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 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대원
 

 

산행일자 : 2024년 2월 25일(일)
산행구간 : 큰넓고개-죽엽산-노고산-축석령
거리 : 14km
참여인원 : 18명

들머리 큰넓고개 입구에서.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들머리 큰넓고개 입구에서.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내 작은 발자국을 영원히 남기고 싶어...”

노래 가사가 절로 흘러나온다. 버스에서 내려 산길로 접어들 때부터 산발적으로 날리던 ‘님의 손길’이 나뭇가지 위에, 내 마음에, 간혹 오가는 대화 속에 소복히 쌓인다. 길이 오르막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님이 펼친 흰색의 향연에 말을 잊은 것일까? 

우리 팀 외에는 아무도 없는 산길에 눈과 종주대가 어느 것이 눈인지? 어느 것이 대원들인지? 잠시 나의 눈을 흐릿하게 한다. 대원들이 눈과 하나 되어 산을 오른다. 늘 우리 마음을 즐겁게 하던 뺑끼 선생의 입담도 멎은 시간이다.

포효하듯 서있는 전나무.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포효하듯 서있는 전나무.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쭉쭉 뻗은 전나무.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쭉쭉 뻗은 전나무.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눈바람 맞고도 자태를 잃지 않는 소나무.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눈바람 맞고도 자태를 잃지 않는 소나무.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바람아 불지 마라, 햇살도 오지 마라’ 뭐 이런 마음으로 산길을 가고 있었지만 어느새 눈발은 멈추고 산비탈을 따라 환한 빛이 날아든다. 아니나 다를까. 잣나무 숲은 지나면서 나뭇가지 위의 눈들이 슬그머니 쪼그라든다. 

그래서 그런가. “국수와 국시는 뭐가 다른지 아는기요?”라고 질문을 던지는가 했더니, “닭내장탕은 서문시장에서 시작된 기라”. 누가 대답하기도 전에 입이 잠시 쉴 틈을 주지 않고 대원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정상을 향해, 앞으로!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정상을 향해, 앞으로!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그 사이사이로 누군가가 간혹 끼어들기는 하는데 후미대장을 경호하는 나의 귀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는다. 눈이 차지하고 있던 산길이 걸걸한 목소리로 대체되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첫 봉우리에 올라섰다. 오늘의 최고봉 죽엽산. 조그마한 정상 표지석이 귀엽다.

정상 죽엽산에서. 조그마한 정상 표지석이 귀엽다.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정상 죽엽산에서. 조그마한 정상 표지석이 귀엽다.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라라가 지바고와 운명적으로 재회한 어느 시골 마을을 연상케 하는 끝이 없이 이어지는 눈길을 기다랗게 줄을 지어 걷는 대원들의 모습은 설산을 넘어가는 홍군의 행렬 같기도 하고 티벳의 험준한 산을 걷는 수도자의 행렬 같기도 하다. 간혹 흘러나오는 말들이 설산과 섞이기는 하였지만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대원들의 모습으로 눈길이 가득하다.

조용한 걸음걸이 중에서도 작은 사건 사고는 있었다. 짝꿍과 떨어져서 후미에서 마음 편하게 걷고 있던 정철 대원이 종주대원에서 컷오프 될 수 있다는 루머가 후미에서부터 빠르게 퍼져나간다. 

눈속에 풍덩 빠진 심주이 총무.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눈속에 풍덩 빠진 심주이 총무.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절대미이고 절대 아름다움인 심주이 총무에게는 오로지 용비어천가만이 불려져야 함에도 그 아름다움에 토를 다는 사건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대원들의 귓전에서 귓전으로 이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가는 중 드디어 허기진 배를 채우는 시간이 되었다. 

언제나처럼 냉장고를 옮겨서 메고 온 김익흥 대원의 배낭에서는 옛날 막걸리에 계란조림 등등이 쏟아져 나오고, 입단하자마자 부대장의 지위를 넘보는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김지영 대원의 파김치. 

칼을 대지 않은 파김치를 눈 덮인 산에서 막걸리를 안주 삼아 맛보는 이 대목에는 누군가의 시 한 수가 필요한데...... 아하! 우리 라기주 시인이 결석이라.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멋진 산악인들.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멋진 산악인들.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점심에 마신 막걸리의 효과인가? 후미대장이 자꾸 눈밭에 미끄러진다. 일부러 사건 사고를 만들어서 매스컴을 타고 싶은가? 알 수 없다. 

산행 후기를 써야 한다는 중압감에 짓눌려 있는 나에게는 뭔가 사건 사고가 필요하다. 언론이라는 것이 본래 그러한 거 아닌가? 내가 사건 사고가 너무 없다고 했더니 후미대장이 이 기회를 노린 것인지? 나의 고충을 해결해주려는 충정인지?

그런데 예기치 않은 대형사고가 터졌다. 이종규 대원의 예언이 맞아떨어진다. 뭔가 기삿거리가 있을 거라고 그랬다. 이종규 대원을 우리 종주대의 예언 대원으로 불러야 할 듯. 기자의 입장에서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지만 대원들에게는 너무나 아픈 소식이다. 

대장께서 심한 감기몸살로 중간에 탈출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안 일부 대원들은 이심전심으로 ‘나의 부재를 알리지 마라’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준칙을 지키면서 다시 오르막을 오른다. 

그런데 대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갖가지 루머가 대원들을 휩쓸고 다닌다. 루머라는 게 어차피 근거도 없고 발원처도 확인하기 어렵지만. 가장 기발한 루머가 다른 통신들을 제압한다. ‘대장께서 대원들의 행복한 뒷풀이 장소를 찾기 위해서 먼저 하산하였다’는 설을 퍼뜨린 사람은 의외로 뺑끼 선생이다.

'선 채로 휴식'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선 채로 휴식'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설산을 내려와 왁자지껄 사람들이 모인 식당가로 내려왔다. 그런데 우리는 다시 그 식당 옆으로 난 비좁은 비탈길을 올라간다. 이건 ‘서류가 잘못되어 다시 군대에 가야한다’는 악몽을 꿀 때의 그 기분이다. 이미 제대한 지 오래되었는데 다시 군에 가라고. 

그런데 이 악몽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식당가를 지나거나 도로를 지나서 다시 가파른 좁은 길을 올라가기가 몇 차례 더 있을 거라고는 그때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고행의 길이다. 이미 제대한 군대를 다시 가는 기분으로 산을 오르고 내려갔다 또 오르기를 반복하는 것으로는 고행이 충분하지 않았다. 군부대가 차지한 길고 널찍한 땅을 둘러싼 철조망을 피해피해 가파른 길을 돌고 돌아서. 

이제 그 고행이 끝나는가 했더니. 아니다. 고행이란 원래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수준으로 가야 그 매력이 있는 법. 이제 사유지라고 둘러쳐 놓은 날카로운 철조망을 피해서 길도 제대로 없는 곳을 헤매며 걷는다. 

하염없는 눈속을 거닐다.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하염없는 눈속을 거닐다.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한북정맥의 길을 군부대와 자본이 빼앗아 간 현장을 우리는 걷는다. 이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에게 얼마나 더 길고 먼 고행을 강요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바로 앞에 우리의 목적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대장의 부재를 실감한다. 대장이 탈출하고 여러 차례 혼선이 있었지만 대원들이 지혜를 모아 약간의 혼란을 수습하면서 긴 설산과 고행의 길을 거뜬히 걸어왔다. 

그런데 아뿔싸! 마지막 순간이 우리에게 대장 부재 상황의 무게를 확실히 각인시켜주는 시간이 되었다. 운동의 원칙을 우직하게 지키며 살아왔던 김재선, 이계환, 이지련 대원 등 일부 고참 대원을 중심으로 지도에 있는 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이에 기회를 엿보던 후미의 일부 대원들은 지름길로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여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조심 조심... 마지막 내리막길.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조심 조심... 마지막 내리막길. [사진 제공-통일뉴스백두대간종주대]

눈발이 날리는 큰넓고개에서 출발하여 610미터의 죽엽산 정상을 밟고 죽엽산을 내려와서 식당가를 거치고 다시 380미터 노고산을 돌아 공동묘지를 지나 다름고개로 내려왔다. 

여기에서 찻길을 건너 동네 뒷산길을 따라 축석령까지. 전체 14킬로미터를 7시간 23분에 걸쳐서 강행군한 대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