현재 중국공상당의 일당우위체제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