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재미 통일문제 자유기고가)


노무현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자주독립국가는 스스로의 국방력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설파한 후, 국군이 앞으로 10년 이내에 자주국방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임기동안에 그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그런데 그의 자주국방론에는 몇 가지 어설픈 점이 있다.
 
자주국방 결심에 앞서 그렇게 못한 과거 반성해야

첫째, 반세기동안 외국군대에 의존하던 국방을 자주국방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은 매우 굳은 결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데 그런 결심은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과 뼈저린 자책이 없이는 생기지 않는다. 남한은 북한보다 인구는 2배요 경제력은 20-30배인데 왜 아직도 자력으로 북한을 당하지 못하고 미국에 의지해야만 했는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기에 자주국방을 못했는가? 이런 문제를 먼저 철저히 따지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적 시효가 지났다면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며,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사실을 낱낱이 규명하고 기록에 남겨서 역사적 책임이라도 물어야 한다.

하물며 군사독재 32년 동안 한국에서는 군인들이 모든 요직을 독점하고 군사제일주의 정치를 했는데 그래도 아직 북한군을 자력으로 못 막는다면, 이는 무엇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일임이 분명하다. 그 잘못된 경위를 밝혀내고 반성하는 절차가 없으면 앞으로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며, "자주국방"은 하나의 공염불에 그치고 말게 될 것이다.  

6.25 전쟁 때, 북진명령만 떨어지면 아침은 개성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고 호언장담하던 고급장교들 중에는 인민군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친 덕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후 3년 동안의 격전으로 전사한자들, 즉 진짜 애국자들은, 대개가 새로 징집되어 총도 제대로 쏠 줄 모르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장교들은 그후 국군 확장과정에서 진급에 진급을 거듭하여 별도 달고 5.16 군사반란 후에는 정부의 요직에 올라 출세도 하고 치부도 했다.

지금 "국가유공자"를 자처하고 있는 이들은 미국의 꽁무니만 붙들고 있으면 국방은 제대로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의 국방정책은 그 동안 이들의 전유물로 맡겨졌으니 부정과 부패의 악취가 진동하는 가운데 자주국방태세는 지금껏 못 갖추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 등 보수 쪽에서는 노 대통령의 자주국방론을 "안보와 경제를 도외시한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비난하면서, "미군의 조기철수와 안보공백을 낳을까 우려된다"고 떠들고 있다. 왜 이런 한심한 소리가 나오는가?. 그들이 바로 자주국방태세를 이루지 못한, 아니 자주국방태세의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한, 장본인들 아니면 그 잔당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는 자주독립의 능력이 없으니 차라리 일본의 통치를 받으며 자치권이나 갖는 게 낫다고 주장하든 친일분자들의 정치적 후예들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해방 후 친일파에 대한 단죄를 제대로 못한 후유증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자주국방도 지난날의 방만했던 국방정책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비판이 없이는 하나의 공염불에 그치고 말게 될 것이다.

한미간 종속관계 유지한 채 자주국방은 망상

둘째, 노 대통령은 미국과의 정치적, 군사적 동맹관계(말이 좋아 동맹관계이지 그 실은 종속관계이다)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국의 자주국방태세를 구축하고자 하는 모양인데 이는 하나의 망상과 같은 것이다. 미국은 남한의 자주국방을 원치 않는다. 미국은 한국군을 주권독립국의 군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은 한국을 미 국방정책의 필요에 따라서 외형상 주권국가의 형태를 부여하고 국방성이 운영하는 하나의 산하기업체 같은 조직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군의 전시 작전지휘권을 미국이 거머쥐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군의 전시작전지휘권을 한국에 넘겨주면 차라리 주한미군을 철수하자는 여론이 미국 내에 비등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못한다는 것이 미국 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노 대통령이 지적한 것처럼 한국군이 "능히 나라를 지킬만한 규모"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아직 독자적인 작전 수행의 능력과 권한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한국군을 어디까지나 독자적인 의사결정 및 행위능력이 없는 군대로서 유지한다는 미국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그런 마당에 미국에 대한 종속관계를 그대로 둔 채 자주국방을 이루겠다는 노 대통령의 발상을 미국인들은 "자주국방 좋아하시네"하고 비웃을 것이다.

미국은 언제든지 주한미군을 통하여 북한에 대한 군사위협을 증대시킬 수 있다. 그때마다 북한은 반사적으로 군사력을 증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남한의 자주국방태세 확립에는 그만큼 차질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대북 적대정책을 고수하는 미국과의 정치적, 군사적 종속관계를 그대로 둔 채로 남한의 자주국방을 이룬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주국방은 대미종속관계에서 탈피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남북간의 화해협력으로 긴장이 완화되고, 나가서 남북간의 군축이 이루어지자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치, 경제, 외교, 군사적 압력이 감소되어야 할 것인데,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한 구상을 전혀 내 놓지 못하였다. 오히려 자주국방을 하더라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계속 유지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 바로 한반도 긴장의 근본원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고의로 모른 척하는 자세이다.

대북안보를 위한 한국의 자주국방은 어디까지나 미국과의 정치적, 군사적 종속관계를 청산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제이지만, 남북을 망라한 한국, 특히 통일된 한국이 주변의 제 강국과의 관계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문제는 중국, 러시아, 일본 및 미국의 4강국이 포함되는 지역안보체제 속에서 모색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지역안보체제는 미국의 일방적 결정이나 한미간 쌍무협약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관련제국 전체의 공동합의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통일의식 없는 자주국방의 한계

셋째로 가장 답답한 문제는 노 대통령이 뚜렷한 통일의식이 없이 자주국방을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얼마 전 "통일에 대한 확고한 방향이 서 있지 않기 때문에 통일이란 말을 안 쓰며 통일을 멀리 두고 평화를 우선해 왔다"고 말했다. 이는 대한민국이란 배의 선장이 "통일"이란 항구의 위치도, 따라서 그 항구로 가는 항로도, 다 모른다는 자백이다. 너무나 한심한 일이다.

노 대통령은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대통령들처럼 자신의 통일방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선기간 중, 그는 `햇볕정책을 계승한다`고 했고 심지어 남북관계만 잘되면 나머지는 잘 안돼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리고 당선 후에는 이제 7천만이 하나가 되는 새 역사가 시작됐다고 했다. 그만하면 형식을 갖춘 통일방안을 내놓지 않았어도 통일의지와 나름대로의 추진복안은 가진 분으로 알았는데, 이제 와서 통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도 모른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노 대통령은 또 그 동안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다가 이번 8.15 경축사에서 남북 공동선언은 남북한만의 합의가 아니라 세계를 향한 평화의 약속이며 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국민을 상대로 한 속임수이다.

6.15 공동선언에는 "평화"란 단어가 두 번밖에 안 나온다. 한번은 "평화적 통일"로, 또 한번은 "평화통일"로 나온다. 그것은 둘 다 통일을 다짐하는 말이지 평화를 약속하는 말이 아니다. 6.15 공동선언의 알맹이가 우리의 자주적 역량으로 평화통일을 이루겠다는 민족적 다짐이란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것을 "세계를 향한 평화의 약속"이라고 하는 것은 궤변이다. 노 대통령은 6.15선언에는 없는 딴 것을 지킨다고 하면서 마치 6.15선언을 지키겠다는 시늉을 한데 불과한 것이다. 그가 그렇게 둘러대는 것은 결국 그가 6.15선언을 지킬 생각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자주국방은 왜 해야 하는가? 자주국방을 못하거나 안 하니까 미군이 영구주둔 하는 것이며, 미군이 영구주둔 하니까 긴장이 고조되고 남북화해와 통일이 안되니, 자주국방을 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미군을 내보내고 통일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닌 자주국방이란 잠꼬대 같은 소리이며 실현될 수도 없는 일이다.

자주국방은 일차적으로는 대북 억제력의 강화를 통해서 추구될 것임으로 그 적정수준은 북한의 무력수준에 정비례하여 증감할 것이다. 따라서 남북간의 화해협력과 긴장완화를 도모하며 통일의 기운이 싹터 가면 이에 따라 남북간 군축이 이루어지고, 자주국방은 그만큼 빠르고 쉽게 경제에 부담도 덜 주면서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자랑한 남한의 경제발전은 물론 남한사람들의 피땀의 결과이지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북압박 장단에 맞추어 대북적대와 분단고착의 춤을 처 준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얻은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면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외국자본이 빠져나가면서 당장 거덜나는 취약하기 짝이 없는 경제발전이요 번영이요 풍요이다. 그것이 통일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앞으로의 목표로 내세우지만, 북한동포들은 미국의 압박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미국의 편을 든 보상으로 남한의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된다고, 그게 뭐 그리 자랑스런 일이 되겠는가? 국민소득이 반으로 주는 한이 있더라도 먼저 남북이 하나가 돼야 하며, 그리고 나서 1만 달러, 2만 달러로 올라가도록 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는 "통일"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었다.

우리 힘으로 통일을 향해 가는 것이 진정한 자주국방

1948년 김구선생은 단정수립을 반대했다. 우리는 그때 미국과 친일파들의 반공논리에 현혹되어 남한에 단정을 세웠다. 그리고 6.25의 된 시련을 겪고 분단을 고착시켰다. 1960년 4.19혁명으로 반성의 기회가 오고 통일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지만 5.16군사반란으로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으며 그후 30년 이상을 반공, 반북을 지상명제로 삼는 군사독재시대를 겼어야 했다.

그러나 김대중 시대에 들어와서 다시 통일의식의 회복을 볼 수 있었다. 그때도 군사독재의 잔당인 한나라당의 끈질긴 방해로 숱한 애로를 겪기는 했지만, 그나마도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과 공동선언으로 대한민국은 "통일"의 항구 쪽으로 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한나라당(지금 대선자금의 내역은 국민에게 공개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는)이 대북송금 내역을 국민이 알 권리가 있다는 억지논리로 밀어붙인 특검법을 공포해서, 그나마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해서 애쓴 일꾼들을 가당치도 않은 죄를 묻는다고 줄줄이 법정에 내세우는 우를 범하고 있다. 마치 일제의 괴뢰로 전락한 대한제국 정부가 1907년 헤이그로 파견되었던 고종황제의 밀사들을 궐석재판에 회부하여 사형을 선고한 것과도 같은 맹랑한 짓이다.

통일은 우리의 지상과제이다. 대한민국이란 배는 통일의 항구에 당도해야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선장, 항해사, 기관사 등을 모두 외국인들을 썼더니 반세기가 지나도 통일의 항구에 당도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직접 배를 운항해야겠다는 것이 자주국방의 뜻이지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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