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정국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서로서로 존경한다는 머시기나 거시기들에 의해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지키려는 부류들이나 바꾸려는 인간들 간의 공통점이 있다면 몰가치로 합치된다는 것뿐, 잔머리 못 굴리는 국민들만 괜스레 대가리 터진다.

한편에서는 전쟁이라도 날 듯 뒤숭숭해하고, 또 한편에서는 국민생명을 두고 건곤일척의 활극도 벌어지고 있다. 십승지(十勝地)라도 찾아 은둔해야 하나, 여차하면 수의사(獸醫師)라도 찾아 진료 볼 날이 코앞에 닥칠지도 모르겠다. 여기도 난리 저기도 난리 온통 법석이니, 뒤집힌[顚倒] 세상을 보며 사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전도(顚倒)된 세상이란 무엇인가. 똥오줌 못 가리는 환란지경이다. 물질이 정신 위에 군림했다 함이나, 윤리·도덕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푸념, 원칙이 굴절되고 도량(度量)마저 부러졌다는 한탄 등은 그나마 소박한 탄식일 듯하다. 환부역조(換父易祖), 망본배원(亡本背源), 인간상실 등으로 인성(人性)의 근본마저 송두리째 저버린 세상에서, 불효불손함를 나무라고 사람됨을 탓하는 것도 그나마 사치한 감정이 되어버렸다.

그저 기름진 식사 한 끼에 함포고복(含哺鼓腹)하는 것이 착한 서민들의 위안이 된 지 오래다. 아파트값 등락에 일희일비하고, 한 평 늘어난 집 장만에 환호작약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 아닌가. 가치의 게이지가 무너진 판국에 누리호가 성층권을 뚫은 들 무엇하며, 경제대국·한류열풍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저 분노와 허탈을 가라앉히는 위약(僞藥) 효과일 뿐이다.

더 이상의 바닥도 없을 마약, 환락, 방종의 일상이 우리의 오늘이다. 철학 없는 자본주의의 슬픈 종말을 보는 듯 처연해진다. 괜히 죽이고 그냥 막 나가는 세상에 서서, 대종교를 중광한 홍암 나철이 남긴 아래의 유언(遺言) 한 구절이 새삼 마음에 와 꽂힌다.

“귀신이 휘파람을 불고 도깨비 뛰노니 하늘·땅의 정기빛이 어두우며, 뱀이 먹고 돼지가 뛰어가니 사람·겨레의 피고기가 번지르하도다. 날이 저물고 길이 궁한데 인간이 어디메오.”

얼빠진 세상일수록 시간은 잘 간다. 또다시 중광절(重光節, 전래 단군신앙을 다시 일으킨 날)이 내일모레다. 나철이 국망도존(國亡道存, 나라는 망했어도 정신은 있다)의 명분으로 뒤집힌 가치관을 되세운 날이다. 기유년(1909) 음력 1월 15일, 한성부 북촌 재동 육간(六間) 초옥(草屋)에서 가장 못난이들이 모여 천제(天祭)를 올리며 우리의 정체성을 선포하였다.

창교(創敎)가 아닌 중광(重光, 거듭 빛나게 하다)을 택한 것도 주목된다. 나철은 단군교에 입교한 일개 교인으로 단군신앙을 재건하였다. 몽고 침략 이후 7백여 년간 단절되었던 배달민족 단군신앙에 대한 부활이었다. 창교자가 아닌 연결자로 스스로의 몸을 낮추었다. 종교적 차원을 넘어 민족사회 전반에 우국적 반향을 일으킨 동력이 된 이유다.

나철을 비롯하여 권력의 길을 스스로 버린 이들, 부귀를 바람처럼 스쳐버린 이들, 명예를 부운(浮雲)이라 날려버린 이들. 그해 그달 그날에 그렇듯 못난이들이 모여 그런 일을 벌였다. 나를 알게 하고 우리를 각성시켰다. 우리의 얼·말·글과 역사·문화의 재건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부활시켰다.

국시(國是)로서의 홍익인간, 국전(國典)으로서의 개천절, 그리고 국기(國紀)로서의 단군기원 등이 모두 그날을 매개로 정착된 것이다. 또한 국교(國敎)‧국어(國語)‧국사(國史) 부문만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철학과 수행 등도 그날을 계기로 제고된 가치들이다.

홍익인간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사화의 중심가치로, ‘하늘이 정해 준 국시(天定國是)’였다. 소도제천·영고·동맹·무천·팔관 등과 연결된 ‘우리의 연면한 국가제전(東方萬世國典)’이 개천절이다. 단기 연호 역시 우리 역사의 수난기마다 고개를 든 정체성의 한 요소로, ‘자랑스럽게 드리워온 나라의 기원(垂統國紀)’이다.

한글의 명칭 확립과 연구, 그리고 이를 통한 투쟁의 전통 역시 대종교의 노력에 의한 성취였다. 역사 부문에서도 민족주의역사학 정립을 통해 중화사관의 탈피와 일제식민주의역사학을 극복한 집단이 대종교다. 더불어 ‘한사상’·‘삼일철학’ 등으로 나타나는 우리 고유의 사유(思惟)와 인간 완성의 길로 제시된 삼법수행(三法修行) 역시 대종교의 중광을 계기로 현창된 가치들이다.

대종교의 중광은 절망적 현실 속에서 민족적 자긍심을 북돋워 준 일대사건이었다. 역사 속에 침잠되어 오던 단군신앙의 부활을 통해 암울한 민족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정체성의 와해 속에 방황하던 수많은 지식인이나 우국지사, 그리고 동포들에게 정신적 안식처를 제공하였다.

그 주축 세력이 독립운동의 일선에 섰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들에 의해 단군구국론이 재확인되었고, 항일투쟁의 필사적 응집이 가능하였다. 총체적 저항의 사표를 보여준 집단도 대종교였다. 무장항일투쟁만이 아니라, 정치·외교·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저항의 사표를 보여준 것이 이를 증명한다.

대종교는 일제강점기 종교와 이념을 넘어선 하나됨의 상징으로도 작용하였다. 일제강점기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대종교에 입교하지는 않았더라도 대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던 자세가 그것이다. 기독교나 불교를 넘어 응집한 김구·이승만·안창호·이동휘·김약연·김규식·한용운 등등의 인물들이 그들이다.

“우리 배달민족 치고 대종교인 아닌 사람이 누가 있는가”라는 김구의 말이나,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서 “조선민족의 시조인 단군을 섬기는 대종교 신자들은 그들의 위대한 신을 모시며, 조상의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는 결심을 굳게 한 애국적인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라고 우리의 가치를 소개한 우사(尤史) 김규식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일제강점기 대종교가 한국인의 공민종교(公民宗敎, civil religion)로 역할 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루소(J. J. Rousseau)가 “한 인간이 그것 없이는 훌륭한 공민이나 충실한 백성이 될 수 없는 사회적 감정”이라고 공민종교를 정의하였듯이, 국교가 아니더라도 한 국가의 시민(국민)이기에 의지하게 되는 국민적 신앙이 공민종교다.

세월은 그냥 가고 잘난 사람 넘쳐나는 요즘이다. 의미 있는 기념식은 고사하고 중광절의 의미마저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대국민 사기극에 팔 걷어붙인 정치인들의 행적들만 언론에 넘쳐나고, 사회현상 역시 말초적 신경 자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해 그날, 하늘에 사배(四拜)를 올리고 맹세한 못난이들도 모두 갔다. 이제 남은 것은 무언가. 빛바랜 추억의 사진 몇 장, 그나마 훼멸되지 않은 기록의 잔편(殘片), 그리고 역사의 저편에서 ‘거듭빛[重光] 거듭빛…’, 시간을 넘어 들려오는 중광의 아스라한 환청뿐이다.

며칠 후(2024년 양력 2월 24일)면 다시 중광절이다. 우리에게 중광은 무엇인가. 우리의 근대사를 뒤흔들고 우리 현대사의 주춧돌을 놓은 중차대한 사건이었다. 기유년(1909)의 함성으로부터 꼭 115주년이 되는 올해, 진정 그 함성은 그렇게 흘러와 이렇게 가고 마는 것인가.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사)국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오랜 기간 대학에서 대종교독립운동사와 국학 이론을 강의하였다.

주요 저술로는 『단조사고』(편역, 2006), 『종교계의 민족운동(공저, 2008), 『한국혼(편저, 2009), 『국학이란 무엇인가』(2011), 『실천적 민족주의 역사가 장도빈』(2013), 『국학과 민족주의』(공저, 2019), 『배달의 역사, 새 길을 열다』(공동편역, 2020), 『독립운동가 희산 김승학의 행적과 이상국가 건설방략』(공저, 2020), 『총을 든 역사학자 김승학-그 삶과 사상』(2021), 『임오교변』(공저, 2022), 『무원 김교헌의 생애와 역사인식』(2023)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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