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국(서울홍파초등학교 교사)


4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광진구의 동자초등학교에서 5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다. 5월 말일경에 있을 5학년 학생수련활동에서 장기자랑을 반별로 준비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학생수련활동에서 반별 장기자랑을 하게되면 그 때에 유행하던 댄스가요가 아이들의 유일한 장기발표 주제가 되고 있었다.

댄스가요에 맞춰 가수들의 몸놀림을 그대로 따라할 뿐 다른 것은 찾아볼 수 없었고 누가 더 잘 따라 하는지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것을 미리 예상한 선생님들이 회의를 통해 아이들에게 맞는 것들을 준비해보자 하고 반별로 준비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 반은 학생들과의 토론을 통해서 연극을 하게되었는데 학기초에 많이 가르쳐준 통일노래 때문인지 아이들이 통일에 대한 연극을 하자고 하는 게 아닌가? 야! 참 대단한 아이들이구나 하고 흐뭇하게 생각하며 같이 준비를 하게 되었다.

우선 대본을 완성해야 하는데 대본을 맡은 아이들 6명이 방과후에 남아서 며칠을 고생하더니 남달리 글재주가 있던 아이가 대표작가가 되어 대본을 완성하였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한국전쟁 이후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기면서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내용으로 시작해서, 어른들끼리 통일을 이루기 위해 많은 접촉을 통해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전되지 않고 싸움만 커지는 상황이 전개되어, 그럼 남북의 어린이들이 서로 만나서 우리들끼리라도 통일을 이루자는 합의를 이끌어내 결국 남북어린이 통일을 이루고, 결국 어른들도 거기에 영향을 받아 남북통일을 이루어 내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이런 생각이 아이들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런데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국어시간에 전체 아이들과 대본을 읽어보고 배역을 정하기 위해서 완성된 대본을 복사하려고 교무실로 아이들을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아이들이 교무실에 가서 교무보조 선생님께 복사를 부탁하려고 할 쯤 교감 선생님이 그 대본을 보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그 아이들에게 교감 선생님이 퍼부은 언행은 상상을 초월했다.

"누가 함부로 이런 것을 썼느냐? 아주 나쁜 짓이다! 누가 써주었느냐?"며 한시간 내내 아이들에게 협박에 가까운 폭언을 퍼붓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울기만 할 뿐이었다.

한시간 내내 심부름간 아이들이 소식이 없어 교무실로 내려갈 쯤 옆반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벌어진 그 상황을 내게 알려주었다.(그 선생님은 교무실에서 다른 업무를 보다가 목격을 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도 때마침 울면서 교실로 올라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도대체 이런 곳이 학교인가?` 싶어 교무실로 내려갔다. 소리를 있는 대로 교감에게 질렀다. 무슨 권한으로 아이들을 혼내며 만약 혼낼 상황이면 담임인 내게 연락을 하거나 위임을 했어야지 담임의 심부름으로 간 아이들에게 그 무슨 행동이냐며 따졌다.

교무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교감도 나의 저항에 흥분되어 싸울 기세로 다가왔고, 옆의 선생님들이 잡고 말리고 해서 어느 정도 진정되게 되었다. 나는 확실하게 교감 선생님에게 요구했다. "분명히 교감 선생님이 잘못했고, 때문에 지금 당장 아이들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결국 교감 선생님이 곧바로 교실로 올라와 그 아이들에게 일일이 사과를 하고, 내게도 사과를 하게되었다. 나도 언성을 높인 것에 대하여 사과를 하고 악수로 끝을 냈다.

그후 우리 반은 아주 열심히 준비했다. 아이들이 더욱더 의욕을 가지고 참여했고 음향과 효과음도 넣어가며 작고 아름다운 드라마를 완성해 내었다. 수련활동 장소에서 보여준 우리 반의 통일연극은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그 연극대본은 학급문집에 실려 영원히 보관중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한달 후에 남한의 리틀엔젤스 어린이 공연단이 평양을 방문하여 멋진 공연을 선보이고 헤어지는 날 평양예술단 어린이들과 서로 부둥켜안고 울며 대화대용 중에서 "이제 우리 남북어린이들은 통일을 이루었습니다"라는 장면을 TV로 보는 순간 몹시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이 이어졌다.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 어린이들만 같아도 통일은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통일운동단체에서 벌이는 각종 행사에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감정적인 통일운동은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라는 논리로 오히려 통일을 막는데 앞장섰고 수많은 사람을 구속하고 탄압하고 있다.

올해의 8.15 민족통일대회도 그런 면이 적지 않음을 볼 수 있었다. 같은 민족끼리 느끼는 절실한 감정이 통일에 방해된다면 그럼 어떤 감정으로 통일하자는 얘기인가? 결국 반통일세력의 논리일 뿐이다.

우리 교사들은 학생들과의 일상적 만남을 통해 통일을 이야기하고, 여러 체험을 함께 하여  그들을 통일주체로 성장시키고 통일의 주역이 되는 가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민족이 요구하는 교사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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