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선(통일뉴스 논설위원)


우리는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보람된 도정에서 한 해를 다 보내고 이제 2004년 새해 아침을 맞았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협력의 기초를 다진 한 해

지난해는 우리 민족끼리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해 큰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우선 4차례에 걸친 장관급회담을 비롯하여 각 분야별 남북당국간 접촉과 교류가 활성화 되어 금강산 육로관광 실시, 경의선·동해선의 철도·도로연결식, 문산∼개성 간 임시도로 개통, 개성공업지구건설착공식 등 남북경협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결과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이 3차례 이루어졌고,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제주도 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에는 북측의 선수와 응원단이 수백 명씩 참가하였고,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식 및 남북통일농구경기대회에는 1천여명에 이르는 남측 참가단이 육로를 통해 평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밖에 남북공동학술토론회와 공동자료전시회 등 학술교류와 평양에서 열린 '평양노래자랑무대' 등 각종 체육문화 행사들도 다양하고 빈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민족대회'의 서울 개최에 북측대표단 100여명이 참가하였고, 평양 개최의 '8.15민족대회'에는 남측 대표단 330여명이 방북하였으며, '2003년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노동자대표자회의', '6.15공동선언 관철을 위한 남북청년학생대표자회의', 남북교직원 상봉모임, 개천절기념 민족공동행사 등 통일운동관련 행사들이 남북공동으로 평양과 금강산에서 열려 민족적 단결 및 자주적 평화통일 의지를 다지고 결의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난 한 해 동안에는 철옹성 같기만 했던 휴전선이 마침내 뚫리게 되었고 여객선으로, 비행기로, 자동차로 서울과 평양을 오고 가면서 남북 당국간의 회담과 민간차원의 자주교류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와 같은 남북교류 행사들을 통하여 남과 북의 민족구성원들은 서로가 적대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언어와 풍습이 같은 한 핏줄의 겨레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6.15공동선언 지지 세력과 냉전잔재 세력과의 대립

이처럼 냉전시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민족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1년 동안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아직도 낡은 반공이데올로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6.15공동선언 정신의 역사적 의의를 훼손하는 현상들을 볼 수 있었고, 남북합의사항들에 저항하는 분단지향 세력의 냉전적 잔재들이 강고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미국은 북측이 '조미불가침조약체결' 등 여러 평화정책들을 제시했음에도 이를 외면한 채 대북 적대시 정책을 고수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늘 초긴장상태의 정세를 조성하였습니다. 그런데다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불평등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내세워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집요하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북핵문제만 하더라도 미측의 '선핵포기 선언' 요구와 북측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동시 행동원칙 합의' 요구가 맞서 늘 긴장한 채로 북미관계는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미성향의 반통일적 수구세력들은 아직도 '북한이 변하지 않고 있다'거나, 6.15공동선언 제2항에서 '남과 북의 통일방안 중 공통점을 인정한 것'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6.15공동선언이 담고 있는 자주, 화해와 협력, 평화의 참뜻을 음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6.15공동선언 중에서도 이산가족의 상호방문이나 경제교류에 관한 항목만을 의미 있는 성과로 인정하면서 '우리민족끼리'의 문제는 단지 선언적 의미로만 폄하하면서 반북집회를 열고 인공기 소각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한편, 우리는 16대 대선 당시 상대적으로 개혁세력이라고 할 수 있었던 '참여정부'의 출범에 대해 적지 않은 기대를 가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같은 기대와는 달리 새정부는 대통령 취임사에서조차 6.15공동선언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정부차원의 6.15공동선언 3주년 기념식도 하지 않았으며,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여 광범한 6.15공동선언 지지자들을 실망시켰습니다.

그리고 다수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 파병 결정을 강행함으로써 '민족공조'가 아닌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양에서 개최된 '8.15민족통일대회'에 참석하고자 하는 통일운동단체 대표들에 대해 선별적으로 불허하는 등 통일운동 과정에서의 남북공동행사에 대해서도 냉전시대적 잣대를 들이대어 통일운동을 약화시키고자 급급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외세의 발호가 냉전시대와 다름이 없고, 친미기득권 세력들의 반통일적 잔재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다가 새로 출범한 정권 당국도 통일문제에 관해 비주체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 민족이 갈망하는 자주통일의 앞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난 한 해 동안 국가보안법 철폐, 6.15공동선언의 이행 실천 촉구, 소파개정을 비롯한 다양한 내용의 반미운동들이 일상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규탄 집회, 촛불시위, 단식 등 여러 형태와 방법으로 이라크 파병 반대 및 반전평화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주민주통일 세력의 정치적 입지는 강화되었고, 반미여론은 확산되었으며, 민족공조에 대한 대중적 자각이 크게 고양되었습니다.

6.15공동선언 이행 촉구운동의 필요성

이처럼 우리의 현실은 6.15공동선언 지지 세력 대 수구냉전 잔재 세력이 맞서있고, 전국적 규모의 '우리 민족과 미국'이 대립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한 새해 우리의 과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우선 6.15공동선언이 담고 있는 남북합의사항 이행 촉구운동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랫동안의 비극적 분단 상황에서 실로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1972년 7월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서로 파견한 특사들간 합의를 통해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고,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남북총리를 대표로 한 고위급회담을 거쳐 1992년 2월 남북기본합의서를 발효시켰습니다. 그리고 2000년 6월에는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평양에서 직접 만나 합의한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들 합의 사항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와 내용은 우리민족끼리 화해하고 협력하며, 어떤 외부세력의 간섭과 지배 없이 자주적으로, 어떤 형태의 무력도 이를 배제하여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의 통일을 달성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합의들은 남북 쌍방간 적대적 대결관계의 실질적 종결을 선언한 것이며, 분단과 갈등의 냉전시대를 마감하고 민족화해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통일시대를 열어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15공동선언은 우리 민족구성원이라면 남측에 살든 북측에 살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 어떤 사회단체 및 정치세력이든 남과 북의 그 모든 계급과 계층을 망라하여 이 합의 사항들을 실천해야 할 통일의 이정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외적으로 도전해오는 오늘의 난국을 타개하고 나라의 평화와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것, 그리고 민족 화해와 자주통일의 길을 여는 것도 바로 6.15공동선언의 실천에서 찾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지니고 있는 역량을 총동원하여 6.15공동선언 이행을 촉구하고 이를 반대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서 규탄해야 합니다. 그 일환으로 올해 치러질 4.15총선에서는 6.15공동선언을 음해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반통일적 개인이나 정치세력의 의회진출을 저지시키는 운동이 활기를 띠어야 합니다.

새해 당면과제는 여러 형태의 민족공조 실현

다음으로 대북 적대관계를 해소하여 민족 화해와 공조를 실현하는 일은 통일을 향한 제1의 과제입니다. 더욱이 오늘과 같이 '전민족 대 미국'이라는 대결구도 상황에서 민족공조를 통해 민족을 지켜내는 일은 민족적 당위입니다.

냉전적 요인들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시점에서 민족의 안전을 지키고 평화를 실현하며 또 자주통일을 위해서는 민족이 단합하고 공조하는 것 이외의 다른 길은 없습니다. 따라서 외세와 반통일 세력이 도전적으로 행패를 부릴수록 민족공조를 더욱 강화하고 민족의 화해와 협력, 자주적 통일운동을 일상적으로 줄기차게 벌여나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국간이든 민간차원에서든 남북대화 과정에서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미리 준비된 연설문을 낭독하는 의례적 절차에 의해서가 아니라 허심탄회하게 민족의 앞날에 관해 토의하고 적극적으로 민족공조의 방법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이미 10여년전 남북고위급회담의 남북기본합의서 토의과정에서 북측이 정신대문제에 관한 남북공조문제를 제기했었습니다.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와 관련한 대응에서도 남북공조는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 밖에 국호영문표기 바로잡기 문제나 각종 학술문화 체육부분에서 민족공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한반도 패권정책에 맞서 전민족적 단합에 의한 민족공조를 확대·강화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새해에 통일운동이 집중해야할 과제는 6.15공동선언 이행과 민족공조 실현으로 요약됩니다. 우리 모두의 건강과 참된 행복, 우리 민족의 자주, 이 땅의 평화를 위하여 올 한해도 우리 다 함께 정진할 것을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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