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류와 함께 시작된 듯하다. 미국의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강연집 <신화의 세계>(1990)에서 전쟁을 남자들이 발명한 것으로 묘사한다. 캠벨은 얼굴을 가린 두건을 쓰고 창을 든 뉴기니 섬의 힐족 사진을 보며 이렇게 설명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것은 제의(祭儀)적인 전쟁이지만 심각한 전쟁이라는 점이다. 먹을 것은 충분하다.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침략해서 상대방의 토지나 재산을 약탈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둘러앉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발명했다.`

◆ 캠벨의 묘사는 계속된다. `이것은 전쟁놀이지만, 창은 진짜 창이다. 한 남자가 살해되면 전쟁은 끝나며, 다음 기습공격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는 기간이 있다. 덕분에 남자들에게 할 일이 생겼다. 그들은 언제나 상대방의 반격을 경계하면서 준비를 한다.` 이처럼 신화분석을 통한 캠벨의 통찰은 대단하다. 캠벨에 의하면 한마디로 말해, 전쟁의 기원은 `할 일 없는` 남자들의 놀이(전쟁놀이)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 프로이센의 군인인 클라우제비쯔는 그의 전쟁이론의 고전적 명저 <전쟁론>(1832)에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클라우제비쯔는 전쟁을 정치의 한 도구로서 봤지만 도덕적, 윤리적 가치를 지닌 주제가 아닌 것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정당한 전쟁` 또는 `부당한 전쟁`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이 문제를 철학자의 몫으로 위임했다. 아마 클라우제비쯔는 전쟁이 도덕적으로 하자가 있다는 것을 이미 간파했음이 틀림없다.

◆ 지금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인한 이른바 `이라크전쟁`이 한창이다. 캠벨의 신화분석이 이번 이라크전쟁에 다 들어맞고 있다. 이라크 침공을 `전쟁놀이`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할 일 없는` 카우보이(남자) 부시가 진짜 총을 들고 전쟁을 일으킨 격이다. 이라크에다 엄청난 물량의 최신 무기와 장비를 전자게임처럼 쏟아 붓고 있다. 그로 인해 특히 아이들과 여자 등 약자들이 일방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부시는 아직 문명화되지 않은 뉴기니 섬의 힐족임에 틀림없다.

◆ 클라우제비쯔가 위임한, 어느 철학자가 전쟁을 두고 도덕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죄없는 사람,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 어린애가 이유 없이 죽어가는 데 무슨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특히 이번 전쟁에는 앞에 붙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다. `명분 없는` 전쟁, `추악한` 전쟁, `더러운` 전쟁, `끝없는` 전쟁, `지루한` 전쟁, `길고 험한` 전쟁 등이 그것이다. 전쟁 자체에 이미 이러한 뜻이 담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수식을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전쟁을 일으키는 자가 전쟁을 호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의 `非도덕`이 미국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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