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자주

“싸게 팔 테니, 짧게 입고 자주 사라”는 구호에 열광하며 빠져들었던 패스트패션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탄소배출 10%를 점하며 항공과 해양운송 분야 탄소 배출량을 뛰어넘었다.

한두 번 입고 버릴 값싼 옷들을 위해 봉제공장이 무너지도록 미싱을 밟아댄 최저시급 260원의 어린 노동자 1,000여 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2,000여 명이 다친 2013년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봉제공장 붕괴사건 또한 패스트패션의 결과다.

한 장에 1만 원도 안 하는 티셔츠, 3만 원짜리 재킷, 3천 원짜리 스카프의 비밀은 개발도상국의 값싼 노동과 한두 번 입고 버려야 하는 저렴한 소재에 있었다. 개발도상국은 값싼 노동력과 허술한 환경관리를 기반으로 의류산업을 국가동력으로 삼는다.

1990년 이후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와 건물붕괴 사고만 23건에 이르고 1,750여 명의 의류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초록의류함’의 옷들은 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 옷 쓰레기산의 일원이 되어 소떼들의 먹이가 되었고 햇빛에 장기 노출돼 불이 붙기도 하고 때로는 쓰레기 옷산을 감당하기 어려운 주민들이 불을 지르기도 한다.

면셔츠 한 장에 한사람이 약 3년 6개월 동안 마실 수 있는 양의 물이 필요하고 청바지는 약 10년 동안 마실 물이 필요하다. 목화 생산을 위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였던 우즈베키스탄 아랄해는 50년이 지난 지금은 기존 크기의 10분의 1만 남았다고 한다. 세계은행 발표에 따르면 수질오염의 17~20%가 원단 표백이나 염색이 원인이라니 옷은 엄청난 물을 삼키고, 오염된 물을 도랑과 개울, 강, 바다로 뱉어낸다.

‘초록의류함’에 치워버린다고 내가 버린 옷이 사라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온다.

옷과 패트병은 형제

옷과 패트병은 형제다. 나라도 뭐라도... [그림 - 이태옥]
옷과 패트병은 형제다. 나라도 뭐라도... [그림 - 이태옥]

의류 온라인 회사에서 일했던 후배는 새 옷은 반드시 세탁 후 입으라고 한다. “얼마나 더러운데요.”

새 옷 냄새의 정체는 석유다. 우리가 입는 옷 대부분은 석유로 만들어진다. 석탄, 석유 등에서 추출한 고분자물질을 화학적으로 합성해 만든 섬유가 합성섬유다. 혜성처럼 나타난 합성섬유는 원유에서 추출되는 기초 원료인 나프타로 만들어진다. 현재 전체 의류의 약 60%가 합성섬유로 만든 제품이고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아크릴은 합성섬유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세탁 후 마르기 쉽고 구김이나 변형에 강해 2017년 기준 합성섬유의 80%를 차지하는 폴리에스테르는 만드는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해 면섬유에 비해 약 세 배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목화솜에서 추출한 면섬유는 또 어떤가? 면섬유의 대량생산을 위해 전체 농약 사용량의 10%와 살충제의 25%가 목화 재배에 사용된다. 진짜 유기농 면은 고작 1% 생산에 그치니 내 옷장까지 들어올 확률은 높지 않다.

텀블러와 종이 빨대를 사용하면서 ‘NO플라스틱’ 대열에 합류해 보지만, 내 몸에 걸친 옷이 패트병과 같은 재질의 플라스틱임을 알게 되면 허탈해진다. 폐패트병을 새활용한 티셔츠로 의류업계는 친환경을 표방했지만, ‘제조-사용-세탁’과정에서 매년 500억 개의 생수병과 맞먹는 50만 톤의 미세플라스틱이 강으로, 바다로 흘러 바다생물을 통해 다시 우리 식탁에 오른다.

바다로 흘러들어온 미세플라스틱의 35%가 합성섬유 세탁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니 매주 5g짜리 카드 1개 분량의 미세플라스틱을 먹는다는 연구 결과와 기사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

더 짧게, 더 자주

“목화나무를 심어 솜으로 옷을 만들어 입으란 말이냐? 누에고치라도 키워야 하나?” 이쯤 되면 옷의 배신에 허탈해진다.

‘옷을 사지 않는다’라는 영상이나 기사글 댓글에는 한숨 가득 담고 “옷을 덜 사겠다”는 다짐이 이어지지만, “부모님 옷가게 하는데 구독을 끊겠다.” “개발도상국 노동자의 일자리도 걱정문제이지 않냐?”라는 댓글이 달린다. “소비로 경제를 살려야 한다”라는 주장은 단골이다.

인간이 만든 기후위기는 과소비를 부추기는 시스템에 있다.
2~4주 만에 ‘기획-제조-판매’까지 이뤄낸 패스트패션의 대명사였던 오프라인 기반의 자라, H&M 등이 1~2주 만에 생산부터 공급까지 리드타임을 줄이고 가격을 더 낮춘 울트라패스트패션 업체인 아소스, 부후, 쉬인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 자리를 내주는 형국이다. 스크롤만 올렸다 내렸다 하면 뚝딱 쇼핑이 끝나니 더 빠르고 더 자주 옷을 사고 버린다.

덕분에 국내 패스트패션 시장규모는 2007년 3,000억 원에서 2017년 약 3조 2,000억 원까지 치솟아 10년 동안 10배 이상 커졌다.
옷 쓰레기산과 미세플라스틱 바다는 더 높아지고 넓어질 전망이다.

나라도 뭐라도

그러니 ‘나라도 뭐라도’ 하자.
일단 새 옷을 덜 사자. 적어도 싸니까, 한두 번 입고 버리기 좋으니까 사지는 말자.

‘리클’ 같은 의류순환 앱을 활용하고 옷을 돌려 입어보자. 평소에 나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디자인의 옷을 득템하고 의외로 멋쟁이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다시입다 연구소’가 진행하는 ‘21% 파티’에 참여해 내 옷장에 머물기만 하는 21%의 옷에게 새 주인을 찾아주는 방법도 있다. 친구들이나 회사동료, 마을사람들과 ‘4계절 21%파티’를 해보자. 선물 받거나 친구에게 받은 옷이라고 머뭇거리며 옷장에 처박아 두지 말자.

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에서 15,000원 주고 샀던 여름바지를 10년 이상 입었더니 반질반질하다 못해 헤지게 생겨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 했다. 간절기 초록가디건은 올이 나갔지만 10년째 그대로 입는 아이템이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전통 바느질을 배웠다는 후배를 만나면 예쁘게 꿰매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여기저기서 선물로 받은 두꺼운 등산 양말은 추운 겨울 요긴한 아이템이었다. 집안에서 신는 실내용 등산 양말은 일주일 정도 신고 외출용은 3일 만에 세탁한다.

지난해 아나바다장터에서 5,000원에 산 올드패션한 모피잠바는 올 겨울 최고의 아이템이었다. 7년 전 친구가 준 토끼털 미니 목도리도 요긴하게 두르고 다녔다. 이왕 만들어진 것은 마르고 닿도록 오래도록 입고 두를 예정이다.

빨래에는 최대한 게을러지자. 외출 후 코트나 패딩, 겉옷 등은 빨래대에 널어 바람과 햇빛 샤워로 최대한 세탁을 미뤄보자. 아이들이 분가하고 1인 가구가 되다보니 8.5KG 세탁기를 채우는데 오래 걸린다. 속옷은 손빨래했지만, 그 이상은 엄두를 못냈는데 ‘세탁기 없이 사는 소설가’ 이야기에 힘을 얻어 그때그때 베이킹소다를 풀어 불리고 헹궈 널어둔다.

미세플라스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세탁기 강도를 줄이고 냉수로 맞춰 세탁을 한다. 빨래망을 사용하면 한번 걸러주니 먼지도 미세먼지도 조금 더 줄일 수 있다.

세탁기보다 최대 40 배이상 초미세플라스틱을 내놓고, 옷 수명을 줄이는 건조기는 언감생심이다. 볕과 바람이 들지 않는 곳이 아니라면 건조기는 멀리하자. 쏟아지는 볕과 불어오는 바람이 아깝지 않은가?

그럭저럭 아끼고, 나누고, 바꾸고, 다시입는 ‘의’생활을 실천 중이다.
내 입으로 미세플라스틱이 조금이라도 덜 들어온다면 하나도 불편하지 않다. ‘기후살이’는 이제 적응해야 할 삶의 양식이다.

 

이태옥 원불교환경연대 공동대표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자연도 인간도, 우주도...

한낱 인간의 욕망이 지구를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꿈꾼다.

에코아나키스트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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