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욱(연합뉴스 기자)
1. 북-미 직접회담과 다자회담 전망
조만간 3자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그리고는 곧바로 5자회담으로 갈 것이란다. 미국이 원하는 구도대로 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다자회담론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북-미 직접 대화 없이는 다자대화는 불가하다는 사실이다. `불가(不可)하다`는 말은 문제를 푸는 순서와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핵 문제는 북-미 양국이 마주앉아 풀어야 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이를 다자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 압박 및 봉쇄 전술을 편승함으로써 미국의 한반도 분할지배 전략에 우리 스스로를 내맡기는 것이다. : 리영희 선생의 프레시안 인터뷰 일독 요망. www.pressian.com)
7월말 현재 미국 조야에서 북-미 직접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곧바로 부시 행정부가 북-미 불가침조약을 수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핵 문제의 본질과 현재 북-미 관계상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백악관은 7월23일까지 불가침조약 수락의 뜻을 공개적으로 시인하지 않고 있지만 부시 행정부는 서서히 북-미 직접대화로 가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선임연구원이 7월17일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양자회담 형식으로 시작해 다자회담으로 나간다면 미국과 북한 양측이 모두 체면을 살릴 수 있고 미국은 승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나 7월19일자 뉴욕타임스가 `대화하라, 그러나 강하게 하라`(Talk, but Talk Tough)라는 제목의 글을 실은 것도 북-미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미국의 처지를 웅변한다.
미국 민주당의 조셉 바이든(Joseph Biden) 상원의원도 7월20일 북핵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먼저 "선제외교적 노력에 나서야 한다"면서 북-미 직접 대화를 촉구했다.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낸 바이든 의원은 이날 미국 NBC 방송 `언론과 만남` 프로에 출연, "부시 행정부에는 대북정책이 없다"고 비난하고 "부시 행정부가 북핵사태를 중국과 전세계의 문제라면서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그는 또 상원 외교위원장인 공화당의 리처드 루가 의원이나 다른 보수파 공화당 의원들도 북-미 직접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과 `외교`를 혼합해 `선제 외교적 노력`(preemptive diplomatic efforts)이라는 용어까지 구사하는 노력이 가상하다.
결국 지난 4월 베이징회담 이후 미국의 대화 거부로 소강상태에 빠진 북-미 관계는 다시 중국이 중재하는 3자회담의 틀 속에서 양자대화를 갖는 방식으로 풀릴 것이며 이를 통해 미국은 북한의 요구대로 불가침조약 체결을 시작으로 하는 양국관계 정상화 및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등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의 수순을 따르게 될 것이다.
또 항간에서 거론하는 다자대화은 북한을 상대로 핵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북-미 양국이 타결한 핵 문제의 해법의 이행을 보장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미 브루킹스 연구소 오핸런 연구원이 7월17일 미국의소리방송(VOA) 인터뷰에서 "협상에서 합의된 사항들을 이행하는데 있어 궁극적으로는 여러 나라들이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즉 앞으로의 다자회담은 북핵 억제를 위한 회담이 아니라 일본의 핵무장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일본이 참가하는 5자회담은 열리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본이 참가하는 5자회담을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미국은 북-미 직접 대화에 대한 전망을 애써 부인하고 있다. 미 국무부 대변인 리처드 바우처는 7월22일 "불가침보장이나 문서화를 검토하거나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북핵 프로그램을 폐기시키는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말할 것이나 이는 논리에 맞지 않는다. 현 사태를 해결하는 길은 북-미 양측이 동시에 서로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합의하는 길뿐이라는 사실은 지금 누구나 공감하고 있고 미국도 이 사실을 인정하기에 대화를 하기 위해 서서히 대화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핵 개발을 먼저 포기하지 않는 한 대화는 없다고 외치던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북핵 패러독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2. 2003년 전쟁과 평화 : 북핵 패러독스
2003년 6월 한달 내내 미국의 대북 정밀 폭격 또는 봉쇄, 제재론이 난무했다. 그러나 7월말 현재 한반도 정세는 미국의 이런 강경론은 간데 없고 다시 해빙의 조짐이 완연하다. 미국의 한반도전쟁 구상은 어디 가고 다시 평화의 기운이 도래하는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한데 이어 이라크를 점령하고 다시 이란과 시리아 전복 음모를 꾀하며 공공연히 `4차 세계대전`을 언급하면서 동시에 대북 `군사적 옵션`을 입에 담았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슬금슬금 북한과의 대화 테이블로 다가서고 있을까?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옵션이 불가(不可)한 것은 바로 북한의 군사적 대응력 때문이다. 핵탄두가 정말 있는지, 있다면 몇 기나 있는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미국의 공격에 단호히 맞설 의지가 있고 태평양 건너 미 본토를 가격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북한은 이미 `군사적 옵션`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군사적 옵션` 운운한 것은 모두 허풍이었다. (<미국의 대북침공은 불가하다> 2003.7.3 www.tongilnews.com 참조)
그러면 북-미 타협이 불가피한 이유는 무엇일까? 핵을 개발하든 말든 외부에서 철저히 봉쇄만 하면 되지 않을까? 있을 수 있는 가설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양산(量産)`은 달러화(貨)와 대량파괴무기(WMD)를 두 축으로 하는 세계지배논리를 허물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북핵 프로그램을 용인할 수 없다.
올해 초 한때 `북핵 용인` 주장이 제기됐고 핵무기 수출을 차단하면 된다는 봉쇄론이 한때 거론됐지만 모두 가당치 않은 소리였다. 또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전면전이나 정밀폭격을 감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에게 남은 선택은 북한이 요구하는 방식대로의 `타협`뿐이다.
바로 `북핵 프로그램`이 미국으로 하여금 대화와 타협의 장으로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 = 위기/위험`이라는 인식에 비춰보면 엄청난 역설(逆說.paradox)처럼 들리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북한이 미국에 영변 핵 시설 폐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하고(2003.6.30), 이를 정식으로 미국에 통보(7.8)하면서 북핵 위기감이 최고조에 이르자 북-미 타협의 조짐이 나오는 것을 달리 설명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더 이상 북한이 못버텨서!"라는 논리를 끌어다 붙이기도 하지만 이는 지난 10여 년간 `핵`을 중심을 전개된 북-미 대결사는 물론 최근 한두 달 동안의 상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 따른 오류이다.
1988년 12월 미국이 북한과 첫 당국간 회담(참사관급 접촉)에 나선 때로부터 1993년 6.11 북-미 공동성명과 1994년 제네바합의를 거쳐 2000년 북-미 공동코뮈니케까지의 모든 북-미 협상은 북한의 `핵 전략`이 미국의 봉쇄압살전략을 조금씩 허물어뜨리는 과정이었다.
지난해 10월 미국이 `북 핵개발 재개 시인`설을 퍼뜨리면서 시작된 소위 `2차 한반도 핵 위기`는 지난 10여년에 걸친 북-미 대결사, 특히 제네바합의 이후 북-미 관계가 전쟁에서 평화로 이행하는 과정을 깨뜨리기 위해 미국이 벌인 `난동`이었을 뿐이다. 10여년에 걸친 북-미 대결사가 북측의 승리로 장식되는 막장이 시작될 무렵 미국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외치며 이전의 역사를 모두 무효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북-미 관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면서 제네바합의를 무효화하려 했었다. 제네바합의 체제를 파탄시키면 미국의 패배 즉, 한반도 분단관리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북-미 대결사의 대단원에서 막판 뒤집기가 가능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북한이 핵을 개발(했고 이를 시인?)함으로써 제네바합의를 어겼다"는 거짓 논리를 만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이런 불순한 음모는 성공했는가? 엉거주춤 북-미 담판의 장에 다시 끌려나오고 있는 모습은 그들이 실패했음을 말해준다. 바로 지난 10여년간의 북-미 대결사를 좌지우지했던 북한의 핵 전략 앞에서 부시 행정부의 조잡한 강경책은 통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북-미 평화프로세스를 파탄시키려던 미국의 기도는 북한의 `폐연료봉 재처리 선언` 앞에서 그만 무력화되고 말았다.
북측이 폐연료봉 재처리 사실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4월18일로 당시 외무성 대변인은 "8천여 개의 폐연료봉 재처리작업이 `마지막 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3월초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후 미국 정보기관과 언론은 폐연료봉 재처리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거나 `엄포용`이라며 애써 북측의 주장을 평가절하 했지만 미국은 이 때부터 북측과의 타협에 나서기 시작했다. 베이징 북-중-미 3자회담(4.23-25)은 이렇게 이뤄졌다.
이 회담에서 북측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 및 핵 프로그램 폐기와 관련한 `새롭고 대담한 제안`을 내놨고 미국이 이에 대해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자 북측은 `핵무기 보유 의지`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4월30일 외무성 대변인은 "우리는 필요한 물리적 억제력을 갖추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경고했고 5월12일 `조선중앙통신 상보`를 통해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과 핵 시비로 한반도 비핵화선언이 백지화됐다고 선언했다.
이어 6월9일 조선중앙통신은 논평을 통해 "핵 억제력을 갖추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밝혔고 6월18일 외무성 대변인은 성명을 발표, `핵 억제력 강화`를 선언했다. 이후 북측 매체들은 25일까지 연일 `핵 억제력`에 대한 언급을 반복했다. 그리고 북측은 6월30일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을 완료하고 이 사실을 7월8일 북-미 실무접촉에서 통보했다.
최근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중국 중재 역할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 때부터이다. 7월 초 이미 미국과 러시아에 외교부 부부장들인 왕이(王毅), 다이빙궈(戴秉國)를 각각 파견했던 중국은 다시 다이빙궈 부부장을 북한(7.12-15)과 미국(7.18-19)에 보내 `다자 회담 속 양자회담`을 절충하기 시작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AWSJ)은 7월18일 1면 머릿기사에서 "중국 정보기관이 최근 수주일 사이에 북한이 최소한 핵폭탄 1개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이미 추출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이것이 미국과 북한의 대립 해소를 목표로 한 중국의 긴박한 외교노력의 발단이 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중국이 북한의 폐연료봉 재처리 사실에 놀라 중재에 나섰다기보다 북측과의 모종의 협의 또는 공통된 문제 인식 하에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고 있다는 설명이 타당할 것이다.)
3. 부시 행정부의 대화 논리
미국은 여전히 북-미 직접대화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미국 조야가 일치된 목소리로 직접대화를 주장하고 일각에서는 불가침조약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는 여전히 딴소리를 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이런 태도를 이해하고 앞으로의 대화 전망을 가늠하는데는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의 행보가 도움이 될 듯하다. 1994년 소위 1차 한반도 핵 위기때 미 국방장관을 지냈던 그가 최근 언론을 타기 시작한 것은 7월15일, 북-미 핵 대화의 중재자로 활약하고 있는 다이빙궈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워싱턴을 방문(17-18일)하기 이틀전이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북-미가 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다"(the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 are heading for war)라고 말했다. 북한이 폐 연료봉 재처리를 시작(?) - 북측은 6월30일 재처리작업을 완료했다고 밝히고 있다 -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부시행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이 없어 양국이 곧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앞 뒤 안맞는 논리로 전쟁 운운하며 한 차례 파문을 일으킴으로써 북핵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킨 그는 이틀 뒤인 7월17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북-미 직접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확산시키는 것을 허용하거나 미국이 전쟁을 벌이는 두 가지 선택 모두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직접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 핵 프로그램을 막지 못하면 북한은 올 연말까지 8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AFP 2003.7.21)
페리의 북-미 직접 담판론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는 7월23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북 핵 보유 용인이냐 협상이냐(It`s Either Nukes or Negotiation)`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현 상황을 방치하면 북한은 올 연말까지 6-8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것이라며 타협을 촉구했다. 페리 전 장관은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북한과 진중한 협상을 벌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페리가 전쟁 불가피론까지 거론하며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북핵 프로그램 때문에 미국은 좋으나 싫으나 북-미 직접 담판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행보가 자신의 독단적 행동일까? 자신과 클린턴 행정부의 판단이 옳았음을 알리고도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각료들이 대북 봉쇄론과 영변 폭격론을 계속 거론하는 때 페리는 이렇다할 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폭격`과 `봉쇄`, `제거` `교체`를 거론하던 소위 매파들은 뒤로 물러나고 페리와 같은 소위 온건론자들이 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온건론자들이 나서 분위기를 잡아줘야 하기에 페리 등이 나서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분명 미국은 북한과의 담판에 나설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딴소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이 "미, 불가침조약 제안 검토"를 연일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이를 부인하는 이유는 `외교적 패배`를 시인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북측이 먼저 핵 포기를 선언하기 전에는 대화를 않겠다고 오만을 떨었고 베이징회담 이후에는 "더 이상의 3자회담은 없다"고 호언하던 미국이 결국 북측과의 대화에 나서야 하는 초라한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선(先) 핵 포기 후 대화` 주장은 공염불이 된지 오래고 북핵 프로그램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네들의 핵 지배논리상 더 이상 북측의 핵 개발을 지켜볼 수 없어 할 수 없이 대화에 나서고는 있지만 얻은 것이 없다. 그래서 `다자대화를 통한 북 핵 포기`라는 애드벌룬을 쉽사리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북핵 전략에 떠밀려 하는 수 없이 대화에 나서야 하는 부시 행정부의 딱한 처지를 감춰주면서 뒤로는 북한과 타협할 수 있도록 하는 논리가 필요할 것이다. 미국 언론이 퍼뜨리는 `북 핵 개발 증거 미비`론이 바로 그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7월22일자에서 "북한의 핵 개발 수준이 어느 단계인지에 대한 혼란이 미국과 북한이 대립을 회피하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괴하기 짝이 없는 이런 주장의 행간에는 북한의 폐연료봉 재처리 주장에 대해 일단 모른 척, 태연한 척 하면서 빨리 협상에 나서 플루토늄 추출 및 핵탄두 생산을 막겠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3월초 북측이 폐연료봉 재처리 진행 사실을 통보했을 때부터 애써 이를 평가절하해 왔다. 그네들이 설정해 놓은 소위 금지선(red line)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플루토늄 추출로 향해 가는 북측의 행보를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칠 수도 없고 팔 벌려 막을 수도 없고 결국 북측이 요구하는 자신의 `핵 우려`를 해소하면서 북측이 요구하는 적대시정책 포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이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한반도 냉전체제의 기본 축인 `북-미 적대`의 주문이 풀리고 있는 것이다. 북-미 적대의 축인 주한미군의 존재 또한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주한미군의 존재가 흔들리는 것은 바로 또다른 분단의 축인 미국에 의한 대남지배의 사슬이 서서히 풀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보론 : `작계-5030`
얼마전 미 군 정보계통에서 한반도 북침전쟁계획인 `작계-5030`을 슬그머니 공개했다. 1993년 미국의 또다른 전쟁계획인 `작계-5027`에 의한 핵전쟁 위기를 한 차례 겪은 터라 그 놀라움이 자못 클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경계심을 높여야 하고 만에 하나 이런 구상을 갖고 있다면 즉시 이것을 폐기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의 한반도 지배질서가 완전히 해체되고 미제(美帝)의 세계지배 논리의 물적 토대인 미군(U.S. army)이 이 땅에서 완전히 물러나지 않는 한 미국의 모든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 새 작전의 핵심은 한반도 일대에서 작전권을 행사하는 지역사령관이 다양한 저강도 작전(Low Intensity Conflicts, 미국의 국가테러 활동과 동의어로 이해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R-135 정찰기를 북측 영공에 근접 비행시켜 북한 전투기들의 잦은 출격을 유도하고 예고없이 기습적으로 한반도 주변에서 수주간 지속되는 군사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북측의 전시 대비태세를 유발하고 이를 통해 에너지와 식량 등 전시 비축 물자를 소진시킨다는 구상이다.
북침전쟁구상 치고는 유치하기 짝이 없고 북조선의 `핵 억제력 강화` 선언 앞에서 꼬리를 내리고 슬금슬금 대화의 장에 나서고 있는 미국이 다시 북침계획을 세운다는 것도 상황 논리에 맞지 않는다. 한반도 분단관리체제가 와해되는 국면으로 접어들자 미 군부 또는 정보기관의 공작팀이 이런 흐름을 차단하기 위해 모종의 도발적 행동을 획책하고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한반도 지배질서 와해 과정과 이 흐름을 거스르고자 하는 미 군부 또는 핵심세력의 준동(蠢動) 가운데 어느 것이 대세인가 하는 것이다.
이를 가늠하는 기준은 최근 가시화되고 있는 주한미군 재배치 및 위상 변화이다. 한반도 전쟁 계획의 실체는 바로 이 계획 집행의 전위조직인 주한미군의 존재와 함께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이런 계획이 유포되는 과정 및 그 배경이다. 왜 지금 시점에서 극비중의 극비인 전쟁계획이 언론에 유포되는가에 대한 면밀한 고찰이 필요하다.
우선 미2사단 이전 문제다. 2사단 이전 시기가 생각보다 앞당겨져 내년 중 시작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남한 정부는 이에 반대하고 있지만 미국측이 서두르고 있다.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은 6월28일 한-미 국방장관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핵심 부대가 아닌 소규모 부대는 LPP(연합토지관리계획 - `연합관리`라는 미명하에 미군이 이 나라 땅을 제 멋대로 점유하고 있다)에 의한 1,2 단계(1단계는 한강 이북 기지 통폐합)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이전하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주한미군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 책임을 내년 6월 남한 군에 이양하는 것을 시작으로 유사시 대(對) 포병 작전, 북한 특수부대 해상침투 저지 등 10개의 특정임무를 오는 2006년까지 한국군에 넘기겠다는 의사를 국방부에 통보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미국이 서둘러 추진하고 있는 주한미군 재배치 및 2사단 이전과 관련해 미국측에서 먼저 `북침 준비설`을 흘리면서 여러 억측이 난무하고 있지만 일단 가이 아리고니(Guy Arrigony) 미 국방정보국(DIA) 동아시아국장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6월12일 "주한미군의 개편은 어쩔 수 없이 감축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990년 4월의 동아시아전략구상(EASI)을 언급했다.
DIA는 미국의 한반도 군사전략을 입안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는 곳으로 1993년과 1994년 북 핵 압박전술을 총지휘한 곳이기도 하다. 이 조직의 동아시아국 책임자가 주한미군 3단계 철수 계획이었던 EASI를 언급하면서 철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한반도 2003년 6월 : 미국의 `북핵 난동`은 어떻게 정리되고 있는가 http://www.chammalo.com)
실제로 미국이 주한미군 2사단의 후방배치가 검토된 것은 1990년 4월 주한미군 3단계 철수안을 공표하면서부터이다. 이후 미국은 1992년까지 1단계 철수 계획에 따라 주한미군 7천명을 빼갔다. 이후 미군의 한반도 전략이 다시 바뀌어 2단계 철수계획부터 보류된 상태이다.
아리고니 국장이 EASI를 언급한 것은 주한미군 철수 계획이 다시 추진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미 국방부나 주한미군사령부 관계자들도 이미 여러 차례 주한미군 감축을 거론한 바 있다. 현재 진행되는 주한미군 재배치는 단순 재배치가 아니라 감축 또는 철수를 향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 계획이 재추진되고 2사단이 후방으로 이동하고 있다면 `작계-5030`은 주한미군 2사단을 선봉대로 하는 북침전쟁 계획인 `작계-5027`과는 차원이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미 언론이 전하는 이 작계의 내용도 북침이라는 미국의 한반도 점령 구상과는 맞지 않는다. 정찰기를 북한 영공 근처에 띄운다거나 불시에 군사훈련을 실시한다는 유치한 발상은 이미 북한을 상대로 대규모 전쟁을 벌이거나 지금까지 거론돼 왔던 정밀폭격 계획(이것이 `작계 5026`이라는 주장도 있다)을 실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 아닌가?
두 번째, `작계-5030`의 존재 여부와 이런 극비 작전계획이 유출되는 경위를 살펴보자. 우선 이런 작전계획이 있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조영길 국방부장관은 7월22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5030같은 형태의 군사작전은 없다"고 말했다. 군부의 수장으로서 극비사항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한반도 전쟁 계획은 모두 `50-2-X`로 표시돼 왔다는 점에서 `5030` 같은 형태의 작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50`은 한반도를 뜻하며 `2`는 미 태평양사령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따라서 `50-3`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작전이 실제로 입안되고 있다면 이는 미 군체계 및 한반도 군사작전상의 모종의 변화를 시사한다.
다음은 극비 중의 극비인 전쟁 계획이 유출되는 경위이다. 이를 처음 공개한 것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라는 신문이었지만 이는 미 군부의 언론플레이로 보는 것이 옳다. 미 군부가 정보를 흘렸다는 말이다. 올 3월 미 군사전문사이트로 미 군부 소식을 선전하는 글로벌시큐리티(http://www.globalsecurity.org)가 `작계-5027`을 슬쩍 공개한 것과 비슷하다. 이미 북한과의 타협이 불가피함을 인정하고 어쩔 수 없이 타협의 장에 나오면서 뒤로 흘리는 이런 한반도 전쟁계획을 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영변 폭격 위기`로 인식되는 1994년의 경우를 살펴보면 어렴풋이 짐작이 가능하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북측과의 물밑접촉을 통해 극적인 타협이 불가피함을 깨달았고 5월 중순 지미 카터의 방북을 결정했지만 이를 숨긴 채 영변 폭격 계획을 유포시켰다. 그러면서 `영변 폭격 개시 몇 시간 전 평양에 간 카터로부터 걸려온 전화`라는 멋진 쇼를 연출했다.
1994년 핵 위기 당시 국방부 국제안보정책 차관보로 일하면서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의 지시로 북한 영변 핵시설을 공격하는 `제한 공격 시나리오`를 작성했다는 애쉬튼 카터는 최근 MBC와의 대담에서 "우리는 공격에 대한 계획을 세웠을 뿐이고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공격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그런 수단까지 동원되지 않기를 모두 희망했었다. 그리고 외교적 해결 방안을 찾았기 때문에 그런 방법을 쓸 필요도 없었다"고 말했다. 왜 공격 계획이 실행되지 않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제네바 기본합의라는 외교적 해결방안이 마련됐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한겨레신문 2003. 6. 27) 또 당시 영변 폭격 구상과 관련했다는 많은 이들이 "구상이었을 뿐"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는 것으로 미뤄 당시 `작전 개시 몇 시간 전`은 극적 전환을 위한 각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적대시정책으로 일관하다 북한과의 대타협에 나서야 하는 미국의 처지에서는 항상 이런 `극적인 쇼`가 필요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때 부시의 `10월 방북설`이 나돌더니 9월17일(고이즈미 방북 1주년)에 즈음해 지미 카터가 평양에 갈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그동안 봉쇄와 폭격, 제재 운운했던 부시 행정부로서는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일들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고 이와 동시에 이미 한 물 가 더 이상 써먹기 힘든 `작계-5027`이나 정체와 존재 여부가 불분명한 `작계-5030` 따위가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한반도 전쟁 의지에 대해서는 항시 긴장을 풀어서는 안되지만 한반도 전쟁 계획이 유포되는 이면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에 앞서 주동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북은 머잖아 핵보유를 선언합니다! 북핵문제에 관한 금후의 사태진전은 북핵보유의 공식화, 공인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될 것입니다. 우선, 북핵문제에 관한 <몇자회담> 설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몇자> 회담이 열리든 안열리든지간에 <북핵보유의 공식화, 공인>이라는 문제가 마침내 클로즈 업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난 10여년래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북핵보유의 공식화, 공인>으로 결판날 것입니다. 신심과 각오가 필요한 막바지입니다.
북의 지상목표는 누가 뭐라고 떠들든 <핵억제력에 기초한 조선반도평화보장>입니다. 이러한 북의 지상목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으로서는 하도 기가 찰 노릇이라 북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공개>하지 못해 왔습니다. 우회적으로, 간접적으로 표현해 왔을 뿐입니다. <천기>였던 것이죠.
그러나 미국 발언의 추이를 잘 따져보면 거기에는 북의 지상목표에 대한 암시가 들어 있습니다. 미국은 북의 핵보유 사실을 <핵문제>, <핵의혹>, <핵위기>라는 간접적인 표현으로 암시해 왔습니다. 이같은 표현방식은 2003년 10월 켈리의 평양방문 이후로 <핵개발시인>, <핵무기개발>, 곁들여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로 발전되었습니다. 미국은 마침내 <불가침보장>에 관한 화두를 미국이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북의 지상목표가 <핵무기보유>라는 것으로 분명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북핵문제>의 실체가 무엇이냐 하는 점이 드디어 종점에 다달았다는 뜻입니다. 지난 10여년간의 과정은 바로 <북핵보유 공식화 과정>인 것입니다. 그것을 미국이 <주도>해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핵보유 공식화>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핵보유 공인> 및 <선제핵 불사용원칙의 천명>, <핵비확원칙의 존중>을 둘러싼, 의미있는 대화와 협상이겠죠.
북은 <핵포기>를 전제로 하는 미국의 어떠한 제안에 대해서도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확실한 전쟁억제력 없이 미국과 맺는 약속이란 모두 무의미하다고 보기 때문이죠. 자구력, 응징력이 없는 <불가침조약>의 무의미성은 역사의 상식입니다. 그것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진리인 것으로 확립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독-소 불가침조약은 무엇을 말합니까? 일본은 불가침조약 맺지 않았나요? 그때의 불가침조약이란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싸우자>는 약속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쟁을 나중에 하겠다고 선포하는 의식이었죠. 그런 점은 그때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다가 <경수로 2기를 건설해주기 싫어서>(?) 더 큰 틀의 합의 자체를 파기한 미국, 국제법을 유린하고 유엔조차 무시하며 이라크침략전쟁을 감행한 미국이기에, 미국과의 약속, 조약이란 응징력, 자구력 없이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이 북의 입장입니다. 신의가 없는 미국과는 중대한 약속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체제보장>이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지 미국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게 북의 기본입장일 것입니다.
북은 이같은 역사의 상식을 지니고 그것이 가르쳐주는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상식의 지참은 아무나 가능하지만, 상식을 실천해보겠다는 희망과 포부도 아무나 가능하지만, 상식의 실천은 아무나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상식의 구현에서 필수불가결한 근거는 <힘>입니다. 그러한 힘에 대해서, 북은 자신하고 있는데 반해 타방은 불신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북이 원하는 것은 <핵보유상태에서의 평화보장체제 확립>입니다. 평화보장체제란 조미간의 평화협정체결, 적대관계청산, 불가침조약 등을 내용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10여년동안 진행되어온 <북핵문제>는 그 자체로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진행되었으니 <미-북 10년핵전쟁>이라고 명명할만도 하겠죠. 그것은 <핵확산저지를 위한 전쟁>이라도 불사할 것이냐 하는 미국측의 저울질과 <핵보유를 위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북측의 배짱이 맞부딪쳐온 기나긴 전쟁인 것입니다. 다만, 지나온 것을 두고 말하자면, 저울질과 배짱이 맞부딪쳤기에 <실제의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대화와 협상 과정과는 별도로 <북핵저지를 위한 군사력의 발동>이라는 <선택권>이 미국의 책상 위에 놓여 있다고 말해 왔습니다. 회담이나 협상도 결국은 <전쟁 가능성>에 관한 판단과 결심에 따라 좌우된다는 뜻입니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전쟁의 가능성 자체는 항상적으로 있습니다. 그럴 위험성은 충분하다고 하겠죠. 미국이 결심만 한다면 전쟁은 그 어느 때라도 일어날만 한 것입니다. 10년전에, 9년전에, 8년전에, 7년전에... 페리가 지난 7월 중순에 말한대로 2003년 1월에도 그럴 가능성, 위험성은 있었습니다. 페리는 또한 <빠르면 올해 안으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도 말했죠. 과연 그럴까요?
미국이 지난 10년동안 해온 것은 망설임 뿐이었습니다. 판단과 결심과 번복을 수도 없이 되풀이해 왔습니다. 군사력의 발동에 대한 저울질이 10여년간에 계속됐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의 신중성을 말해 줍니다. 조미전쟁에 대한 미국의 신중성은 북의 대응능력에 대한 신중성입니다. 달리 말하면 북의 대응능력이 전쟁에 대한 미국의 신중성을 <강요>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조미전쟁은 <세계최강>이라고 하는 미국이라 할지라도 자의대로 판단하고 결심하고 실행할 수 있는 그러한 전쟁은 아닙니다. 전쟁이 나지 않도록 막은 것은 북의 막강한 전쟁억제력입니다. 그 억제력이 전쟁에의 충동, 유혹 앞에 망설이며 시달리는 미국을 자제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이 지난 10여년동안 견지해온 천려(千慮)의 신중성을 이제 와서야 일실(一失)의 과감성으로 홱 바꿀 수 있으리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핵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력 발동>이란 불가능합니다. 북의 전쟁억제력에 의하여 앞으로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방심과는 다른 뜻에서의 낙관입니다.
미국은 50년전에 이미 북과 전쟁을 치뤄본 나라입니다. 그때도 겉모습의 전력차이는 질적으로 지금과 똑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의 눈에나 전쟁의 추이와 결말은 뻔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맛 본 패전은 조미전쟁이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맺어졌는데 북은 해마다 이 날을 <전승기념일>로 삼아 왔습니다. 북은 며칠 뒤가 되겠지만 올해의 <전승 50돐>을 대대적으로 쇤다고 합니다. 미국이 이 날을 맞이하여 조기(弔旗)를 내걸고 조용하게 <회억>하는 모습것과는 대조적이죠. 조미전쟁은 미국이 뽐내는 <상승군>의 신화가 무참히 깨어져 나간 전쟁이었습니다. 그 후 미국은 베트남에서도 된통 혼났습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치룬 전쟁은 고전과 참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뼈저린 경험을 미국은 갖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앞으로의 조미전쟁은 50여년전과 같은 <조선반도전쟁>은 아닙니다. <조선반도전쟁> 외에도 <일본열도전쟁>, <미국본토전쟁>으로 될 것입니다. 미국본토전쟁이란 전쟁의 참화가 미국본토로까지 번져진다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지난 세기의 조미전쟁과 새 세기의 조미전쟁 사이의 질적인 차이인 것입니다. 미국은 <인디안학살전쟁>과 <남북전쟁> 외의 <본토전쟁> 경험이 전무합니다. 본토전쟁의 가능성, 위험성을 증대시켜온데 대한 비판이랄까, 자책이 세간에 노출된 것은 7월 중순,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본토전쟁이라고 한다면 그 어떤 대통령이라도 최종결심을 내리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최종결심의 부담을 누구든지 후임자들에게 떼넘겨줄려고 할 것입니다. 말로 떠드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 사이는 천지차이입니다. 조미전쟁이 나면 <일본열도>와 <미국본토>가 무사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점 때문에 미국은 북과의 전쟁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과 같은 북핵위기>라는 문제가 불궈져 나온 것은 2003년 10월이라기보다는 1990년대초입니다. 1990년대초에 미국은 북을 전쟁일보직전까지의 상황으로 몰아가며 압박했지만 결국에는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잠시 타협을 했던 것이죠. 그때 북에 핵억제력이 존재해 있다는 생생한 반증입니다. 북이 핵무기를 보유하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10여년전부터입니다.
이로부터, 지난 10여년 동안에 북이 <핵무기 1-2발만 보유>에서 만족하고 있다가 올해 들어 부랴부랴 <플루토늄 몇 그램 정도> 확보하기 위하여 설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나게 됩니다.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건전한 상식이겠죠. 연애도 첫번째는 힘들겠지만 두번째부터는 쉽다고 합니다. 지난 10년 곱하기 년간 몇발 하면 현재의 북핵무기 총량이 나오리라는 것은 아주 간단한 산수입니다. 과연 1-2발에서 이제 겨우 6-8발 더 추가할 단계라고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북 스스로가 <핵억제력>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충분한 핵억제력>을 갖췄다는 뜻의 <핵억제력>입니다. 무엇에 대한 <충분한 억제력>일지는 충분히 상상이 갑니다.
지난 10여년간의 <북핵위기>의 실체는 <북핵무기보유의 공식화를 언제 할 것이냐>의 문제였습니다. <공식화> 다음 단계는 <공인>이냐 <저지>냐의 문제입니다.
<공인> 문제는 현실적인 힘의 실체에 대한 인정이냐 무시냐의 문제입니다. 인정할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저지>에 대한 북의 입장은 강경합니다. 왜 강경한가? 그렇게 나오는 <힘>의 실체가 무엇인가? 그것을 외면하고 계속 조롱하고 험담하고 위협하며 배짱싸움하는 것도 한도가 있습니다. 건곤일척의 박치기를 하지 않거나 못할 바에는요. 그래서 대화와 협상이라는 말이 미국으로부터 <억지로> 나오게 되기에 이른 시점입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법, 대타협의 방향과 골자는 미국에게 <선택적>이지가 못합니다. 문제는 <북핵보유 공식화, 공인 상태에서 북-미간 혹은 조선반도 평화체제보장, 조미간 적대관계 청산>을 수용하는가, 거부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대타협은 이 문제로부터 몇 센치미터 안팎에서 맴돌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조-미간 100년 숙적관계, 북-미간 50년전쟁, 북-미간 10년핵전쟁의 대종점이 보이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믿고 싶군요. 대역사의 기승전결 가운데서 지금은 <전>에서 <결>로 넘어가는 단계라고도 낙관하고 싶군요. <전>은 2002년 10월에 있은 켈리의 평양방문이 아닐까요?
북-미간에 풀어야 할, 풀 수 있는 문제, 유의미한 문제는 <북에 의한 핵확산을 어떻게 방지하느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미국으로부터의, 혹은 타방으로부터의 <경제협력>이라는 화두가 등장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입니다.
<핵확산방지 대책> 문제는 <힘의 실체에 대한 인정>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국가간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신뢰>가 북에 있다는 것을 <미국이 인정하느냐 부정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물론 북도 미국에게 국가간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신뢰>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고 있을 것입니다. <신뢰성>을 두고 벌이는 회담장 안팎의 논전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북일 것입니다. 북은 <깡패>가 아니라 <신사>라는 것을 미국이 언제까지 부정할 수 있겠는지...
쌍방간에 <신뢰성>이 있다, 그래서 <신뢰성>에 입각하여 <타결>을 짓자, 이것입니다. <신뢰성 보장과 확인, 증대>의 장치, 증거, 방안으로서, 향후 몇년간에 걸쳐서 <북은 비확산원칙을 존중한다>, <타방은 그 댓가로 북에게 경제지원을 한다>는 것이 대타협의 골자일 것이라고 봅니다. 이것을 <등가교환>이라고 할 수 있겠죠. <등가교환>을 가능케 하는 것은 <힘>입니다. 북-미간의 <동등한 힘의 교환>, <등력교환>인 것입니다.
* *
대륙풍과 해풍이 교차되는 지점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100년전의 역사가 되풀이될 찰라의 기로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또다시 친미파요 친일파요 친중파요 친노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흥망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요구받는 우리 민족입니다.
우리는 21세기 우리 민족의 영고와 세계의 성쇠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올바른 대답을 하려면 세기의 성찰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100년간의 민족사를 되돌아보고 곰씹고 곰씹어 보면서
진로 선택에 관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할 우리 민족입니다.
아직 가지 않은 길,
저도 미처 가보지 못한,
우리 민족웅비의 길은 과연 무엇일까요?
대륙풍도 잠재우고 해풍도 다스리며 홀로 우뚝 설 그날,
동북아평화번영중심의 강성대국으로 우뚝 서게 될 그날은 언제일까요?
이처럼 가슴 벅찬 질문을 당신도 해보셨나요?
민족의 주권, 존엄, 생명, 발전, 번영을
가능케 해주는 힘, 만능의 보검은 과연 무엇일까요?
북핵보유문제가 던지는 질문의 근본은 여기에 있습니다. (030723)
-----
[펌글 출전]
인터넷한겨레/정치/북한-통일/기사에대한독자의견쓰기/#17182
혹은 민족통신/자유게시판/#18519 (http://www.minj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