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헌 (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 대표)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다.`

6·15남북공동선언 가운데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천명한 세 번째 항목이다.

이처럼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합의한 6·15남북공동선언 2돌이 지나고, 전쟁포로의 국제법상 권리와 부당한 강제전향을 무효선언하며 33명이 2001년 2월 6일 2차 송환을 요구하고 나선 지 1년 반이 다가오고 있지만 이 분들을 그리운 고향과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가게 할 남북사이에 어떠한 구체적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어 당사자들은 물론 송환을 바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6·15공동선언이 어떠한 이유로도 미루어져서는 안 될 7천만 민족 앞에 내놓은 약속이듯이 비전향장기수 송환 또한 공동선언 이행의 구체적 실천이면서 인간의 기본권 실현이고 인도적 사업이며 무엇보다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위한 첫 걸음이라는 데에서 무엇보다 앞서 실천할 민족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면 1차 송환의 과정을 짧게 짚어보고 오늘 현재 추진하고 있는 2차 송환문제를 밝혀보기로 한다.

1차 송환 과정

1989년 사회안전법이 폐기되면서 풀려난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 노인이 새로운 문제제기를 했었다. 바로 전쟁포로의 국제법상 권리를 주장하며 원적지(이북 고향)로의 송환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1992년 양심수후원회 제4차 총회에서는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 노인 송환운동’을 특별사업으로 채택하고 기독교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천주교, 불교 등 인권·종교 단체들과 ‘이인모 노인 송환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결성, 1993년 3월 17일 마침내 송환을 이루어 내기도 했다.

이때 송환운동을 하면서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잠정적 정의도 내려진 바 있었다. 바로 ‘조국통일의 염원을 안고 수십 년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양심을 지켜온 사람들’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비전향장기수’ 송환운동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이인모 노인이 송환된 뒤 곧바로 본인들의 주장을 받아 안아 ‘김인서, 함세환, 김영태 노인 송환추진본부’를 결성하여 전쟁포로 출신인 이들의 송환을 촉구하면서 고향과 가족이 이북에 있는 모든 비전향장기수 송환도 주장했었다. 그리고 1999년 2월 25일과 12월 31일 마지막 남았던 비전향장기수 21명이 모두 출소했다.

이보다 앞서 25여 인권·종교·사회 단체로 구성된 ‘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는 적극적으로 송환운동을 하여 마침내 2001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장기수 송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비전향장기수 1차 송환이 이루어지기까지에는 아무래도 위에서 말했듯이 6·15남북공동선언을 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선언에 독립된 항목으로 자리잡기까지엔 또 다른 노력들이 있었다. 바로 송환된 당사자 자신들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열악한 감옥 조건, 잔혹한 고문 등 강제 전향공작의 엄혹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왔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발맞추어 양심수후원회를 비롯한 인권·종교·사회 단체들의 송환운동 또한 낮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통일부장관 면담, 조건없는 송환을 촉구하는 토론회, 거리캠페인, 서명운동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각계로부터 폭넓은 지지와 성원을 받을 수 있었다. ‘상호주의’니 ‘조건부송환’이니 하는 일부 부정적 주장들에도 설득과 이해를 시켜야 했었다. 강연회, 기고문, 기자회견, 방송출연 인터뷰 등 수없이 사회여론화 사업에 게으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63명의 1차 송환은 비록 정순택, 정순덕 두 분이 부당하게 빠지기는 했지만 6·15공동선언 이행의 첫 사업으로 남과 북, 해외 우리 민족은 물론 온 세계의 모든 송환을 염원했던 사람들의 기쁨이었고 양심과 인권과 인도주의 정신의 승리이기도 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

어떤 사람들은 9월 2일 1차 송환으로 비전향장기수 문제가 끝나지 않았느냐고 묻고 있다. 물론 1차 송환 희망자들은 위에서 말했듯이 정순택, 정순덕 노인을 빼고는 모두 송환되었기에 두 분만이 남아 있을 뿐이라고 오해할 소지도 있었다.

그러나 비전향장기수 문제는 한 번 송환만으로 끝낼 수 없는 송환 대상자의 유형별 차이와 남쪽 사회가 안고 있는 정치·사회적 조건, 당사자 개개인의 실존적 삶의 조건(가정 문제 등) 등이 겹쳐 작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1차 송환은 그 첫 걸음일 뿐 송환대상자가 있는 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반세기가 넘게 응어리진 한을 푸는 작업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송환운동이 1차 때만큼 쉽지 않다는 것도 인정한다. 1차 때는 상당수가 최근에 출소했거나 비전향장기수의 상징적(장기 구금 등) 인물들이 많았고 6·15공동선언에 따른 남북 사이의 화해·협력 사업이 큰 부담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사회 여론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엔 상황이 매우 다르다. 무엇보다 남북 사이의 당국자 대화가 끊기고 있는 경직 국면이고, 바로 그 배경으로 미국의 조국반도에서의 전쟁 책동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차 송환으로 비전향장기수 송환 문제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왜 1차 송환 때 신청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기도 한다. 있을 수 있는 의문이다. 그러나 2차 송환 희망자(신청자)들은 위에서 말했듯이 조건과 처지가 달랐었다.

줄여서 말한다면 비전향장기수 가운데 가족 문제 때문에 판단(신청)을 유보했거나 비전향 출소를 했지만 오랜 권위주의 체제 아래 탄압과 감시가 철저했기에 거의 잠행하다시피 하는 폐쇄적 생활 조건으로 송환과 관련된 정보나 통보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또 다른 유형으로는 1차 송환 신청을 했었지만 비전향자가 아니라고 제외되었던 정순택, 정순덕 노인처럼, 잔혹한 고문 등 강제 전향공작 과정에서 본인 의지에 반하여 강제로 각서에 지문을 찍은 사람들이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이렇게 강제로 전향 당한 사람들을 우리는 결코 ‘전향장기수’라 하지 않는다. 사상전향을 강제했던 사회안전법 자체가 사상·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위헌성 때문에 폐기되었으며 사상전향제도 역시 같은 이유로 또는 국제인권협약 등에 위배되기 때문에 정부 스스로 없애버렸듯이 부당한 법과 제도·정책 관행 등으로 그리고 잔혹한 고문 등 강제전향공작으로 본인 의사에 반하여, 인간이 견딜 수 없는 한계 상황에서 모인을 찍는(혹은 찍히는) 행위는 원천적으로 무효임으로 이들 모두를 ‘비전향장기수’라고 다시 규정하게 되었다.

때문에 우리는 구태여 전향·비전향의 구분을 하지 않는 것으로 비전향장기수 송환 원칙을 세우고 있었고, 지난해 8월 3당 정당(김원웅, 이종걸, 천영세) 언론인, 통일 연구자, 교수 등이 함께 한 토론회에서도 재확인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숱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던 전향공작에서 끝가지 의지를 굽히지 않은 신념의 강자로서의 비전향장기수의 존엄과 품위를 조금이라도 손상시키는 문제와는 전혀 다르다.

물론 자의로 전향을 하여 동지를 배신하고 권력에 굴복, 동원되어 그 노리개 노릇을 했거나, 적어도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체제를 선택하여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에 굴복 또는 자청하여 반동적 행위를 하지 않고 단지 이념적 지향에 따라 생활하는 사람들에겐 비난하거나 폄하하지 않아야 함도 분명하다.

다시 정리하면 여기서 말하는(송환과 관련) 비전향장기수는 어떠한 조건에서도 전향을 거부했거나 위에서 말했듯이 본인 의지에 반하여 강제 전향당한 사람으로 현재에도 자신들이 지향한 조국통일 염원과 정치적 신념을 지켜오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2차 송환 희망자들

2차 송환 희망자들도 1차 때처럼 송환을 주장하는 유형이 두 가지이다. 먼저 전쟁 포로의 국제법상 권리로서 원적지 송환을 요구하는 전쟁포로 출신들의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보안법 등 반인권·반민주·반통일 악법으로 장기 구금되었다가 풀려난 비전향장기수들의 구속되기 전 소속 지역 거주지 송환이다.

그러나 이들은 다같이 ①부당하게 장기 구금되었다는 점 ②잔혹한 고문 등 강제 전향공작에서도 자신의 통일염원과 정치적 신념을 바꾸지 않고 오늘까지 지켜오고 있다는 점 ③오랜 옥고에서 풀려나 형식상 자유인이 되었지만 보안관찰법에 의해서 그 외 방법으로 감시와 규제를 받아 오고 있다는 점 ④고향과 가족이 그리고 구속되기 전 거소지가 북쪽이거나 이념적 고향을 북쪽에 두고 있다는 점 ⑤자유 의사로 귀향의지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6·15남북공동선언에서 비전향장기수 문제 해결의 길을 터놓았고 우여곡절은 있지만 남북 사이엔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사업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마땅히 주장되어야할 전쟁포로의 국제법상 권리라든가 거주지 선택의 자유라는 인권 문제가 앞서야 됨에도 불구하고 6·15공동선언에서 천명한 대로 인도주의와 동포애 정신으로 그리고 분단상처의 응어리를 풀고 외세 간섭 없이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우리 민족 문제를 해결하는 뜻에서 어떠한 조건 없이 송환되어야 할 것이다.

2001년 2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2차 송환을 주장했던 33명(오늘 현재 32명)은 대부분이 전쟁 시기 또는 60년대에 구속되었기에 모두 나이가 많고 오랜 옥고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분들이다.

80∼87살이 8명, 70∼79살까지가 21명, 60∼69살까지가 3명, 60세 미만이 1명으로 대부분이 70살 이상 고령이고 고문과 장기구금에 따른 후유증, 청력장애, 허리와 무릎 등 퇴행성관절염, 지방간, 간장질환, 당뇨, 노인성고혈압, 노인성허약, 위장질환 그리고 뇌혈전, 뇌출혈 등으로 반신불수 등을 앓는 등 두세 가지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오랜 옥고를 치르고 나온 장기 구금 양심수(송환 신청자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체포되기 전 주소지를 보면 이북이 26명이고 이남이 7명으로 대부분 이북 출신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전쟁에 참전했던 전쟁포로 출신이 13명이고 정치공작원이 12명, 안내인이 7명, 기타 1명으로 되어 있다. 복역 기간을 보면 30∼35년이 5명, 20∼29년이 17명, 20년 이하가 11명으로 2/3가 20년 이상이다.

우리의 주장

이들은 남북으로 흩어져, 또 다른 아픔을 안고 살고 있는 일반 이산가족들과는 분명히 다른 국가권력의 부당한 권력에 의해 강제된 이산가족들이다. 그래서 우리(비전향장기수송환추진위원회)는 다시 정리하여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1. 6·15공동선언에서 천명된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어떠한 이유로도 미루어서는 안 된다. 때문에 비전향장기수가 송환 희망을 밝힌 이상 반드시 송환해야 한다. 따라서 9월 2일 1차 송환의 연장선에서 당시 가족 문제 등으로 유보했었거나 송환 사실 자체를 몰라 신청을 하지 못했던 비전향장기수를 즉각 송환하여야 한다.

2. 1차 송환에서 제외된 정순택, 정순덕 노인을 비롯하여 본인 의사에 반하여 잔혹한 고문 등으로 강제 전향당한 사람들 가운데 송환 희망을 밝힌 모든 사람들 또한 마땅히 비전향장기수로서 송환해야 한다.

특히 이 분들에겐 계속하여 과거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복역했던 것을 빌미로 반민주·반인권 악법이며 위헌성을 갖고 있는 보안관찰법을 적용시켜 감시와 규제 통제 행위를 하고 있다.

예로써 낙성대 ‘만남의 집’에 살고 있는 김영식 노인의 경우 이북에 가족이 있기 때문에 유사시 재북 가족과 접선하는 등 재범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보안관찰을 해야 한다는 공안당국의 임의 판단을 보내 오고 있었다. 도대체 전향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하여 송환이 안 된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것처럼 보안관찰을 비롯한 부당한 행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 사람이 다 알고 있는 ‘만남의 집’ 같은 곳에서 양심수후원회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분들도 이처럼 부당한 처분을 당하고 있는데, 외따로 생활하는 다른 분들은 과연 얼마나 심한 부당 행위를 당하고 있을지 보지 않아도 훤하다. 그래서(비국민으로 대우받는) 이 분들은 고향과 가족이 있는 곳, 본인이 희망하고 지향하는 곳으로 송환되어야 할 것이다.

3. 1차 송환에서 당시 93세된 노모를 모시고 가지 못했거나 결혼을 하여 호적에 올려 있던 부인조차 함께 가지 못했던 분들이 있다. 비전향장기수의 1차적 의미는 그들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지향해 왔던 세계로 돌아가는 문제였다. 노모님을 모시고 가거나 부부가 함께 가야함은 1차적 의미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인도주의 문제이며 인륜에 관한 문제이다. 이들의 재결합 문제는 바로 비전향장기수 송환의 연장 문제이다.

9월초 적십자회담에서 2차 송환문제 다뤄야

끝으로 57년만에 처음으로 민간통일운동 성원들이 서울에 와서 남측 대표단과 함께 8·15민족통일대회를 연 것을 비롯하여 한때 끊기고 있던 남북 당국자대화가 다시 시작되고 조국반도를 둘러싼 국제기류로 남북대화, 북·일, 북·미대화가 시작되었거나 곧 이루어질 조짐이 보이고 있어 한동안 진전이 없던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도 다시 물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바로, 9.4∼6일까지는 남북적십자회담이 금강산에서 잡혀 있고 민족명절 추석에는 남북으로 흩어져있는 가족들의 상봉이 예정돼 있는 등 6·15남북공동선언에서 천명된 인도주의 문제가 풀려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적십자회담에서는 6·15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를 의제로 세워야 할 것이며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반드시 만날 수 있게 2차송환 합의가 있게 되길 기대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이제까지 송환문제가 제자리걸음이었던 것은 남북당국자 대화마저 끊기게 했던 미국의 부당한 간섭과 전쟁책동 등으로 동북아지역에서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때일수록 미국의 패권주의 등 부당행위를 전민족적 차원에서 규탄하며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민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을 위해 자주와 통일로 가는 길을 활짝 열기 위해서도 인도주의 정신과 동포애로서 빠른 시일안에 비전향장기수 2차송환이 이루어지게 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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