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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쟁터'엔 이념도 사상도 없었다<영화평> '태극기 휘날리며'
이현정 기자  |  hj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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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4.02.18  1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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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이 남북 친선경기에 폭탄을 설치한다는 매우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설정으로 반공이념을 극대화 시켰던 영화 '쉬리'의 감독 강제규가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다소 누그러진 어조로 남과 북을 얘기하고 있다.

 

이 영화는 이념이 가장 첨예하게 충돌하는 한국전쟁터를 공간으로 삼고 있지만 전쟁의 원인이 무엇인지, 남과 북, 이를 둘러싼 열강들의 속내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하등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로지 얼떨결에(혹은 강요받은) 한국전쟁에 참가한 진태의 '병적인' 가족애와 '원인모를'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얘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진태와 진석형제는 종로거리에서 전쟁발발 소식을 듣는다. 감독은 전쟁의 시작을 "전쟁이 났데" 이 단 한마디와 불안하게 술렁거리는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간단하게 처리해버린다. 덧붙이는 설명 따윈 없다. 이 영화에서 전쟁은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돌풍'일 뿐이며 당장  그 날 보따리를 꾸려 내몰리듯 피난에 나서야 하는 '두려운 것'일 뿐이다.

피난길에 강제 징병된 이들 형제가 끌려간 전쟁터도 전쟁에 대한 물음에 명확하게 답해주진 못한다. 군인들은 "동포끼리 총을 겨누는 전쟁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국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지만 이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야 되'라는 생존의지와 맞물려 적(곧 인민군)에 대한 적개심으로 돌변해버린다.

살아남기 위해 이들은 무참히 살육을 벌인다. '왜'라는 개인의 물음이 통용되지 않는 국가이데올로기는 전쟁을 통해 이들 안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일깨우고 동생 진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구두닦이를 하는 진태의 동생을 향한 '부성애'는 국가이데올로기와 매우 흡사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로 돌변하여 그를 서서히 광기로 몰고 간다.

훈장을 따 동생을 집으로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신들린 사람 마냥 인민군에게 총질할 때 이미 '부성애' 단계를 벗어났으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임무감은 하나의 억압기제로 작용하여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켰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국군, 인민군 가릴 것 없이 죽이는 그는 일말의 동포애, 사상, 이념도 없이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살인병기로 돌변할 수 있는 '광기어린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응집체이며 전쟁과 가부장제의 이중 피해자일 뿐이다.  

필자는 "'애비 부재의 시대' 를 겪고 있는 아버지 관객들이 한국영화 사상 최고.최대급 스펙터클이 흘러간 시대의 진짜 애비를 찾아주는 듯한 부권 회복의 메시지를 보여주자 감격해마지 않았다"는 이 영화에 대한 경향신문의 평을 읽고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1950년  뿐만 아니라 200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부장제 망령은 여전히 건재하지 않은가.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광기'가 있었다

북을 바라보는 강제규 감독의 시선이 한결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영화 곳곳에는 반공이데올로기가 복병처럼 매복해있다. 인민군이 지나간 자리에는 꼭 양민학살 흔적이 남아있으며 진태가 지휘하는 '인민군 깃발부대'는 마치 살인귀를 연상시킨다. 동생마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이미 광기의 노예가 되어버린 진태와 깃발부대 인민군은 섬뜻하게도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훈장을 받고 드디어 동생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게 된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공격해와 진태의 꿈을 일순간 무너뜨린 인민군에게 관객들은 묘한 적개심마저 느끼게 된다.

강제규 감독은 영화 곳곳에서 너무나 직설적이게(촌스러울 정도로) 동포애를 강조하고 있으나 정작 인민군을 표현할 때는 '정복해야 할 대상', '속 다르고 겉 다른 파렴치 범'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쉬리'에 비해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고는 하지만 그닥 달라진 것 없는 시각이 실망스럽다.

다만,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전쟁의 참혹성을 새삼 느꼈다는 지인들의 말을 전해들으며 이 영화가 반전평화 물결에 일말의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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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5)
김하늘 () 2004-02-19 15:18:00


그 뿐만 아니라,태극...는 엄청난 제작비를 들였다 함에도 인원동원에만

신경 썼는지 당시의 복장이나 계급장은 전혀 사실과 다른 것 같다.

특히,평양 시가전 장면을 보면 이미 미군의 살인마적 폭격으로(40만시민의

머리위에43만발의 폭탄을 투하 했다함)온전한 건물이 1-2채 정도밖에

안 남았다는게 정설인데, 그많은 건물에서 시가전은 무슨.....

이밖에 약혼녀를 재회하는 장면을 보면 순간순간 목숨이 경각에 달

했는데도 주인공만은 할말을 다하니,무슨놈의 전쟁이.

아뭏튼 이영화는 아메리카 합중국의 위대한 영웅 "람보"와 같은

냉전시대 반공영화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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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 2004-02-20 23:55:00
감동을 받을 준비를 하고 봐서 인지

그리 주진 않았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것은

이념도 무엇도 필요 없이

사람이 사람을, 형제 부모끼리 죽이는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미화되거나

정당화 될수 없다는것이다.

이번에 이라크 파병이 국회에 돝와 했다고 하는데..

어떤이유로 사람의 목숨이

경제나 그런 돈의 도구로 사용하는것이

부끄럽지도 않게 국회에서 당당히 말이 나오고

통과되다니..

정말 알수 없는 나라

드라마틱한 영화같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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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이 () 2004-02-21 14:36:00
그건 북괴의 김일성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전쟁을 일으킨 놈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아야 할것이다!
통일을 좌절시키고 괴뢰 전권을 세운것도 모자라 전쟁을 일으킨 북괴!
그러니 모두 굶어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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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관나리 () 2004-02-21 19:34:00
이런데 기웃거리지 말고
어서 내 수청이나 들거라.

네 너의 음식 솜씨와 의술을 어여삐 여겻다만
세상을 보는 시야는 꽝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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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팔 () 2004-02-29 08:45:00
기자님의 평은 대부분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도 진보한다는, 진보하고 있다는 시각에서 볼 수 없을까요.
처음에 말씀하셨듯이 '쉬리'에 비하면 엄청나게 시각이 달라졌지요.
왜 한나라당 김용균이란 자가 이 영화에 대해 광분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완전무결한 역사의식을 가진 영화가 아니라, 이전의 냉전 이데올로기를 깨부술 수 있는, 그러면서도 대중적인 영향력을 지닌 영화입니다.
나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영화로 제작된 '태백산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반공이데올로기를 무력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그런 시각에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으면, 우리는 김용균 같은 자와 마찬가지로 흑백논리에 빠져서 딴지만 거는 사람이 될 겁니다. 아직도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순식간에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젊은 사람들을 생각해서 평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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