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재미 통일문제 자유기고가)


재미 통일문제 연구가 이활웅 선생께서 본사 앞으로 장문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드리는 통일문제 정책건의`를 보내 왔다. 이 원고는 지난 23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앞으로 보낸 것이다. 이활웅 선생께서는 본사와의 이메일은 통해 `내년 2월 (대통령) 취임식을 전후해서 그런 건의를 해볼 생각이었는데 최근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이 재빨리 노 당선자에게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시기를 놓치면 안되겠다 싶어 황급히 이를 작성 송부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본사에서는 이를 독자 여러분께 널리 알려야겠다는 판단에서 기고형식으로 게재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1.  머리말

1998년 2월 25일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대북 "햇볕정책"을 실시하여 반세기동안 고착화된 남북관계에 화해의 물꼬를 텄습니다. 특히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6.15 공동선언을 발표한 것은 민족최대과제인 남북통일의 험난한 도정에 희망의 이정표를 세운 획기적인 일이었으며 김대중 정부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해서 마땅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은 안으로는 보수적인 거대야당의 끈질긴 반대와 밖으로는 미국의 심술궂은 방해에 부딪힘으로서 기대한 성과를 충분히 올리지 못하였으며 그 결과 모처럼 익어가던 교류협력의 기조도 아직은 취약한 상태에 있으며 한때 풀리는 듯하던 한반도의 정세도 최근에 와서 다시 긴장을 더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소명을 받고 출범하는 노무현 정부에게는 여야간의 문제, 정치개혁의 문제, 세대간의 문제, 지역간의 문제, 계층간의 문제, 노사간의 문제 등 숱한 난제가 다급한 국내문제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북쪽에는 또 하나의 분단정부가 있는데 남북간 갈등의 근본적 해소를 원치 않는 강력한 외세가 있어서 남북간의 적대관계의 연장을 기도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한 채 국내문제만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행히 노무현 당선자께서는 지난 20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갈등과 분열의 시대가 끝나고 7천만 온 겨레가 하나가 되는 대통합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설파하셨습니다. 이는 한국의 새 지도자로서의 강력한 통일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대선 승리를 경하하며 새 정부의 출범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남북통일문제에 대해서 제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정리하여, 다음과 같은 정책건의를 드리고자 합니다. 


2.  통일문제에 관한 건의사항

건의 1.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김정일 위원장과의 접촉을 가진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께서는 지난 선거기간동안 지금 다시 불거지고 있는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이를 "한국의 주도하에 평화적으로 해결"하되 "북한의 핵개발 중지와 미국의 대북 적대관계 중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일괄동시타결 방식을 주장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노 당선자의 취임이전에 벌써 공식접촉을 가지려 하고 있으며 취임 후 최단시일 내에 미국을 방문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그의 일방주의적 대북정책에 대한 노 대통령의 지지를 조기에 확보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노 당선자께서는 미국과의 공식접촉에 앞서서, 필요하다면 미국 측에 사전 통보를 한 후, 먼저 북한당국과의 접촉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과의 직접 혹은 특사교환을 통한 간접접촉을 가지고, 북한 핵문제의 실상과 북한측의 생각을 먼저 확인한 후에 미국과의 접촉을 가지는 것이, 이 문제를 "한국의 주도하에" 그리고 "일괄동시타결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측과의 공식 접촉을 먼저 가진 후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하면, 미국의 심부름을 하는 모양이 되어, "한국의 주도하에" 해결하기 어려워 질 것입니다.

건의 2.  가족상봉을 위한 이산가족의 여행을 완전 자유화한다

김대중 정부는 당초 이산가족의 상봉, 연락 및 재결합 등을 우선적인 과제로 제시하고 이러한 목적을 위한 방북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꿀 뜻을 시사하였지만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남북기본합의서 제 17조와 제18조는 "남과 북은 민족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실현한다"고 한 다음 "...흩어진 가족, 친지들의 자유로운 서신거래와 왕래와 상봉 및 방문을 실시하고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실현"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이 실현 안되고 있는 것은 남북간의 합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남북의 정부간에 그것을 실천할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새 정부는 일단 이 문제 해결에 대한 북한의 호응을 촉구해 보고 북측의 긍정적 호응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는 경우에는, 남한의 단독조치로라도 이산가족의 가족상봉을 위한 북한 또는 제3국 방문을 완전 자유화하는 것, 즉 그런 목적으로 자기 능력껏 다녀오는 것을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처벌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 다음에 취해야 할 조치라고 생각됩니다.
  
남한인구 중 분단 이전의 출생자는 약 10%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족상봉을 위한 북한방문을 바라는 사람은 주로 월남한 사람으로서 경제적이나 건강상 조건이 허락하는 사람일 것임으로 그 수는 매우 적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가족상봉을 위한 방북 또는 제3국 여행을 자유화한다해서 남한의 치안이나 사회질서유지에 하등 지장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북한측의 호응과 협조를 유도해 냄으로써 남북관계의 진전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건의 3. "남북 식량공동체"를 설립 운영한다

북한은 현재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근년의 천재 이외에도 행정적, 기술적인 문제들이 지적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지역은 지세와 기후 등 지리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으로 식량의 자급자족이 어려운 지역이었다는 점 또한 사실입니다. 
  
이런 사태에 직면한 북한은 전 세계에 대해서 식량원조를 호소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UN의 여러 기관들이 회원국들에게 호소하여 식량을 원조해 주고 있지만 절대적 부족량을 채우기에는 태부족인 실정에 있습니다. 또 국내외의 민간기구들이 성금을 거두어 식량을 구매하여 북한에 보내고 있지만 이 또한 수량이 미미하여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는 거리가 먼 현실입니다. 한편 남한에서는 채산성의 하락 및 저장비용의 증가 등 경제적 이유로 미곡의 증산이 제약되고 있지만 국민식생활의 기호변화를 유도하는 한편 충분한 식량을 수입해서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아서 버리는 실정에 있습니다.
  
북한의 식량부족은 남북간의 협력으로써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노 당선자께서는 적절한 기회에 "남북은 다 같은 한 겨레이다. 그러므로 남북간에는 체제와 제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쪽 지역의 식량부족은 그 지역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북을 합한 민족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동으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대 원칙을 천명하시기 바랍니다. 지구상 어느 곳에서든 기근이 있으면 이념이나 주의를 초월하여 국제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 오늘날 국제사회의 윤리입니다. 하물며 같은 민족끼리 한 쪽에서 굶주리는데 다른 한 쪽에서 나 몰라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취지에서 "남북식량공동체"의 설립 운용을 건의하는 바입니다.
  
남북식량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절차에 따라서 설립 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  먼저 "남북식량공동위원회"를 설립하여 북한의 현 식량위기에 남북 공동의 노력으로 대처케 한다.
  
나.  식량공동위원회 운영의 경험을 토대로 남북 양쪽의 대표로서 구성하되 남북 두 정부의 직접통제를 받지 않는 초 정부기관으로 "남북식량공동체" (1952년 설치되어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던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와 유사한 성격의 기구)를 설치하여 농수산물의 수매, 수출입, 보관, 운송, 분배 등, 남북간의 식량문제를 포괄적, 근본적 및 항구적으로 대처하고 해결케 한다.
  
이와 관련하여 대북 식량원조가 군량미로 전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의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나, 이는 식량공동체의 기능에 강력한 통제권을 부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며, 또 후술하는 남북간 군축이 실시되면 그런 염려는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성공되면 북한의 보건 의료문제를 위시한 기타문제도 같은 방식에 따라 남북간의 공동문제로 다룰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통일은 그만큼 쉽고 가까워 질 것입니다.

건의 4. 완전한 자주국방 태세를 확립한다
 
한국인들은 6.25 전쟁 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이 두려우니 미군은 제발 나가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반미시위에 대해서도 그러다가 미군이 나가면 어떻게 하느냐며 곱게 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 중에도 "나라의 안보"를 위해서 미군철수 주장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국인들은 이러한 한국인들을 보고 겉으로는 가까운 우방이라고 추켜세우지만 속으로는 인구나 경제면에서 절대 약세에 있는 북한을 아직도 자력으로 당해내지 못하는 남한의 무능을 깔보고 비웃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지금 확산되고 있는 한국의 반미정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7천만 온 겨레가 하나가 되는 대통합의 시대"는 미국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데, 나라의 안보를 미군에게 의지하면서 미국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미국의 힘에 의지하면서 반미만 외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자주국방태세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해야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가.  자주국방태세확립실패책임 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
  
자주국방태세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6.25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주국방태세를 이룩하지 못하고 미군에게 안보를 의지하고 있는 우리들 자신의 무능과 태만에 대한 깊은 자성이 있어야 합니다.
  
북한은 인구도 남한의 절반밖에 안 되며 경제력도 남한의 몇십 분의 1밖에 안됩니다. 남한 단독의 힘으로 북한을 못 당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더구나 남한에서는 1961년 5월부터 1993년 2월까지 장장 32년 동안 애국심과 책임감을 목숨보다 중히 여긴다는 군인들이 정치, 외교, 군사 및 경제를 마음대로 쥐고 흔들었습니다. 그들이 내건 대의명분은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하고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군부는 아직도 북한이 두려워 미군이 나가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 동안 군인들이 정치를 도맡아 하면서 뭔가 잘못해도 단단히 잘못했다는 이야기밖에 안 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군부는 의당 자주국방태세를 이루지 못한 직무태만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군부는 굴욕적인 불평등조약을 배경으로 오만과 횡포를 자행하는 미군으로 인해 자국민이 당하는 고통과 수모에 대한 책임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한국의 국민과 군부는 주권국가의 첫째 요건인 자주국방의 긍지와 자존심을 저버리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국민이나 군부나 모두 지금이라도 그 동안 이토록 일을 그르쳐 놓은 책임자들을 가려내어 엄벌에 처하고 시급히 자주국방태세를 확립해야 한다는 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국민이 주인 노릇 하는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해방 후 우리는 35년 동안 일제에 부역한 친일분자들을 단죄하고 사대의 뿌리를 뽑는 일에 실패하여 그후 지금까지 만연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의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자주국방태세의 확립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그 동안 자주국방태세확립에 실패한 원인을 밝히고 그 책임을 묻지 않고는 앞으로 참된 자주국방태세의 수립을 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자주국방태세확립실패책임 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그간 이 중대한 일을 그르치게 한 원인과 책임을 밝혀낼 것을 건의합니다.
  
나.  자주국방태세확립 추진위원회를 설립한다
  
자주국방태세확립실패책임 조사위원회의 설립과 함께 각계의 참신하고 유능한 인사들로 구성된 자주국방태세확립 추진위원회를 설립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미군이 없어도 적어도 북한으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에 대하여 자력으로 능히 대처할 수 있는 중장기적 계획(예컨대 5-10년 계획)을 작성 실시하여, 최단시일 내에 자주국방태세의 완성을 기하도록 할 것을 건의합니다. 자주국방태세의 적정수준은 남북화해협력의 수준과 반비례할 것임으로, 후자의 진행과정에 속도가 붙으면 그만큼 더 단시일 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일은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설정하고 민족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절대불가결의 요건이라고 생각됩니다.

건의 5. 주한미군 문제를 매듭짓는다

가. 주한미군지위협정(소파)을 개정한다
    
금년 들어 미군에 의한 여중생 치사사건이 발생되고 가해미군 2명에 대한 미군사법정의 무죄평결이 있은 후 우리 국민들 사이에 그 동안 쌓여온 반미감정이 폭발되어 불평등한 소파협정 개정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나라에서 반미구호를 아무리 소리 높이 외쳐도 미국은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군인들이 30년 이상 독재정치를 하고도 북한군을 자력으로 막을 힘을 기르지 못한 나라, 그래도 아무도 그 책임을 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 나라, 그리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외국군대의 영구주둔을 바라고 있는 나라, 이런 나라 사람들이 부르짖는 반미구호에 미국은 코웃음을 치고 있습니다.

세계최강의 미군이 그런 줏대 없는 나라의 법정에 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미국의 심리입니다. 그러므로 현 상태에서 한국민들이 바라는 수준으로 소파를 개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미국은 한국의 새 대통령이 종래의 숭미사대(崇美事大)를 일삼는 지도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표면상 최대의 성의를 표하는 시늉은 할 것이지만 실질적으로 의미있는 양보에는 매우 인색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이 문제는 먼저 말씀드린 자주국방태세에 관한 책임추궁과 대책수립에 대해 한국정부와 국민이 어느 정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다루고 있느냐에 따라서 미국의 반응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폐기한다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한미상호방위조약이란 불평등조약으로 미국의 군사적 지배하에 묶여있습니다. 한국의 국민들과 지도자들은 이러한 대미예속관계를 한국이란 나라의 목숨 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반도 내에 미군과 그 장비들을 마음대로 배치하거나 반출입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한국정부는 아무 발언권이 없습니다. 한국이 불평등한 소파협정을 감수해야 하고 한국국민이 자국 내에서 2등 국민의 대우에 만족해야하는 근거가 바로 이 한미상호방위조약입니다. 이 조약은 1953년 휴전 직후 10월 1일에 서명되어 54년 11월 18일에 발효되었으며 어느 한쪽 당사국이 폐기통고를 하지 않는 한 무기한으로 유효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편 한미양국 국방장관은 지난 12월 5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통일 이후의 한미 안보동맹의 미래와 주한미군의 역할, 구조, 규모, 지휘관계 변화 등에 대한 정부차원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에 관한 약정서"에 서명했습니다. 정부차원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사전 검토가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런 중대한 문제가 국민적 차원에서는 전혀 논의된 바가 없었습니다.
  
내년은 한미방위조약 체결 50주년이 됩니다. 이 조약과 그를 바탕으로 한 굴욕적인 한미동맹관계를 더 연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렇듯 전국민적인 광범한 토의도 없이 국방장관이 손쉽게 미국이 하자는 대로 문서에 서명하여 한국의 입장을 구속해 놓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예속적인 한미군사동맹관계를 끝내는 문제는 자주국방태세확립 문제와 더불어 한국의 자주권을 확립하고 나가서는 남북의 화해 및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절대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됩니다. 정부와 국민의 신중한 검토를 거쳐서 이를 폐기하는 것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다. 미군을 철수시키고 지역안보체제를 수립한다
     
지금까지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은 통일 후에도 계속 남아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며 노 대통령 당선자도 최근에는 그런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주한미군이 나가면 안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남한에는 아직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불안은 먼저 언급한 자주국방태세의 확립을 통해서 해결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또 미군이 나가면 경제가 흔들리니까 안 된다는 고식적인 사고도 있습니다. 미군이 당장 무조건 나가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지만 한국의 자주국방태세가 확립되고 그 후에 미군이 나간다면 남북간의 화해에 가속이 붙고 군축이 뒤따르게 되고 한반도의 긴장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어 경제환경은 오히려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실제문제로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부정하고 평화통일을 주장하면서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을 그대로 두겠다는 것은 논리의 모순입니다. 또한 주한미군의 문제를 그냥 두고 남북간의 군축을 기할 수 없으며 따라서 남북의 긴장완화와 평화적인 교류협력도 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한미군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일은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이며 핵심을 이루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미국은 그들의 대 아시아 정책상 주한미군은 철수 안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미군은 동북아의 지역안보를 위해서 통일 후에도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독선적인 주장이지만 미국은 유일한 절대강국이니 그 의지를 덮어놓고 무시하고는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또 일본도 주한미군의 계속주둔을 바라고 있고 지역안전을 위해 주한미군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도자들도 아시아 몇 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미군이 필요하다면 불평등한 한미방위조약은 이를 폐기하고, 지역안보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주변제국의 동의하에, 그들과 공동으로 비용과 불편을 분담하면서 대등한 자격으로 미군주둔을 "허락"하는 체제를 모색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두루 감안하면서도 주한미군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다음과 같은 방식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  남과 북은 평화체제 수립에 앞서 상호 불가침을 재확인하는 한편, 점진적인 대규모 군축에 합의한다.
    
(나)  한반도 평화협정으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규정하며, 미군은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 (법률형식상으로) 철수한다.
    
(다)  남과 북은 평화협정과 병행하여, 남한의 일정한 지역을 미국에 대여하고 그 지역 안에 한반도 문제와 상관없이 동북아지역의 안전보장을 위한 국한된 임무만을 부여받은 미군의 주둔을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양해하는 각서를 교환한다.
    
(라)  남과 북은 미.중.러.일 제국과 더불어 동북아지역의 집단안보체제 수립을 추진한다.
    
(마)  미국은 남한으로부터 한반도 남부의 일정지역을 일정기간 대여 받고 그곳에 아시아지역의 안전보장만을 임무로 하는 미군을 단독 혹은 타국 군과 협동으로 주둔시킨다.

건의 6.  남북간에 군축을 실시한다
 
현재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간에는 실로 엄청난 규모의 군사력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남북간 긴장상태와 상호불신관계의 근본원인으로서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에 결정적인 장애요인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남북 양쪽의 국민경제에도 막중한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상호군축이 바람직하지만, 미국으로부터 군사공격의 위협을 현실적으로 받고 있는 북한은 물론 자주국방태세를 확립해야 하는 남한으로서도 당장 군축을 실시 할 수 없는 형편에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의 자주국방태세 확립과 더불어 남북간의 화해협력이 진행되고 아울러 한반도를 위요한 동북아 제국간의 지역안보협력체제가 태동하게되면 한미방위조약에 따라 남한에 와 있는 미군, 즉 북한과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군은 철수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 남북간에 실질적인 군축을 실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남북문제의 당사자 해결구도의 정신에도 부합되는 동시에, 교류와 협력을 위시한 남북 기본합의서의 여러 규정을 이행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데 될 것입니다.
  
이는 또한 북한으로 하여금 군비를 줄임으로써 그 여력으로 식량을 수입할 수 있게 하고 또 정체된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북한의 호응을 얻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남한으로서도 군축에 수반되는 제대장병들의 취업문제가 있을 것이나, 이것은 국방비의 막대한 절약으로 생산적 투자를 증대시키고 고용을 확대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그 결과는 남한의 경제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이 문제는 먼저 언급한 주한미군문제와 후술하는 평화체제 전환문제와 상호 연관 속에서 일괄타결을 모색해야만 협상의 성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건의 7.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한다

남북분단의 제도적 요인이 되고 있는 현 휴전체제는 하루 속히 평화체제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이미 2000년 10월 12일의 공동발표로 북미간에 합의된 사항인데 부시 대통령의 돌연한 제동으로 말미암아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취임 후 노 대통령의 방미 시 혹은 다른 기회에 북핵문제와 연결하여 이를 추진하면 해결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를 위한 협상은 남, 북, 미의 3자를 당사자로 하는 것이 원칙이겠으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북, 미간의 2자 협정과 남북간의 2자 협정을 별도로 체결하되 이 두 협정을 하나의 평화체제 속에 불가분의 일부로 묶어서 발효시키는 방법을 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의 8. 남북이 합의할 수 있는 통일방안을 작성 발표한다

새 정부는 가급적 단시일 내에 남북이 합의할 수 있는 통일방안을 작성 발표하기를 바랍니다. 이 방안은 남한국민의 합의와 지지를 기초로 하는 동시에 북한의 지도층과 인민들도 수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가.  통일에 접근하는 기본원칙
    
(1)  통일은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그리고 초이념적으로 추구한다. 초이념적이라는 것은 남한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나 북한이 주장하는 "사회주의"를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2)  통일은 남북의 두 정부의 입장이 동등하게 대표되는 방식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하되, 궁극적으로는 우리민족 성원 전체의 의사가 공평하게 대표되는 방식에 따라서 단일체제의 단일국가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  통일은 남북의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이기는 방식이 아니라 양쪽이 서로 비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나.  통일국가의 기본성격
    
(1)  통일된 나라는 남북 양측이 추구해 온 이상과 가치를 조화롭게 실현하는 나라이어야 하며 특히 (가) 민족자주, (나) 시민적 자유, (다) 근대화를 통한 경제발전 및 (라) 사회적 평등을 구현하는 나라이어야 한다.
    
(2)  통일된 나라에서는 누구든지 통일 이전에 남북의 어느 한쪽이나 혹은 해외에서 취하거나 행한 정치적 입장이나 발언 혹은 행위나 행동으로 인하여, 형사처벌은 물론 정치적, 사회적 박해나 차별을 받지 아니하며, 모든 사람이 동등한 입장과 자격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다.
    
(3)  통일된 나라에서는 분단기간 동안 남북의 어느 한쪽의 법령에 따라 처분된 재산에 대한 반환청구권을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이미 남북기본합의서 제1장 남북화해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제1조 및 제3조에 규정되어 있음.)
     
건의 9. 평화통일과 안전보장을 위한 외교를 강화한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우리 민족의 내부적 조건이 충족되는 동시에 국제적 분위기가 성숙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나라로 통일할 것인가에 대해 남북 양쪽의 합의가 있어야 되고 또 우리가 그런 나라로 통일하는데 대해 미, 중, 러, 일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이해와 납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통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통일된 후에 다시 분열되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북간의 대화와 교섭도 중요하지만 국제무대에서의 통일외교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김대중 정부는 외교와 통상을 묶어서 외교통상부로 통합했는데, 외교와 통상은 전혀 성격이 다른 업무입니다. 통상은 비교적 단기적 안목에서 주로 숫자로 계산되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업무인데 반해, 외교는 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숫자로는 계산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이익, 즉 국제사회에서의 국가위상의 향상을 궁극적인 목표로 추구합니다. 이러한 뜻의 외교는 오랜 시일을 두고 제도를 정비하고 인재를 양성하고 국제문제연구를 계속하고 실제 경험을 쌓아가면서 차곡차곡 이루어지는 것이며 통상마찰이나 수출목표달성 같은 당장 발등에 떨어지는 식의 업무에 시달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집단안보체제 구상 등이 우리가 원하는 형태를 갖추고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운용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의 우리의 위상이 그에 걸맞게 향상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높이는 길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방면에서 나라의 실력을 기르는 것이지만 그러한 실력을 바탕으로 국가의 위상을 국제적으로 높이는 일은 외교가 담당하는 역할입니다.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그렇게 높이는 외교가 가능하도록 기구와 인원과 제도를 재정비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됩니다.

3.  맺는 말

지난 50년 동안 한국은 분단된 상태에서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받으면서 나름대로 근대화를 이루고 시민적 자유를 신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숭미사대의 풍조가 널리 퍼지고 부패와 안일과 책임회피의 폐단이 만연되었습니다. 그리고 민족자주와 통일을 지향하는 움직임은 반공, 반북의 명목아래 오랫동안 배척과 핍박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국민들은 숭미사대보다는 민족의 자주와 존엄과 화합을, 그리고 분단체제 속의 고식적인 안정보다는 능동적으로 남북의 화해와 민족의 통일을 추구함으로써 우리민족의 장래에 참된 희망과 번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새 지평선을 향한 민족 대 행진을 이끌어 갈 새 지도자로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를 뽑았습니다. 금년 대통령선거의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해서 결코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가실 노 대통령께서는 물론 지금까지 이룩한 근대화와 시민적 자유의 열매를 더욱 충실히 가꾸어 나가는 일을 소홀히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아니 오히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동안 손상되었던 민족의 자주적 기상을 고양시키고 나가서는 민족통일을 위한 기틀을 단단히 다져놓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위에 열거한 건의들은 노 대통령께서 앞으로 그러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 나가시는데 있어서 혹시 참고가 되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감히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 중의 단 한가지만이라도 수긍이 가는 일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저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운 일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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