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통일뉴스 편집국장)


부시 미국 대통령이 16일 발표한 대북 성명으로 인해 이른바 `북핵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10월초 켈리 특사의 평양방문후 아흐레가 지나 미국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불거져 나온 `북핵시인`을 둘러싼 북미간의 공방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미국(부시)의 본심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한마디로 북한을 치겠다는 것인가 말겠다는 것인가.

`북핵문제`와 관련 북한은 10월25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힌 바 있다. 즉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무모한 정치 경제 군사적 압력책동으로 하여 우리의 생존권은 사상 최악의 위협을 당하고 있으며" "작은 나라인 우리에게 있어서 모든 문제 해결방식의 기준점은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의 위협의 제거이다." 따라서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통해 우리에 대한 핵불사용을 포함한 불가침을 법적으로 확약한다면 우리도 미국의 안보상 우려를 해소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달초 평양에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등을 만나고 서울에 온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는 "북한측은 진심으로 미국으로부터 공격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북한측에서는 미국측에서 북한을 날려버리지 않겠다는 확신을 제공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과연 `큰 나라`인 미국이 `작은 나라`인 북한을 칠 것인가? 백악관 웹사이트에 올린 부시의 대북 성명은 이에 대한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 부시는 성명을 통해 어떤 본심을 전하고자 했을까?

첫째, 시기의 문제로서 부시는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14일 대북 중유지원 중단을 결정한지 하루만에 전격적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그 이유로서 `미국은 대북 중유지원 중단 조치를 북한이 강경책의 시작으로 오해하고 극단적인 대응으로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극단적인 대응`이란 북한이 KEDO의 결정을 북미기본합의서 파기의 신호로 해석하고 94년 이후 동결시킨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거나 또는 미사일 실험발사 유예조치 해제를 일방적으로 선언한 뒤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1994년 `핵위기` 때처럼 불가항력적인 상태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이는 미국으로서도 겁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부시는 일단 이를 막아야겠다고 판단했을 터이다.

둘째, 형식상의 문제로서 부시가 기자회견이나 제3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성명으로 발표한 점이다. 이는 대통령 성명이 갖는 무게감과 함께 그를 통해 북한을 향한 체면치레용 성격이 짙다. `북한이 요구하는` 불가침 조약은 아니더라도 `부시 나름대로의` 불가침 `성명`은 된다는 의미다. 또 `큰 나라`의 대통령이 `작은 나라`한테 성명으로까지 발표하니 충정(?)을 알아달라며 이에 상응하는 대답을 기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셋째,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성명이 담고 있는 내용이다. 성명은 두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나는 `북한의 국제약속 위반은 묵과될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을 침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쪽에 더 방점이 놓여 있을까? 즉 어느 쪽이 부시의 본심에 가까울까?

북한은 그레그 전 대사가 방북했을 때, 부시가 지난 2월 방한시 도라산역에서 연설한 `북한 불침공` 약속발언을 중히 여기고 있음을 내비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성명에서 부시가 이를 구태여 재확인한 것은 북한의 관심사에 대한 `성의 있는` 응답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부시 성명의 방점은 `북한을 침공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또 그것이 부시의 본심이라는 뜻도 된다.

이렇게만 본다면 이번 부시의 대북 성명은 이전의 어느 기자회견이나 연설 등에 비해 다소 바람직하고 또 전향적인 면이 없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못내 씁쓰레한 것은 모든 것을 갖고 있는 `큰 나라`인 미국이 `작은 나라`에 있어 생명과도 같은 자존심마저 챙기려 한다는 것이다. 부시는 형식적으로는 북한의 체면을 살려 주지만 내용적으로는 어쨌든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라는 것이다.

다소 전향적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에서 북한이 받기를 기대했다면 이는 부시의 오산이 될 공산이 크다. 아니나 다를까, 당장 북한은 17일 평양방송을 통해 부시의 불침공 의사에 대해 그를 `뒤집어 놓은 침략타령`이라면서 여론 조성용 외교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며 일축했다. 물론 이것을 북한의 공식적인 반응으로 보기는 어렵다.

`큰 나라`인 미국의 최고지도자 부시가 `작은 나라`인 북한과 대화를 하려면 응당 북한의 자존심을 살려줘야 한다. 그리고 `대북 불침공` 본심이 사실이라면 이를 어떻게든 북한측에 전달해야 한다. 이것만이 부시의 본심이 흑심이 되지 않는 길이다. 그런데 부시가 자신의 본심을 북한측에 전하기 위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14일 KEDO는 12월분부터 중유 북송 중단과 경수로 사업 재검토를 결정한 바 있다. 12월분 중유공급 여부가 새달 11∼12일께 결정할  예정이라면 역산해서 지금으로부터 3주가 남은 셈이다. 즉 3주안에 부시는 자신의 본심을 북한측에 전달해야 하고, 북한은 이 기간이 지나면 모종의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마침 부시 대통령은 이달 유럽순방외교 중 22일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특히 이번 미-러 정상회담에서는 북한 핵개발 문제가 주요 의제로 잡혀 있다고 한다. 이 회담을 통해 부시가 푸틴에게 자신의 본심을 알릴지가 관심의 초점이 될 것이다. 러시아는 이제까지 북핵문제와 관련 미국측을 일방적으로 비판해 왔다.

따라서 북미간 대화 채널이 막혀 있는 조건에서 부시가 푸틴을 이해시킨다면 이는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될 공산이 크다. 부시가 이번 대북 성명에서 보여준 자신의 본심이 흑심이 아니라 진심임을 밝혀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