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쏟아진 밀가루를 다섯 살 남짓한 애기가 닥닥 긁어모읍니다. 가족 열한 명이 함께 먹을 거라면서요. 흙이 섞인 밀가루지만 상관없습니다. 여태까지 동물사료에 흙을 섞어서 빵을 만들어 먹었고, 이제 그마저도 없으니까요.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맨발의 소년은 낯선 거리를 두리번거립니다. 먹을 게 있을까 찾아보며 걷다 보니 10킬로나 걸어왔습니다. 결국은 허탕친 채 빈속으로, 그리고 빈손으로, 길을 더듬어 돌아갑니다.

학살이 시작된 후 태어난 아기들은 분유를 먹지 못해 둥근 볼이 홀쭉해지고, 팔다리에 뼈가 드러나도록 야위다 숨을 거둡니다. 똑같이 굶은 엄마들은 탈수와 영양실조로 모유 수유가 불가능합니다. 이스라엘 점령군이 그들의 표현대로 “초토화시킨” 후, 맨 처음 지상군을 투입한 가자지구 북부의 주민들은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고 있습니다.

남쪽에서 어쩌다 오는 구호품을 실은 트럭을 주민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트럭이 나타나면 주민들이 몰려듭니다. 구호품인 밀가루의 양은 절대적으로 모자라고, 그 모자란 양을 나눠 줄 행정 인력도 없습니다. 점령군이 다 죽였기 때문입니다.

굶주린 주민들이 트럭에 몰려드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니 위협적이더라며, 점령군은 탱크로, 헬기로 주민들을 무차별 공격합니다. 그렇게 어느 날은 한 사람, 어느 날은 일곱 사람 죽이다가, 2월 29일엔 118명을 죽였습니다.

국제 사회가 이스라엘에 책임을 묻자 이스라엘은 몰려든 주민들이 서로를 밀치고 밟다가 깔려서 죽은 거라고 합니다. 자체 조사해 보니 그렇답니다. 국제 사회는 이제 더는 책임을 추궁하지 않고, 점령군은 같은 자리에서 구호품을 기다리는 민간인들을 쏘고, 또 쏩니다. 20명씩 죽여도 이젠 뉴스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해된 굶주린 주민은 이제 450명이 넘습니다.

이스라엘은 5개월 전 공격 초반부터 가자 주민을 “인간 동물”이라 칭하며, 이미 17년간 이어온 봉쇄를 전면화해 구호품과 의약품의 반입을 철저히 금지했습니다. 그리고는 면피용으로 구호품을 아주 아주 조금 들여보내고 있습니다.

이집트 국경 지대에 구호품을 실은 트럭 수천 대가 멈춰 서 있습니다. 보안 검사를 핑계로 이스라엘이 세워둔 겁니다. 보안 검사란 이런 겁니다. 갑자기 아동용 의료 키트에 들어 있는 의료용 가위는 점령군의 “보안”에 해를 끼칠 용도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들여보낼 수 없답니다. 그렇게 의료용 가위를 실은 트럭들을 통째로 돌려보냅니다.

그래놓고는 지금 구호품을 더 들여보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구호품을 배부할 수 없는 상황이 문제랍니다. 왜 구호품을 배부할 수가 없습니까? 그걸 맡아온 UN 기관인 UNRWA(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작으로 기능이 마비됐습니다.

UNRWA는 원래 팔레스타인 난민을 지원하는 기관입니다. 난민이란 이스라엘이 건국하면서 인종청소시켰던 원주민들과 그 후손들을 말합니다. 가자 주민의 80%가 난민이고, 이번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로 절대다수가 피난민이 돼 UNRWA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UNRWA가 운영하는 학교, 구호품 창고를 매일 같이 폭격하던 이스라엘은 지난 1월 26일, 국제사법재판소로부터 집단학살을 방지하라는 명령을 받은 다음 날, UNRWA 내에 10월 7일 이스라엘 공격에 가담한 하마스 대원이 있다고 주장하며 집단학살 뉴스를 덮으려 했습니다. 아무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이 시도는 먹혔고, 강대국들은 즉각 지원을 끊었습니다.

그렇게 UNRWA를 마비시킨 뒤 강대국들은 낙하산에 구호품을 매달아 비행기로 떨어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수명이 다한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아 구호품에 달려가던 주민들은 구호품에 깔려 살해됐습니다. 그렇게 한 번씩 화려하게 투하하는 구호품은 트럭 한 대가 실은 분량에도 못 미칩니다. 그런 생쇼에 미국도 최근 가담한 것이고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미국은 임시 항구를 만들어서 배로 구호품을 보내겠답니다. 그리고 UNRWA를 대체하는 다른 기구를 만들겠대요.

임시 항구를 짓는 데 필요한 건설 장비와 자재들은 이집트 국경을 통해 트럭에 실려 가자지구에 들어왔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나요? 미국은 이집트 국경으로 구호 트럭이 들어오게 이스라엘을 압박할 수 있는데, 일부러 안 하면서도, 인도주의를 준수하는 척만 하려는 겁니다. 애초에 왜 가자지구에 항구가 없을까요? 이스라엘 점령당국이 가자의 모든 항구를 다 부수고, 다시 짓는 걸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UNRWA 직원들이 하마스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은, 언제나처럼 이들 직원들과 가족들을 고문해 고통에 못 이긴 거짓 자백을 받아낸 것이라는 UN 조사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강대국 몇 곳이 UNRWA에 펀드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미 손상은 완료됐고, 피해는 복구 불가능합니다. 이미 가자 주민들은 굶어 죽고, 구호품에 깔려 죽고, 점령군의 무차별 발포에 살해됐습니다.

팔레스타인 시인 라피프 지야다는 말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 누구에게도 그들이 인간임을 인정해달라 애원하지 않는다고, 세계가 얼마나 인간다운지를 물을 뿐이라고요.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 이 글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16일 오후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개최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규탄 한국 시민사회 11차 긴급행동’에서 필자가 발언한 내용입니다.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한국 시민단체인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로, 국제연대의 특성상 본명 대신 활동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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