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27일 폐막될 것으로 예상됐던 2차 6자회담이 27일 오전 참가국 대표단의 회담기간 연장 결정에 따라, 최소한 28일까지 열리게 됐다. 이에 한국민권연구소 장창준 연구위원이 6자회담의 '중간결산'을 보내왔다. 이 기고문은 필자의 요청에 따라 자주민보(www.jajuminbo.net)와 동시에 게재한다. - 편집자 주


장창준(한국민권연구소 연구위원)


2차 6자회담이 진행중이다. 북한에서는 연일 '유연하고 신축성 있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해지고, 미국의 태도 또한 '안전보장'을 언급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이번 6자회담은 무언가 핵문제 해결의 청신호가 마련되지 않겠는가 하는 낙관론이 지배하고 있는 듯 하다.

2차 6자회담의 결과가 나오기에 앞서 이번 회담의 성사 배경과 주요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의 입장을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듯 하다. 그것을 통해 섣부른 감은 없지 않으나, 2차 6자회담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1. 1차 6자회담 평가와 2차 6자회담의 배경

한국민권연구소에서는 1차 6자회담을 북한이 정치도덕적으로 승리하였고, 외교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http://www.615.or.kr/minkwonyun/jungse59 참조).

북한은 당시 회담에서 "핵무기 보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우리의 총적 목표"라며 이를 위한 4단계 동시행동방안을 제시하는 등 문제해결의 적극성과 합리성을 보여주었던 반면 미국은 북이 핵무기를 먼저 포기해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고 "재래식 무기, 테러, 인권, 납치, 마약 문제" 등을 협상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문제해결의 자세라기보다는 대북 적대적 발언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1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정치도덕적으로 승리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또다른 이유는 '핵 억제력 강화'라는 명분을 확보한 것이다. 1차 6자회담 때 전체회의가 끝난 후 40분간 진행되었던 북-미 양자접촉에서 북한의 외무성 김영일 부상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다"며 '핵보유 선언 및 핵실험'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북한에서는 '핵 억제력 강화'의 길로 나아갔고 결국 1월 초에 미국의 민간인 대표단에게 '핵 억제력'을 공개하였다. 1월 초의 핵 억제력 공개는 설령 북한이 핵무기 보유는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핵무기 보유는 '북한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이러한 행보를 보고 애써 태연한 척 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다급한 처지가 되었다.

북한의 핵억제력 보유는 미국으로서 인정할 수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사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미국은 어떻게든 그것을 없애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대량살상무기 비확산·반확산'이라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 중 하나를 방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두 가지이다. 이라크의 사례처럼 군사력을 동원하거나 1994년의 경우처럼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고 그것을 동결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행동도 할 수 없는 것이 미국의 처지이다. 군사행동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북한의 요구를 무작정 수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의 '핵억제력 강화'를 인정하지 않고 마냥 방치한다면 북한은 공식적인 핵무기 보유국이 된다. 그것은 '대량살상무기 비확산·반확산'이라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 중 하나가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부시로서는 가장 커다란 오점일 수밖에 없으며, 이번 대통령 선거의 가장 커다란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의 외무성 김계관 부상이 1월 초에 평양을 방문한 미국의 민간대표단에게 "시간은 미국 편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핵억제력이 양적, 질적으로 증대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발언을 한 것도 이같은 미국의 처지를 이용한 압박공세였던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헤어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비록 1월 초에 핵억제력은 공개되었지만 미국의 딜레마는 작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이미 작년 초에 핵억제력 강화를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작년 10월에는 "때가 되면 실물로 공개하겠다"고 공표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 꺼내든 카드가 바로 '안전보장' 카드였다. 역시 작년 10월의 일이다. 즉 '안전보장'이라는 미끼로 북한의 핵억제력 강화를 중단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을 잘 알고 있는 북한이 이러한 미끼에 속을 리가 없다. 오히려 역공세를 펴게 된다. 안전보장이라는 추상적인 문구가 아닌 '테러지원국 해제, 제재와 봉쇄의 철회, 에너지 지원'을 약속하면 핵동결 의사를 표명하겠다는 것이다. '안전보장' 미끼를 역이용하여 '핵동결' 미끼로 대응한 것이다.

'안전보장' 미끼 외에 미국이 또 하나 꺼내 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고농축 우라늄(HEU) 문제'였다. 마치 대단한 투지에 넘쳐 북한에 대한 공세를 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이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꺼내 든 것은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왜 궁여지책에 불과한가? 2002년 미국이 핵문제를 제기했던 것이 바로 '고농축 우라늄 문제'였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듯이 2003년을 거치면서 '고농축 우라늄 문제'는 쏙 빠지고 말았다. 북한에서 공식화한 '핵억제력 강화'는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플루토늄'을 이용한 것이다. 1994년 동결시켰던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폐연료봉을 재처리한 것이다.

미국이 애초에 제기한 '고농축 우라늄'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리고 '플루토늄 문제'가 부활한 것이다. 그리고 그를 통한 핵억제력 공개 단계까지 와버린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그 수습이 바로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재거론하는 것이었다. 플루토늄 문제에서 우라늄 문제로의 전환국면을 시도하고 있다. 즉 플루토늄 문제는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으면서 -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미국은 딜레마에 빠져있기 때문에 -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환기시켜 북한에 대한 국제적 고립을 다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은 6자회담에 응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된 것이며, 반면 북한은 여유를 갖고 보다 적극적이며, 또한 보다 유연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자회담을 준비해 왔던 것이다.

2. 북한의 회담입장 : 준비된 자로서의 적극적이면서도 유연한 입장

북한의 입장은 한마디로 문제 해결에 있어서 '적극성과 유연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적극성과 유연성을 확인하기에 앞서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북한에서는 이번 6자회담에 대한 모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나서 회담에 임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준비성은 적극성의 발로이기도 하면서 유연성의 이유이기도 하다.

1월 5일자 북한의 '노동신문'은 ''말대 말' 공약, 첫 단계 행동조치가 합의되도록 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지금이야말로 6자회담 재개준비를 잘 해야 할 때"라고 언급하였다. 6자회담 재개 준비사업은 "'말대 말' 공약과 함께 첫 단계의 행동조치가 합의되도록 하는 데로 지향시켜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첫 단계의 행동조치는 우리 나라가 핵활동을 전면적으로 동결하는 대신 미국과 주변나라들은 그에 대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며, "이것이 6자회담 과정을 이어나가기 위한 기본출발점이며 핵심사항"이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정리하여 북한이 핵활동을 동결하면 미국과 주변나라들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이른바 '동결 대 보상'의 요구를 내걸고 그것이 합의되도록 하는 것을 6자회담 준비로 규정한 것이다. 이때부터 북한은 6자회담을 다방면적으로 '준비'한다.

'준비'의 첫 단계는 미국을 극심한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우선 바로 다음날 평양을 방문한 미국의 민간대표단에게 '핵억제력을 실물로 공개'한다. 북한의 핵억제력 강화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추진되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플루토늄 문제가 부활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서 1월 12일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핵문제 해결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재천명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대해 "미국이 우리 말귀를 그렇게도 알아들을 수 없다면 다시 한번 명백히 하고자 한다. 부시행정부가 일괄타결안에 따르는 동시행동으로 핵문제를 해결할 진정한 의사가 있고 그 첫 단계 조치로 '동결 대 보상'에 합의할 용의가 있다면 우리도 비핵화를 위한 출발점으로서 흑연감속로에 의한 핵활동을 동결할 용의가 있다"고 답변했다.

이 답변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이 대응해 나서기만 한다면 핵동결 의사가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며, 핵동결 대상은 흑연감속로에 의한 핵활동 즉 플루토늄 문제를 다시 동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대표단에게 핵억제력을 보여주고 플루토늄 문제를 동결할 수 있다는 북한의 발언은,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미국을 극심한 혼란과 딜레마에 빠뜨리게 하였다.

'준비'의 두 번째 단계는 6자회담의 참가국인 중국과 한국, 일본과의 개별적 회담을 전개한 것이다. 북한이 제일 먼저 '민족공조'의 대상인 한국을 만났다. 2월 3일부터 시작된 13차 남북장관급회담이 그것이다. 북측은 이때 과거 장관급회담과는 다르게 6자회담을 먼저 거론하며 핵문제 해결에서 남북 협력을 강조했다.

한편, 장관급회담이 끝나자마자 북한의 김계관 부상은 '중국측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핵문제 해결을 위한 동시일괄타결안과 그에 따르는 첫 단계조치"로서 북한이 제기한 "'동결 대 보상' 제안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다음번 6차회담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룩하기 위해 공동으로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6자회담에서 북.중 공동협력을 합의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일본과 고위급 회담을 진행하였다. 이 회담은 2월 11부터 14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다.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를 거론하겠다는 일본의 입장이 회담 자체를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한 북한은 일본과의 개별 회담을 통해 '납치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것은 북한의 '6자회담 준비'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북일 고위급 회담의 결과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6자회담에서 일본의 '납치문제' 거론이 회담의 걸림돌이 되지 않은 것은 북한의 이같은 '준비'의 결과였던 것이다.

'준비'의 마지막 단계에서 북한의 화살은 다시 미국을 향한다. 2월 2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의 핵위협이 나날이 가증(증가)되고 침략전쟁의 위험성이 현실화된 조건에서 우리는 비상한 각오로 흑연감속로에 의한 핵동력공업의 용도를 변경시키게 되었으며 오늘은 자위적인 핵억제력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논평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핵억제력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은 2월 23일 조선신보에서도 확인된다. 조선신보는 "조선(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이 나날이 가중되고 전쟁의 위험성이 현실화된 조건에서 흑연감속로에 의한 핵동력공업의 용도를 변경시켰으며 플루토니움(플루토늄)에 의한 자위적 핵억제력을 이미 보유하게 되였다"며 미국이 이번 회담에서도 '선핵포기'를 고집한다면 "또 하나의 승부수" 즉 "핵억제력을 실물로 보여주는 다음 단계의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하였다.

과거의 '핵억제력 강화'라는 표현이 6자회담을 앞두고 '핵억제력 보유'로 바뀐 것이다. 북한의 회담 준비는 회담에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 뿐 아니라 '핵억제력의 보유'도 포함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북한은 6자회담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게 된다.

이제 이러한 준비의 결과로서 나타난 북한의 적극성과 유연성을 살펴보자. 왕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23일 "북한이 우라늄 농축계획을 포함한 핵의 완전한 폐기에 대해 서약할 용의가 있으며 그 전제로 핵 활동을 일절 동결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이는 '핵의 완전한 폐기를 전제로 하는 핵동결'로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북한 김계관 부상은 6자회담에 앞서 "1차 6자회담에선 회담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으나, 지금은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계절"이라고 하였다. 6자회담의 실질적인 진전을 원하고 있다는 강조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회담직전의 "회담 주변 여건이 1차 6자회담 때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발언도 이같은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24일 남북 사이의 사전회담이 진행되었는데, 북측은 남측의 '고농축 우라늄' 문제 제기에 이해를 표명하기도 하였다. 또 하나의 특기할 사항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직접 접촉을 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교도통신 24일자 보도에 의하면 오스트리아 주재 북한 외교관이 2차 6자회담을 앞두고 IAEA 당국자와의 직접 접촉을 통해 영변 핵시설의 사찰 재개 등과 관련한 비공식 협의를 했다고 한다.

이는 2002년 12월 북한이 IAEA 사찰단을 추방한 이후 최초의 접촉인 만큼 북한의 해결 의지가 그만큼 적극적이라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며, 6자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를 대비한 사적 포석의 의미도 갖는다고 하겠다.

북한의 적극적이면서도 유연한 입장은 회담 기간에도 계속되었다. 러시아 로슈코프 수석대표에 의하면 북한은 첫날 6자회담에서 "북한은 고농축우라늄 문제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뜻이 있음을 나타냈다"고 한다.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인정하진 않겠지만 논의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둘째 날 회담에서 핵활동 중단을 제안했다고 한다.

아직 회담이 끝나지 않은 관계로 북한의 적극적이며 유연한 태도를 미국이 받아들일지 여부는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회담 준비 과정과 회담 진행 과정에서 보여준 북한의 입장은 핵문제를 풀기 위한 가장 적극적이면서도 가장 유연한 태도를 견지했다는 것이다.

3. 미국의 입장 : 궁지에 몰린 자로서의 회피적 입장

반면 미국은 이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갈수록 수세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내에서 부시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과 회의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의 래리 닉시가 2004년 1월 14일 '자유아시아방송'과 진행한 회견에서 "6자회담의 현실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선전전술에 밀려 수세에 밀리는 형국이 되고 있다"고 발언한 것이나, 1월 초에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잭 프리처드가 1월 21일자 뉴욕타임스의 기고문을 통해 "미국의 정보계는 폐연료봉들이 (재처리되지 않고) 대부분 수조에 남아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으며, 정책 입안자들에게 시간은 미국 편이라는 그릇된 인식만 심어주었다"고 비판한 후 부시에게 핵위기를 조속히 평화적이며 외교적으로 해결하라고 촉구한 것도 이런 분위기의 반영이다.

현재 미국은 북한에게 세 가지 요구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핵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폐기',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의 폐기', '리비아식의 핵포기'가 그것이다. 사실 이것은 말이 다를 뿐이지 똑같은 의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안전보장'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같은 태도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미국의 대북 적대적 입장이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안전보장 제공'이라는 발언을 두고 적대정책의 철회가 아닌가 하는 환상을 갖고 있지만 '안전보장'은 대단히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하다.

미국의 안전보장 제공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적대행위의 중지 즉 테러지원국의 해제, 봉쇄와 제재의 철회, 에너지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이것은 바로 북한의 요구이기도 하기 때문에, 안전보장 제공이라는 미국의 발언이 신빙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같은 조치가 동시에 취해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여전히 미국은 북한의 '선핵포기'만을 강조하면서 적대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이 현상유지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글에서 밝혔던 것처럼 부시로서는 한반도 핵문제가 대선까지 현상유지돼야 한다. 그것도 핵위기 상황이 악화되지도 않고, 해결되지도 않는 지금 상태 그대로의 현상유지이다. 북한의 핵억제력이 강화되는 상황악화도 원치 않고 있으며, 핵문제의 해결도 원치 않는다. 그러한 입장에서 미국은 현재 플루토늄 문제는 애써 외면하면서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거론하며 '리비아식 핵포기'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끌면서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의 입장은 이번 6자회담에서도 확인되었다. 앞에서 서술했던 것처럼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도 논의할 수 있으며, 핵동결 의사가 있다"는 입장까지 표명하였지만 여전히 미국은 '선핵포기'만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제안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한편, 이번 6자회담 사흘째인 27일 미국이 "북한의 양보가 없을 시에 회담을 종료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은 북한의 양보를 이끌어 내기 위한 엄포에 불과했다. 결국 회담은 연장되었고, 미국은 자신이 먼저 6자회담을 파탄냈을 때의 후과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27일까지 예정되었던 회담이 연장되어 28일에도 6자회담이 지속된다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하루 혹은 이틀간의 추가 회담속에서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6자회담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며, 핵위기의 해결이냐 파국이냐 하는 것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4. 결론 : 시간은 미국편이 아니다

6자회담은 진행중이다. 28일 혹은 하루 더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며 6자회담을 파국으로 몰고 갈지 아니면 이제라도 기존의 주장을 버리고 북한의 적극적이며 유연한 입장에 화답해 나서느냐 하는 것이 2차 6자회담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이것은 또한 시간은 미국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이 인식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의 태도 변화에 주목하며 6자회담을 지켜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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