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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째 마당, 역사 왜곡의 뿌리인 이른바 임나일본부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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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2.26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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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방은 국제법상 합법적으로 이뤄졌다."
"식민지 지배는 한국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

▶한일합방 조약 합의 이서
일제는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후 군사적 위협을 가하여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려는, 이른바 을사조약의 체결을
강요하여 일방적으로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였다. 이에 고종황제는,
자신이 조약 체결을 거부하였으며 서명 날인을 하지
않았음을 들어 국내외에 조약의 무효를 선언하였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듣기만 해도 열이 받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일본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버젓이 실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최근 검정을 앞두고 있는 2002년도용 중학교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의 침략 전쟁 일체를 서구의 침략에 대한 민족 생존과 아시아 해방을 위한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대만에서도 항의를 하였습니다만, 일본 문부과학성은 검정에 대한 불간섭이라는 형식 논리만을 내세우고 있고, 우익 여론을 대변하고 있는 산케이신문은 주변국의 항의가 내정 간섭이라고 오히려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뜸하다고 생각하면 터져 나오는 일본 관료 또는 국회의원들의 망언이나 교과서 왜곡은 패전 이후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좀더 조직적으로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냉전 붕괴 이후 새로운 국가 진로를 놓고 혼돈을 거듭하는 최근 정세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본은 1990년대 이후 경제의 거품이 걷혀 가면서 경제가 활력을 잃기 시작했으며 냉전체제에 길들여진 정치는 자기 방향성을 상실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극우 세력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 교과서를 통한 역사 왜곡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체제에서 경제가 활력을 잃어 갈 때 극우국수주의가 대두하여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여러 차례 보아 왔습니다. 지금 일본이 바로 그러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일본의 역사 왜곡이 큰 문제로 떠오르는 때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역사 왜곡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임나일본부설`입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임나일본부설은 어떤 것이며, 일본은 어떤 근거로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고, 그것이 왜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정립하여 각축을 벌이던 시대를 우리는 삼국 시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삼국이 각축을 벌이던 시대에 낙동강 하류와 남해안 일대에는 또 다른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가야국입니다. 가야국은 이 일대의 작은 나라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지요. 보통 6가야라고 하는데, 그 중 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탄생 설화를 배경으로 하는 `구지가`는 중고등학생들이 배우는 고전 시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을 고구려, 백제, 신라라고 하는 삼국 속에 넣지를 않습니다. 그 까닭은 이 나라들은 삼국과는 달리 중앙 집권 국가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삼국의 각축전에 시달리다가 끝내는 신라에 합병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가야국은 결국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 중에는 가야가 우리 민족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가야를 일본사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대체로 이어져서 아직까지 일본 역사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임나(任那)일본부설`이라고 하는데, 대다수 일본 사람들이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알고 배우고 있는 셈입니다.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의 신공황후가 보낸 왜군이 369년에 한반도에 건너와 7국과 4읍을 점령하고, 임나라는 곳에 일본부를 설치하였다는 주장입니다. 이 논리를 주장하는 일본 학자들은 임나라는 지역을 고증해 보니 그곳이 바로 가야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다가 일본부가 562년에 신라에 멸망당했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대로 하면 거의 200년 동안 한반도 남부 지역은 일본이 지배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임나일본부설은 다른 말로 `남선경영설(南鮮經營設)`이라고 합니다.

임나일본부에 관한 연구는 일본에서는 이미 17세기 초에 시작되어 19세기 말에는 본격적인 문헌 고증을 통해 정설로 뿌리를 내리고 각국에 소개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주장은 일본의 조선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천여 년 전에 일본이 지배하던 곳에 일본이 다시 찾아간다는 억지주장을 펴서, 침략의 이론적 기초를 만든 셈입니다. 이러한 일본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심지어 중국의 학자들조차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고, 중국의 교과서에도 현재까지 거의 그대로 실려 있는 실정입니다.

중국인 학자 黃炎培(황염배)라는 사람이 쓴 `조선사`의 한 구절을 한 번 볼까요.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벌해 반도내 일본 세력은 진일보하였다. 그 후 일본은 백제를 도와 신라를 정벌해 격파하면서 대가야 7국(경남북)을 보호국으로 하고 곧 충북 일원을 정복하였다. 이렇게 획득한 영토와 보호국을 총칭해 임나라 하고 임나일본부를 설치해 통치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조선통감부의 전신이다. 일본부는 처음에 금관가야에 설치했다가 나중에 안라로 옮겨 안라일본부라 했는데, 충남북, 경남의 대부분, 경북 일부이며 그 세력은 전남북에도 미쳤다. 일본 웅략천황시 반도내 복속국은 95개나 되었다. 그후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공격해 함락하자 일본은 임나의 일부인 웅진을 떼어 주어 부활시켰다. 이로써 반도 북부의 고구려를 제외하면 일본 세력의 지배 범위 안에 들지 않은 곳이 없다."

정말 기가 막힌 내용 아닙니까? 이러한 인식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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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1)
나태영 () 2001-08-05 12:00:00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읽어보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한국역사의 시작이 기원전 일백 몇 십년으로 나온 반면, 일본역사의 시작은 기원전 1000년 이전으로 기억납니다. (정확한 수치는 조금 틀릴 수도 있음) 이의 해결을 위해서 사학자와 국민의 정부가 과감한 재정 투자로 적극 시정해야 할 것입니다. 성실한 대응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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