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의 취지에서 마지막 것은 `실용 정신의 구현`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지에서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널리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라고 밝혀져 있습니다. 한글이 쉽게 배워서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글은 창제 취지가 무색하게 보편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한자의 보조 수단으로만 쓰였습니다. 그것은 위에서 본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한글 창제의 목적 자체에 한글을 제한적으로 쓰일 수밖에 없게 만든 지배층의 의도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의 행정 기관에서는 한자를 그대로 썼습니다. 다만 민중들과 직접 상대하는 말단 관리인 서리들에게만 의무적으로 한글을 쓰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중인 신분이던 서리들은 한글을 쓰면 자신들의 지위가 낮아질까 봐 한글을 좀처럼 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전까지 쓰고 있었던 이두를 고집스럽게 지켰습니다. 서리들의 거부감 때문에 한글은 만들어진 다음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것도 제한적으로 관청에서 쓰여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창제 배경의 한계는 한글의 약점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한글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해도 나름대로의 약점은 있습니다. 한글의 가장 커다란 약점은 전형적인 낱소리글자인데도 실제로 그것을 맞추어 쓸 때는 단어 단위로 가로로 풀어쓰지 않고, 음절문자처럼 소리마디마다 쓰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단어간의 구분을 매우 어렵게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한글을 쓸 때 띄어쓰기 때문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글은 낱소리글자(음소문자)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소리마디글자(음절문자)의 수준에서 머문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글이 이러한 약점을 지니게 되는 것은 한글 창제의 주체였던 봉건 지배 세력이 한글을 만들 때 한자의 보조 수단으로만 생각해 표음문자인 한글을 표의문자인 한자를 쉽게 번역할 수 있는 도구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선 왕조 내내 한글을 보조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양반들의 생각이 그대로 유지되었고, 그 뒤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과 분단 때문에 한글은 창제된 지 5백년이 지나도록 이러한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분단이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가 되는 점은 남북 양측 모두 언어의 이질화를 우려해서 이러한 약점을 과감하게 극복하기 위한 조치를 미룰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글의 발전을 위해서도 통일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게 됩니다. 물론 통일 이전에 남북한 국어학자들이 이런 점을 논의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는 것도 바람직하겠지요.

지금까지는 한글의 창제 배경이 지니는 면에서 부정적인 측면을 주로 봤습니다. 그런데 세상 만사는 어느 것이나 반대 측면이 있는 법입니다. 앞에서 한글을 `민중의 전리품`이라고 했는데, 지배층의 관점에서는 민중에게 던진 `당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민중은 지배층이 당근을 던질 때 그것을 또 적극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 활용하기도 합니다.

한글 역시 효율적인 통치 수단이나 민중 교화 수단 등 지배층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쓰일 뿐 아니라, 반대 측면으로도 쓰였습니다. 즉, 민중이 적극적으로 한글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한 것이지요.

한글이 반포된 지 3년만에 대신들을 비방하는 `언문벽서`가 나왔고, 세종 뒤로는 이러한 일이 매우 잦아졌습니다. 조선 왕조의 이름난 폭군인 연산군이 한글로 된 책들을 불사르고 한글 사용을 억압했던 것은 한글이 민중의 저항 수단으로 널리 쓰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조선 중기부터는 조선 봉건 체제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들의 글이나, 개혁을 요구하는 실학자들이 민중을 대상으로 쓴 글들은 거의 다 한글로 쓰였습니다.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최만리들은 바로 이러한 것을 우려해 반대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말해지듯이 이들이 한문을 숭상하는 사대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한글을 씀으로써 민중의 의식이 성장하고, 한글이 민중의 저항 수단으로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한글 창제에 대한 찬반 논쟁의 핵심은, 한글 창제가 민중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에 이바지할 것이냐, 아니면 민중에게 저항의 무기를 주는 것이냐 하는 점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볼 때 한글은 백성을 어여삐 여겨서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민중의 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문자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자, 그에 부응하면서도 그것을 기회로 민중을 가르치고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한글 창제의 배경이 한글이 창제되고 500년도 더 지난 오늘까지 한글 전용이냐 국한문 혼용이냐 하는 논란이 나타나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부 유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 창제를 결심한 세종의 결단력과 집현전 학자들의 우수한 능력과 노고를 과소 평가하거나 폄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러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사람들은 바로 이름 없는 농민들, 장인들, 천민들이었다는 것을 자랑스러운 한글을 생각할 때마다 잊지 말고 떠올려야 하겠습니다.

따라서 한글 창제를 둘러싸고 그리고 그 뒤에 한글 사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과 다툼은 바로 민족 자주와 반민족 사대의 싸움이었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수구세력과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개혁세력 사이의 싸움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누가 이겨야 한글이 약점을 극복하고 자랑스러운 글로 진정 우뚝 설 수 있는지는 너무도 분명한 일입니다. 오늘날 누가 한글 전용을 반대하고 한자를 써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는지를 보십시오. 그들이 바로 수구세력, 반민족세력의 선봉에 선 자들임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