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 27일 부시 미 대통령이 `한국 국민과 한국 정부, 두 소녀의 유가족`에게 사과를 했다. 그의 사과는 `시기적으로는` 폭발된 한국민의 반미감정이 극대화되기 직전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허바드 주한미대사와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왔다. 우선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식이다. 세계무대를 향해 전횡과 독단을 일삼아 온 부시 대통령의 이번 사과는 왠지 절실하게도 진지하게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다급하거나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게 진심으로 와닿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은 없던 게 갑자기 터지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눌리고 축적된 게 어떤 걸 계기로 한꺼번에 분출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한국민의 반미의식 역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의 한국 선수와 미국 선수간의 쇼트트랙 판정시비로 인한 `금메달 강탈사건` 때부터 본격화된 반미감정은 `F-15K 강매사건`을 계기로 불붙다가 지난 6월13일 경기도 양주에서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압사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이후 처리과정에서 지난 7월 미국이 형사재판 관할권을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이양하지 않은 것이나 최근 두 미군을 무죄평결내림으로써 미국의 오만과 무례가 극치로 드러나게 되었다. 주권이 있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참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미국에 의해서 이 땅이 잠정적 반미지대에서 항상적 반미지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미국은 한국민의 눈에 `은혜의 나라`에서 `배반의 나라`로 바뀌고 있다. DMZ(비무장지대) 지뢰제거에 대해 유엔사(미군)가 검증단 명단 통보문제를 제기함으로서 한국민의 눈에는 미국이 한반도평화와 남북화해에 딴지를 거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무죄평결 이후 성난 중고등학생들이 도심에서 독자적인 반미집회를 진행하고, 게다가 시위대가 미군부대에까지 철조망을 자르고 들어가고 또 화염병이 등장했다.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사태`가 일어났는데도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더 나아가 대선 후보들은 여.야나 보수.진보, 친미.반미를 떠나 한 목소리로 `부시 사과와 소파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재향군인회조차 성명을 통해 "한국민의 분노를 진정시킬 수습책을 찾으라"고 촉구했다.

미국은 이러한 최근 심상치 않은 반미분위기에 놀라 두 미군의 무죄 평결을 계기로 이 사건을 조기에 진화하고자 했던 것 같다. 27일 하루 사이에만 두 미군의 사죄 성명이 나온 후 부시의 사과 성명에 이어 두 미군은 미국으로 이송됐다. 속전속결이다. 아마 예전 같으면 이 정도에서 한국민의 분노가 잠잠해 질 수도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다르다. 한국민은 미국에 대해 일시적인 분노가 아니라 근본적인 감정의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이러한 상황을 부시의 간접적 사과표명 정도로 넘기려 한다면, 이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막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부시가 성명에서 `한국과 미국이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건 간단하다. 이번 사건이 벌어지게 된 원인을 제거하고 또 처리 과정상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미군을 한국법정에 세워야 하는데, 이는 곧 형사재판 관할권을 한국에 이양하는 것을 말하고 또 이는 곧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개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숨진 한 여중생의 아버지가 "부시 대통령이 사과한 만큼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당장 SOFA 개정에 나서라"고 한 말은 사태해결의 최저선이 될 것이다. SOFA 개정을 위해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하고 또 미국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만이 두 여중생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이런 의미에서 1970년대 청계피복 노동자 전태일 씨의 분신이 노동자의 권익과 노동법 개정을 향한 첫 출발이 되었듯이, 이번 두 여중생의 압사 사건은 미국에 대한 한국민의 자존심 회복과 SOFA 등 한미간 불평등한 법과 제도를 바로잡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