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희(서울 월곡초등학교 교사)


예전에 TV에서 보았던 드라마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제목을 본딴 이유는 요즘 너무 힘들어서 교사를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꽉 찼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이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선후배 동료 관계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아 다소 자만심을 가지고 있던 내게 올해의 아이들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겸손함(아니 비참함인가?)을 느끼게 해 주었다. 동학년 다른 선생님들의 입에서 유난히 힘이 든 아이들이 많이 모였다는 위로를 듣긴 하지만 그래도 힘든 것은 힘든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왜 교사를 하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유난히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전보다 아이들을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하루하루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마치 진리를 발견한 것처럼 쓰는 이유는 우리가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과연 얼마나 느끼며 살아가는가 되묻고 싶기 때문이다.
 
익숙해지면 편해지고 별 문제의식을 갖지도 않고, 별볼일 없는 것은 여전히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사람이나 사물이나 우리는 이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것이 국어시간에 했던 `이야기 바꿔 쓰기`이다. `네 형제의 모험`이라는 전래 동화를 인물, 사건, 배경 중 원하는 대로 바꿔서 이야기를 바꿔 쓰는 것이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옛적 갓날 갓적 자식 없이 살던 내외가 늘그막에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일곱 살이 되도록 말도 못하고 일어나 앉지도 못하고 똥오줌도 못 가리더니 갑자기 말을 하고 바위를 번쩍 들어서 바위손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열일곱 살 되던 해 나라에 큰 난리가 나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가다가 콧바람이 세서 나뭇가지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콧바람손이와 곰배(고무래)를 산허리에 갖다 대고 밀었다가 당겼다가 할 수 있는 곰배손이, 오줌줄기가 센 오줌손이를 만나 의형제를 맺었다. 싸움터에 도착하여 바위손이가 바위를 들어다가 골짜기를 막고 오줌손이가 오줌을 싸서 이웃 나라 군사들이 오줌물에 빠지고 콧바람손이가 콧바람을 불어서 오줌을 얼리고 곰배손이가 곰배를 들고 얼음판을 여기저기 밀고 다니면서 이웃 나라 군사들을 물리쳤다. 네 형제는 그 뒤로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좋은 일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한 여자 아이가 바꿔 쓴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2003년에 힘이 쎈 장사가 있었어. 큰 바위를 들고도 끄떡없었지. 그래서 그 사람은 기네스 북에 올라서 유명했지. 며칠 뒤에 콧바람을 쎄게 불고 초도 한꺼번에 날릴 수 있는 콧바람손이를 만나 친해지고 형제를 맺기로 했지. 근데 어느 나라가 싸우는 것이야. 너무 밀리는 나라와 아주 쎈 나라. 누가 이길지 뻔했지. 그래서 그 약한 나라를 도와주러 가니까. 미국, 프랑스, 중국을 걸쳐 오니 정말 눈물날 정도였지. 그 둘은 힘이 솟았지. 가다가 곰배손이와 오줌손이를 만나서 길을 떠났어.
 
중략(싸우는 과정은 전래 동화와 거의 같음)……
 
군사들이 갑자기 울고 살려달라고 하고 덜덜 떨며 도망가고 자기 나라가 졌다고 네 장사에게 용서를 빌러 온 거야. 그 넷은 유명해지고 좋은 일 많이 하고 잘 살다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병으로 죽었대."
 
중략한 부분에서 앞뒤가 안 맞는 측면도 있지만 이 글을 읽고 좀 놀랐다. 이 아이는 얌전하고 자기 표현에 소극적인 편이고 공부도 하위에 속한다. 하지만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아이인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인물의 특성을 조금씩 바꿔서 엽기적인 이야기를 많이 만든 편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이라크 전쟁 직전에 한 반전(反戰) 수업이 아마도 머리 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물론 현실과도 너무 다르고 상황판단이 정확하지 못한 측면이 있지만 초등학생이란 것을 감안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수업은 TV에서 방송한 자료 화면을 보여주고 객관적인 사실을 설명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눠 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마지막 실천 방안으로 전교조 서울지부 통일위원회에서 만든 반전 뱃지를 달고 다닐 생각이 있는지 물어 보고 희망하는 아이에게만 나눠주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희망하였다(사실 몇 명은 빠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뒤부터 가슴이나 가방, 필통 등 자기 소지품에 달고 다녔다. 아이들은 아직도 달고 다닌다. 물론 한참 되어 숫자는 많이 줄었다. 나 역시 그 자리를 `NEIS 반대` 뱃지가 대신하였다.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미선이 효순이 추모 집회에 참석한 중고생들을 보면서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시대가 우리 자랄 때와 달리 격변하고 많은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났지만, 더 중요한 건 성인이 아닌 경우에는 자기 생각을 말하지도 못하게 했던 예전 시대의 모습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어떤 문제에 대해서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가질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충분한 자료와 근거를 가지고 성숙한 표현방식으로 자기 의견을 표현하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이들은 앞뒤 생각없이 놀기만 하고 다른 사람 배려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간다고 재단했던 내 성급함을 다시 한 번 반성하며, 내일은 또 어떤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내 눈을 새롭게 뜨게 할 건지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