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북)정치학 박사/ 사, 부산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전략국가, 조선> 저자

 

기간 진보운동은 이 땅에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데 실패했다. 북도 2023년 연말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행해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에서 ‘근 80년간 지속된 동족 개념의 남북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새로운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다음과 같은 순서로 ‘새로운 진보운동을 위한 시론(時論)’ 글을 아래와 같이 연속적으로 기재한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필독을 권한다. / 필자 주

1. 총론; 2024년은 ‘새로운’ 진보운동의 원년이 되게해야 한다 
2. 반미자주전선: “미 제국” 반대를 주선으로 해야 
3. 반독재민주전선: 민중정권 수립을 명확히 해야 
4. 조국통일전선: 평화담론에서 통일담론으로의 완전한 전환이 이뤄져야 
5. 결론: 자·민·통 운동은 ‘여전한’ 진보운동의 강령이다

 

1. 들어가며: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정인가?

민주 공화정에 대한 역사와 유래 등에 대해선 많은 해석을 해낼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근대 이후 ‘공화’와 만나서 ‘민주주의’도 살아남았고, ‘민주’와 만났을 때 ‘공화국’도 번영했다는 사실이다. 그전에는 둘 다 극히 단명했는데, 근대 이후 민주 공화정은 ‘민주’가 갖는 직접성과 참여성, 폭력성과 중우성 및 단독성이 ‘공화’가 갖는 대화와 타협, 분권과 대의성 및 비례성과 결합해 제도화했고 그 생명력을 한껏 꽃피워 냈다.

결과, 근대 이후 일반적 의미에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 대부분은 '민주정'과 '공화정'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민주 공화정의 국가형태를 띤다. 이름하여 민주주의와 공화제 모두를 다 실시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 핵심 논리에는 국가권위와 권력 모두가 인민으로부터 나오며, 모든 정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공무원이 운영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인물이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1863년 11월 19일,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그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통치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라는 유명한 명제적 연설을 남겼다.

이 연장선 상에서 대한민국도 민주 공화정의 형태를 띠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항에도 다음과 같이 그 성격 규정을 명확히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합하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공화제’ 모두를 택한 국가이고, 두 의미를 해설해 보면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인민)에게 있고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며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을 일컫는다. 그리고 공화정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체”이자 “보통군주가 없는 국가 체제”를 가리키는데, 이 표현은 결국 오늘날 “국민주권주의을 의미”하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그런데 문제는 위와 같은 의미, 즉 ‘민주공화국’ 의미로서의 대한민국이 제헌 헌법에서부터 있어 왔지만 진작 이를 실천한 건 제2공화국, 제3공화국과 제6공화국뿐이고, 지금의 제6공화국에서도 다음과 같은 본질적 물음이 여전하다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과연 진정한 ‘민주 공화정’ 국가인가?

2. 대한민국은 지금 복합위기 사회이다

묻고, 대한민국 사회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자. 과연 대한민국 사회는 주권자인 ‘국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어 있는가? 한 국가의 건강성, 혹은 국격이 그 국가의 국내 총생산GDP, 혹은 국민 총소득GNI 그런 경제지표로만 입증될 수만 없다면, 물론 GDP나 GNI 등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총적 지표로서의 한 요인은 될 수 있겠지만, 그것만 가지고 한 국가의 민주 공화정으로서의 국격 전부를 표현할 수는 없다. 또한 잘 산다는 총체성의 유일 기준도 될 수 없음이다. 정말 만약 그것만으로 부자와 가난, 잘살고 못살고, 선진국과 빈국, 나아가 한 국가의 민주성을 성격지어야 한다면 그거야말로 우리가 그렇게 비아냥했던 ‘졸부’들의 갑질-Gabjil과 하등 다르지 않다.

그래서 잘 산다는 의미와 함께 민주성 개념은 수없이 많은 요인이 관계론적 입체성의 결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그 비교 대상이 국가와 국가라면 더더욱 그러해야 하고, 대표적으로는 정치, 경제, 국방, 사회문화 등의 다양한 분야의 지표 요인들을 총합해야 하고, 연장선 상에서 한때 부탄이라는 국가(2011년도 국가총행복 지수 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 차지)도 자신들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였음을 선언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지표의 다양성과 비교 대상 국가에 대한 구체적 이해와 실정도 충분히 반영된 결과여야만 한다.

연동하면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 정도의 경제지표를 갖고 OECD에 가입해 있다하여 이를 곧바로 대한민국이 잘 살고, 민주주의 체제가 잘 작동하고 있는 국가이자 우리 국민 모두 행복하다, 그렇게 말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예의 그 ‘잘 산다’라는 ‘아! Q’ 정신 승리법 뒤에 우리 모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즉 수없이 많은 다음과 같은 엄청난 고질병들을 앓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2천 달러(2022년 기준)와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를 자랑하지만, 진작 그것과는 별개로 2022년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 나타난 행복 순위는 59위이다. OECD 회원국 중 뒤에서 1등 그룹에 속한다. 또한 같은 보고서에서는 한국의 사회적 고립 인구 비율이 2021년 기준 18.9%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권이었다. 의미는 10명 중 8명이 주변에 ‘도움 청할 사람 없다’이다. (우리가 항상 긍지하고, 자랑해 왔던) 공동체의 완전 붕괴와 하등 다르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년째 불평등, 빈곤, 빈약한 사회안전망이 국민의 삶을 항시적으로 불안하게 짓누른다. OECD 가입 회원국 중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 1위 오명은 2024년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출산율도 꼴찌이다. 0.68명(2024년 2월 기준)은 국가공동체 유지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참고로 2022년 대한민국 합계 출산율은 0.78명으로 OECD 가입 회원국 중 최하위이다. 그래서 이런 추세라면 2025년에는 0.61명으로 떨어져 한 국가가 ‘국가’ 공동체라는 것을 유지하는 데 있어 치명적 수준 도달할 것이라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고, 경고다.

또 있다. 국제조사기관 월드 밸류 서베이의 7차 조사(2017~2022년)에서 밝혀진 한 국가의 공동체성 건강지표를 나타내 주는 사회적 자본지수에서도 한국은 거의 절망적 수준에 가깝다. 사람을 믿는지에 대한 물음에 응답자의 32.9%만 믿는다고 답해 뉴질랜드, 독일, 미국, 일본보다 낮은 하위권에 속했고 정부, 의회, 언론에 대한 신뢰도 역시 각각 12.9%, 14.2%, 13.7%로 최하위권이다. 빈곤, 차별, 장시간 노동이 유지되다 보니 산업재해로 죽어 나간 노동자들의 수도 매번 OECD 가입국 중 1, 2위를 다툰다.

심각하기로는 다음이 더 문제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미래의 불행을 충분히 예견해 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예는 이렇다. 초등학생에게 이미 고등학생 3학년 내용에 해당하는 미적분 공부를 시키는 ‘올케어 반’이 학부모들 사이에 매우 유행하고 있다는 것인데, (한참 자라나는) 애들한테 잔인해도 이렇게 잔인할 수 없다. 단지, 의대에 입학시키겠다는 학부모들의 ‘미친’ 욕망이 선행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초등학생을 ‘초등학생’이 아닌 ‘입시 병기’로 둔갑시켜 버렸다.

끝? 천만의 말씀이다. OECD가 2018년 발표한 ‘더 나은 삶의 지표(BLI; Better Life Index)’에 따르면 대상국-OECD 가입 38개국과 러시아, 브라질 중 대한민국은 ‘공동체 관계망’과 ‘환경 지표’가 각각 꼴찌(40위)이고, ‘일과 삶의 균형’ 부분은 37위를 차지하는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의 삶의 만족도가 최하위이다. GNI 3만$이라는 경제지표만 보고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음이 이렇게 적나라하다.

전혀 행복하지 않은 나라, 그런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사다리 걷어차기’로 상징되는 ‘1:99’ 사회, 그리고 2019년 시장조사 전문기업인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현대인의 정신건강 인식 조사’를 실시했는데, 이 조사 결과를 따르더라도 전체 응답자 가운데 대한민국 국민은 76.4% 정도가 ‘내 삶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다’라고 답했다. 더 심각한 지표로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세계 가치관 조사(2015년)에 따르면 ‘자녀에게 나보다 못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관용성을 가르치겠는가’라는 질문에 가르치겠다고 답한 한국인 부모는 45.3%다. 조사 대상 52개국 중 52등으로 꼴찌다. 르완다보다 못하다. 못사는 사람들과 같이 살겠다는 르완다의 관용성은 56.4%였다. 명백히 ‘함께, 더불어 살기 어려운’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위험 신호들이다.

또 있다. 7차 세계 가치관 조사(2020)에 따르면, 한국인은 평등을 12.4%만 선호하고, 불평등은 64.8%가 선호한다. 즉 한국인의 60~70%가 입으로는 평등을 말하지만, 실은 평등에 반대한다는 괴이쩍은 결과이다.

해서 물을 수밖에 없다. 위 모든 지표 속에서 우린 무얼 생각해 내어야만 하는가? 묻고, 우리 대한민국이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를 위해 ‘사실상’ 모든 것을, 특히 그중에서도 (미국에) ‘자주’를 저당 잡혀, 다른 말로는 국체(國體) 없는 대한민국이 되어 얻어낸 결과가 위에서 열거한 그러한 불명예들이라고까지 한다면 대한민국에서 해결해 내어야 할 진정한 변혁적 과제는 무엇이어야 만 하는가?

진정한 민주 공화정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3. 윤석열 정권 그 너머: 민주 공화정의 완성

민주 공화정으로서의 민주주의 후퇴는 윤석열 정권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질적으로 더 나빠졌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국가의 정체성과 관련해서는 ‘뜬금없이’ 친일·독립의 역사 논쟁을 일으켰고, 민주 공화정에 대해서는 해석의 문제를 심각하게 노정시켰고, 경제 주권의 안정성 문제는 가히 역대 정부 최악이라 할 만하다. 그 구체적 예시는 △국가에 위임된 공적 역할은 더더욱 부재하고, △리더십, 공동체, 역사는 실종되고, △권력, 특히 검찰 법비들의 난동과 대국민 겁박은 유신을 능가하며, △영토 및 생명을 위한 국권은 상실되고, △경제의 급전직하와 민생의 파탄은 더더욱 심화하고, △정치는 조폭보다 못한 막장의 정치만이 횡행케 하였다. 즉 거의 모든 영역에서 ‘우향우’가 엄청 더 심해졌다는 말이다.

더해서 남북 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더더욱 고착되는 분단 체제와 전시체제만 있고, 비례해 동족에 대한 적대는 더 심화했다. 비례해 한미동맹을 넘어 한미일 삼각 동맹체제와 신(新)냉전적 질서는 더더욱 고착됐다.

설명으로는 이 시각에도 “미 제국”은 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꿈꾸며 우리 민족을 핵전쟁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다. 어떻게? 한국전쟁 때 이미 맥아더에 의해 세워진 핵 공격 작전은 계속 진화하여 수많은 핵배낭, 핵지뢰, 전술핵 등을 배치했고(지금은 철거), 이후 지금은 ‘전략’ 핵우산 정책을 통한 한미동맹체제를 매우 예속적으로 강화해 냈음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을 제2의 ‘젤렌스키’로 내세워 같은 동족·민족인 북에 대해 침략을 전제한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캠프데이비드 협정(2023년 8월) 이후에는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훈련으로 대체하려는 희대의 사대매국정권으로 탈바꿈시키려 한다.

화답도 전광석화 같다. 윤석열 정권은 북을 ‘주적’이라 하고,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2024년 1월 24일 스텔스 전투기 F-35A가 배치된 충북 청주 공군 17전투비행단을 찾아 대비 태세를 점검하면서 장병들을 향해 “(北이 최악의 선택을 한다면) 최단 시간 내 적 지도부를 제거하고 정권의 종말을 고하는 선봉장이 돼야 한다(사실상의 김정은 참수 작전)”라며 “이를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훈련 또 훈련하라”라고 말하는 등 제2의 한국전쟁이 이제 시간문제만 남게 하였다.

그런데도 이 윤석열 정권과 한 하늘 아래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함께 공존해야만 하겠는가?

넘어서는 문제야말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는 첩경이고, 어렵사리 구축해 온 민주 공화정으로서의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길이다. 그러려면 진보진영은, 혹은 ‘깨어있는 시민성’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혹을 절대적으로 이겨내고, 다른 한편 ‘깊은’ 고민과 성찰을 내와야만 한다.

1) 그 너머: 선거 때만 되는 소환되는 경구들

가장 먼저 루소의 경구를 잘 새겨내어야 한다. 영국의 대의제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영국민은 선거 때에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 상태로 전락한다는 것, 그것이 그의 신랄한 ‘선거’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선거 외 일상에서의 정치과정은 철저하게 소외되는 ‘유권자’ 국민의 현실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그렇게 지적한 것이다.

두 번째 소환 인물은 나치에 부역한 것으로 악명 높은 독일 헌법학자 칼 슈미트이다. 그는 정치를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으로만 정의하여 집단지성을 집단광기로 퇴행시킨 나치즘을 합리화시켜 줬다. 어떻게? 적과 동지의 현실적 구분에만 매몰되어 헌법공동체의 기반인 공존과 공생, 공영의 가치와 절차를 무시하는 권력자들을 심판하는 데 소홀하게 했다.

그렇다. 어쩔 수 없이 민주 공화정은 이런 양면성의 토대 위에 서 있다. 그러다 보니 선거철만 되면 대한민국 거대 두 양당은 시스템 공천을 표방하면서 나름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실은 전략공천의 남발을 통해 아무런 연고도 없고 당원들의 지지마저 받지 못하는 후보들을 장기판의 말처럼 다룬다. 과연 이것을 민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또 인기투표식 같은 여론조사를 반영하는 것만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눈높이라도 제대로 맞출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뽑힌 각 후보의 자격은 각 정당의 정강이 표방하는 정체성을 얼마나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충실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겠는가? 모두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중심에 매번 터지는 공천 과정에서의 ‘사당화’ 논란이 그것이다. 복수정당제를 헌법적으로 보장하는 헌정에서 공천의 자율성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민주공화정신에 따라 국민의 주권이 효과적으로 대표 선출권 및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정한 제도의 틀 속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매번 비민주적인 공천행태로 국민의 주권적 지위를 노예상태로 전락시킨 ‘정치적 행위’의 결과만 있다.

하여 ‘민주정’으로서의 최소한의 국민통제권이라도 보장되지 않은 대한민국 민주 공화정 민낯만 있다.

2) 질문: 총선은 ‘정권심판 선거’가 맞는가?

위 질문에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흔히들 총선은 ‘정권심판 선거’라 한다. 상식적 선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과연 이 결론이 맞는가? 결론적으로 실제 경험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 정치사에서 주권자인 국민에게 희망적 고문과도 같은 핑퐁선택으로서의 양당제가 본격화된 것은 2004년 총선부터이다.

2004년을 포함해 총 5번의 총선이 있었다. 2004년, 2008년, 2012년, 2016년, 2020년이다. 이 중 실제 민주진영으로 표방되었던 야당이 승리한 경우는 2016년 총선 단 1회뿐이다. 나머지 4회 모두는 ‘집권여당’이 승리했다. 승률로 표현하자면, 집권여당이 80%(4/5회), 야당은 20%(1/5회)로 승리했을 뿐이다. 매번 정권심판론으로 선거 전략을 짠 결과이고, 성적표는 매우 초라하다.

해서 이제는 선거 프레임을 좀 달리 짜고, 볼 필요가 있다.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의식을 좀 더 일깨우고, 민주 공화정의 주인답게 참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려는 주체자·담지자로서의 책임과 권한을 각성케 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3)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을 어떻게 해석해 낼 것인가?

민주노총은 2023년 9월 14일, ‘노동자 직접 정치 선언’과 ‘진보 집권’을 향한 조직적 결심이라 할 수 있는 정치방침을 내왔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보수 양당 체제 종식과 정치세력 교체를 그 목적으로 하는 정치 대변혁 결정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노동자·민중이 스스로 정치의 주인이 되어 보수 양당 체제를 극복하고 위력적인 대안 정치세력으로 도약해 반드시 진보 중심의 민중 권력을 창출하겠다는 포부가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관련해 좀 더 정치적 해석을 해보면 이렇다. 정치세력화를 갈망하는 노동자·민중들의 요구는 이전처럼 각개약진 된 ‘진보정당 중에 어느 곳이든 찍어라’라는 게 아닌, “진보정치세력의 단결”과 “노동중심 진보정당 건설”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 정치방침]

1. 민주노총은 세상을 바꾸는 노동운동의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높여 나감과 동시에 직접정치, 광장정치를 통해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

2.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을 포함하여 진보 정치세력들의 결집된 힘을 만들어 노동자 집권과 사회변혁을 목표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

3. 민주노총은 현장과 지역의 힘을 모아 내는 방식으로 한국 사회 체제 전환과 진보개혁을 위한 대중투쟁과 정치 개혁투쟁을 동반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

4. 민주노총은 농민, 빈민 등 진보 민중세력 및진보정당과 상호 존중하고 단결, 연대하여 노동중심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

5. 민주노총은 다양한 진보적 가치와 지향을 존중하며 진보정치세력의 연대연합 수준과 단결을 높여내고, 이를 토대로 노동중심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한다.

[민주노총의 단결과 진보정치세력의 연대연합 실현을 위한 (4월) 총선방침]

1. 민주노총은 2024년 총선에서 노동자 직접정치, 광장정치 구현을 위해 아래로부터 조직적 결의와 역량을 모아내고, 진보정치세력의 연대연합을 실현한다. 이를 토대로 윤석열정권 퇴진과 불평등체제 전환 투쟁을 확대·강화하고, 진보정치세력이 위력적인 대안정치세력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 민주노총은 조직 내외의 다양한 진보적 가치와 지향을 존중하며 진보정치세력의 연대연합 실현과 단결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진보정당과 신뢰와 합의로 연합정당 건설에서부터 정책연대, 후보단일화, 공동 선거운동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총선 공동 대응을 적극 추진한다.

3. 민주노총은 현장과 지역에서 친자본 보수양당체제 타파를 위한 정치제도개혁 투쟁과 직접정치, 체제전환운동 대중화를 위한 정치사업을 전면화하고,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진보정당과 [한국사회대전환 민주노총·진보정당 총선공동대응기구]를 구성한다.

4. 민주노총은 친자본 보수양당 지지를 위한 조직적 결정은 물론이고 전·현직 간부의 지위를 이용하여 친자본 보수양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5. 민주노총은 총선평가에 기초하여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정치방침(안) 이행을 위해 진보정치세력과 공동 논의기구를 구성한다. 공동 논의기구는 신뢰와 합의로 운영하며 2026년 지방선거까지 연합정당 건설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위 표에서 확인받듯 2024년 4월 총선도 이 정신과 조직적 결정에 의해 그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정치)방침의 결정 사항이 채 꽃피기도 전에 민주노총의 이러한 방침 결정이 시험대에 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민주-진보-시민사회의 합의로 2월 21일에 가칭 ‘민주진보연합정당’을 태동시키고 여기에 진보당 3, 새진보연합 3, 시민사회 4로 그 의석수 배분을 확정한 것이 그 사달의 배경이다.

긍정적으로는 진보진영이 이번 4월 총선에서 독자적으로 의미있는 정치세력화가 어려운 조건에서 민주당과의 연대, 즉 ‘기대기’ 전법을 통해 당선권을 20석 내외로 봤을 때 절반을 진보정당을 포함한 소수정당과 시민사회에 배정받기로 한 것, 또한 정책연대와 지역구까지의 단일화를 추진하기로 했으니 그 내용에서도 사실상 야권연대가 실현되어 큰 틀에서의 윤석열 정권 심판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정치적 의미, 그 모두를 상징한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비판과 성찰 지점은 피할 길이 없게 되었다. 그중 첫째는 어렵사리 민주노총이 양당 독점 정치 혁파라는 정치방침을 내왔는데, 이와 관련해 위와 같은 결정이 그러한 취지에 부합하는가, 하는 점은 분명 선거가 끝나고 평가해 볼 만한 문제이다. 또 있다. 민주노동당 이후 진보정당들은 총선에서 늘 정당투표를 통해 지지층을 형성해 온 경험이 있다. 통합진보당이 여러 지역구에서 후보를 단일화한 2012년 총선에서도 정당투표용지에는 민주통합당 말고도 다른 선택지들이 살아 있었다는 말이다. 반면 이번 총선에서 진보당은 녹색+정의당과는 달리 민주진보연합정당에 동참한 결과, 정당투표 도입 이후 처음으로 리버럴정당 왼쪽의 선택지들을 사실상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다.

이로부터 진보세력과 진보정당들은 민주노총의 위와 같은 정치방침에도 불구하고 결국 ‘현실’ 정치 논리에 굴복해 거대 양당 중 한쪽에 의지해 생존하는 데 익숙해지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정당 지지층의 구심력이 더욱 와해될 우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즉 전투에서는 이겼으나 전쟁에서 진 소탐대실이 아닌지 새겨봐야 한다.

왜냐하면 2년 뒤에는 또 지방선거가, 다시 1년 뒤에는 대통령 선거가 각각 다가올 텐데 그럼 그때도 아직 우리 진보진영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하여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의존과 독자 지지층에 대한 부재를 현실로 받아들여 이번 4월 총선과 같은 논리로 또다시 현실에 함몰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여전히 남길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민주노총 정치방침과는 달리 자강력이 절대 불가능한 진보진영이 될 것인가, 하는 ‘아픈’ 질문이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 다닐 수밖에 없는 ‘우울한’ 진보진영이 될 것인지 매우 분명하게 자문자답해야 한다.

상상력으로도 이는 충분히 가능하다. 선거의 압박 속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안 봐도 뻔하다. 결국 또 윤석열 정권과 같은 극우 정당이 대한민국 정치사에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 극우 정당보다 그래도 약간 ‘좌’쪽에 있는 민주정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현실 논리, 정말 그렇게 된다면 이의 본질은 민주진보연합정당 참여를 선택한 진보정당들이 더불어민주당과 전술적 연합을 맺는 소수정당으로서의 존재와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의 내부 분파로 전락될 가능성이 매우 커지게 됨과 같다. 즉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매번 무력화되고 유권자에게는 전체 진보운동에 대한 심각한 신뢰 상실, 그리고 진보진영과 ‘깨어있는 조직화된 시민들’로부터는 무기력을 동반한 ‘자강력’에 대한 회의론이 심각하게 고개를 쳐들 것이다.

반면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하며 품었던 뜻이 단지 그것만이 아니라고 한다면 보수정당과 리버럴정당이 대의기구 독점을 통해 시민사회와 대한민국 헌정 질서와 제도를 구조적으로 괴리해온 제6공화국 정치 질서를 반드시 뒤집어 내겠다는 결기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새로운’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지 민주노총의 2023년 9월 정치방침은 반드시 승계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즉 진보정당들은 아직도 그 결심을 실현할 구체적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민주진보연합정당 참여가 이런 노력 자체의 최종적, 혹은 결과적 포기라는 것만큼은 분명한 만큼 이번 4월 총선이 끝나고 나서는 반드시 뼈를 깎는 비판과 성찰을 통해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 질문에 충실하는 진보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그 중심에, 새롭게 태동될 진보정당의 모습에 ‘분단체제와 전시체제 극복’의 정치 담론이 담기고 민중이 정치의 주인되는 참세상의 강령적 모습이 보여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제6공화국을 넘어 스스로 힘으로 제7공화국을 열어내겠다는 결심을 내와야 한다.

4) 소 결론을 대신하며

뭐래도 지금은 총선 국면이다. 4월 10일을 기준으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2월 28일을 기준으로 선거일까진 41일 남았다. 결과, 지금은 진보당의 민주진보연합정당 참여와 민주당과의 연대를 통해 지역에서의 1:1구도 전략에 대해 그 찬·반 논쟁보다는, 즉 이왕지사(已往之事) 그렇게 결정된 이상 진보진영의 그러한 방침에 대해 민주당이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는-진보진영은 민주당에 대한 ‘기대기’ 전법을 통해서라도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과 전민항쟁에 대한 인식적 토대를 차곡차곡 채워내어야 한다. 이름하여 민주당과의 연대에 대해 혁명적(변혁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진보역량의 전체 합이 커질 수 있도록 실천적 활동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는 말이다.

해서 나날의 ‘경악’을 곱씹고 관찰자로서 비판하기보다는 새로운 ‘경이’를 이뤄내는 주체자가 되어 우리 스스로 모두는-주체적 역량 스스로가 이 난장판과도 같은 나쁜 제도, 즉 나쁜 헌법과 법률, 나쁜 선거와 정당을 혁파해 나가겠다는 ‘자강력 제일주의’를 확립하는 계기로 삼자.

헌법, 선거와 정당, 의회와 검찰 개혁에 숱하게 많이 좌절하였지만,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매어 다시는 민주당에 ‘기대지’ 않아도 스스로 자강 된 힘과 능력으로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그리하여 민중이 진정 주인되는 그러한 세상,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이 윤석열 정권과 민주당이 갖는 한계가 극복되는 민주 공화정으로의 대한민국을 진정 한번 만들어 보자.

4월 총선을 통해 이제껏 우리 정당사가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개인과 파벌, 진영과 사사의 이익 및 의제만을 앞세우는 그런 이 정치를 진보진영만이 진정으로 한번 뒤집어 낼 수 있는 대안임을 우뚝 각인해 내자. 그리하여 브레이크 없이 뒤로만 폭주하는 출산과 교육, 환경(기후)과 노동, 그리고 통일과 평화와 같은 공화국 존망의 근본 문제, 즉 국가와 인간 의제로 공통되는 함수 방정식을 반드시 민중 스스로 풀어보게 해보자.

결과 진정한 민중권력 창출만이 그 대안임을 분명하게 각인하자. <계속>

 

김광수 필자 약력

저서로는 가장 최근작인 『전략국가, 조선』(2023)을 비롯하여 『김광수의 통일담론: 통일로 평화를 노래하라』(2021), 『수령국가』(2015),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 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거쳐, 지금은 부경대에서 ‘강사’ 직위를 갖고 있다.

주요 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민생민주부산시민행동 건설 주도(제안자) 및 상임집행위원/전 6.15부산본부 공동대표·공동집행위원장·정책위원장/전 민주공원 관장/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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