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통일뉴스 편집국장)



2002년 `8.15 민족통일대회`가 끝났다. 14일부터 17일까지 3박4일에 걸친 이번 서울대회는 지난해 평양대회와의 연관속에서 진행됐다. 따라서 이번 8.15 서울대회는 개최 직전까지만 해도 `북측이 과연 서울에 올 것인가` 또는 `서울행사가 무사히 잘 치러질 것인가`가 최대 관심거리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난해 8.15 평양대회는 `조국통일 3대헌장기념탑`에서의 개.폐막식 문제와 `만경대 방명록` 사태 등 숱한 파문속에 치러졌다. 그 결과 방북대표단 7인의 사법처리에 이어 불똥이 정치권으로까지 튀어 급기야는 당시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사태와 민주당-자민련 공동정부의 와해로까지 치달은 바 있다.

이같은 파장과 사태가 당시 수구 언론들의 침소봉대로 야기되었을지라도 또한 단순한 남북 민간차원의 행사에서 파생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타격은 6.15 공동선언에 합의한 남북 당국이 감당하기에는 매우 컸다고 아니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때의 교훈은 만약 다음에 약속대로 서울에서 8.15대회가 치러진다면 `하나도 안전, 둘도 안전, 셋도 안전`이었을 터이다.

어쨌든 이번에 북측 대표단은 서울에 왔고, 서울행사는 남북공동으로 무사히 끝났고 그리고 북측 대표단은 돌아갔다. 북측은 `약속`을 지켰고 남측은 `아무 탈없이` 대회를 마쳤다. 이로써 남과 북은 지난해 평양대회에서의 되새기고 싶지 않은 여운과 파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지난해 평양대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터에 이번 서울대회는 애초부터 정부측의 과도할 정도의 규제속에 진행될 수밖에 없는 원천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단적인 예로 8.15대회에 대한 정부측의 규모축소나 장소변경, 옥내행사로의 유도(誘導) 등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말이 유도지 민간측으로서는 하릴없는 선택이었다. `물 반(半) 고기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정부의 지나친 개입에 대한 한 표현으로 행사장인 워커힐호텔 실내외에는 어찌나 기관원이 많았던지 `대표단 반 기관원 반`이란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래도 이같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행사를 무사히 치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고 또 이에 남북이 암묵적 합의를 했다면, 모두가 인정하고 있듯이 이번 서울행사는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하나는 북측이 분단이래 최초로 비교적 대규모라 할 수 있는 116명의 대표단 일행을 보낸 점이다. 여기에는 북측 각 민간부문의 대표급과 실무 책임자급이 있었다. 북측은 진정한 민간차원의 남북교류를 원한다는 점을 과시했다. 이로써 북측은 `민간차원이 없는 북측이 진정으로 민간교류를 원하는가`라는 의심을 불식시켰다.

다른 하나는 민간차원의 남북공동 통일행사가 서울에서 처음 열린 점이다. 지금까지 8.15대회를 비롯한 남북행사가 평양이나 금강산에서 개최됐을 뿐 서울에서 남북공동으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북측은 `남측을 늘 자기네 안방으로만 끌어들인다`는 시비조 사람들의 견해가 단견이자 편견임을 입증시켰다. 이로써 북측은 이제까지 북쪽 지역에서만 행사를 치른 게 `특별한 사정`에 의한 이유있는 변명임을 인식시켰다.

분명 이러한 훼손될 수 없는 몇 가지 커다란 의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8.15서울대회를 두고 남북 민간이 만났다는 것 자체가 성과라든지 또는 아무 탈없이 무사히 행사를 마친 것 자체가 성과라든지 하는 등 `만남 그 자체`와 `성사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는 것은 아무래도 불만스럽다.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분명 뭔가 부족하다! 그것은 다름아닌 국민을 향한 민간통일의 목소리다. 경호와 재정 등 행사와 관련한 대부분을 정부당국으로부터 지원받을 수밖에 없는 민간통일운동이 그래도 독자적으로 국민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의 문제다. 즉 대(對)국민 메시지의 문제다. 숱한 어려움과 난관속에서 행사가 치러지고 또 남측 민간통일의 좁은 입지를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쉽게 생각하는 대목이 바로 이 메시지의 문제이다.

지난해 북측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북측은 평양대회에서 3대헌장탑 개막식을 강행하고 또 그 자리에 김영남 상임위원장 등 정부당국자가 대거 참석함으로써 민간통일운동의 지위를 격상시키면서 통일운동이 당국과 민간이라는 두 축으로 전개됨을 내외에 과시하고자 했다.

그리고 올해에도 북측은 한편으로는 민간차원에서 각 부문의 대표급과 책임자급을 대거 내세워 민간교류의 적극성을 알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예술단을 특색있게 보냄으로서 남측 국민들에게 `민족 감성`으로 호소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조선은 하나다`, `민족은 하나다`의 연장선에서 `민간은 하나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남측은 주최측임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메시지 전달에 실패한 듯하다. 북측보다 더 많고 다양한 대표단이 참가했고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남측 민간이 국민을 향해 `이번에 서울에서 남북 민간차원의 통일행사가 열리는데 그 의의는 이겁니다`라고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없었다. 이 메시지 부재로 인해 이번 8.15서울행사가 갖는 훼손될 수 없는 몇 가지 커다란 의의에도 불구하고 `만남 그 자체`나 `성사 그 자체`에만 성과를 두기가 껄끄로운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대회가 (민간의) 실력으로 `잘` 치러졌다기보다는 (정부당국 등) 주위의 배려와 (최근 정세 등) 천운속에 `무사히` 치러졌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호의적이고 유리한 기회가 또 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민간통일운동은 정부당국의 받을 수 있는 협조는 받되 독자적으로 할 수 있고 또 어려운 정세와 환경에서도 부침없이 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모든 과제는 온전히 남북공동행사의 주체인 `민족공동행사 추진본부`에게로 온다. 추진본부는 민화협과 7대종단 그리고 통일연대 등 3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추진본부 는 민간 통일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운명적으로` 3자의 단결을 도모하고 그 기초 위에 역할을 높여야 할 단계에 와 있다고 볼 수 있다. 추진본부의 3자가 하나가 돼야, 남북 민간이 하나가 되고 또 그래야만 국민에게 하나의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