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앞 전경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이른바 `여중생 미군 장갑차 사망사건`의 올해 연말을 결산하는 ‘100만 촛불평화대행진’이 열린 서울 광화문 일대는 인파로 물결쳤다.

오늘 시위는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부산 광주 대구 등 전국 64개 지역, 그리고 뉴욕 런던 등 해외에서도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 시위는 2002년의 코드인 ‘인터넷, 네티즌, 광장, 2030세대, 붉은 악마, 촛불’ 등등이 어우러진 한판이었다.

그 코드들이 모여 한 해를 마감하는 오늘, 새해 화두로 ‘2003년을 자주와 평화의 새해로’를 제시했다.

주최측에서는 공중사진을 의식해서, 참가들로 하여금 앉은 자리에서 ‘peace in korea`를 촛불글자로 새길 수 있게 했고,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의 제목은 `2003년을 자주와 평화의 새해로 만들자!`였으며, 또한 집회 마지막 이벤트는 `2003 자주평화`라는 불글씨였다.

2003 자주평화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오늘 연단에 나선 한 인터넷 카페의 대표는 효순이.미선이의 얘기가 처음에는 인터넷에서도 ‘그냥 인터넷상의 얘기니 찻잔속의 태풍이니’ 했는데, “결국 인터넷이 두 여중생사건을 가장 먼저 알렸고 또 광화문 촛불시위도 네티즌이 제안한 것”이라면서 우리 사회에서의 인터넷과 네티즌의 순기능을 적극 알렸다.

두 여중생이 비명에 간지 6개월이 넘고 있고 또 도심에서의 촛불시위도 어느덧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추모 촛불시위는 숱한 사연과 사건을 간직한 채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추모 촛불시위는 특히 대선기간 때 확 타올랐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진보층과 젊은 층으로부터 대선판세의 열세를 마련하고자 촛불시위에 참석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부시 미 대통령도 촛불시위 열풍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 부시 대통령은 허바드 주한 미 대사와 방한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 그리고 심야에 김대중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세 번의 사과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시위대와 한국민은 이를 간접사과라며 받아들이지 않고 직접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한미 당국은 지난 23일 한미 SOFA 합동위원회 형사재판권분과위원회에서 형사재판권 분야 SOFA 운영 개선에 대한 합의를 했는데, 이는 애초 시위의 출발점인 SOFA의 불평등한 내용을 ‘개정’하지 않은 ‘개선’ 수준이라는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 오늘 집회에서 시위대는 ‘SOFA 개정’을 강력히 요구했다.

▶광화문 전경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오늘 집회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피켓과 유인물 그리고 대표 연설에서 자주 인용돼 나왔다.

어제 노무현 당선자는 북핵문제와 여중생사건을 거론하면서 전자는 민족운명의 문제이고 후자는 민족자부심의 문제인데 전자를 먼저 풀고 후자를 그 다음에 해결하겠다면서 촛불시위 자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 오늘 시위를 ‘반미의 촛불’이 아닌 ‘반전평화의 촛불’을 들자는 제안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집회는 단호했다. 연설자들은 어제 노 당선자의 ‘시위자제’ 발언을 성토했고 시위대는 이에 함성으로 호응했다.

이날 촛불시위를 제야의 종소리 행사에까지 연결시켜 새해 첫 새벽을 촛불시위로 열자는 발상은 좋았지만 수많은 시민들을 다 담아내기에는 미흡한 점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여중생 사건과 추모 촛불시위는 국내 유력 언론매체를 통해 올해의 가장 중요한 뉴스와 사건으로 선정되었다.

2002년을 마감하면서도 추모와 분노의 촛불은 계속 타고 있다. 반미시위는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하나의 축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한 해를 막 보내는 지금의 열기로는 2003년, 계미(癸未)년 새해에도 촛불은 타오를 것이다. 그 끝은 어디일까?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