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당국은 `김영환 식` 처리방법을 적용해선 안된다


방한중인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를 둘러싼 주변 기류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듯 싶더니 급기야 송 교수의 북한 노동당 입당 시인설이 나왔다. 우리는 그의 `37년만의 귀국`이 10년간 트로이 전쟁을 끝마치고 귀향해 하염없이 단잠을 자는 오딧세이처럼, 그보다 세배 네배의 달콤한 귀국이자 안온한 귀향이 되기를 바랬다. 그에게 `조국`의 따뜻함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 듯하다. 그는 나흘간 계속된 국가정보원 출두로 인해 연일 피로에 지치고 있다. 지방 대학 강연도 포기하고 선친의 묘소 참배도 늦어졌다. 그런데 국정원은 추가 조사를 위해 송 교수를 다시 소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귀국한 송 교수의 국정원 출두와 조사가 그의 두 가지 친북활동 관련 혐의 때문인 것으로 알아 왔다. 하나는 자수간첩 오길남씨에 대한 입북권유(1985) 혐의이고 다른 하나는 황장엽씨가 주장한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 혐의이다. 전자는 송 교수가 `안기부 날조` 성명서를 냈으며 또 공소시효가 15년이기에 이미 만료된 것으로 판단된다. 후자의 경우 송 교수에게 김철수라는 가명이 사용된 것은 확인됐다. 하지만 국정원은 `송두율=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명확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송 교수도 이를 적극 부인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송 교수의 노동당 입당 시인으로 말미암아 이제 차원이 달라지고 있다.

송두율 교수는 1972년 유신체제 출범후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자 독일에서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결성, 해외 반독재투쟁을 주도하면서 한국사회에 대한 `절망감`으로 1973년 노동당에 입당했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국정원 조사에서 노동당 가입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최근 10여년 동안 노동당과의 관계가 느슨해지고 활동도 소극적으로 되면서 사실상 노동당을 탈당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송 교수의 변호인 김형태 변호사는 "70년대 입북 당시에는 입북보고서를 작성할 때 노동당에  입당하는 게 통과의례였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공안당국에 의하면, 현행법상 북한은 반국가단체로 규정돼 있고 따라서 북한 노동당에 입당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국가보안법상 제3조의 반국가단체 구성 및 가입에 해당돼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6.15 공동선언의 시대, 남북화해의 시대에 송 교수의 사법처리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꼭 지적하고자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송 교수가 귀국하기 전까지 정부의 이른바 `윤이상 식` 처리방법에 대해 반대해 왔다. 남측 정부는 1967년 이른바 `동백림사건` 당시, 20세기 한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예술가인 윤이상(1917-95)씨를 고문하고 반죽음 상태로 추방하였으며, 그의 입국을 끝내 허락하지 않아 그는 1971년 독일로 귀화한 이후 그렇게도 오고 싶었던 고향 땅을 한번도 밟지 못한 채 타국(독일 베를린)에서 눈을 감았다. `윤이상 식` 방법이란 윤이상씨를 `친북`인사라 낙인찍고 귀국을 허용치 않은 것을 말하는데 이는 `민족의 재부`를 저버리는 행위인 것이다. 그런데 송 교수의 경우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경계`를 허물고자 귀국을 강행함으로서 당국의 이 `윤이상 식` 방법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현재 공안당국 내부에선 정치.외교적 상황과 송 교수 개인의 전향 문제 등 정상참작을 해, 기소 문제를 최종 결론지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공안당국은 송 교수가 전향서 내지 준법서약서에 준하는 자필 문건을 공식적으로 제출하거나 그동안의 활동에 대한 유감 표명을 포함하는 공개 기자회견을 할 경우 공소보류, 기소유예 등 관용 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른바 `김영환 식` 처리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99년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씨가 노동당에 입당하고 북한으로 넘어가 고위간부들을 만난 것이 확인돼 잠입탈출혐의로 수사를 받았으나 반성문 성격의 준법서약서라 불리는 서류를 제출해서 공소보류 판정을 받고 사건이 일단락 된 바 있다. 우리는 송 교수의 경우 이러한 `김영환 식` 처리방법에도 반대한다.

`김영환 식` 처리방법에는 송 교수의 전향선언이나 준법서약서 작성 등이 전제로 되는데, 이와 관련 우리는 공안당국이 `약점 잡힌` 송 교수에게 전향 등을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것은 경계인이자 지식인에 대한 `품위와 명예`를 무시한 짓이다. 국가가 경계에 선 지식인을 보호해야 한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따라 사는 지식인에게 사상 전향을 강요한다면, 이는 정치적.법적 타살인 셈이다. 우리는 송 교수의 노동당 입당이 그의 사상의 자유에서 나왔듯이, 탈당도 그의 사상의 자유에서 나왔기에 존중해 줘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공안당국은 송 교수가 양심선언이나, 준법서약서, 기자회견 등을 하면 공소보류를 취하겠다는 등 `김영환 식` 방법을 써서는 안된다고 본다. 우리는 정부당국이 송 교수의 노동당 입당 견해와 해명을 듣는 것으로 매듭짓고, 송 교수가 출국할 때까지 국내 일정을 보장해 줄 것을 촉구한다. `민족의 재부`인 지식인을 더 이상 궁지에 몰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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