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 지난해에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일들은 새해로 이월(移越)된다. 지난해에 제기됐지만 해결되지 않은 일들중에서 으뜸은 당연히 `북핵문제`와 `반미문제`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북핵문제란 지난해 10월초 켈리 미 대통령 특사의 방북 이후 미국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불거져 나온 `북핵시인` 발언 이래 `북미기본합의서` 파기여부에 대한 책임공방 등을 거쳐 북한의 영변 핵시설 재가동으로 비화된 문제이고, 반미문제란 지난해 6월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어 사망한 후 이에 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소파(SOFA)개정 등을 요구하며 범국민적인 추모 촛불시위로 번진 문제를 말한다.

이 두 가지 문제는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자주, 더 나아가 민족의 통일문제이기도 하다. 해를 넘기면서 이들 문제는 남.북한과 미국만이 아닌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과도 공유하는 문제로 되고 있다. 작년에 이들 문제가 미결인 채 해를 넘긴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간 이들 문제가 갖는 인화성과 폭발성 등에서 볼 때 한국사회에서 본격 제기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같으면 이들 문제는 정상적인 형태로 제기는커녕 음지에서 역이용되거나 또는 제기하는 즉시 `용공`으로 몰릴 수도 있는 사안들이었다. 더구나 이들 문제는 지난 16대 대통령선거에서 당락을 결정짓는 최대 쟁점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 문제로 인해 대선 승리에 일정 도움을 받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해 말 `여중생 사망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와 만난 자리에서, "북핵은 민족생존의 문제이고 소파는 민족자존심의 문제"라면서 `선(先)북핵 후(後)소파`의 수순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북핵문제의 우선적 해결의지를 밝히며 촛불시위 등 반미시위의 자제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아직 당선자 신분이고 또 여러 정책이 준비단계에 있다고 판단하기에 여기서 노 당선자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리거나 또는 `반미시위 자제` 발언으로 인해 지난해 마지막 날 광화문에서의 시위 동력이 현저히 준 것에 영향을 미쳤다고 비판하고 싶진 않다. 이들 문제는 일희일비할 사안들이 아니라 그야말로 민족적인 입장에서 봐야 할 과제이기에, 연초인 지금 차분히 이들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먼저, `북핵문제가 민족생존의 문제`라고 할 경우, 이는 자칫 도식화로 빠질 우려가 있다. 즉,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핵문제의 원인과 본질은 `북핵`이 아니라 `미국`인 것이다. 북한은 가만히 있는데 미국이 북 치고 장고 치고 하면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오히려 북핵문제는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의 소산으로 볼 수가 있으며 따라서 `북핵문제`가 아닌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이 민족생존의 문제로 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소파문제가 민족자존심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문제의 사안을 외면하거나 한켠으로 좁힌 면이 없지 않다. 소파는 민족자존심만이 아니라 민족자주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불평등한 내용의 소파를 개정하자는 것은 평등한 한미관계, 수평적인 한미관계를 맺자는 것으로 단순한 자존심 차원을 넘어선다. 그리고 자주권이란 곧 나라의 생명과도 같다고 볼 때, 이는 곧 민족생존의 문제와도 같은 의미로 된다.

셋째, 따라서 이 두 가지 문제는 그 해결 우선 순위에 있어 선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굳이 말한다면 동시에 병진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더 나아가 무엇보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될 것은 이 두 가지 문제의 중심에는 미국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북핵문제와 반미문제는 `미국문제`라는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미국이 북한과 남한에 개입함으로서 각각 발생한 문제일 따름이다. 따라서 대미문제, 즉 한미관계를 잘 푸는 것은 두 가지 문제를 모두 잘 해결하는 지름길이 된다. 지난 1945년 해방과 분단 이후 2003년 새해인 오늘까지 58년 동안 한반도를 어둡게 드리우고 있던 미국이라는 그림자가 이제는 걷혀야 할 하나의 `문제`로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것은,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우리 민족을 위해서도, 미국을 위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새해는 궁극적으로 대미문제를 잘 푸는 첫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미관계가 평등한 관계로 될 때만이 남북관계가 발전하고 북미관계도 정상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