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저녁 비슷한 시간에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와 프레스센터에서는 각각 상반된 행사가 열렸다. 하나는 조촐하고 다소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다른 하나는 요란스럽고 축제 분위기였다. 전자는 27년만에 고국에 왔다가 구속기소된 송두율(59) 교수의 석방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였고, 후자는 1997년 망명한 황장엽(80)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저서 출판기념회와 (사)민주주의 정치철학연구소 출범기념식` 행사였다.

◆ 이 두 행사는 몇 가지 점에서 극도로 대비된다. 참석자 면면에서도 `후원의 밤` 행사에는 백기완, 김세균, 홍세화, 권오헌, 한상렬 등 진보적 인사들인 반면, `출판기념회` 행사에는 김영삼, 이인제, 이수성, 박 홍, 강인덕, 조갑제, 이문열 등 국내 수구우익 인사가 총출동한 듯했다. 축사에서도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송 교수를 구하기 위해 `돌빔`을 하자"고 격려했고 김영삼 전대통령은 "황 선생은 진정한 애국자다"고 칭찬했다.

◆ 그전에야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5년전 소송사건과 연관돼 있다. 황 전비서가 `북한의 진실과 허위`라는 책자에서 송 교수를 `김철수라는 가명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지목하자, 이에 송 교수가 1998년 10월 명예훼손에 따른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묘하게도 검찰측의 송 교수 구속기소 사유에는 그 핵심이 `후보위원` 건이고 곁가지로 우습다 못해 유치하게도 사기미수 혐의(황장엽씨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던 사실)가 덧붙여 있다.

◆ 두 사람의 보다 직접적인 연관은 `주체사상`이다. 황 전비서는 세칭 `주체사상의 대부`로 통하며 북한에서 주체사상 선전 업무를 맡았고, 송 교수는 검찰에 따르면 `국내외에서 주체사상 전파` 등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처지가 명확히 갈라진 것은 남한에 오면서 취한 태도 때문이다. 모두가 주체사상과 연관되어 있기에 남측의 국가보안법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향의 유무였다.

◆ 황 전비서는 `망명`을 택했으며 송 교수는 `경계인`을 택했다. 전자는 전향으로, 후자는 비전향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황 전비서는 신변보호까지 받으며 국책연구소의 이사장을 지내고 미국행도 하고 지금 새로운 연구소도 출범시켰다. 그러나 송 교수는 기약없는 차디찬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한파가 몰아치는 <한국 2003년 겨울>의 이러한 살풍경을 단순히 후대의 역사적 평가에만 맡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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