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욱(연합뉴스 기자)


1. 김진표 부총리가 만난 이는 누구인가?

미국 정부가 노무현(盧武鉉) 정부에게 새 정부 출범 직전 북폭 계획을 타진했다는 오마이뉴스 보도(3월13일)의 파문이 일단락되는 분위기이지만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문제의 주인공인 김진표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3월17일 기자회견을 자청, 자신에서 북한 핵 시설에 대한 ‘제한적 폭격‘을 언급한 사람은 재경부 직속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 고용 소장이며 그는 단지 떠도는 이야기를 전해줬을 뿐이라고 밝혀 이번 사건은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김 부총리의 반박 내용은 당초 오마이뉴스가 보도했던 것과는 몇 가지 중요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3일 "부시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가 지난 2월 중순경 새 정부의 한 장관을 만나 `북한 핵 시설만 기습 폭격하고 빠지면 어떻겠느냐`고 타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었다.

김 부총리는 오마이뉴스 기자들에게 "부시행정부의 한 고위관리가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면서 "그게(미국측 인사의 말이) 일종의 제안으로 들려 깜짝 놀랐다"고 밝혔고 미국쪽의 이런 분위기를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 참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재경부 장관에 거론되던 김 부총리를 재정경제부 직속 연구기관의 산하 연구소 대표가 만나자고 요청할 수 있을까? 굳이 전할 말이 있었다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측에 전하면 될 일이다. 일개 연구소 간부가 고작 떠도는 이야기를 전해주기 위해 부총리 물망에 오르는 인사를 ‘콜’하지는 않는다.

또 김 부총리는 일개 연구소의 외국인 고용 소장을 어떻게 호칭했기에 편집국장을 포함한 기자 4명이 그를 `부시행정부 고위 인사`라고 잘못 들을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김 부총리와의 만남의 자리(6일)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히고 있다. 자리를 파하면서 이들은 김 부총리에게 “또다시 미국측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따끔하게 말해주시라”며 당부했다고 밝혔다. 서먹서먹한 자리도 아니었고 서로의 말을 오해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또한 김 부총리는 미 정가 여기저기서 떠도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것을 `북폭 제안`으로 받아들일 만큼 소심할까? 그는 그 자리에서 즉각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동의할 수 없다. 말되 안되는 소리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북폭론을 언급한 이가 사뭇 진지한 태도를 취했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더 있다. 김 부총리는 17일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23일께`라고 미국측 인사를 만났다고 말했지만 오마이뉴스측과 만났을 때는 분명 `2월 중순`이라고 말했었다.

윈더 소장이라면 기자들 세계에서 말하는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애써 신분을 감추고 만난 시점까지 숨겨줘야 할 이유는 없다. 그가 하는 일은 미국 재계의 견해를 한국측에 전하는 일이다.

윈더 소장은 지난달 2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한-미 교류협회와 미 헤리티지재단이 공동주최한 <자유시장과 정부 간섭 완화>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했고 그는 이 자리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외부의 시각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가장 높은 것은 정부 규제”라며 규제 완화를 역설했었다. 그가 하는 일이란 이런 정도이다. 이런 사람이 정색하며, 김 부총리가 화들짝 놀랄만한 ‘북폭론’을 거론할까?

김진표 부총리는 윈더 소장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닐까? 김 부총리가 처음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등에게 언급한 `2월 중순경` 방한한 `미 정부 고위 인사`로는 리처드 하스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11~13일)이 유일하다.

그는 한-미-일 3국 조정감독그룹(TCOG) 고정 멤버로 대북정책과 관련해 수시로 한-일 양국 외교부 차관과 만나 의견을 조율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여러 차례 방한했고 한 번 올 때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든 외교부 차관이든 만나고 싶은 사람 언제든 만났다.

하스 국장은 한-미-일 3국의 대북정책을 조종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와의 전쟁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인물이다.

1991년 걸프전때부터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에 관여했고 클린턴행정부가 출범해 물러난 뒤에도 클린턴행정부의 주요 회의에 참석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그는 신 부시행정부의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이기 앞서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 군산복합체의 핵심이다.

이런 ‘거물’이라면 우리 정부 고위 인사 누구와도 사전 약속 없이 만날 수 있다. 그라면  인수위 업무로 바빴던 김 부총리에게 만나자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스 국장은 바로 1차 한반도 핵 위기가 막바지 국면으로 치닫던 1994년 6월 카네기국제평화연구소 수석연구원 자격으로 영변 핵 시설을 제한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김 부총리가 들었다는 ‘영변 핵 시설만 기습공격하고 빠지는 전법’은 바로 ‘제한폭격‘을 말하는 것이다.

1994년 6월17일 하스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당시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 등 클린턴행정부의 유화적인 대북 접근법을 호되게 비판한 뒤 "대안은 무엇인가. 1981년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원자로를 폭격한 것과 같이 영변의 핵시설에 대해 예방적 군사공격을 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당시 그는 북폭을 단행할 수 있는 몇몇 시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김 부총리가 오마이뉴스 기자 4명에게 처음 폭로(?)한 ‘북 핵 시설 제한폭격론’을 가장 정교하게 이론화하고 이를 설파했던 인물이 바로 하스였던 것이다.

김 부총리를 만나 북폭론을 거론한 이는 하스 국장이어야 오마이뉴스 첫 보도(13일)의 뼈대가 선다. 2월 중순 중국 가는 길에 잠깐 들러 예정도 없이 인수위 고위 인사를 만나자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인물, ‘북 핵 시설 제한폭격론’의 대표주자인 하스를 만났다고 해야 말이 된다는 것이다.


2. 언제까지 미국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것인가

북폭론의 불똥이 엉뚱한데로 튀었다. 오마이뉴스를 질시하는 일부 제도권 언론들은 ‘신생 인터넷매체의 오보’를 부각시키기에 여념이 없고 노무현 정부를 반기지 않는 이들은 김 부총리의 자질론을 시비하며 흠집을 내려한다.

신생 인터넷매체 수뇌부에게 흉금을 털어놓고도 이를 ‘오보’라고 말하는 김 부총리나 김 부총리의 이런 태도 변화에 별 이의를 달지 않는 오마이뉴스 모두에 책임이 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왜 ’미국쪽 인사들’이 북폭론을 거론하고 있으며 왜 이런 식으로 북폭론이 언론에 회자되느냐이다.

미국 조야에서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는 북폭론의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런 저런 통로를 활용해 이 나라를 뒤흔들면서 잇속을 차리는 저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김진표 부총리의 입을 통해 세인의 주목을 한껏 잡아 끈 이 북폭론은 노무현정부 출범을 전후해 우리 정부 고관들과 여야 국회의원들 및 학계와 종교계 인사들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전해진 터였다.

또 뉴욕타임스를 위시한 미 주류 매체들은 이미 여러 차례 구체적인 북폭 계획을 보도하며 분위기를 잡기 위해 안달하고 있고 국내 주류 언론도 이를 열심히 전달했다. 2002년 미국이 일방적으로 ‘북 핵 개발 시인’을 떠벌리면서 ‘북 핵 문제’를 일으킨 직후 언론은 연일 북폭론을 주장하며 미국쪽 분위기를 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 주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북폭론을 달달 외는 부류들이기에 국민들이 별로 믿지 않는다.

오마이뉴스의 신 북폭론은 바로 이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가 ‘미, 노무현정부 한 장관에게 북폭 타진’을 보도했다면 이처럼 많은 관심을 끌었을까? 정권인수위에서 일했거나 새 정부 고위층에 합류한 인사들이 너도나도 인터뷰에 응하는 오마이뉴스가 ‘미, 노 정부에 북폭 타진’이라고 썼기에 세인의 관심을 끈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국민들의 알권리 충족’과 미국 내에서 일고 있는 북폭론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김 부총리의 말을 뒤늦게 보도하기로 결정했다는 ‘선의’(善意)를 100% 이해한다. 그러나 ‘미국의 북폭론’에 대한 실체 규명 없이 ‘무시무시한 북폭론’을 가감없이 전한데 지나지 않는다. 비록 의도는 달랐을지라도 과거 친미 주류 언론의 역할을 오마이뉴스가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함께 자문해 볼 일이다.
   
왜 미국 조야는 북폭론을 떠들어댈까? 정말 북한 핵 시설을 폭격하려는 계획을 갖고 이런 위험한 도박에 우리를 끼워넣으려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미국은 북폭을 단행할 수 없다.

미국의 북폭론이 전달되는 통로는 공식 채널이 아니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김진표 부총리에게 ‘북폭론’을 타진한 것 역시 문제의 인물이 누구든간에 이것 역시 실제 북폭 계획은 아니다.

정작 미국이 북폭 계획을 세웠고 이를 노무현 정부에 알리면서 동조할 뜻이 있는지를 타진하려 했다면 그 채널은 김진표 인수위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외교부와 국방부를 두 축으로 하는 한-미간 고위정책협의 라인을 통했어야 마땅하다.

남한 외교와 국방 수뇌부와의 회담 틀도 이미 오래전부터 가동중이다. 비밀을 요하는 경우라면 군 수뇌부 라인을 택했을 것이다. 정통 경제관료이고 새 정부 정권인수위에서 활약하면서 경제부총리 물망에 거론되는 이를 불러 ‘북폭’을 거론한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다.

그가 청와대 인사와 함께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등과 만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이를 통해 그에게 북폭론을 전한 이의 당초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가능하지도 않고, 대단히 우스꽝스러운 시나리오가 인구에 회자됨으로써 미국은 당초 의도를 십분 달성한 것이다.
  

3. ‘북폭’은 없다

‘북폭’은 가능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폭’은 부시행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미국의 북폭론’이 현실화되든 안되든 미국의 한반도전략을 이해하는 거시적 틀은 바로 ‘한반도 분단관리전략’이다. ‘분단관리’란 끊임없이 남한 내에 반북적대감을 조장함으로써 남북 대립과 북-미적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허울좋은(일부 계층에게는 대단히 유리한) ‘한-미 동맹’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남북대결구도와 북-미 적대, 한-미 군사동맹의 틀이 지속되는 것은 군수자본(군산복합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고 ‘북 핵 논란’ 등 ‘한반도 위기감’을 확대재생산하면서 한-미 우호협력을 강조하는 것은 민수자본의 이익을 극대화는 길이다. 더불어 남한의 군사력 증강을 획책하면 군수자본의 이익도 함께 보장된다. 한-미 동맹의 틀은 바로 미국의 이익을 보장하는데 그 일차적 목적이 있다.

따라서 철두철미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는 한반도 분단구조의  틀이 갑자기 무너질 것 같으면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해 ‘남폭’도 불사할 것이다.

그러나 남한이 정치-경제-군사 각 분야 한-미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것을 선언하고 은행과 주요 기업들에 대한 미국 지분을 국유화하는 등 미국의 남한내 이익을 말소하면서 미국이 지키려는 남북 분단구조의 틀을 뒤엎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도래하지 않는다. 그네들의 상당한 이익을 보장해주는 남한에 왜 폭탄을 퍼붓겠는가?

이렇듯 남한에서의 군수-민수 자본 이익을 극대화할 여지가 있다면 또 북폭을 단행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이 보다 크지 않다면 미국은 북폭을 단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남한은 놔두고 북한만 없애버리겠다는 발상은 어떤가? 이 또한 북한의 반격이 전무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북폭이 일방적인 일과성 사건으로 끝나야 하며 북쪽은 미국이나 남한내 미군 시설들에 대한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미국의 폭격을 감내해야 한다는 전제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고 미국의 폭격을 고스란히 당하고만 있을 북한을 가정할 수 있는가? 미국 본토 어디고 탄도미사일 공격에서 안전한 곳은 없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다.  북한은 이미 1996년 미 본토를 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했다는 것은 미국의 군사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다. 주한-주일 미군 기지와 하와이 및 알래스카를 가격할 수 있는 단.중.장거리 탄도미사일만 500기에 이른다. 휴전선 일대에만 1만1천여문 포가 진열돼 시간당 50만발을 발사한다. 주한미군 2사단이 한수 이남으로 철수한다고 해서 북한의 반격을 피할 수는 없다. 무슨 수로 북한의 반격을 막고 북폭을 단행한다는 말인가?

미국도 북한을 대응력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북한의 반격을 봉쇄한 제한폭격론이라는 대단히 우스운 시나리오를 흘리는 것이다. 반격하면 북한은 전멸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핵 시설에 대해서만 제한폭격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또한 처절했고 치열했던 과거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성조기를 휘날리며 영해를 침범한 미 해군 정찰함 푸에블로호를 끌어가고(1968) 핵전쟁 경고와 러시아를 통한 외교적 압박 공세를 무시하며 끝끝내 미국의 사과를 받아냈던 북한이다. 영공을 침범한 미 정찰기 EC-121기를 가차없이 격추시켰고(1969)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3월2일 미 정찰기 RC-135기에게 미사일을 조준했다 한다. 미 정찰기를 북한 영공 쪽으로 유인하려 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 정찰기가 북한 영공을 침범했더라면 이 정찰기는 격추됐을 것이다. 북한을 건들면 곧 전면전이고 대륙간탄도탄이 태평양 상공을 넘나드는 세계 대전으로 비화할 것이라는 사실은 미국이 더 잘 알고 있다.

북폭은 없다.


4.  ‘미국의 북폭론’은 한-미 동맹 강화 포석

이제 미국측 인사가 김진표 경제부총리에게 북폭론을 거론한 이유를 살펴보자. ‘북폭’이든 ‘햇볕정책’이든 아니면 작금 부시행정부의 ‘대북 협상 없는 대화 전술’이든 미국의 모든 대남-대북 수사(修辭)와 전술은 남북 분단 상태를 지속시키면서 그네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분단관리전략’에 근거를 두고 있음은 앞서 밝힌 대로이다.

따라서 미국측이 경제 부총리에게 북폭론을 거론한 이유는 이런 대한반도전략의 한 축인 대남전술 차원에서 파악하는 것이 마땅하다. 미국의 대남전술의 핵심은 한-미 동맹 강화라는 점은 앞서 설명했다. 결국 김 부총리에게 북폭론을 전달하고 이를 여론화하는데 성공한 미국의 의도는 바로 한-미 동맹 강화를 통한 미국의 이익 극대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조야의 ‘비공식 북폭론’은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과 병행하고 있고 북폭론은 시간이 갈수록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한-미 동맹 강화론’으로 변질되고 있다. 적나라한 표현을 쓰자면 ‘미국의 북폭론’은 한국경제 침탈을 위한 성동격서로 봐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측 인사’가 김진표 부총리에게 자못 신중한 어조로 ‘북폭론’을 거론할 즈음 노무현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를 만났다. 엔 크루거 부총재는 지난달 11일 청와대를 찾아가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는 금융체제를 정비해야 한다”면서 “하루빨리 경제팀을 조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은행 경영과 인사에 정부가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좋은 말이지만 이는 이미 외국 자본에 넘어간 은행들에 대한 간섭을 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더 쉽게 말하면 경제주권을 행사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로부터 열흘 뒤 재정경제부가 설립한 한국경제연구원의 미국인 소장은 서울의 한 세미나에 참석해 ‘정부 규제 완화’를 역설했다.

또 김 부총리의 북폭론이 여론화된 때는 바로 반기문 외교보좌관을 위시한 청와대 사절단이 미국을 방문하고 있던 때였다. 약소국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S&P를 위시한 신용평가기관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할지 모른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부랴부랴 이들을 찾아 ‘한반도 위기론’을 해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사절단이 미국을 방문하고 내린 결론은 바로 ‘한-미 동맹 강화’였다. 중앙일보가 16일 보도한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 협의 결과> 보고서는 “한-미 동맹관계 악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며 빠른 시일내에 투자 홍보를 위한 대미 맨투맨 접촉이 시급하다”고 건의하고 있다.

한반도 위기감 또는 투자불안감의 원인은 ‘북 핵 사태’ 때문이라는 주장은 그런대로 수긍하지만 이 위기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한-미 동맹 관계를 굳건이 해야 한다는 것은 궤변이다.  미국의 대북 대화 중단과 이로 인한 북폭론 등이 바로 한반도 위기감의 원인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위기감을 조장해 놓고 이 위기감을 해소하는 길은 바로 한-미 동맹 강화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해괴한 논리를 노무현 정부 대미 정책의 근간으로 만들기 위해 북폭론을 들먹이면서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떨어뜨리고 이에 화들짝 놀란 노 정부 인사들에게 “한-미 동맹 강화만이 살 길”임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설문조사 결과도 이 시점에 공개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화일보와 공동으로 벌였다는 AMCHAM 설문조사의 핵심은 “한국 경제의 최대 위험 요인은 한-미 관계 악화에 따른 한반도 위기 고조”라는 것이었다.(문화일보 2003년 3월19일) 참으로 가관이다. 한-미 관계 악화되면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다는 미 군산복합체의 과거 냉전시절 논리가 부활한 것이다. 이런 것을 설문조사랍시고 대문짝만하게 싣고 있는 것이 이 나라 신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어느새 미국이 강요한「한-미 동맹 약화 = 한반도 위기 고조」 등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내달(4월) 정부와 재계와 학계, 종교계를 망라한 대규모 친미사절단이 미국을 방문해 부시행정부 핵심 멤버들과의 맨투맨 네트워크를 구축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시청 앞 광장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부시대통령 만세’를 외치던 부류들의 세가 자못 커질 모양이다. 노 정부 출범 전부터 ‘입각’ 물망에 오르내렸지만 끝내 입각하지 못했던 구시대 친미 인맥이 다시 영향력을 회복할 모양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직전 미 월가 금융자본을 대변하는 블룸버그 통신이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노골적으로 지지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선거 사흘전인 지난해 12월16일 이 통신은  <한국 경제 흥망 대선에 달렸다>(Krean Election May or Break Economy)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회창 후보가 당선되면 한국 투자가 위축되고 과거 재벌경제구조로 후퇴할 것"이라며 노 후보가 IMF 프로그램의 충실한 수행자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고른 후계자임을 강조했다. 노 후보가 김대중 정부의 계승자로서 IMF체제의 개혁프로그램을 지속하기를 바라는 것은 바로 미국 자본의 증식 욕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블룸버그 칼럼 등은 바로 IMF 프로그램 및 미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김대중 정부는 반드시 연장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노무현씨가 당선돼야 함을 역설한 것이 아니었을까?

신용평가기관의 하나인 무디스가 올 2월 초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Negatine)으로 두 단계나 하향조정하면서 내세웠던 논리는 북폭론에서 한-미 동맹 강화론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입장과 동일한 것이었다. 

무디스는 신용등급전망 하향의 이유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데 이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는 등 `과거보다 과격한` 행동을 보이고 있어 한국의 안보환경이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디스는 "한국의 새 정부가 안보환경의 악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면 외환위기 이후 보여왔던 성공적인 경제성과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미국은 이미 노 정부 출범 전부터 핵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북한 때문임을 강조하면서 대북 적개심을 고취하고 ‘차기 정부의 효과적인 대응’을 충고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친미‘를 종용해 왔던 것이다.

지금의 핵 위기에 비유해 ‘1차 핵 위기’라고 일컫는 1993년과 1994년 당시에도 미국은 한편으로는 북폭론을 거론하면서 남한에 대한 시장개방 압력 행사하는 이중 전법을 구사했었다. 1994년 6월 클린턴행정부의 북폭 개시 직전 짐을 싸고 달아나려 했다는 당시 제임스 레이니 주한미국 대사가 공개적으로 한 일은 주로 시장개방을 역설하는 일이었다. 대신 제임스 릴리 전 주한미국 대사와 앞서 밝힌 리처드 하스 및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 같은 1기 부시행정부 인사들이 ‘매파’의 소임을 떠맡아 북폭론을 설파했었다.
 
북폭론은 이렇듯 한-미 동맹을 앞세운 남한의 대미 의존을 심화하는 심리전이다. 김진표 부총리는 미국측 인사가 다시 북폭론을 거론하면 화들짝 놀랄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북폭론의 현실적 근거와 목적을 한 번 설명해보겠는가"라고 되묻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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