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반도 내외 정세는 단순히 `변화한다`는 차원을 넘어 `요동친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격변하고 있다. 지난 7월말 북한의 6.29서해교전사태에 대한 `유감 표명` 이후 8월 들어 급물살을 탄 남북교류는 그 종류나 횟수가 너무 많아 이제는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게다가 북한은 8월 하순 북러정상회담에 이어 지난 17일 백년숙적이던 일본과 국교수교 재개를 위한 `조일평양선언`을 발표했다. 더 나아가 변화는 북한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북한은 7월1일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실시했으며 지난 19일과 20일에는 조선중앙통신이 `신의주 특별행정구를 내옴에 대한 정령 발표`와 `신의주 특별행정구 기본법 채택`을 각각 보도하였다. 이 놀라운 변화의 속도는 눈부실 정도다. 마치 비행기를 탔다가 기압변화에 귀가 멍해진 느낌이다. 이 급변이 어디서 시작됐고, 무엇을 향하고 있고 그리고 그 끝이 어디일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이런 변화의 와중에서도 분명한 몇 가지는 있다. 먼저,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북한이 서 있다는 것이고, 특히 경제관리 개선조치나 신의주의 특별행정구 설정은 오랜 준비 끝에 실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북한이 `계획된 변화`, `준비된 변화`를 하고 있는 셈이다. 원래 최근의 봇물터진 남북교류는 이미 임동원 특사가 4.5공동보도문에 합의한 사항들로의 복원이며, 갑자기 돌출한 듯한 북일정상회담도 사실 그 성사 과정에는 지난 1년간 30회 이상의 양국간 접촉이 밑거름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경제와 관련 신의주는 지난해 1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상하이를 방문했다가 귀국길에 들러 특구 설립 구상을 했으며, 경제관리 개선조치 역시 김 위원장이 작년 10월 경제관리개선지침을 이야기하면서 `실리우선` 원칙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북한의 경제문제와 관련된 실무적인 청사진은 신설된 국가계획위원회가 주도적으로 작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최근 북한의 일련의 변화는 준비된 변화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이러한 한반도 주변정세의 급변이 미.중.일.러 등 주위 열강들의 역학관계에 변화를 가져와 새로운 질서로 재정립된다는 점이다. 북한은 작년과 올해에 걸쳐 북-중-러 북방3국 관계를 복원.강화했다. 이에 한반도문제에 인계철선처럼 자동개입하게 된 일본은 북일정상회담을 통해 `보통국가`로 전환하면서 한반도문제에서 제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북한과 일본간에 국교가 수립된다면 이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있어 기본전략인 미일군사동맹에 일정 영향을 미치면서 그 하위구조인 한미군사동맹과 주한미군 문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당장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부터 삐꺽거릴 가능성도 있다. 보다 중요한 건 일본이 한반도문제에 개입하게 되면 동북아의 안보문제는 다자구도 즉 6자구도로 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조일평양선언`에서 `(쌍방은 북동아시아지역의) 관련국가들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지역의 신뢰구축을 위해 안보질서를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합의했다`는 내용은 그 단초를 여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곧 한반도에서 미국의 일방주의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섞인 전망을 낳게 한다.

이렇듯 북한의 준비된 변화와 그로 인한 한반도 주변정세의 급격한 변화는, 한반도 문제의 실질적 당사자인 남북한 대 이제껏 그 지위를 누려온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먼저, 북미간의 대화재개를 기대한다. 양국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래 제대로 된 대화 한번 나누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한반도를 둘러싼 4대 열강중 미국만이 유일하게 북한과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북한과 국교수교 재개를 위한 대화에 나선다면 미국도 마냥 팔짱만 끼고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벌써 한일 두 정상이 아셈(ASEM)회의에서 만나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재개에 적극 나서라는 압력(?)을 가할 정도이다. 다음으로, 한미간의 관계재정립을 기대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과 미.중.일.러의 관계가 변하고 있지만 한미관계만은 아직 요지부동이다. 하지만 일본조차 미일관계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것은 북한과의 사실상 `최초의 독자외교`를 통해 탈미(脫美) 과정을 거쳐 `일반국가`로 나아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고래 심줄 같던 미일관계에 변화가 온다면, 이는 그간 불평등 관계에 놓여 있던 한미관계에도 하릴없는 변화를 강제할 것이다. 남한도 이제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이나 급변하는 한반도 문제에 대처할 `만반의 준비`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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