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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미측의 `평화적 해결`과 `협상은 없다`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 장창준- 북의 핵시설 재가동에 대한 미의 입장과 관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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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12.13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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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준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예상했던 일이 마침내 터졌다. 12월12일 이북이 드디어 `조선외무성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시설들의 가동과 건설을 즉시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발단은 케도의 12월분 중유 제공 중단방침

물론 이러한 발단은 제임스 켈리의 방북 이후 터진 "북한의 핵개발 시인" 파문에서 비롯됐지만,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달 케도(KEDO) 집행이사회에서 밝힌 12월분 중유 제공 중단방침이었다. 당시 케도 집행이사회는 일단 중단 방침을 정하되 사태 진전에 따라 다시 논의한다고 하였지만, 12월에 예정되었던 케도 집행이사회가 내년 1월로 연기되고 나서 이북의 `동결된 핵시설 재가동` 입장이 나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동결된 핵시설은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서에 따라 동결시켰던 영변의 핵시설을 의미한다. 모두가 알고 있겠지만 94년 당시 이북과 미국은 핵시설의 동결 및 궁극적인 해체("북한의 흑연감속원자로 및 관련시설의 해체는 경수로 사업이 완료될 때 완료된다" - 1조 3항)와 경수로 2기의 건설, 그때까지 중유제공 등의 약속을 주고받았다.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어떻게 어겼는가 하는 케케묵은 소리는 이제 지겹다. 다만 최근의 일련의 사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볼 필요는 있겠다.

켈리의 방북 이후 미국의 움직임이 여간 분주하지 않았다. 11월 말에는 비무장지대에서 남과 북의 군인이 하고 있는 지뢰제거 작업을 "비무장지대 월선시 유엔사의 승인을 받아야한다"는 이유로 방해를 놓은 적이 있다. 이남이 유엔사에게 통보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으로 그냥 덮고 넘어갈 것 같았는데, 미국은 다시 금강산 육로 관광에도 `유엔사 승인`을 들고 나왔다. 애초 12월11일 임시 육로관광을 진행하려 했으나 그 일정이 연기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부당한 내정간섭`은 미선이.효순이 사건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반미감정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만 낳았다. 예전에는 이 정도 하면 모든 것이 미국의 뜻대로 될 것 같았는데 이제는 안되는 것이다. 미국으로선 더 커다란 사건이 필요했다.

그래서 미국은 미사일 실은 배를 나포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두 달 전에 그 정보를 입수하고 추적하였던 미국은 12월10일 감행한다. 그런데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예멘이 그 미사일은 자기 것이니 돌려달라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나포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국제적 여론이 형성되었다. 미국으로서는 미사일을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미사일기술통제협정(MTCR)에 가입되어 있는 나라라 하더라도 공해상에서 배를 나포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인데 하물며 이북은 그 협정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나포 행위는 그 어떤 것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는 것이 국제적 여론이었다. 이남에 당하고, 이북에 당하고, 예멘에 당하고, 국제적으로 당하고 미국은 지금 연일 시쳇말로 쌍코피 닦아 내느라고 정신이 없다.

한편 미국 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번 미사일 실은 함선을 돌려주어야 한다며 그것을 이끌어 낸 사람이 바로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다. 강경파들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북의 미국 뒤통수 때리기`

그러던 와중에 경천동지할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핵시설을 재가동하겠다는 이북의 발표는 쌍코피 닦아 내고 내부 대립을 완화하기에 바쁜 미국의 뒤통수를 휘갈겼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국제적 고립의 염려가 있는데 "북한이 강수로 나오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핵문제에 대처했었는데, `이북의 미국 뒤통수 때리기`로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 것이다.

"죽으면 죽었지 무릎꿇고 살지 않겠다", "너희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는 우리식대로 살아간다"는 이북의 일관된 입장이 다시 천명된 것이다.

이번 핵시설의 재가동은 `우리식대로` 살겠다는 천명에 다름 아니다. 너희들이 경수로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좋다, 우리는 우리 자체의 기술로 전력을 만들겠다, 대신 다시는 우리들의 핵발전시설을 갖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라, 이런 명백한 의사 표명이다.

한나라당은 때를 만났다. 12일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있었던 토론회는 한나라당의 홍준표 의원, 민주당의 송영길 의원, 민노당의 김창현 특보가 나와서 대북정책에 대한 토론회를 했는데, 역시 한나라당이었다.

다른 두 토론자의 근거를 갖고 이야기하자는 제안이 무색할 정도로, "김대중 정부가 퍼주기한 결과가 미사일 수출과 핵무기로 돌아왔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단정하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홍준표 의원에겐 들리지 않았다. 아니 상대 토론자의 그 어떤 질문도 들리지 않았다. 거의 모든 대화의 시작은 "북한이 핵무기를...", "이번에 북한 미사일이..."로 시작하는 반복된 테이프에 불과했다.

이번 핵시설 재가동 입장 발표에 대해서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어이쿠나, 북한이 우리를 도와주는구나" 하며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미국의 대응은 `시간끌기`

미국의 대응이 참으로 아리송하다.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평화적인 해결 방침에는 변함이 없지만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한 협상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국무부 또한 공식 발표를 통해 "북한이 동결했던 핵시설을 다시 가동키로 한 조치는 유감이며 북한이 비밀 핵무기 개발의 포기를 포함한 모든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합의에 정면으로 반발하는 것"이라면서 "우방, 동맹국들과 협의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이 서명한 조약이나 합의를 지키도록 하기 위해 협상을 하거나 유인책을 제시하지는 않겠다"고 덧붙였다.

협상없이 평화적 해결이 가능할까? 아니 미국의 약속 이행이 선행되지 않고(미국은 이걸 원하고 있는데) 협상이 가능할까? 협상도 하지 않고 전쟁도 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미국이 이야기하는 `적절한 조치`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이 부분을 잘 파헤쳐야 한다.

`시간끌기`! 이것이 미국이 말하는 `적절한 조치`이다.

`핵개발 시인` 파문, 유엔사를 동원한 `남북 관계 훼방놓기`, 실패한 `미사일 나포`는 모두 남과 북의 관계를 막아보고,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세력(대북정책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MD 구축 등 군사적 준비 태세 등)을 확보하고, 더불어 이남 대선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고자 하였던 일련의 사건이었다. 그러면서도 제네바 합의가 완전히 파기되는 극단적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이북은 미국의 이러한 간계를 간파했던 것이다. 어디 네 뜻대로 되나 보자, 시간을 어디까지 끌고 가나 보자, 하며 재가동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아마 미국은 지금까지 발표된 입장을 고수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려 할 것이다. 즉 이북이 제네바 합의를 공식 파기했다는 국제적 여론을 조작하고, 이북이 변하지 않으면 협상은 없다고 하면서도 평화적으로 풀겠다는 기만책을 계속 사용할 것이다. 그러면서 경제적 봉쇄나 해상봉쇄 조치 등을 운운하며 국제적 여론을 살필 것이다. `협상없이 평화적으로` 하겠다는 것은 이같은 속셈의 발로이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시간을 끌 것인가?

이북이 붕괴할 때까지 혹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와 같이 군사적으로 쉽게 이북을 제압할 만큼 정치적.군사적 자신감을 확보할 때까지이다.

미국은 이미 작년 11월 "3단계 북한 붕괴 시나리오"를 마련한 바 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요격미사일)을 장착한 이지스함을 2003년에 한 대, 2004년에 한 대, 동해에 배치하려는 계획은 예전에 발표된 바 있다. 그러면서 1998년과 올해 여름처럼 대북 전쟁 계획을 수립해 갈 것이다. 이 계획을 언제쯤 현실화할 것인가를 호시탐탐 노리면서.

미국의 간계를 잘 알고 있는 이북으로서는 두 번째 `미국 뒤통수 때리기`를 준비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대포동 미사일 실험을 재개하는 것이다. 고이즈미와의 정상회담에서 "2003년 이후에도 발사 실험을 유예할 용의"를 표시하였으나, 미국이 대화에 응하지 않는 이상에 `용의`는 `용의`일 뿐이다.

미국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렇듯 2003년은 첨예한 대결국면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소위 회자되었던 `2003년 위기설`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미국은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해야

해답은 명확하다.

미국이 기존의 대북 적대정책을 버리고 제네바 합의서, 2000년 공동코뮤니케와 같은 합의사항을 성실히 지키는 것이다. 미국이 그렇게 전환한다면 "핵과 미사일 등 안보 사안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이북은 이미 미국과 이남에 표명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은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해야 한다. 그것도 말로 철회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 단계적 조치로, 우선 미국(케도 집행이사회)은 12월분 중유 제공 중단을 즉각 철회하고 중유 제공을 계속해야 한다. 다음으로 미국은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이북과의 대화에 성실하고 진지하게 나서겠다고 발표해야 한다. 그리고 이북과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정치협상에 나서야 한다. 이북이 제안한 북-미 불가침조약은 그 현실적 방도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것을 요구하고 실현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 민족적 공조, 이남의 단결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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