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1. 제주 1608년판 『듕용언해(中庸諺解)』

기존의 제주 판본(版本)과 책판(冊板) 연구에서 『듕용언해』 1책이 제주에서 1608년 12월에 목판본으로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다른 연구자에 의하여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그 제주판 『듕용언해』의 실물도 국립중앙도서관에 현전하고 있다.

『중용언해』 1608년 제주 목판본 첫 장과 마지막 장 간기. 10행19자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글에 방점(傍點)이 달려 있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중용언해』 1608년 제주 목판본 첫 장과 마지막 장 간기. 10행19자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한글에 방점(傍點)이 달려 있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원래 『듕용언해』 1책의 초간본은 교정청(校正廳)에서 『중용(中庸)』에 한글 토를 달고 풀이하여 1590년에 활자본으로 간행한 책이다. 이 1590년 활자본을 1608년 제주에서 목판본으로 복각하였다. 초간본이 나온 지 불과 18년 만이다.

이 1608년 제주 판본의 권말 간기에 “中庸諺解 行牧判官李等開刊 萬曆三十六年戊申十二月 日 濟州”라고 밝히고 있어, 선조41년(1608) 12월에 판관 이 등(等)이 개간했음을 알 수 있다.

1608년 제주목사인 이응해(李應獬, 1557~1624)는 1608년 6월에 제주목사에서 파직된다. 여기서 말하는 판관(判官)은 정3품의 제주목사가 아니라 목사의 통치를 보조하는 종5품의 속관(屬官)을 말한다. 그 판관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는다. 한편 광해군은 즉위(1608)년 5월 14일에 이응해의 후임으로 변양걸(邊良傑, 1546~1610)을 제주목사 직에 제수(除授)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해 12월에 나온다.

『중용언해』 1608년 제주 목판본 네 번째 장. 10행19자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사진 제공 – 이양재]
『중용언해』 1608년 제주 목판본 네 번째 장. 10행19자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사진 제공 – 이양재]

1608년 제주 목판본의 판각을 보면 활자본이라 착각할 정도로 우수하다. 오히려 두 줄의 간기 부분의 서체가 본문과 다른데, 심지어 간기 면에 있는 제목 『中듕庸용諺언解ᄒᆞㅣ』에서 ‘듕’자가 비뚤어진 대로 그대로 판각하고 있어 이 책이 다른 책의 복각본임을 말하여 준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 책은 반곽(半廓)이 10행19자라는 점이다.

이원진(李元鎭)이 편찬하여 1653년에 제주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한 『탐라지』의 ‘책판고’에 『중용언해』 책판이 언급되고 있는데, 『탐라지』에서 언급한 책판은 1608년 현전본 『듕용언해』를 찍은 책판을 말하는 것이다.

2. 『중용언해』 장4 책판의 입수

필자는 지난 2월 1일 오후에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위원회’ 전(前) 위원 이형준 선생(서화가)으로부터 소중한 책판을 1점 증여받았다. 선생이 1990년대 초에 제주 남문통에 있는 한 골동상에게 매입한 책판이라 한다.

마루로 재사용된 『중용언해』 제주 목판본 장4 원형 사진. 10행19자본, 세로 22.0cm, 가로 48cm, 두께 2.4cm. [사진 제공 – 이양재]
마루로 재사용된 『중용언해』 제주 목판본 장4 원형 사진. 10행19자본, 세로 22.0cm, 가로 48cm, 두께 2.4cm. [사진 제공 – 이양재]
위의 원향 사진을 좌우로 반전한 모습(書刻 部分). 1608년판과는 전혀 다른 판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위의 원향 사진을 좌우로 반전한 모습(書刻 部分). 1608년판과는 전혀 다른 판이다. [사진 제공 – 이양재]

이 책판의 한 면은 대패로 밀어 판각된 문자가 없어졌고, 다른 한 면은 두 줄 넘게만 부분 훼손되고 온전하였다. 물론 책판의 양쪽에 붙은 손잡이 부분은 없어졌다. 이 선생이 전하는 당시 골동상인의 말에 의하면 “철거하는 어느 집 마루를 걷어 내니 나온 물건”이라고 한다.

즉 이는 필시 책판의 한쪽 면을 밀어 판판하게 하여 마루를 까는 데 재활용한 것으로, 집을 철거하며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태의 책판이 마루의 넓이에 따라 수십 장은 나왔을 것이다. 1608년 목판본이 55장 110면이니, 이는 책판 앞뒤 양면에 4면이 들어가므로 28장의 책판이 있었을 것이고, 28장의 책판은 웬만한 마루 하나를 만드는 물량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이 책판과 1608년 제주 목판본을 비교하여 보면, 이 책판은 1608년 제주 목판본의 번각본(飜刻本)이다. 번각의 과정에서 한글 방점은 삭제되었다. 책판의 크기는 세로 22.0cm, 가로 48cm, 두께 2.4cm이다.

3. 책판 제작 연대의 고증

이 판목을 가지고 와서 살펴보니 『중용언해』의 네 번째 면이었다. 책판으로 치면 두 번째 책판이다. 우리나라의 『중용언해』는 10행17자본이있고 10행19자본이 있는데, 이 책판은 10행19자본이다. 이 책판의 확실한 연대를 고증하기 위하여 조선시대에 이 판으로 찍은 인쇄물을 찾아야 했다.

제주의 공공박물관에 소장된 『중용언해』는 제주교육박물관에 1책, 국립제주박물관에 2책이 소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세 점의 『중용언해』는 모두 ‘세경오중춘개간전주하경룡장판(歲庚午仲春開刊全州河慶龍藏板)’이라는 간기가 있는 1870년에 만든 책판(1810년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으로 간행한 전주 하경룡장판(河慶龍藏板) 방각본이니, 이 판목으로 찍은 책은 아니다.

전주 하경룡 방각본 『듕용언해』 장4, 10행17자본, 1870년,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사진 제공 – 이양재]
전주 하경룡 방각본 『듕용언해』 장4, 10행17자본, 1870년, 목판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사진 제공 – 이양재]

제주목에는 1677년에 불이 나서 당시까지 전해지던, 이원진의 『탐라지』 책판고에 언급된 모든 판목이 불에 타서 소실(燒失)되었다. 1608년에 만든 『중용언해』가 없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익태(李益泰) 목사가 1696년에 편찬한 『지영록(知瀛錄)』 책판목록에 제주향교 동재에 보관한 『중용언해』가 들어 있다. 제주에서 『중용언해』가 1677년 이후 1696년 이전에 다시 판각된 사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로 윤시동(尹蓍東)이 1765년에 편찬한 『증보탐라지』와 1780~1789년 사이에 나온 『제주읍지』에도 『중용언해』가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보면, 1677~1696년 사이에 만들어진 『중용언해』는 적어도 1789년까지, 늦으면 1850년대까지 100년 이상, 150년 가까이 책판으로 사용하였던 것 같다. 이 책판을 마루 바닥으로 깔은 연대는 1850년 이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필자는 이 책판으로 찍은 고서가 발견되었으면 희망한다. 이 책판이 남문통(오현단 부근)에 있던 어느 골동가게에 1990년대 초에 나왔던 것으로 보아 이 책판은 향교 부근의 어느 고가(古家)를 철거하면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4. 맺음말

이 제주 목판본이 낡고 글자의 마모가 심하자 1870년 이후 제주에는 하경룡 방각본이 주로 공급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공급된 하경룡 방각본의 일부가 제주교육박물관과 국립제주박물관에 소장된 것이다. 하경룡 방각본이 제주에 공급되던 19세기 후반은 제주에서 출판을 위한 판목이 거의 제작되지 않던 시기였다.

틀림없는 사실은 필자가 증여받은 제주 책판 『중용언해』는 1677~1696년 사이에 만들어졌고, 적어도 1789년까지, 늦으면 1850년까지 최소 100년 이상, 150년 가까이 사용되었다. 그 책판의 남아 있는 한 장이 필자에게까지 흘러 온 것이니, 필자는 “이번에 ‘제주역사관’(가칭)이 만들어지는 기회에 1990년대 초반에 흩어진 『중용언해』의 잔여 책판이 더 수습되었으면 하며, 아울러 제주에서 만들어진 다른 책판들의 전존 여부도 서둘러 조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급하게 이 글을 쓰며 촉구한다.

‘제주역사관’(가칭)은 역사박물관으로서 역사 문화적 측면이 부각되어야 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입각(立脚)한 도정(道政)의 조직적 시도가 필요하다.

이번에 귀한 자료를 제공해 주신 서화가 이형준 선생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아울러 선생이 주신 자료는 “차후(此後)에 ‘제주역사관’(가칭)이 건립될 때 선생의 이름으로 전증(傳贈)하겠다”고 약속드린다. 또한 이 글을 쓰는데 김우리의 제주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의 석사학위 논문 『조선후기 제주지역 서적간행 연구』(2018)가 특히 도움이 되었음을 밝힌다.
 

참고 자료 (연도순) ;
1. 남권희, 『제주도 간행의 서적과 기록류』, 청주고인쇄박물관, 『고인쇄문화8집』, 2001.
2. 윤봉택, 『제주지방의 조선시대 출판문화에 관한 연구』, 전남대학교 대학원 문화재학 협동과정, 2007년 석사학위논문.
3. 김우리, 『조선후기 제주지역 서적간행 연구』, 제주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2018년 석사학위논문.
4. 이양재, 『제주 옛 간행물의 고찰』, 2023년 기고, 제주특별자치도 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출판물에 기고하여 2024년 현재 출판 진행중.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