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진(중앙대학교 연구교수, jsjpol@yahoo.co.kr)


최근 북경에서 시작된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한 이른바 다자적 논의틀을 둘러싼 논란, 아울러 한국의 불참을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다.

우선 이의 정리를 위해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이번에 제기된 다자주의(multilateralism)라는 것은 흔히 미국의 대외정책을 설명하는 대칭 개념으로서 일방주의(unilateralism)에 반대되는, 즉 동맹국과의 유기적 협조나 국제기구를 중시한다는 맥락의 다자주의와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측면이다. 북한과의 실질적 대화를 위한 일정한 의지나 가이드 라인이 불명확한 가운데, 본질상 북미 양자간에 다루어져야 할 핵문제를 다자적 틀로 떠넘기는 `외교적 기만책`의 성격이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이 다자적 틀에서 북한을 상대하겠다는 것은 그동안의 대북 압박 강도에 비해서는 상당히 누그러진 유화책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의미있는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 부시행정부는 다자틀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 가운데, 일단 제네바 합의가 함축하는 일련의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상호주의적 양자관계의 약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꾀한다고 할 수 있다. 클린턴 이래 미국내적으로 끝임없이 비판받아온 북한과의 `상호주의적 협상` 부담에서 자유롭게 됨과 동시에 애매모호한 다자적 틀을 지속시킴으로써 이라크전의 승전보 가운데, 아주 `여유롭게` 외교적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다자적 논의틀이 시작되었다는 점은 무엇보다 북미 양자간의 94년 제네바합의의 기본 골격을 완전히 폐기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향후 폐기된 골격을 대신할 새로운 `그림`이 어떻게 그려질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미국측으로서는 다자틀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경우든 포기하지 않는 경우든 문제 해결을 쉽게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그에 대한 `보상`을 관련국들이 분담함으로써 미국의 부담을 덜게 된다. 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국제사회의 압력이 작용한다는 점에서 문제해결을 쉽게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동안 핵문제는 북미양자간에 논의될 사항임을 강조해왔던 북한이 다자틀을 수용한 것은 양국간의 대화 테이블이 마련되지 않는 가운데,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밖에 없는 선택인 것이다. 중국측의 중재도 한몫했겠지만, 다른 대안이 나올 수 없는 현실이다. 한편 우리로서는 미국의 대북공격이라는 한반도의 `급한 불`을 끈다는 차원에서, 아울러 북미간 교착국면을 타개할 가능성이 주어질 수도 있다는 적극적 관점에서 볼 때, 다자적 논의틀은 일단은 긍정적이다. 새로운 다자틀의 형성은 한반도의 전쟁만은 없어야 한다는 한국정부의 입장과 큰 흐름을 같이 한다.

사실 북한 핵문제의 핵심당사자는 분명 북한과 미국이다.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이 북한핵의 근본원인임을 부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자적 논의틀도 참가국의 범위가 어떻게 되든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와 안전보장을 서로 해결해주는 내용물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이른바 `투 트랙(two track)론`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첫 논의과정에서 한국의 `불참`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소외되거나 배제된다는 맥락에서 볼 일이 결코 아니다. 길고 긴 과정의 첫 출발일 뿐이다. 정부측 지적대로 핵과 맞교환될 수밖에 없는 북한의 안보 문제는 경제를 포함해 총체적으로 맞물려 있는 만큼 3자회담으로 굳어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를 포함한 북한의 총체적 안보 문제를 풀려면 한국을 포함한 다자구도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옛날식으로 "생색은 미국이 내고 우리는 부담만 진다"는 식의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 안보 문제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주도적 역할론`은 한국정부의 정치적 수사(rhetoric)의 성격이 강하다. 노 대통령 자신도 전시작전통제권이 없음을 지적한 바 있지 않은가. 한반도 안보의 실질적인 `주인`인지 대본에 충실한 `대리인`인지가 불명확한 상태에서의 한국정부를 북한측이 쉽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북한의 체제 보장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구도하에서 한국정부의 주도적 역할은 북한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동맹국` 미국에 대해서도 그들의 과도한 일방주의에 대해서는 분명한 비판과 견제가 끊임없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해질 수 있다. 지금 이것이 가능한가? 이게 아직은 불가능하다면, 이런 복합적인 다자틀내에서 북미 양자와 주변국간의 일종의 역할 분담을 통해서라도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한반도의 위기 예방과 평화를 다져가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자연스런 순리일 수밖에 없다.   

북경회담을 둘러싼 구체적 정황이 여전히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북한은 미국이 북한에 대한 무리한 `목조르기` 만 하지 않는다면, 핵이건 미사일이든 모두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입장을 오래 전부터 천명한 바 있다. 북한측은 핵개발 관건은 미국측에 달려 있다는 외형상의 강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협상쪽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 문제해결의 핵심은 미국측이 북한과 실질적으로 대화할 자세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제 코트의 공(ball)이 분명 미국측에 넘어온 양상이다.

원론적이지만 NPT 체제 참여국에 대해서는 특정국가가 핵으로 결코 위협해서는 안된다는, 국제사회의 `기본`을 파기한 미국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불량국가에 대한 핵선제공격을 포함하는 미국의 NPR보고서로 대변되듯, 특정국으로부터 핵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 최소한의 억지책으로 핵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지 않을 `바보`가 지구촌 어디에 있겠는가?

앞으로의 문제해결 방향도 자명하다. 미국이 단독으로 하든, 미국을 포함한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다자(多者)가 하든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등 안보위협을 가하지 않겠다는 기본적 약속을 국제사회에 내놓는 것이다. 이같은 가장 기본적인 동북아 국제관계의 `정상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끝없는 줄다리기와 대치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타국에 대한 공격의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안보가 턱없이 위협받는 상황을 인정할 국가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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