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1일 오전 10시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한 호텔에서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를 위한 독자적인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을 개최했다. [사진 제공 - 외교부]
정부는 21일 오전 10시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한 호텔에서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를 위한 독자적인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을 개최했다. [사진 제공 - 외교부]

정부는 21일 오전 10시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한 호텔에서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를 위한 독자적인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을 개최했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한국인 희생자에 대한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아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별도의 추도식을 개최한 것이다.

외교부는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추도식에는 정부대표인 이혁 주일본대사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와 유가족 11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이철규 씨가 참석한 유가족을 대표해 추도사를 낭독했다. 이철규 씨는 고인이 되신 부친께서 강제동원되어 힘들게 고생하셨다던 이곳 사도광산에 와 보니, 부친의 아픔과 슬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부친을 더욱 가깝게 기억하게 된다고 감회를 밝혔다. 참석한 유가족들은 순서에 따라 차분하고 엄숙하게 개별적으로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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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 주일본대사는 추도사를 통해 조선인 노동자의 강제동원과 강제노역을 분명히 명시했다. [사진 제공 - 외교부]
올해 추도식에는  유가족 11명이 참석했다. [사진 제공 - 외교부]
올해 추도식에는 유가족 11명이 참석했다. [사진 제공 - 외교부]

이혁 주일본대사는 추도사를 통해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이 곳 사도 섬에는 조선총독부의 관여 하에 모집, 관알선 및 징용 등의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해야 했던 많은 한국인 노동자분들이 있었다”며 “모든 노동자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와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강제동원과 강제노역을 분명히 규정한 것.

이혁 대사는 “한국인 노동자분들이 더 위험하고 어려운 업무를 맡아야 했지만, 사도광산에서 일하신 모든 분들이 혹독한 노동과 열악한 생활을 견뎌야 했다”며 “앞으로 한일 양국이 고통과 아픔의 역사를 함께 기억하며, 협력과 연대의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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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식이 끝난 후 유가족들은 작년 추도식이 개최되었던 한국인 노동자 기숙사 터를 방문하여 헌화했다. [사진 제공 - 외교부]

추도식이 끝난 후 유가족들은 작년 추도식이 개최되었던 한국인 노동자 기숙사 터를 방문하여 헌화하고, 한국인 노동자 관련 주요 장소들을 방문하여 함께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도광산은 에도시대(1603∼1867)에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태평양전쟁이 본격화한 후에는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주로 이용됐다. 이때 식민지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 혹독한 환경 속에서 차별받으며 일했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사도광산에서 노역한 조선인 수는 1,519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은 조선인들의 강제노동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으로 일관해 왔다.

일본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대상 시기를 에도시대로 한정했고, 우리 정부는 ‘전체 역사’를 반영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데 동의하는 대신, 일본이 현지 유적지에 강제동원 역사를 제대로 표기하고 양국이 매년 7~8월 공동 추도식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일본측 추도사에 ‘강제성’ 표현이 우리가 수용할 수 없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일본측 추도식에 불참하고 별도의 추도식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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