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해왔다고 인정했다는 미국 국무부의 발표가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어느 나라든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배치하는 데는 반대하지만, 세계 최강의 미국에게 굽실거리지 않으면서도, 그 오만한 제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북한의 외교술과 배짱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평양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거나 이미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거나 도쿄를 폭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냉전 종식 이후 대량 살상 무기의 확산 저지를 대외 정책의 가장 큰 목표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는 와싱턴과 협상을 벌이기 위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급하지도 않고 아쉬울 것도 없다는 부쉬 행정부에게 `우리가 핵무기를 개발해왔고 더 강력한 무기도 지닐 수 있는데도 우리를 무시하며 협박만 늘어놓겠느냐`며 빨리 대화에 응하라고 다그친 게 아닐까 생각한다.
 
한편 김정일과 부쉬의 이러한 기 싸움에 대해 차분한 분석 없이 편파 왜곡 보도를 일삼는 남한의 수구 언론인들과 북한에 대한 강경 정책을 선동하는 극우 정치인들에게는 분노를 참기 어렵다. 지난 1993년 7월 클린턴 대통령이 판문점을 방문하여 "만약에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핵무기를 개발해 사용한다면 그들의 국가는 종말이 될 것"이라고 말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바다 건너 이민족이 수천만 동포를 핵의 잿더미 속에 묻어버리겠다고 위협하는데도 남한의 언론과 정계에서는 "미국의 강력한 대북 안보 의지 표명"이라며 환호를 보냈으니, 미제 핵무기에 의해 북한이 통째로 없어져버리면 남한은 더욱 무사하고 안녕하리라 생각했을까. 그 때 클린턴은 "핵무기를 개발해 사용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아 북한을 핵무기로 공격하겠다고 위협한데다 이미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으니 이 얘기는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그러나, {남이랑 북이랑} 2002년 4월호에 소개했듯, 지난 3월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미국의 [핵태세 검토]는 현재 진행형이다. 2002년 9월 발표한 국가 안보 계획에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무시할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북한과 이라크는 물론 중국과 러시아 등 미국의 비위에 거슬리는 7개 나라들에 대해 핵무기로 먼저 공격할 수도 있고, 북한의 지하 시설 등을 폭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런데도 남한의 언론인들과 정치인들은 점잖은 우려를 표명했을 뿐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인보다는 미국의 핵무기 사용 검토가 훨씬 더 위험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위험한 게 있으니, 미제 핵무기는 평화를 위한 것이요 북한제 핵무기는 전쟁을 위한 것이라는 남한 사회의 사대주의적이고 반민족적인 편견과 왜곡이다. 핵무기는 몸뚱이를 불구로 만들지만 편견과 왜곡은 의식을 불구로 이끌기 때문이다.

제네바 합의는 미국이 더 먼저 더 많이 지키지 않았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이는 분명히 1994년 10월의 제네바 북미 합의에 어긋난다. 물론 남한에도 잘 알려진 셀리그 해리슨 같은 전문가는 제네바 합의가 플루토늄을 통한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조치였기 때문에, 우라늄을 통한 핵무기 개발은 북미 합의를 위반한 게 아니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이와 비슷하게, 제네바 합의는 우라늄에 관해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이 약점을 이용해서 핵무기를 개발해온 것 같다는 추측도 나온다. 그러나 플루토늄으로 만들든 우라늄으로 만들든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두 나라가 "핵이 없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문 제 3조를 위반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까지 8년이 흐르도록 더 먼저 그리고 더 많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쪽은 미국이었다. 합의문 제 1조에서 2003년까지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했지만, 2010년 이전에는 완공될 수 없다는 게 미국측의 예상이다. 완공 목표 시기가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데는 1990년대 초반부터 유행했던 `북한 붕괴설`과 관련이 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갑자기 죽자, 미국은 북한이 머지 않아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갖고 1994년 10월 북한에 대한 중유 지원과 경수로 건설을 부담 없이 약속했는데, 북한이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으니 적지 않은 부담이 되어버린 것이다. 경수로 건설 비용은 남한과 일본에 떠넘기고 완공 시기는 7-8년 뒤로 미루게 되었지만, 중유 지원은 꾸준히 해오고 있으니 이 정도는 약속 위반도 아니라고 치자.
 
제 2조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완화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깡패 국가"로 낙인찍으며 제대로 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완전한 정상화로 나아간다고 했지만, 다른 나라들이 북한과 수교하는 것까지 막았다. 북한의 극심한 전력 부족 때문에 남한이 석탄을 보내겠다고 약속해놓고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남북 사이에 평화 선언조차 못하고 있는 것도 미국의 개입과 방해 때문이다. 나아가 북한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항인 제 3조에서 미국이 북한에게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사용하지 않겠다고 보장했지만, "악의 축" 가운데 하나라며 땅굴까지 침투할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들어 폭격하겠다는 계획까지 검토하지 않았는가.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한이 먼저 약속을 깨거나 이른바 "벼랑끝 외교"를 펼치며 위협을 가한 적은 거의 없다. 미국의 약속 위반이나 협박에 대응해왔을 뿐이다. 1994년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미국이 1950년대부터 북한에 핵 공격을 위협하기 시작하며 1958년부터 남한 땅에 핵무기를 들여놓자, 북한은 1960년대부터 땅굴을 파며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1991년 남한에 있던 핵무기를 철수하자, 북한은 남한과 한반도 비핵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1991년 중단됐던 미국과 남한의 합동 군사 훈련 (팀스피리트)이 1993년 재개되자, 북한은 핵 비확산 조약 (NPT)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미국이 북한과의 회담에 응하겠다고 하자, 북한은 탈퇴를 유보했다. 이렇듯 미국에 일방적으로 당하거나 끌려가지 않고 밀고 당기며 협상을 유도해왔던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미국의 무시나 약속 위반 또는 압력이나 횡포에 맞서 북한이 적절하게 사용해온 외교 기술이 핵 개발이나 보유에 대해 입을 다물거나 의혹을 부풀리는 침묵 정책이다. 북한이 핵무기가 있다고 말하면 미국이 함부로 선제 공격을 할 수 없도록 만들겠지만 국제적 협정 위반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고, 없다고 말하면 미국으로부터 협상 가치가 없다며 무시당하거나 맘에 들지 않는다고 쉽게 폭격당하기 쉬울 것이기 때문에, 애매하게 입을 다물어온 것이다.
 
이는 원래 해외에 배치한 핵무기 존재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핵무기 정책으로 흔히 NCND (Neither Confirm Nor Deny) 정책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미국이 1958년부터 1991년까지 33년 동안이나 남한 땅에 핵무기를 배치해 놓으면서도 남한 국민은 물론 위정자들에게도 공식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정부에 대한 질의를 통해 국방부장관에게 "우리 땅에 핵무기가 있느냐"고 물으면 "나도 모른다"는 썰렁한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은 대체로 북한이 핵무기 1-2개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추정한다. 2002년 4월 및 10월 미국 의회에 보고된 정보에 따르면, 중앙정보국 (CIA)이나 국방정보국 (DIA)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맺기 전인 1993년 말 이미 핵무기 1-2개를 만들었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지난 9월 북일 정상 회담을 위해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에 들어가기 전날에 이어 10월 중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인에 관한 미국 국무부 발표가 나온 날, 럼스펠드 국방부장관이 느닷없이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는 바람에 남한에서는 적지 않은 소동이 일어났었는데, 그는 이미 2001년 8월 모스크바에서 북한이 "2-3개 어쩌면 4-5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갖고 있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남이랑 북이랑} 지난호에서 소개했듯 미국에서 "북한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통하는 재일동포 김명철 박사는 며칠 전 나에게 보낸 논문에서 북한은 이미 1980년대 중반에 적어도 50개 정도의 핵무기를 만들었으리라고 주장한다. 이 논문은 노틸러스 연구소 홈페이지 (www.nautilus.org)에도 실려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아무튼 미국 정보국들의 결론이든 국방부장관의 발표든 전문가들의 주장이든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확신이 아니라 추정일 뿐이다. 북한의 침묵 정책 때문이다.

김정일의 기만 전술과 배짱
 
여기서 입다물기 또는 의혹 부풀리기 정책의 효과를 보여주는 얘기 한 토막 소개한다. 늙어서도 재산이 많아야 자식들에게 설움 받지 않는다는 요즘 남한의 세태를 풍자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 시어머니가 자나깨나 고쟁이 (속옷)에 주머니를 차고 있으면서 매우 소중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다루었다. 며느리들은 그 안에 땅문서나 예금 통장 또는 귀한 보석 같은 값진 물건이 들어 있으리라 믿고, 서로 그것을 물려받으려고 경쟁하듯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 시어머니가 죽자 며느리들이 큰 기대를 걸고 그 주머니를 열었는데 아무 것도 없었다. 빈 주머니였다. 가진 게 없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에게 구박받지 않으려고 꾀를 부렸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어머니를 슬기롭다고 치켜세울 수도 있고 교활하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교활한 시어미를 욕하려면 돈 없다고 부모까지 천대하는 세태를 먼저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 북한이 "벼랑끝 전술"을 편다고 비난하려면, 북한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온 미국의 행태를 먼저 비판하라는 뜻이다.
 
이제 이를 응용한 실화 한 토막 덧붙인다. 앞에서 소개한 "북한의 비공식 대변인" 김명철의 {김정일의 통일 전략}에 실린 얘기다. 1998년 5-6월경 김정일이 북한군 간부들을 집무실로 불러, 미국의 정찰 위성이 북한 상공을 통과하는 시간에 맞춰 금창리에 수천명의 인민군을 동원하여 비밀 공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하라고 명령했다. 이 모습은 당연히 미국의 정찰 위성에 찍혔다. 국방정보국은 이 사진의 분석 결과와 함께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뉴욕 타임즈}에 흘렸다. 금창리 지하 시설이 세상에 알려지고 남한 언론이 호들갑을 떨게 게 된 배경이다.
 
이와 아울러 북한은 1998년 8월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1993년 5월에 이어 두 번째 미사일 발사 실험을 겸한 것이었다. 한편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체하며 다른 한편으로 로켓을 쏘아 올린 것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핵은 땅속으로 숨겨 애매하게 만들어야 협상 가치가 커지고 미사일은 하늘높이 올려보내 성능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협상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여 미국이 주저없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도록 양수겸장을 쳤을 것이다. 둘째, 미국이 금창리 지하 시설에 대해 의혹을 품고 협상을 벌이는 대신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트집을 잡고 폭격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우리도 너희를 때릴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가지고 있으니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는 견제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김정일이 교활하면서도 치밀했다고 할까. 미국이 금창리 지하 시설 확인을 요구하자, 북한은 그곳이 국가 안보에 중요한 군사 시설이라 그냥 보여줄 수 없다며, 핵무기 개발 관련 시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위자료 3억 달러를 내라고 했다. 미국이 이를 거부하며 제네바 합의를 파기할 수도 있고 북한을 선제 공격할 수도 있다는 등 위협을 했지만, 북한은 움츠려들기는커녕 "지구상에서 조선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며 "전쟁이 일어나면 아예 미국을 날려버리겠다"고 오히려 큰소리쳤다. 이러한 험악한 말싸움 끝에 미국이 결국 협상에 응했으니 그 결과가 다음의 세 가지다.

제네바 합의 이후의 북미 관계
 
첫째, 1999년 5월 미국의 핵 전문가들이 금창리 지하 시설 내부 및 그 주변의 댐과 변전소 등도 방문하기로 했다. 찾아가 살펴본 뒤 그 시설들이 핵무기 개발과 관련 없다는 것을 밝혀내고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에 앞서 1998년 11월부터 1999년 3월까지 네 차례 협상을 하는 동안 북한 대표단의 여비와 숙박비를 모두 미국이 부담하고 지하 시설에 접근하는 대가로 약 3억 달러 어치의 식량을 제공해야 했으니, 당시 미국 국방부장관의 말대로 텅 빈 땅굴 한 번 들여다보는데 엄청난 관람료를 지불한 셈이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것은 애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김정일은 크게 사기를 쳐서 미국에 바가지를 씌웠으니 북한의 기만 전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약소국들에게 전쟁을 외교 수단으로 쓰는 미국보다는 세계 최강대국에게 속임수를 외교 수단으로 삼는 북한이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훨씬 낫지 않은가.
 
둘째, 1999년 9월 베를린 합의를 맺어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대신 미국은 경제 제재를 완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는 의회의 반대로 경제 제재 완화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고, 부쉬 행정부는 합의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편, 19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와 1999년 9월의 베를린 합의 사이에는 미국의 입장에서 크게 두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제네바 합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것이요 베를린 합의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한 것이다. 둘째, 1994년에는 북한이 머지 않아 무너지리라 기대했었지만 1999년에는 그런 기대를 접어야 했다. 혹시 북한이 언젠가 붕괴되더라도 그 전에 미국 본토까지 날아올 수 있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 (ICBM)을 개발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에 따라 북한과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이른바 "페리 보고서"가 나온 것이다.
 
셋째,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성명을 통해 두 나라가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꾸고, 적대 관계를 종식시키고 국교를 정상화하며, 경제 협조와 교류를 발전시키기로 했다. 또한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중단하고, 한국 전쟁 중에 실종된 미군 병사들의 유해 발굴 사업에 지속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여전히 중단하고 있으며, 1996년부터 시작된 유해 발굴 공동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2002년 9월까지 약 170구의 유골을 찾아 미국측에 넘겨주었다. 그러나 부쉬 행정부는 북미 공동 성명이 클린턴 행정부 때 이루어진 것이라며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미사일 방어망을 세우기 위해, 러시아는 이미 무너진 소련이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워, 1972년 소련과 맺었던 탄도탄 요격 미사일 (ABM) 협정을 일방적으로 폐기했던 것처럼 말이다.

북한이 바라는 것은 불가침 협정과 평화 조약 그리고 국교 정상화
 
아무튼 지금까지 북한과 미국 사이에 이루어진 1994년의 제네바 합의나 1999년의 베를린 합의 또는 2000년의 공동 성명을 통해, 북한은 미국과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 협정 및 국교 정상화를 이루려 했고, 미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으려고 했다. 그런데 미국은 특히 부쉬 행정부가 들어선 뒤 북한이 바라는 것은 주지 않으면서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을 포기하도록 강요해온 것이다. 게다가 휴전선 근처의 재래식 무력에 관해서도 시비를 걸었다. 제네바 합의에서부터 지금까지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얻고자 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다. 전력이 부족하다고 중유와 경수로를 받기로 한 것은 부차적인 것이지 핵심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무너지기를 기대하는 한편 "깡패 국가"니 "악의 축"이니 하며 북한에 대한 적대 정책을 오히려 강화해왔을 뿐이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의 간섭과 방해가 그치지 않는 한 남한과 아무리 교류 협력을 늘려도 공동 평화 선언조차 하지 못하고 일본과 수교 협상을 벌여도 결실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특사에게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폭탄 선언을 한 게 아니겠는가. 북한은 10월 25일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이 점을 확인하며 거듭 강조했다. "우리는 최대의 아량을 가지고 미국이 첫째로 우리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둘째로 불가침을 확약하며, 셋째로 우리의 경제발전에 장애를 조성하지 않는 조건에서 이 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주었다." 그리고 핵무기 개발을 무조건 먼저 포기해야 협상에 응할 수 있다는 미국의 요구와 주장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지금 미국과 일부 추종 세력들은 우리가 무장을 놓은 다음에 협상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것은 매우 비정상적인 논리이다. 우리가 벌거벗고 무엇을 가지고 대항한단 말인가. 결국 우리보고 굴복하라는 것이다. 굴복은 죽음이다. 죽음을 각오한 자 당할 자 없다. 이것이 선군 정치를 끝까지 받들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신념이며 의지이다."

미국의 대응 : 이라크는 침공해도 북한은 폭격하지 못하는 배경
 
이에 대해 미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앞으로 북미 관계는 어떻게 진전될까? 미국이 즐겨온 대외 정책 수단의 하나가 폭격과 전쟁이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당장 그럴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을 것 같다. 9ㆍ11을 계기로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시작한지 1년이 지났지만, [알 카에다]의 빈 라덴은커녕 [탈레반]의 오마르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 10월부터 미국 전역을 공포로 몰았던 탄저균 사건이 터진지 역시 1년이 흘렀어도, 세계적으로 3,000명 이상의 혐의자만 확보했지 범인은 못잡고 있다. 게다가 요즘엔 미국의 테러 전쟁을 비웃듯, 테러가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 1월 미국인 기자가 파키스탄에서 납치된 것을 시작으로 3월엔 교회가 폭파되었고, 4월엔 사원이 불탔으며, 5월엔 버스가 폭발했고, 6월엔 미국 영사관 밖의 차가 터졌으며, 9월에도 차가 폭발했는데, 10월 들어서는 2-3일에 한번 꼴로 필리핀, 예멘, 쿠웨이트,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지에서 테러가 벌어진 것이다. 한편, 테러 전선이 한없이 확대될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부쉬는 사담 후세인이라도 잡겠다며 이라크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9월부터 이라크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고, 쿠웨이트는 10월 전국민에게 가스마스크를 원가로 공급할 계획을 발표하는 가운데, 미국이 이라크 주위로 스텔스 폭격기들을 전진 배치시키고 특수 부대를 이미 이라크 안에 침투시켰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가 불거졌으니, 미국이 아무리 가공할만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북한과의 전쟁까지 계획한다는 것은 무리 아니겠는가. 더구나 미국은 북한이 세계 4위의 군사강국으로서 주한미군 기지와 주일미군 기지는 물론 미국 본토까지 핵무기와 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는 보복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데다, 남한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등이 완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럼스펠드 국방부장관을 포함해 미국의 강경파들도 김정일은 사담 후세인과 다르다며 북한을 다소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어색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있거나 갖고 있다고 믿어지는 북한은 폭격하지 못하면서, 그러한 무기들을 개발할 의사만 가지고 있지 아직 개발하지 못한 게 확실하다는 이라크는 기어코 폭격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온갖 옹색한 변명이 나오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바그다드와 평양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미국의 위정자들은 물론 언론도 시원하게 밝히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라크는 미국이 꼭 필요로 하는 석유를 갖고 있고, 북한은 미국이 두려워하는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모른 체하며 무시할 수도 없을 것이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대외 정책 목표 가운데 하나가 대량 살상 무기의 세계적 확산을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으리라 추정하는 것과 공개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남한과 일본 역시 핵무기를 개발하겠노라고 나설 게 뻔하지 않은가. 게다가 북한은 "세계 제일의 탄도 미사일 장사꾼"이라는 라이스 안보담당 보좌관의 말대로 미사일 수출을 많이 하는데, 미국이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제네바 합의는 깨지는 게 낫다
 
따라서 미국은 먼저 북한에 대해 여러 가지 압력과 협박을 가하면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도록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대북 경제 제재를 강화하며 1994년의 제네바 합의를 공식적으로 깨고 중유 제공을 중단할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은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이 지금까지 제네바 합의를 잘 지키지도 않았고 특히 부쉬 행정부는 이를 깨려고 해왔기 때문에,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물론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게 미국이 제공하는 약 1억 달러 상당의 중유 50만톤은 적지 않은 양이지만, 그것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전체 에너지의 1% 안팎에 불과하고, 90% 정도는 중국에서 공급된다고 한다.
 
북한에 대한 일방적 압력과 협박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미국은 결국 북한을 달래며 협상을 벌이지 않을까. 부쉬 행정부가 이라크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데다, 북한이 미국보다 더 아쉽고 조급하리라는 생각으로 서두르지는 않겠지만, 머지 않아 협상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은 엄청난 갈등과 진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호전적"이라는 북한이 1974년부터 줄기차게 요구해온 평화 조약 또는 불가침 협정을 "평화적"이라는 미국이 한사코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바꾸거나 철수해야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실질적으로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해서보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남북 통일이 되더라도 2015-2020년 무렵까지는 미군을 남한 땅에 주둔시키려 하고 있는데, 남북 사이에 또는 북미 사이에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서로 침략하지 말자는 협정을 맺게 되면 명분상으로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가 없어져 버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남한에서 주한미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날로 커지고 있는 데다, 북한이 1950년대부터 줄기차게 제안해온 대로 남북 군대를 각각 10만 안팎으로 줄이자거나 요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얘기처럼 휴전선 근처에 집중된 병력의 이동을 포함해 인민군 50만명 정도를 일방적으로 줄이겠다면, 미국이 마냥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주한미군을 통해 중국과 북한을 견제하며 동북아에서 패권을 유지하는 것과 한반도의 평화 협정을 통해 미국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모를 핵무기와 미사일을 갖지 못하게 하며 이런 대량 살상 무기의 확산을 줄이는 것 가운데 궁극적으로 후자를 택하리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하게 된다.
 
제네바 합의는 깨지는 게 낫다.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라면 차라리 깨져야 한다. 그리고 양쪽 다 지킬 수 있는 불가침 협정, 평화 조약, 국교 정상화 등의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마침 2003년은 정전 협정이 맺어진 지 50주년이 되는 해인데, 새로운 북미 협상을 계기로 한반도의 어정쩡한 준전시 상태 또는 불안한 휴전 상태가 완전히 종식되고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한다. (이 글은 월간 {통일한국} 2002년 11월호에 실린 원고를 크게 늘리고 고쳐, [남이랑북이랑] 11월호에 실은 것을 다소 손질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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